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회복되는 교회


열정이 회복되는 교회
계3:14-22


지난 한 주간 동안 중국 쿤밍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님의 사역지와 주변지역을 살펴보았습니다.
선교사님은 필리핀에서 사역하시다가 중국에 간지 6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학교사역의 문을 여셔서 00대학에 국제학부 개설 허가를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중국 본토를 처음 가봤습니다.
주변 지역을 둘러보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얼마나 오묘하고 놀라운 것인가를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구채구와 황룡지역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중국에만 주셨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둘째는 인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황룡고사를 방문했는데 해발 4200m입니다.
비행기가 내린 공항의 해발 높이가 3500m로 티벳 라싸 공항에 이어 높다고 합니다.
산소가 부족하여 호흡이 어려웠습니다.
전날 약을 먹으라는 가이드의 권고를 무시하고, 산소통도 사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건강에 자신 있다고 생각한 교만함이었습니다.
막상 4200의 높이에 오르자 숨이 차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산악인들이 위대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 슬럼을 달성한 박영석 씨가 있습니다.
산악 그랜드슬럼은 세계 7대륙의 최고봉과 히말라야의 8천미터급 14개봉, 그리고 남극과 북극의 극점을 정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에베레스트산을 아시아 최초로 무산소 등정을 했습니다.
4000여 미터만 올라가도 헉헉거리는데 그분들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그토록 험난한 산을 오른다는 것이 위대해보였습니다.
그는 <끝없는 도전>이란 책에서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산을 오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생명을 걸고 산을 오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음을 걸고 산을 오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산을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열정(passion)입니다.
열정은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열정은 사람을 헌신하게 합니다.
열정은 사람을 달려가게 합니다.
열정의 사람은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열정의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의 비전 마지막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만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이가 이르시되”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충성됨 그리고 참됨이란 단어들은 한결같이 주님의 신실성을 뜻하는 단어들입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신실하지 못했던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가장 도전적인 주님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입니다.
이 교회는 사데 교회와 함께 책망만 받았습니다.
이 교회가 받은 책망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열정의 상실입니다.
먼저 15-1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당시 라오디게아 지역 근처에 히에라볼리에 유명한 온천이 있었습니다.
그 온천물을 수도관을 통해 7-9km 떨어진 라오디게아까지 흘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동하는 동안 미지근해지고 이물질 등으로 오염되어 그대로는 마실 수 없는 쓸모없는 물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영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열정이 식어버린 안타까운 모습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자아 성찰능력의 상실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망가져도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자아성찰의 능력만 있으면 우리는 그에게 아직도 희망을 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 최후의 비극은 자신을 돌아 볼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즈음 말로는 “자정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을 돌아볼 이 안목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학자들은 교만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들을 둘러싼 외적인 풍요의 환경이 자신을 살피는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라오디게아 도시는 당시에 돈이 많아 금융업이 성행했고, 양모 의류사업으로 좋은 피복을 생산했으며, 이름난 안약을 많이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가난함을, 벌거벗음을, 그리고 보지 못함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적으로는 그들은 주님 보시기에 가난했고, 헐벗었고, 눈 먼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영적인 빈곤에 허덕이고 있지는 않는지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은행에 쌓아둔 금이 아닌 시련을 극복한 믿음으로 부요해 지라고 권합니다.
