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계3:14-21

가. 들어가는 말.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선교사업을 많이 한다고 좋아하면서 교회 자랑하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서 물어야 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과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 모습이 같은지를 늘 물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혹시나 벌거벗은 임금처럼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면서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그러한 교회입니다. 겉모양으로는 어느 모로 보나 부러운 교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책망만 들었던 교회입니다. 그렇다고 특별나게 이단이 들어오거나 아니면 부정한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일곱 교회 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하여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참으로 요즈음 우리 나라 교회를 두고 하는 말씀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걸어가야 할 교회의 모습을 묵상하고 또 우리 성도님들이 가야 할 믿음의 길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나. 몸 말.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는 곳에는 세 가지가 아주 유명하였습니다.

하나는 라오디게아라는 도시는 재력이 풍부하였습니다. 당시에 은행업의 중심지가 바로 라오디게아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도시입니다. 돈의 풍부함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지역입니다.

두 번째로 유명한 것은 옷과 의류사업이 발달하였습니다. 특히 라오디게아 주변에서 생산되는 검은 양털로 만든 옷이 유명하여서 수출하여 많은 부를 얻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육체적인 것을 꾸미고 가꾸는 것에 온 마음과 정신을 빼앗긴 지역입니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은 약품이 유명하였습니다. 특히 안질에 좋은 안약으로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안질과 눈병에는 라오디게아에서 생산되는 안약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였습니다. 육체적 건강을 위하여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지역입니다.

가만히 보면 이 모든 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재물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이것을 갖기 위하여 모든 것을 투자하는 물질지상주의, 육체의 즐거움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먹고 마실 수 있는 오늘의 즐거움 지상주의, 건강한 육신을 가지기 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건강지상주의를 대변하는 오늘날 성공하는 사람의 표본이기도 합니다. 물질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즐거움을 갖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건강함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물질이요 즐거움이요 건강이냐 라는 말에 분명하고도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을 때에만 이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묵상하는 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바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신앙 생활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기도 합니다.



먼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예수님은 신앙적인 열심을 가지는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15~16절 말씀을 보면 네가 차지도 덥지도 않는 미지근한 모습을 보면 입에서 토하고 싶을 정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입에서 토하고 싶을 정도로 책망하고 있는 [미지근하다]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미온적이다.]라는 말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그저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 듯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신앙생활이 없어도 좋고 있으면 더욱 좋은 상태를 말합니다.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면 한쪽 발은 세상에 넣어 놓고 또 다른 한쪽 발은 교회에 들여놓고 적당히 양쪽을 즐기면서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가리켜 이야기하는 말씀입니다.

어떨 때 이러한 모습이 나타납니까 ?로 완전히 갈려니 신앙생활이 붙잡고 신앙생활을 완전히 하려고 하니 세상이 붙잡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적당히 즐깁니다. 결국 신앙생활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은 신앙적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한번 정도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만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예수님에게 체면치레 정도입니다. 예배를 안 드리면 무슨 일이 일어 날까봐 무서워하여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쉽게 예수를 믿으려고 하고 세상의 즐거움을 교회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자신에게 세상적인 유익을 줄 때만이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신앙생활이 자신의 세상적인 이익이나 생업에 위협이 될 때에는 더 이상 전진시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도님 신앙생활에는 이러한 중립지대가 없습니다.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에 푹 삶기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까 ?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푹 삶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을 통하여 설익었기 때문입니다. 푹 삶긴 사람은 그의 생활에서 절로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넘쳐 납니다.

