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았으나 죽은 교회여, 깨어라 계3:1-6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가 생각할 교회는 사데교회입니다. 사데교회에 나타나셔서 교회를 권면하시며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새 백성교회를 비추어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 기뻐하시는 생동감있고 살아 움직이는 교회의 모습으로 성숙해나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데교회의 실상-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 사데교회가 위치해 있는 사데라는 도시국가는 다른 소아시아 도시들과 비슷한 시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도시 전체가 무역과 상업을 기반으로 해서 큰 부를 누렸습니다. 특히 직물업과 염색업에 발달한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이 도시는 해발 1,500피트나 되는 투몰루스산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 그래서 외세의 침략이나 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부와 전략적인 요새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안일함과 태평한 민족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것이며, 이런 성격이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일곱 교회 중에 가장 크고 혹독한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아예 사데교회에는 칭찬이 없이 단지 혹독한 책망만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데 교회는 어떤 책망을 받았습니까? 1절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외모는 살아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사대교회는 외적으로 화려한 행위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종교적인 기도의 행위도 있습니다. 종교의식을 따르는 예배에도 참석합니다. 때에 따라서 신앙교육과 성경공부도 참석합니다. 때로는 구제와 봉사와 선교활동도 합니다. 그래서 외적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교회였으며, 정상적인 교회처럼 보였습니다. 외적으로는 살아움직이는 교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데교회를 주님은 죽은 교회라고 평가하며 책망합니다. 사데교회의 종교적인 모든 행위들은 실제로는 죽은 행위들입니다. 2절에서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들이 있었지만, 온전하고 바른 종교적인 행위들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4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람 몇 명\\\\\\\"을 말하는 것과 반대되는 의미로 온전하지 못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옷을 더럽히는 행위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데교회의 흰 옷을 입는 일부의 성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당시 주변의 세속문화와 사상과 철학 속에서 뒹굴고 수용하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당시 사데도시가 직물업과 염색업이 발달한 도시였는데, 주님은 그런 특성을 따라서 교회를 책망할 때도 더럽혀진 옷와 흰 옷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데교회는 주님의 복음와 진리를 빛으로 세상의 문화와 사상과 철학을 해석하고 대처하는 온전한 행위들을 나타냈어야 했습니다. 세상의 죄악된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혁시키며 봉사하는 믿음의 행위들을 나타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세상의 문화와 죄악에 적응하였고 옷을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무사안일하고 태평스러운 그들의 품성 때문에 안일하게 대처했으며 태평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살아있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 실상은 죽은 교회라는 혹독한 책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겉모양은 그럴듯했지만, 내용이 없는 껍질 뿐이었습니다. 생명이 없는 죽은 상태였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교회였습니다. 영적인 문둥병환자처럼 무감각한 교회였습니다. 죽음 송장처럼 영적인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스스로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무너진 교회였습니다. 다른 교회처럼 어떤 외부적인 거짓 사상이나 이단의 공격이나 고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보면, 이런 공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무너지는 교회를 구태여 공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권면-일깨어라 회개하라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이 사데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권면하십니다. 2절입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또 3절 상반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주님은 먼저는 \\\\\\\"일깨우라\\\\\\\"고 말씀합니다. 깨어나라는 말입니다. 깊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라는 말입니다. 무사안일하고 태평한 삶의 모습을 버리고 깨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세속적인 문화와 가치에 안일하게 대처하지 말고 깨어서 중심을 잡고 믿음으로 굳게 서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교회의 모습을 굳세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무감각, 영적인 무기력과 잠에서 깨어나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나 사모함이 없습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에 대한 어떤 바램도 없고 그저 현실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기도를 하고 싶은 욕망도 없고 기도를 하려 해도 기도가 터져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픈 마음도 없습니다. 만사가 귀찮습니다.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과 지체들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존재로 다가옵니다. 모든 것이 짜증이 납니다. 이처럼 죽은 모습으로 전락한 교회를 향해서 잠에서 깨어나라고 주님은 간절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합니까? 3절 하반절입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주님이 도적 같이 오시기 때문에, 언제 오실 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곧 강림하실 것인데, 도적과 같이 예상하지 않은 때에 오실 것입니다. 그때 잠자는 교회와 성도를 심판하시고 영원한 저주 가운데 가두실 것입니다. 따라서 잠자는 교회와 성도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에 소망을 두고 생기발랄한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의 인격과 형상을 향해 끊임없이 훈련하고 성숙해나가야 합니다. 살아 약동하는 역동적인 신앙의 삶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약속-흰 옷, 흐리지 않는 생명책 계속해서 주님은 사데교회를 향해서 소망을 주며 상급을 약속합니다. 특히 대부분의 성도들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있고, 흰 옷을 더럽히는 삶의 모습으로 전락했지만, 조금의 희망과 가능성을 상기시킵니다. 