이 지역에 유명한 양모가 아닌 흰옷 즉 마음의 거룩함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고 권합니다.
이 지역 특산품 안약이 아닌 성령의 통찰력으로 자신의 영적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권면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열심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태가 열심히 회복된 상태이겠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다시 주님이 그들을 쓰실 수 있는 상태에로의 회복이라고 믿습니다.
회개는 단순한 뉘우침이 아닙니다.
회개의 목표는 회복입니다.
본래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래 이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일대 전체는 온천지대와 좋은 물로 유명합니다.
다만 석회질 같은 이물질로 말미암아 물이 수도관을 통과하는 동안 물맛이 변질되어 먹지 못할 물이 된 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세상을 통과하면서 성경적이 아닌 세속적인 이물질적 가치관의 영향을 받아 주님이 쓰시기 어려운 상태로 변질된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먼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139:23-24)
영어 성경에 보면 세 동사가 쓰여집니다.
“나를 살펴주시고(search), 나를 시험하시고(try), 나를 알게 하소서(know).”
먼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시험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의 첫 단계입니다.
그래서 다시 내 인생의 주인 되신 그분의 손에 붙들리어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열심의 자리로 돌아가야합니다.
그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면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배워야 할 건강한 성도,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식어버린 열정의 회복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바로 “열정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Howard Schultz는 10년 만에 스타벅스를 세계 최고의 커피회사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요? 바로 열정입니다.
\\\"나는 모든 커피 한 잔 한 잔에 나의 마음을 쏟아 붓는다. 만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혹은 어떤 가치 있는 기업에 마음을 쏟아 붓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커피 한잔에 자신의 열정을 불어 넣었을 때 그는 세계적인 커피회사 스타벅스를 만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인류가 누리고 있는 역사적인 산물들이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들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온갖 편리함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축전기를 만들기 위해 무려 2만 번의 실험을 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걸작 [최후의 만찬]을 무려 10년에 걸쳐 그렸는데 그림에 너무 열중해 하루종일 먹는 것조차 잊을 때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점원인 아치볼드는 호텔에 가서 숙박계를 쓸 때에도 자기 이름을 쓰지 않고 \\\"한통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자기 회사의 석유가격과 이름을 적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그는 록펠러의 뒤를 이어 세계 최대 석유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그 이상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열아홉 살에 예일 대학의 교수가 된 조나단 에드워드의 열정, 드와이트 무디와 같은 전도자의 열정이 미국 사회에 복음의 꽃을 피우게 하였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하며 바쁠 때는 더 많이 기도하던 마르틴 루터의 열정은 독일과 유럽의 교회를 영적인 어두움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한 편의 설교를 하고는 한 사발의 피를 토하곤 했다고 합니다.

