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살아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살아 있어야 합니다
계3:1-6


. 사데 교회


서울 송파구 가락동 시영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지난 7월 8일 한 고양이가 힘없이 울면서 정수리에 박힌 대못을 빼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이 목격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일구 구조대를 통한 고양이의 모습과 구출되는 장면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이 고양이는 동물병원의 도움으로 못을 뺄 수 있었는데 못의 길이는 10㎝이었으며 이 가운데 4㎝가 머리에 박혀 있었죠?
누군가 개조한 못 총으로 끝을 뾰족하게 간 공사용 못을 고양이에게 타정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수서경찰서 형사과에 배당 수사 중이라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일일구 구조대가 나서서 촬영까지 해 가며 그 고양이를 구해 주었습니까? 그 고양이가 그만큼 값이 나가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다만 그 고양이가 죽지 않고 살아서 계속 살기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생명이 살아 있기 때문에 구원한 것입니다

모든 만물의 가치는 생명의 유무에 달려 있습니다. 즉 살았느냐? 죽었느냐에 따라 가치성이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제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하여 업적을 많이 쌓음으로 역사의 추앙을 받는다 해도 생명이 끊어지면 그 순간부터 외면을 당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존재의 가치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심령에 주님을 영접하여 영적 생명이 있는 것이며 영적 생명이 있음으로 인해 주님의 보호하심을 입게 됩니다.

주님의 보혈로서 값 주고 사신 교회도 생명이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적 의미는 건물을 말함이 아닌 줄 잘 아시지요? 하나님께서 불러 모은 믿는 사람들의 단체로서 단체는 하나의 유기적 관계인바 반드시 생명력을 지니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가운데 나오는 사데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죽었다고 진단을 하셨습니다.

01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건물이 낡고 허물어져 비가 새고 담이 무너짐으로 죽었다고 하는 의미입니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주님께서 사대교회를 향하여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고 말씀을 하셨는지 한 번 세밀하게 진단을 해 보겠습니다.



1. 사데교회의 지리적 위치 및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리적, 정치적 면에서

두아디라에서 남방으로 약 48Km에 위치한 곳으로 헬무스(Hermus)강과 투몰루스(Tmolus)산 사이에 있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봉우리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삼면이 450m나 되는 벼랑으로 되어 있어 투몰루스 산맥과 연결하는 남쪽에 위치하는 협로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B. C 6세기에는 리디아(Lydia) 왕국의 수도로서 난공불락의 성답게 상당히 안정된 생활을 하였으나 그 안일함으로 인해 B. C 6세기 고레스(Cyrus)의 공격과 약 200년 후 안티오쿠스(Antiochus)에 의해 두 번이나 정복을 당함으로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종교적, 문화적으로

사데는 부도덕의 상징인 키벨레(Cybele) 여신과 기타 여신을 섬겼고 또한 황제 숭배도 극심하였습니다.
당시 헬무스 유역에서 위로 높이 치솟은 곳에 위치한 사데 성읍 주위를 흐르는 헤로도투스 강은 투몰루스 산꼭대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헬무스 유역으로 흘러내리는데 그 강은 사금(砂金)을 많이 실어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사데는 고대인에게 많은 양의 금을 제공했고 적은 수의 성읍이 평온하면서 더욱 부요해졌습니다. 그리고 리디아 왕들은 비옥한 헬무스 유역의 농산물을 교역하여 엄청난 부를 얻음으로서 모두 거부가 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주조된 동전이 바로 사데에서 만들어졌는데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현대적인 금속화폐로는 최초의 것입니다.
특히 염직 공업과 양털 염색, 금모래가 유명하여 향락과 부의 도시로서 시민들은 극도의 사치에 힘썼으며 향락과 문란한 생활이 이어짐으로 허영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교회의 설립과 형편을 추적해 볼 때

사데교회의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사도 요한의 전도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2세기에 이르러 변증가며 주석가로 유명했던 멜리토(Melito)가 이 교회의 감독이 됨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도시의 물질적 부요로 인해 교회도 재정적으로는 안정이 되었고 건물도 잘 지어졌으며 내부 장식도 아름답게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안일과 부도덕의 모습이 교회에까지 침투함으로 성도들의 영적 상태는 사회적 외부적 영향을 받아 오히려 빈사상태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2. 사데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01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일곱 영은 성령님을 가리키며(01:04)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01:20) 상징하는 말입니다.

