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 교회


사데 교회
계3:1-6


가. 들어가는 말.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곧 하나님이 원하시고 찾으시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묵상하면서 이 일곱 교회에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고 ,성도를 성도답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래서 이 힘이 강하면 그 교회/성도는 살아있고 생명력이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반대로 교회와 성도의 생명력이 있는 운동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또 다른 힘이 있는데 그 힘이 강하면 교회는 책망을 듣고 문제와 혼란 속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묵상하면서 떠나보지 않는 질문이 교회의 생명력은 무엇인가? 성도의 생명력은 무엇인가? 이것을 이루는 힘은 어떤 것이고 방해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데 교회를 묵상함으로 교회의 생명력이 무엇인지, 성도의 성도답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묵상할 수 있게 됩니다. 사데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데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기준에 맞추어 우리 교회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 몸 말.

사데교회는 루디아 지역의 수도입니다. 루디아지역은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고 물감 들이는 염색이 발달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그 염색을 하는 옷감인 양모를 생산하는 곳이 바로 사데 지역입니다. 그래서 사데 라는 도시는 매우 부유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다른 어느 교회와는 달리 이교도나 로마의 박해도 그리 많지 않았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는데 그리 어려움이 없는 교회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교회를 요구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의 내용이 있는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본문 1절 2절 말씀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사데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죽은 자다 하나님 앞에 너의 행위의 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특별히 [찾지 못하였다] 라는 말에 주의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많은 것을 기도로 요구하고 찾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찾는 것이 이루어지고 찾아지면 우리는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 말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의심하게 되고 나중에는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허락하시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찾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듯이 하나님도 우리 생활에서 무엇인가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찾는 것이 없으면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요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어찌 죽을 수 있는가 문을 닫았다는 말인가? 교인들이 아무도 없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데 교회는 예배가 없어서 죽은 교회가 아닙니다. 사데 교회는 선교회가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사데 교회는 봉사나 헌금이 없어서 죽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름이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이름이 살아있다는 교회는 명성이 있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훌륭한 교회입니다. 신앙적인 행위가 있는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은 사데 교회를 죽었다고 하십니까? 바로 예수님이 찾는 것이 없어서 죽은 교회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찾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53절에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있으면 우리는 생명이 있고 그것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죽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생활의 내용입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는가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영적인 생활인가입니다.

사데 교회는 내용이 없는 교회입니다. 그저 내용보다는 형식만 있는 교회입니다. 사람보다는 규율과 규칙이 앞서는 교회입니다. 복음보다는 조직이나 제도가 앞서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형식이 없으면 안되지만 복음의 내용이 형식이라는 힘에 밀리면 그것이 죽는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 규칙에 얽매이면 교회가 살아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어느 조직이든 어느 단체이든 간에 목적하는 내용이 없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있으나 마나한 조직 단체이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이름은 있지만 그 속에 아무런 내용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에 구원은 받았지만 그 생활 속에 복음의 능력이 없으면 이름만 그리스도인이지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끊임없이 그 생활의 내용을 찾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은 예배의 형식보다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내용을 찾으십니다. 선교회가 있는가 없는가를 보지 않으시고 얼마나 전력을 다하여 선교를 하는가를 찾으십니다. 찬양을 복음성가를 부르나 찬송을 부르나 보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하는가를 보십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의 생활이 그리스도인다운가 아닌가를 찾으십니다.



두 번째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영적인 것에 깨어 있는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 말씀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일어나 깨어라]는 말에 주의를 해 보십시다. 사데 교회에서 죽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사데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형식과 제도, 규칙,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습관에 얽매여서 죽게 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의 능력을 막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것 때문에 거반 죽게 된 복음의 능력을 붙들라는 말입니다. 이일을 위하여 깨어나라는 말입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깨어나라는 말씀은 원래 눈을 뜨라는 말입니다. 잠자다가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눈을 번쩍 뜨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에 눈을 뜨라는 말입니까?

3절 말씀에 네가 어떻게 받았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하고 지키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데 교회 교인들이 무엇을 받았고 무엇을 들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고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복음의 진리란? 우리 노력이나 우리의 애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지키라]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증인답게 살라는 말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복음의 능력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막은 모든 인간적인 요소를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잘 잊어버리는 동물입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성경을 공부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자꾸 일깨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자꾸 일깨워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신약 성경에까지 일관된 이야기는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였으니 그것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자꾸 생각나게 하고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영적인 일을 생각하고 영적인 일을 지키려고 노력하라는 말입니다. 영적인 자극을 자꾸 주어야 합니다. 영적인 자극이 자꾸 있어야 잠을 자지 않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일에 깨어있고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생활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사람이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만나면 많이 변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사람이 되어간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자꾸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자꾸만 뜨여서 나중에는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준으로 평가하게 됩니다. 내 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도가 이루어짐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많아지면 깨어있는 교회가 되기 마련입니다. 깨어있는 교회는 성장하고, 성장하는 교회 교인은 영적인 도전에 자꾸만 변화를 시켜 성숙되어 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깨어있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가 시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제자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잠 잘 때가 가장 약한 때입니다. 완전 무방비 상태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우리가 잠을 자고 있으면 사단이 가장 공격하기 쉬워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마지막 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3절에서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 우리가 심판 날에 서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는 기도할 때에는 영적인 일을 생각하고 영적인 것들을 결단합니다. 그러나 교회 문을 나서고 집으로/ 세상살이 속으로 들어가면 영적인 사고와 일들이 사라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서는 영적인 일로 자극을 받아 깨어 있지만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영적인 생각과 생활들이 자극을 받지 않아서 잊어버리게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보고 항상 영적인 눈을 뜨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영적인 일에 깨어있어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영적인 일에 깨어 있어야 살아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데 교회를 통하여 가르쳐 주는 교회의 기준입니다.



세 번째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정하는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보니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고 그 이름을 아버지와 천사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심판 날에 하나님이 한 명씩 이 땅위에서의 생활을 평가하는데 이제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속으로는 일생동안 몇 번은 빠졌지만 예배도 꼬박꼬박 드렸고 헌금도 했고, 교회봉사도 했는데, 집사 직분도 했고, 구역장도 했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섰는데 옆에서 예수님이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모른다고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이 생명 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흐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는 것은 딱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10장 32절 말씀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하리라고 하십니다. 바로 사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사람 앞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도 우리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시인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 앞에서 나는 죄인이었는데 예수가 나의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그리스도요 지금도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생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마음 속으로만 예수 믿는다고 하지말고 입으로 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다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을 예수님에게 인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 앞에서 내 믿음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내 믿음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속으로야/ 내 혼자야 하룻밤에 무슨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만리장성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말로는 생활로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속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저 교회에서나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의 증인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인정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가 몇 마디나 됩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 앞에서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명확하게 안다고 시인하는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가가 결정되어집니다.



다. 마감 말.

이제 이러한 모든 것에서 우리는 눈을 떠야 합니다.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생활을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로 자극시키고 민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일만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해야하는 유일한 일입니다. 이때 우리가 복음의 내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가 영적인 일로 왕성하게 활동될 때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일주일동안 영적인 사고를 자꾸 할 때에 깨어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시인할 때 우리가 깨어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교회 생활과 신앙 생활에서 찾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만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번 일주일도 우리 생활에서 영적인 것에 깨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면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