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설계하시는 교회
주님이 설계하시는 교회(5) - 죽은 것 같아 보이는 사데교회
계3:1-6
어느 집에 두 며느리가 시어머니로부터 친정에 다녀오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돌아 올 때, 큰 며느리는 바람을 종이에 싸 가지고 오고 작은 며느리는 불을 종이에 싸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각각 친정에서 며칠 동안 편안하고 재미있게 지내다 돌아 갈 때가 되니까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두 며느리가 만났습니다. “형님, 어머니 말씀대로 바람을 종이에 싸 가지고 오셨어요?”
“아우님은 불을 종이에 싸 가지고 왔는가?” 며느리들이 근심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백발 노인이 불안해하고 있는 두 여인네를 보고 이유를 묻고 사연을 듣더니 “그것은 간단한 일이지. 바람을 종이에 싸는 것은 종이 부채를 말하는 것이고, 불을 종이에 싸는 것은 종이 초롱불을 말하는 것이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두 며느리는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읍내 시장에 가서 가장 좋은 부채와 가장 멋있는 초롱을 사 가지고 집에 가서 시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추석 명절에 온 가족이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어머니들 며느리들 딸들이 수고합니다. 특별히 며느리들의 믿음과 지혜가 가정의 화목을 이루는 귀한 재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추석 기간 동안에 좋은 일 있으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소아시아 7교회 중 5번째 교회인 사데교회를 방문합니다.
사데교회는 사데에 있었고 사데는 고대 루디아 왕국의 도읍이었습니다. 사데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일은 세계 최초로 금속화폐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금화도 만들었는데 이는 그 만큼 도시가 부유하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루디아 왕국의 크로에수스(Croesus)왕은 거부의 대명사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부자 도시가 되었을까요?
도시 외곽 산으로부터 흘러 들어와 도시를 관통하는 파크톨루스(Pactolus)강이 흐르고 있고 이 강에서 사금을 많이 캐내어 자체적으로 금화도 제작하고 소아시아에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사데에 사는 사람들은 외적의 침입만 잘 막아낸다면 그다지 어려움 없이 살수 있었습니다. 크게 힘쓸 일도 없고 고민하고 노력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데에 사데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 사데교회는 어떤 모습의 교회이고 어떤 영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까?
사데교회는 서머나교회처럼 교회 외부의 탄압과 핍박, 순교의 위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버가모교회처럼 발람이나 니골라당이 있어 믿음을 위협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두아디라교회처럼 이세벨이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가 선량한 교인들을 유혹하는 것도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어느 분이 미국에서 오면서 여러 모습의 교회들을 찍은 큰 사진책을 선물하셨습니다. 아름다운 들판에 있는 뾰족탑 교회,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지붕이 널찍한 교회, 시골 시냇가에 자리 잡은 전원교회, 울창한 숲 속의 성곽과 같은 교회,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 첨탑이 우뚝 솟은 튼튼해 보이는 교회 등을 담은 사진이었습니다.
설계와 시공은 누가 했고 규모는 얼마정도이며 기간은 얼마 등등, 외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설계, 수치 등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교회가 어떤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내적인 상태가 어떤가? 하는 내면의 영적인 상태, 믿음의 형편 등은 인쇄소에서 찍어내는 사진책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교회의 외적인 모습을 사진으로는 보여주지 못하지만 내면의 진정한 모습은 말씀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수련회 가서 단체사진 찍었는데 인화해서 보니 뒤에 서 있는 목사님이 나를 째려보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평소에 나를 아껴주시던 분으로 째려 볼 리가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찍힌 모습이 잘못된 것입니다.
사진은 진정한 모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째려본 일이 없는데도 그렇게 찍힐 수가 있고, 속으로 슬픈데도 잠시 웃으며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찍어 보여 주십니다. 순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체를 보여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은 사데교회를 향하여“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금강산 초대소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재작년만 해도 전국적으로 생중계하고 같이 눈물 흘리고 같이 기뻐하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흥분이 덜합니다. 남북가족상봉이 뉴스거리가 안될 때 진정한 자유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25 전쟁에 나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국립묘지에 전사자무덤을 만들었는데 이번에 그 죽었던 남편은 만난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죽은 이름을 가졌으나 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정 반대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죽은 교회)입니다.