가진 이가. 붙잡는다

보호하고 계신다는 말로서 주님은 자신의 일들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사데교회의 목회자들을 사역자로 붙잡고 인도하시며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제로는 죽었다는 선언을 받은 사데교회의 영적인 상태와 연관시켜 볼 때 주님은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여 회개한다면 언제든지 죽은 사데교회를 다시 살려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소수의 사데교회 성도를 지키고 계심을 시사합니다.



3.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의 모습입니다.


01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주님은 사데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자세히 살피고 계셨는데 이들은 도덕법의 위반이나 부도덕성, 혹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 같은 그런 분파와 관련된 어떤 것도 없었으며 이세벨과 같은 어떤 거짓 선지자가 활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핍박도 없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가 사데교회를 외형으로 볼 때 아주 잘 활동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틀림없이 살아있는 교회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데교회는 자신이 위치해 있는 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으며 한 때는 인근 지역 중 어느 교회보다도 활동력이 강한 살아있는 교회로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데교회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틀림없이 좋은 명성을 지닌 살아있는 교회로 보였지만 실상은 주님이 보실 때는 인정할 수 없는 분명히 죽은 교회입니다.
물론 좋은 회중을 가졌고 활기 있는 예배를 드렸으며 적합한 교훈을 받았음이 틀림없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생명의 껍데기일 뿐이었고 실상은 죽은 교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활동을 생명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예배와 함께 그 교훈에 복종하고자 하는 믿는 자들의 무리들이 모인 곳입니다.

참된 교회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말씀가운데 나타내신 모든 뜻을 깨달으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충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득히 모여 있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사람의 판단보다는 하나님의 판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성도들도 명목상의 성도보다 실제적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라는 말은 죽은 시체에 산 사람의 옷을 입혀놓은 것과 같은 격이니 얼마나 흉하고 끔찍스러운 모습입니까?

사데교회가 영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하는 것은 교리와 의식은 있으나 내적 생명 즉 성령님의 역사가 떠났다는 말인데 그러니까 사데교회는 기쁨과 사랑이 없는 냉랭한 교회로 변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박물관에 가서 여러 종류의 짐승들과 조류들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 다 똑바로 서 있고 그 눈들은 외견상으로 광채가 번득이고 있지만 그 중에 어떤 것 하나라도 생명의 흔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죽은 짐승들과 새들의 박제(剝製)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데교회가 왜 죽었다고 생각되십니까?

02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느니.

이 말씀으로 보아 실지로 사데교회는 일곱 교회 중 이단의 특별한 위협이나 외부의 핍박이 가장 적은 지역임에도 이교적 문화나 주변 환경과 타협함으로 생명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사데교회가 외적인 형식과 모습은 잘 갖추었으나 신령한 모습은 상실했음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데교회는,

①과거의 좋았던 때 즉 전통을 계속 그리워하다 그만 과거 집착병에 걸렸습니다. 물론 때로는 과거가 미래를 위해 필요할 수도 있으나 그러나 지난날의 업적에 너무 얽매이거나 집착하는 것은 도리어 신앙의 정체가 되며 현실의 진보에도 방해가 됩니다.

②인격의 성숙보다는 형식에 너무 치우쳤습니다. 사역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의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기는 하나 그러나 그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 신앙 인격의 성숙입니다.
만일 성도들이 신앙 인격의 성숙에 무관심하게 되면 겉보기에는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는 이름뿐인 명목상의 신자가 되고 맙니다.

③선교의 열의가 시들므로 교회를 열린 공동체가 아닌 닫힌 공동체로 전락시키면서 자체의 발전에만 신경을 쓰다가 영적 시야가 어두워져 결국은 죽은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4. 현실의 교회가 어떤 경우를 만날 때 죽게 됩니까?


0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일깨워

현재 미완료 시상과 현재 능동태 분사가 결합된 단어로 계속적인 경성(警醒)을 시사하고 있습니다(Moffatt, Beck, Robertson).
이는 사데 지역이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안일에 빠져 있다 두 번씩이나 점령을 당했던 경험이 있으므로 특별한 경고가 되었을 것입니다(Mounce).

주님은 사데교회를 향하여 일깨워라 는 권면과 회개할 것을 동시에 촉구함은(03) 사데교회가 비록 죽음 직전에 있으나 아직은 완전한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죽게 된 것

미완료 능동태 시상으로 사데교회가 아직도 부분적으로는 살아있음을 보여주며(Swete),

굳게 하라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아직 남아있는 영적 생명을 견고히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결국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는 말씀은 죽어가는 영적 생명을 다시 살리려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완전함이기보다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온전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비록 사데교회가 외적으로 보기에 풍성하며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시기에 허망하였음을 시사합니다(Greijdanus).