이 시대를 변화시킨 사람들, 인류에게 희망을 준 사람들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킨 바울 역시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가문을 가졌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그는 수 많은 역경을 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젊은 지도자들을 양성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그는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장 위대한 크리스천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삶에 대해 불만족스러웠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물질이나 환경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거룩한 불만족입니다.
그래서 그는 ‘푯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갔습니다.
바울을 끊임없이 달려가게 한 것은 거룩한 불만족, 즉 복음에 대한 열정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열정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도 열정이 필요합니다.
삶에 대한 열정, 사명에 대한 열정, 비전에 대한 열정, 일에 대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내게는 오직 한가지 정열이 있다. 그 정열은 주님, 주님, 한 분 뿐이다.\\\"
그의 열정은 결국 세상의 가장 위대한 선교 조직체의 하나인 모라비안 교회를 일으키게 했습니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템플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은 \\\"열정, 행복한 변화로 이끄는 내 삶의 기관차\\\"라는 책에서
\\\"열정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나의 열정을 주위로 전염시켜라. 위대한 열정의 씨앗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당신의 삶을 열정으로 변화시켜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챤들의 가장 큰 위기는 열정의 상실입니다.
열정을 상실해 버리게 되면, 무기력해집니다.
꿈을 포기하게 됩니다.
적절한 가운데 타협의 기술만 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자신을 볼품없고 무가치한 존재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성령의 귀한 사역 가운데 하나는 주를 향한 \\\"열정을 회복시키시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안에 열정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열정을 회복하기 위한 첫 걸음은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나를 살펴보고, 시험해보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아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돌이키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거룩한 불만족을 품는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불만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비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비전을 품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잠깐 있다 사라지는 세상 것에 대한 야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비전,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가는 비전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회복되고, 사랑의 교제가 넘치는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고, 세상을 섬기며,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생명잔치를 앞두고 가을영적각성부흥성회가 열립니다.
한주간 자신을 돌아보며 특별새벽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안에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안에 꺼져가는 열정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구세군 118년 역사상 개인으로 최고의 헌금을 내 화제가 된 분이 있습니다.
1120억을 기부한 맥도널드 창업주 부인 조안 크록 여사였습니다.
그녀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구세군을 위해 모금하던 남편을 대신해 돈을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녀의 남편 크록은 원래 종이컵 행상을 하였습니다.
그는 종이컵을 팔아 모은 돈으로 시카고에서 햄버거와 감자 튀김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빵이 가장 맛있게 익는 온도와 고기를 가장 부드럽게 익히는 법 등을 꼼꼼하게 메모를 했습니다.
이 연구를 토대로 1955년 맥도널드사를 설립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 때 나이 52세 때였습니다.
맥도날드는 현재 자산 가치 3백 30조원으로 114개국에 24,500개의 매장을 두고 햄버거를 팔고 있습니다.
중년의 고개를 넘어 창업을 한 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맥도널드사의 경영철학은 <열정과 경험>이라고 합니다.
크록은 직원들에게 \\\"사업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박사학위가 아니라 열정이다. 음식을 직접 만들고 배달한 사람만이 회사의 중역이 될 수 있다\\\"고 늘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열정이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맥도날드는 밤 11시에 문을 닫지만 점원들은 새벽 2시가 넘어야 퇴근합니다.
모든 기계를 뜯어서 소독하고 재조립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한 정열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프레드 터너 회장은 창업주 밑에서 빵을 굽던 사람이었고, 에드 렌시 사장은 음식을 나르던 점원이라고 합니다.
공통점은 그들의 일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차지도 덥지도 하지 않은 쓸모없는 모습이 아니라 차든지 덥든지 택하라고 명하십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의 마음 문 밖에 서 계십니다.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교회를 갑니다.
그 교회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벽에 그림이 한 장 걸려 있습니다.
그 그림은 여러분들도 자주 보시는 그림인데 예수님이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으로 서있는 홀만 헌트의 <세상의 빛> 이라는 그림입니다.
하루는 어린 아들이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저 그림은 무슨 내용 이예요?\\\"
아버지는 \\\"예수님이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그림이지\\\" \\\"그래요.
그런데 왜 문이 안 열려요?\\\"
아버지는 무심코 대답했습니다. \\\"저것은 그림이란다.
그림이니까 안 열리지\\\" 그런데 아들이 말합니다.
\\\"틀렸어요. 아빠, 집안이 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예수님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어서 문을 못 여는 것 이예요\\\"

여러분 가정이 시끄럽습니까?
그렇다면 은혜의 소리가 안 들립니다. 부부간에 시끄럽습니까?
사랑의 소리가 안 들립니다.
교회가 시끄럽습니까? 은혜의 소리가 안 들립니다.
내 영혼이 시끄럽습니까? 주님의 음성이 들릴 리가 없습니다.
시끄러우면 은혜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모습을 보니 전부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있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해도 열지 않습니다.
그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 생각이나 예수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예수님은 \\\'문을 열어라, 열면 내가 들어가서 너와 교제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생명, 엄청난 축복을 너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하십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중앙에 모시는 자만이 주님으로 인한 기쁨과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기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 생애를 향하여 두드리십니다.
우리 교회를 향해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생명의 주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고 주장해 주십니다.
놀라운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마음의 빗장을 잠그고 있으면 주님은 문 밖에서 슬피 울고 계십니다.

아직도 내 안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열정으로 인해 주님을 슬프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다시 한번 내 안의 열정을 회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의 열정, 전도의 열정, 봉사와 충성의 열정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건강한 성도는 바로 열정이 타오르는 성도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바로 열정이 식지 않고, 날마다 더 뜨거워지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 열정을 회복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능력 있는 성도,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