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 교회 계3:1-6
철학자 니이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해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니이체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니이체의 이 말이 신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부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시말하면 니에체가 이렇게 선언한 것은 그 자신이 신의 부재를 확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살았던 그 시대의 교회와 신자?보니까 하나님이 죽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데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살았다고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판정받은 교회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었다\\\\\\\'는 이 부분을 어떤 주석가는 주석하기를 \\\\\\\"death in the pew\\\\\\\", 교회좌석의 죽음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교회에 출석해서 모두 앉아 있으나 실상은 시체들이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향해 주님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마치 식물인간에 비유할 수 있는 그런 상태의 교회가 바로 사데교회입니다. 우리는 오늘 20세기의 마지막 주간에 죽어있는 사데교회의 모습과 그 원인을 살펴보면서 이 교회의 불행을 우리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주님으로부터 치유의 메시지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죽은 교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첫 번째로 신앙의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활동이나 행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데교회를 보십시오. 죽었다고 판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 행위가 있었습니다. 1절 중반에 네 행위를 안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행위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하는 그런 행위들을 사데교회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행위만을 보면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질 만큼, 즉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을 만한 그런 행위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2절에 보니까 그런 행위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죽은 교회의 특징은 사람을 향한 행위들만 있고, 하나님앞에서 온전한 행위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온전하다\\\\\\\'는 말은 \\\\\\\"속이 채워지다\\\\\\\"는 뜻입니다. 컵이 있다면 이 컵에 물이 꽉차는 것이 온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데교회는 컵만 있고, 안에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온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형식만 있고, 하나님을 향한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형식이 있으니 사람들이 보기엔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 컵 참 좋다.....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보니까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온전하지 않습니다.
이런 교회는 많은 행사는 합니다. 그 행사를 보면 무엇인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도 그 교회를 통해 구원받은 영혼이 없습니다. 몇 년이 가도 그 교회에는 삶의 변화를 가지고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감격하는 영혼이 없습니다. 그냥 모이고 그냥 흩어지는 교회, 다시 말하면 감동이 없는 교회입니다. 만약 저에게 어떤 교회를 죽은 교회, 혹은 죽어가는 교회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말하겠습니다. 감동이 없는 교회가 죽은 교회라고 말입니다. 사데교회는 감동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예배에 감동이 없었습니다. 기도에 감동이 없었습니다. 봉사에 감동이 없었습니다
. 예배가 사람을 살리는 예배가 아니라 그 교회에서 예배드리면 오히려 멀쩡하던 사람들도 그 영혼이 무뎌지고 죽게되는 그런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죽은 교회아니겠습니까? 기도를 하면 심령이 뜨거워지고 살아나고 하나님을 향한 확신과 믿음과 기쁨이 생겨야 하는데 기도를 하면 더 냉냉해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를 회개하고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를 끌어안고 살기 때문이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도 그 죄를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사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를 이길수 있는 은혜를 사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배를 인도하면서 보면 많은 분들이 말씀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첫 걸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갈등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다보면 옛생활과 하나님의 말씀이 부딪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갈등을 주니까 아예 그 말씀을 안들을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예배가 감동이 아니라 고문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는 시간이 아니라 고문이니 어떻게 그 신앙에 살아있는 역동성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그 말씀에 한번 순종해보십시오. 삶을 고치고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아프더라도 기도하고 한번 순종해보십시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작은것부터 하나님 싫어하시는 것 한번 버려보십시오. 그때부터 그 사람의 삶에는 하나님의 감동이 선물로 주어질 것입니다. 하늘의 기쁨이 선물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게 됩니다. 이런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우리교회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 형식안에 온전한 내용이 있어서 모든 행위에 감동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감동이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두가 죄를 버리고, 예배를 사모하며 예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만 만족하는 봉사가 아니라 감동이 있는 봉사를 하기 위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죽은 교회와 죽은 신앙의 특징은 세상의 쾌락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옷을 더럽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에 옷을 더럽히지 않는 자 몇 명이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은 나머지는 다 옷을 더렵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2절의 죽었다는 말과 반대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데교회가 죽은 교회라고 한 것은 옷을 더렵혔기 때문에 죽었다고 한 것입니다.