4절입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사데교회에 믿음으로 깨어있는 소수의 신실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잠에서 깨어서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주님과 함께 흰 옷을 입고 동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처럼 잠에서 깨어 이기는 성도들에게 상급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두 가지를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5-6절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첫째, 흰 옷을 입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흰 옷은 더럽혀진 옷과 반대되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교회로서 세상을 이기며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에 오염되고 타락하고 죽은 모습, 죄악에 노출된 모습이 더럽힌 옷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잠에서 깨어서 정상적인 성도의 모습을 회복하고 살아있는 신앙을 회복하는 자가 입을 옷이 흰 옷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와의 정상적인 연합을 회복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사함을 얻고 의로운 삶을 회복한다는 의미입니다. 흰 옷은 이처럼 고난에서 승리한 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또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은 사람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래서 흰 옷은 승리와 속죄와 영광을 의미하는 옷입니다. 바로 그런 옷을 이기는 자들은 입게 될 것입니다. 둘째,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흐리지 않고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름이 흐려진다는 것은 이름이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기는 자들에게는 주님이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한다는 말은 우리를 주님이 시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구원의 확실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심판 받을 때 주님이 하나님께 \\\\\\\"저 성도는 제가 잘 압니다. 그는 믿음이 순결하고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나를 배반하지 않았습니다\\\\\\\"하고 시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천국의 확실한 보증인이 되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모습 이처럼 사데교회를 향해서 책망하며 권면하며 상급을 약속하며 말씀하시는 주님은 사데교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까? 1절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곱 영은 생명을 살리는 주의 성령을 의미합니다. 일곱 별을 교회를 목회하는 사자들 목회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주님이 이런 모습으로 사데교회에 나타나셨습니까? 이것은 사데교회가 죽은 교회요, 생명이 없는 교회라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고 또 주님이 교회의 지도자를 친히 심판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신 분임을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지금 사데교회는 죽음 교회로서 생명이 절실하게 필요한 교회입니다. 주의 생동감 넘치는 생명력이 요구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살리는 일곱 영을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사데교회는 성도들 뿐만아니라 교회를 책임지는 사자까지 잠자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일곱 별을 가진 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였습니다. 사데교회는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겉모양은 그럴듯했지만, 내용이 없는 껍질 뿐이었습니다. 생명이 없는 죽은 상태였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교회였습니다. 영적인 문둥병환자처럼 무감각한 교회였습니다. 죽음 송장처럼 영적인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스스로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무너진 교회였습니다.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나 사모함이 없습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에 대한 어떤 바램도 없고 그저 현실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기도를 하고 싶은 욕망도 없고 기도를 하려 해도 기도가 터져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픈 마음도 없습니다. 만사가 귀찮습니다.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과 지체들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존재로 다가옵니다. 모든 것이 짜증이 납니다. 이처럼 죽은 모습으로 전락한 교회를 향해서 잠에서 깨어나라고 주님은 간절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데교회를 향해서 경고하며 권면하신 주님께서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 새백성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동일하게 촉구하십니다. 영적인 무감각, 영적인 무기력에 휩싸여있는 자들이여! 깨어나라! 깊은 영적인 잠을 자고 있는 죽은 자여! 일어나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는 주님 앞에 깨어있는 신실한 자들입니까? 주님의 흰 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 생동력있는 주의 교회이며 성도입니까? 우리 스스로 자문해봅시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영감넘치는 예배의 행위를 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갈급한 심령과 겸손하고 옥토와 같은 마음의 밭을 가지고 주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십니까? 주님의 말씀의 원리를 따라서 여러분의 전 삶을 조절하고 순종하고 하나님께 드리십니까? 세상적인 가치와 죄악으로 여러분이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서 늘 깨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늘 느끼며 영적인 교통을 누리고 계십니까? 단지 이론뿐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을 뿐, 실제의 삶은 하나님과 무관한 죽어가는 삶을 살지는 않으십니까? 신앙의 모습이 단지 지적인 동의 수준일 뿐 실제 말씀의 원리가 여러분을 주관하지 못하는 이론 뿐인 삶은 아닙니까? 진정으로 지체와 이웃을 향해 주님을 대신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봉사하는 향기나는 삶을 사십니까? 할수만 있으면 주님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 애쓰십니까? 기회만 주어지면 주님의 헌신되고 충성된 제자로 살겠다는 굳은 신앙과 신념으로 사십니까? 아니 이 일을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무감각한 영적인 상태가 아닙니까? 오늘 말씀 가운데서 여러분에게 증거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생동감있고 살아있는 신앙으로 굳게 서기를 바랍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건강하고 역동적인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