우리나라 말로 인생이라는 말을 [삶] 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삶]이란 단어는 고구마를 삶다 할 때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삶은 무엇에 푹 삶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솥입니다. 겸손의 솥입니다. 온유함의 솥입니다. 그 솥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생명의 물을 담고/ 하나님의 일이라는 장작불로 우리를 그 안에 푹 삶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열심히 있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열정이 있는 성도가 모인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영적으로 부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17 ~18절 말씀을 보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람들은 라오디게아의 부유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고 말 할 정도입니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었고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것과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보는 것과 보는 것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는 말이고 그것이 없으니 예수님은 아무리 부유하고 아무리 옷을 잘 입고 아무리 건강하다고 하더라도 가난하고 벌거벗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너희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영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우리의 세상적인 것이 얼마나 있는가?\\\'가 아니고 우리의 생활에서 영적인 것이 얼마나 있는가? 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알지 못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에게는 영적인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적인 일에 신경을 쓰고 육신적인 일에 매달려 있다가 보니 영적인 일이 있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이 세상의 근본이 바로 영적인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은 이것을 알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또 한가지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알지 못한 것이 있는데 영적인 일이 세상적인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세상에서 부유하고 좋은 옷을 입고, 육체의 건강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적인 부유함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요, 영적인 눈을 뜨고 영적인 건강함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하기를 14절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대도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유함은 영적인 부유함을 위하여 있습니다. 세상의 부유함을 하늘의 부유함을 만드는데 사용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부유함 멋있는 것, 건강함은 잠깐이요 없어질 것이지만 하늘의 것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 있습니까 ? 어떻게 하면 영적 부유함을 가질 수 있습니까 ? 예수님은 18절에서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훈련을 받아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여러 가지 찌꺼기를 태워 없앱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습관과 마음의 생각을 믿음훈련이라는 불로 연단해야 만 하늘의 은혜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생활 속에서 믿음의 습관과 마음만 남아 있어서 그것이 점점 증가하는 것이 영적으로 부유해지는 길입니다.

또한,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복음 안에서만 살아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복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아라는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복음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행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에게 수치스러움을 가져다 주는 것들입니다. 아무리 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이러한 결정과 선택을 좋아하고 기뻐하실까 ? 에 대해 [예]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어떠한 형편 어떠한 자리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옷을 벗어버리면 안됩니다. 이것이 영적인 부유함의 길입니다.

또한 18절 말씀에 예수님은 영적으로 부유해 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데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라오디게아 지역은 안약이 무척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신의 눈은 안약을 가지고 뜨게 하지만 영적인 눈을 감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니 육신의 눈을 뜨는 것처럼 영혼의 눈을 뜨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눈을 뜬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이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믿음의 훈련,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생활, 그리고 영적인 분별력은 반드시 [사야하는데] 있습니다. 연단한 금을 사라, 흰옷을 사라, 안약을 사라. 이처럼 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영적인 부유함입니다. [산다]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자기의 것을 투자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부유함을 가지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합니까 ?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까 ? 얼마나 많은 정성과 마음을 다합니까? 그러나 여기에 비하여 우리는 영적인 부유함을 위하여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며 우리의 영적인 부유함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재물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우리의 시간을 드리고, 우리의 물질을 드리고,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몸을 드릴 때 영적인 부유함이 주어집니다.

누구에게 삽니까 ?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말씀 18절에는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 연단한 금을, 흰옷을, 안약을 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 가서도 살 수 없는 것이 영적인 부유함입니다. 아무데서나 살 수 없는 것이 영적인 부유함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가지고 계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이 영적인 부유함입니다. 영적인 부유함을 가지기 위하여 열심을 가지고 있는 성도의 모습이 하나님이 바라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부유함이 넘치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세 번째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예수님은 거룩한 나눔과 교제를 가진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 문 밖에 서서 때로는 우리에게 사랑의 말씀으로 문을 두드립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책망과 아픔의 말씀으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때로는 개인과 가정의 여러 가지 일로 두드립니다. 때로는 다른 성도를 통하여 우리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때로는 설교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때로는 교회에 여러 가지 일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 우리로 하여금 문을 열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를 향하여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읽다가, 설교를 듣다가, 성경공부를 하다가/ 일을 하다가 혹시 이 말씀이 나를 두드리는 예수님 음성이 아닌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자기 자녀의 울음소리는 어머니가 정확하게 듣습니다. 학교 갔다가 돌아오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는 어머니가 정확하게 구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 어머니의 관심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분명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까 ? 예수님은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오셔서 예수님이 가지고 계시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나누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지극히 아름다운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 예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나누어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돈을 벌거나 일을 하여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평안함과 평강을 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만 가지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함이라

또 우리는 건강하게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계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세상에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기쁨과 승리가 아닙니까 ? 이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하시면 우리는 이것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러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우리에게 이러한 하늘의 은혜를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거룩한 교제입니다. 성도님의 생활과 가정에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거룩한 교제와 나눔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모이면 이러한 하나님 은혜를 나누고 격려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 예수님과 거룩한 교제가 일어나고 다른 성도님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어주는 거룩한 나눔이 있는 교회를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공급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른 성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은혜를 나누어주는 거룩한 교제와 나눔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다. 마감 말.

이번 일주일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 우리가 머무는 모든 장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고 투자하여 영적인 부유함을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한 교제 속에서 생활하시는 우리 성도님, 우리교회가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