영국의 한 유명한 목회학 박사의 글에 의하면 교회가 죽는 이유를 8가지로 진단해 놓았습니다.
①교회가 그리스도를 닮는 일에 자라나지 않을 때,
②전도하지 않을 때,
③교회가 이기적이어서 좋은 것을 밖으로 발산시키지 않고 오히려 남의 도움을 바랄 때,
④동정의 샘이 메말라 구제의 종교를 망각하여 외부의 손길을 뿌리칠 때,
⑤성령님의 열매 중 가장 큰 열매인 사랑을 잃었을 때,
⑥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 불화가 생겼을 때,
⑦복음으로 영혼 구원하는 능력을 상실하였을 때,
⑧형제간에 단합을 잃었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가 세속화되어 세상의 유행이 교회에 침투해 오고 시대의 조류에 따라서 환경중심으로만 믿을 때 서서히 생명력을 상실해 갑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세상이 교회를 정화하려 함을 알고계십니까? 고린도교회가 왜 침체의 늪에서 헤매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재능들을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하여 하나님 앞에서 교만 되게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5. 사데교회를 향하여 회개를 재촉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0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①생각하고. 염두에 두다 는 의미의 므네모뉴오의 현재 명령형으로 항상 상태를 되돌아보라는 뜻입니다(12:05).
교회 안에서 생명을 재창조하기 시작하는 방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셨던 은혜를 다시 회상하고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②지키어. 유지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테레오의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이미 받았고 들었던 복음을 굳게 붙잡아야 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③회개하라. 돌이키다 는 의미를 가진 메타노에오의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죄에서 돌이킬 것 즉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단회적이며 시급한 돌이킴에 대한 명령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심판을 내다보면서 죄로 부패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Behm).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이며 회개는 죽어가는 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제공합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마 24:34절과 살전 05:02절을 반영하는 말씀으로 주님께서 회개하라고 재촉하였음에도 계속적으로 죄 속에 머물러 생명력을 상실한다면 마치 도적이 밤에 들이닥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도 예기치 못할 때에 오셔서 반드시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일깨어는 항상 깨어라 를 의미하는 말씀으로서 사데교회 신자들은 너무도 자기 중심적이므로 자신들의 형편도 몰랐으며 영적으로도 무지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이 눈을 뜨고 그들의 상태를 바로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우리는 사데지방의 역사적 사실을 하나 살펴보아야 합니다.

크로에수스 왕은 든든한 재력으로 막강한 군대를 일으키고 소아시아의 많은 곳을 차지하자 교만해져서 전 세계를 연일 하나하나 정복하고 있던 고레스(Cyrus)라는 페르시아의 강력한 왕에 관해 과소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레스와 임전 중에 그가 델피 신전에서 어떻게 전쟁해야 하는지를 묻자 아폴로는 만일 네가 하릴스 강을 건너기만 하면 대제국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크로에수스는 군대를 할리스 강을 도하하도록 하였는데 그러나 여기에서 실패하여 자기 제국을 멸망의 자리에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최후의 방어지로 안전하다고 판단한 요새인 자기 성읍으로 퇴각한 후 장기간의 포위 공격을 견디어 내었습니다.
음식물이 풍부하였고 사데 성읍 주위를 흐르는 헤로도투스 강은 물을 공급하여 줌으로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었으나 매일매일 그 병사들에게는 힘을 회복하는 특별한 날이 되었습니다.

반면 고레스 왕은 사데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자에게 상급을 주겠다고 전군에 약속했습니다. 마침 히로에아데스라는 병사가 사데 성읍을 두르고 있는 깎아지른 듯 한 절벽을 살피던 중 보초병들이 아주 자만에 빠져 거의 ①자기 직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어서 방위가 허술하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히로에아데스는 이 때 사데를 지키는 병사 하나가 투구를 떨어뜨렸는데 그 투구를 가져가기 위해 ②야생 염소가 다니는 길로 살짝 내려와 그 투구를 주워 가지고 성벽으로 쉽게 기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절벽이 보이는 것처럼 가파르지 않아서 기어오를 수 있는 것임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날 밤 히로에아데스는 몇 명의 병사를 이끌어 절벽을 타고 성안으로 들어가 쉽게 사데 성읍을 점령하였습니다.
페르시아는 B. C 549년 사데를 점령하였고 300년 동안 그곳을 아시아 총독 본부로 사용하였으며 그후 B. C 218년 안티오쿠스(Antiochus) 대제에 의해서도 점령되었는데 그때도 병사 중 하나가 히로에아데스의 방법을 되풀이하여 점령했습니다.