옷을 더럽혔다는 것이 어떤 뜻입니까? 믿는 자가 주변의 세속 문화에 뒹굴고 살면서 그 마음과 생각과 삶이 더러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쾌락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데라는 도시는 \\\\\\\'폴리스 메갈레\\\\\\\' 즉 \\\\\\\'위대한 도시\\\\\\\'라고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유명한 도시였고, 무역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또한 이 도시는 과소비와 도덕적 문란으로 이름이 높았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사데교회는 서머나교회나 버가모교회처럼 외부의 박해가 없었던 교회입니다. 또한 두아디라교회처럼 내부의 유혹도 없었던 교회입니다. 정치적 핍박도 없었고, 거짓교훈의 도전도 없었고 니골라당이나 발람당이나 이세벨같은 자들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데교회의 교인들은 너무 편안한 환경에서 편안히 신앙생활하다가 옷을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세상 사람과 똑같이 과소비하고 똑같이 문란한 생활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과 똑같이 세상에 소망을 두면서 일락을 좋아했습니다. 옷을 더럽혔습니다. 주님이 입혀주신 흰옷을 입고 나가서는 세상에 뒹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도 별수 없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딤전 5:5-6절을 보십시오.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야로 항상 기도하거니와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습니다. 6절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일락, 쾌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니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야로 기도하고 간구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주야로 간구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반면에 죽었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 소망을 두고 주야로 세상에서 일락을 구하는 상태입니다.
살아있는 신앙이 어떤 신앙입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신앙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신앙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데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묵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주야로 기도하는 신앙,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신자가 왜 기도하지 않을까요? 다른 이유 없습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기 때문입니다. 일락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과 일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 교회가 살았느냐? 죽었느냐?를 보면 다른 것 볼 필요 없습니다. 기도하느냐? 기도하지 않느냐를 보면 됩니다. 내 신앙이 살았느냐? 건강한가?를 볼려면 자신의 기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많이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먼저 목사가 매일 더 많이 깨어서 기도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교회가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기도가 부족합니다. 기도가 약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힘이 약합니다. 상식은 있고, 교양은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데는 약합니다. 목사가 더 많이 기도해야 하고 장로님들이 더 많이 기도해야 하고 안수집사, 집사들이 더 많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를 통해 생명을 얻고, 힘을 얻고, 지혜를 얻고, 능력을 얻어 참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교회로 하나님과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추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죽은 신앙에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이런 사데교회를 향해서 깨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너는 일깨워\\\\\\\"라고 했고, 3절중반에도 \\\\\\\"일깨지 아니하면\\\\\\\"이라고 했습니다. Awake! 깨어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기도하지 못하고 세상에 소망을 두고 세상의 일락을 구하는 그 상태에서 깨어라고 했습니다. 그냥 되는데로 살지말고 깨어서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참된 목적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 목적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참된 인생의 목적과 교회의 목적을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참된 복음과 말씀을 통해 참된 비젼을 발견하고 참된 인생의 목적을 회복해야 합니다.
3절보십시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모든 걸림돌들을 집어 치우고 참된 복음의 빛앞으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되찾아라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한국교회안에 가장 필요한 것이 이 복음입니다. 이상한 말일지 몰라도 교회안에 가장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는 복음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교인들이 참된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다른 길을 가면서 옷을 더럽히고 있는데도 그냥 안심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참된 복음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잘못된 틀을 깨고 말씀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어디서 배웠고 언제부터 이런 못된 신앙이 교회안에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이 잘못된 신앙의 습관을 버리지 않고서는 성령의 능력이 교회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데교회는 복음이 죽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가 떠난 교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교회에 나타나실 때 일곱영을 붙잡고 계시는 분, 즉 성령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사라진 성령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참된 복음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어떻게 받았고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일깨어 회개하라고 합니다. 복음은 너희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도 내가 너희를 용서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 죄를 위해 죽었으니 다시는 죄를 사랑하지 말아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회복되지 않으면 성령의 능력이 사라집니다. 이 복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투영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성공만 부추기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잠들어 있는 부분이 있다면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잘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버리고 돌이키기를 바랍니다. 고속도로를 통해 길을 가는데 잘못간다고 느꼈을때는 잘못했다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즉시 방향을 돌이켜 제대로 가야 합니다. 왜 기도만 하고 길을 돌이키지 않습니까? 바로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정작 자신은 그길을 고집하고 있다면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