살아 있는 것 같이 움직이는 것 같으나 사실은 껍데기뿐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활동은 있는데 생명이 없고 껍데기는 있는데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6월 문경세제 산행을 마치고 식사를 했는데 식당 카운터에 통나무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길이 끊임없이 활활 타올라 자세히 보니 사그라지지도 않고 더 피어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나무가 불에 타지도 않고 만져도 뜨겁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모조 장식품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실은 아무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 불로 실내를 덥게 할 수도 없고 밥을 지을 수도 없습니다. 타는 나무에서 나오는 불과 같이 보이나 그 안에 불의 생명력이 없는 것입니다.
사데교회(교인들)는 한 마디로 무기력한 교회(교인들)입니다.
무기력한 교회는 비전도 없고 도전도 없는 교회이고, 무사 안일주의 교회를 말합니다. 무기력한 사람은 변화하는 것을 싫어하고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도전이 없는 곳에 응전이 없고, 응전이 없는 곳에 발전도 없습니다”, “영적 도전이 있는 곳에 믿음의 응전이 있고, 믿음의 응전이 있는 곳에 신앙적 발전도 있습니다”
신앙의 고민이 있습니까? 직장생활, 사회생활하면서 말씀대로 안 되는 영적 고민이 있습니까? 믿음의 길이 이런 것은 아닌데 하는 말씀에 부딪혀 오는 성경적 고민이 있습니까?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직도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3. 주님은 그런 교회(성도)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2)
사그라져 가는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다시 불붙게 하라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구조된 사람, 생명이 붙어 있으면 인공호흡으로 살려 낼 수 있습니다.
샬롬부 여름수련회에 갔었습니다. 강원도 수련회장에서 밤에 캠프 화이어를 했는데 주인아저씨가 통나무를 쌓아 주었습니다. 모두가 둘러앉았고 석유를 붓고 종이를 가져다 넣고 불을 붙었습니다. 그 불은 식당 카운터에 장식으로 놓여진 불이 아닙니다. 조금은 쌀쌀한 밤에 불의 열기가 있었습니다. 통나무가 불꽃을 일으키며 타올랐습니다. 통나무가 젖어 불이 수그러들기 시작하면 불을 활활 붙이기 위해 영락없이 석유를 더 부어야 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석유를 붓고, 어느 집사님은 긴 막대기로 뒤적거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그래야 잘 탑니다” 잘 타고 있을 때 더 잘 타도록 하기 위해서는 타 들어가는 통나무를 적당히 뒤적거려야 합니다.
쌓아 놓은 통나무는 우리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신앙생활입니다. 행함 안에 들어 있는 생명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석유도 부어야 하고 더 잘 타도록 뒤적거리기도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형식, 본질을 놓친 외양만 강조되고 두드러지고 고집됩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 우리의 인격도 껍데기보다는 알맹이가 중요하듯이 신앙에도 껍데기 보다 알맹이가 중요하고, 그래서 믿음에는 살아 있다는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생명력은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오고 성경의 진리로부터 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라” (3)
기도의 문이 막히지 않고 잘 작동하고 있는지? 은혜의 통로가 막히지 않고 잘 열려있는지? 말씀을 듣는 귀가 닫히지 않고 잘 열려 있는지? 스스로 잘 확인하며 살아야 합니다.
닫히지 않고 막히지 않고 꺼져가지 않도록 점검하여 믿음의 생명력이 살아있기를 기원합니다.
“이기는 자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5)
학교에는 학적부가 있고 교회에는 교적부가 있고, 출생 본적지에 호적부가 있듯이, 하늘 나라에도 호적부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 호적부의 이름이 생명책이라고 합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승리한 사람이며 믿음의 생명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시인하고 인정하고 칭찬하는 믿음과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요한계시록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