결국 사데는 제일 믿었던 곳 때문에 방어에 실패했습니다. 패주한 크로에수스 왕은 요새로 퇴각하고는 안전하다고 느꼈고 어떤 포위 공략을 취해도 끝까지 버틸 수 있다고 믿었으나 절벽을 기어오를 수 있는 그 전력이 노출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데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니라 는 말씀을 하였을 때 그들은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면서 그 말씀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깨어있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임을 경고합니다.



6. 주님의 권면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0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본 절은 대부분의 사데교회 성도들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으나 그러나 그 가운데 극소수의 예외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사회적인 풍조와 혼합에 물들지 않는 사람으로서 당시의 사데교회가 처한 입장은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이나 성적인 범죄와 같은 일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내적이고 기독교적인 문제였습니다.
옷이 더럽다는 것은 기독교적 순결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고전 08:07; 유 01:23).

몇 명이 네게 있어

문자적으로 몇 이름들로서(행 01:15; 계 11:13) 이는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하나님께 기억된바 됨을 말합니다(Mounce, Ironside).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흰옷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로서 ①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는 의를 의미하는 것과(Plummer) ②죄나 이교도적인 혼합에서 분리시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Lenski).
사데교회의 성도는 외적인 겉모습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내적 정결과 이교(異敎)와의 분리된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습니다(Johnson).

함께 다니리니.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그와 함께 교제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단순히 현재적인 교제는 물론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교제를 의미합니다.

0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사데교회의 경우 다른 소아시아의 교회와는 달리 외적 핍박이나 특별한 이단 그리고 신비주의가 언급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맥과 사데교회가 처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세상의 부패나 타협, 안일함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①흰옷을 입을 것이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희게 되었으며(07:14)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과의 영광을 닮아(18절; 06:11; 07:09,13; 19:14) 하나님 나라에서의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 받음을 시사해 줍니다(Ladd, Johnson).
그리고 천국에 관련된 색상으로서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능력으로 임할 그 나라의 모습을 잠깐 보았을 때 주님에 대한 그들은 표현은 그의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02)고 했습니다.

부활의 아침에 무덤에 있던 천사도 눈같이 흰옷을 입고(막 16:05) 있었고 주님 승천하실 때 천사들이 역시 흰옷을 입고 있었던(행 01:10)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하늘에 있는 구속받는 자가 바로 흰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계 06:11).

②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생명 책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13:8; 17:8; 시 69:28; 눅 10:20) 생명 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을 의미하였습니다(출 32:32,33).
신약성경에서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별하는 의미로 쓰여 그리스도의 피로 의로워진 자들은 영생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생명 책에서 흐려진다는 것은 이 놀라운 축복을 잃게 된다는 뜻입니다(시 69:28).

③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세 번째 약속으로 마 10:32절을 반영합니다(막 08:38; 눅 09:26; 12:08).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공적(公的)으로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으로서 주님께서 끝까지 자신을 의지하여 승리한 자들의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증언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확인하실 것을 말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0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개 교회 전체에 속한 청중들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 귀는 성령님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나타냅니다(07, 11, 17절; 03:06, 13, 22절).

교회들에게

복수로 각 교회들에게 보내진 서신 맨 끝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문구로서 이는 이 편지들이 특정한 지역 교회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편적인 교회를 향해 보내진 것임을 말합니다(Lenski, Hughes).

사데는 아시아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니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는 가장 부패한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서머나와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는데 사데는 산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처절하게 죽어있는 도시가 됨으로서 전혀 세상에 복음의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사데는 야생풀의 광야로 남아 있어서 그곳의 유일한 주민이라고는 파크톨루스 강변 저지대의 키벨레 신전 근처에 있는 몇 개의 오두막에 사는 유루크 유목민뿐입니다.
사데가 한때 장악했던 헬무스 평야에는 이제는 몇 개의 마을만이 산재하여 있는데 이는 주님께서 촛대를 그 자리에서(계 02:05) 옮기 실 때 일어날 수 있는 바를 정확히 보여 줍니다. 너무 늦기 전에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