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라델비아 교회의 장점 계3:7-13 새로 오신 목사님이 권사님들과 성도들 가정 심방을 하십니다. 모든 가정 심방을 잘 마치고 드디어 마지막 가정에 이르렀습니다. 누군가가 집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할 수없이 목사님 명함을 꺼내서 뒷면에 계3:20절이라고 써서 문에 붙여 놓고 돌아오셨습니다. 다음주일 예배를 마치고 헌금을 계수 하시던 계수위원 가운데 한 분이 목사님 명함이 헌금함 속에 있는 것을 보고 목사님께 돌려주었습니다. 그 명함에는 자신이 적어 놓은 성구 아래에 또 다른 성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창3:10절입니다. 계3:20절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창3:10절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목회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 가운데 교회 성장을 막는 몇 가지 질병을 기록한 글을 보았습니다. 첫째, 개척자 주권증이라는 질병입니다. 이 병은 우리만 남아서 교회를 지키겠다는 질병으로 소위 \\\"텃세\\\"라고 하는데 버려야할 병입니다. 둘째, 친교 과잉증이라는 질병입니다. 교회 안에서 짝짝궁끼리 너무 친교가 심해도 병이 되는 것입니다. 고향사람끼리, 돈 있는 사람끼리, 아는 사람끼리, 친한 사람끼리 여기에 다른 사람은 끼일 수가 없습니다. 셋째, 시설 협착증이라는 질병입니다. 이병은 주차장이나 교육관이 너무 부족하면 장소부족증에 걸려 교회가 성장하지 못합니다. 넷째, 에베소 증후군이라는 질병입니다. 이 병은 예수님을 만나 품었던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던 에베소 교회처럼 예수님에 대한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신앙경화증, 은혜불감증, 설교중독증에 걸려 버리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질병입니다. 다섯째, 유병무실증이라는 질병입니다. 이 병은 직분 값을 못하는 교인, 역사와 전통만을 자랑하는 교회, 교회 지도자들이 지나치게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이 교회는 힘을 못쓰게 됩니다. 여섯째, 지도력 긴장증이라는 질병입니다. 이 병은 목회자의 지도력에 지나치게 견제를 하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병입니다. 교회는 지도력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Redership이란 높은 곳에서 지름길을 보고 거기에 길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꿈을 주고, 미래를 주는 것이 지도력이다. 교회는 목사의 충만함으로 부흥한다. 은혜, 능력, 말씀, 거기에 지도력이다. 300명 교회 목사와 3000명 교회 목사와 30000명 교회 목사의 지도력이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이다. Gelf전 이전에 쿠웨이트는 남존여비사상이 철저한 나라였습니다. 미국 CNN 종군 여기자가 보니까 남자 뒤에 여자가 10m 뒤에서 졸졸 따라 다니는 것을 보고 매우 실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Gelf전 이후에 보니까 여자가 앞서가고 남자가 뒤에 따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종군 여기자가 놀랍게 변화된 것을 보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지뢰 때문에 여자가 앞에 가고 남자가 뒤에 가는 것이라 대답했답니다.\\\" 혹 우리 교회에서 앞서 말씀드린 여섯 가지 유형가운데 어떤 질병이 우리에게 있는가를 살펴서 하나라도 해당사항이 있다면 서둘러 치료하려는 노력이 전개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분명 물질적 공동체가 아니라 영적인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그 교회는 성장하게 됩니다. 그 성장 속에서 필요한 시설들이 늘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대형 교회는 대형교회로서의 특징이 있고 그 교회 목회자는 그만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교회가 후원하고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도 능력을 허락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보실 때 참 좋은 교회, 칭찬하시는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일까요? 성경에는 주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교회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잘 지켜 칭찬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으며, 환란과 궁핍 속에서도 죽도록 충성하여 칭찬 받은 서머나 교회도 있고, 맨 처음 세워져서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했던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있으며, 합심하여 기도하고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했던 안디옥교회도 있습니다. 또한 안 믿는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 믿음의 소문이 퍼져나갔던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고, 말씀을 사모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신사적인 교회라고 칭찬 받은 베뢰아교회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려고 하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중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은 교회였습니다. 에베소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4교회는 칭찬도 있고 반면에 엄한 책망도 받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받은 교회이지만 그러나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은 없고 칭찬만 받은 교회였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교회입니까?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나누는 이유는 우리 교회도 과연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교회인가를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단어 뜻은 \\\"형제사랑\\\"입니다. 이름 그대로 이 교회는 형제사랑을 실천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세 가지 장점을 지닌 교회였습니다. 첫째, 정성을 다 바친 교회였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적은 능력이라는 말씀은 정성을 다 바쳤다는 뜻입니다. 빌라델리아 교회는 인간적으로 볼 때 능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능력이란? 지위 높은 것이 능력이 있는 것이요, 재산이 많은 것도 능력에 속하며, 지식이 많은 것도 능력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재벌 또는 고위관리도 없습니다. 박사 같은 인물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성만큼은 어느 교회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서강교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교인은 없지만 그러나 정성만큼은 어느 교회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모든 제직, 교사, 성가대, 구역장, 권찰 그리고 전 성도들에게 이르기까지 아니 유치부 어린 생명까지도 적은 능력을 가지고 서로 정성껏 주님을 섬기는 교회인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가지고 열심히 봉사하는 교회인줄 믿습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신 복을 열거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복인 것을 고백하신다면 분명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감사해야 하며 하나님께 다시 돌려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과부의 정성껏 바친 동전 두 개를 더 기뻐하셨고, 뱃세다 광야에서는 어린아이의 떡 5개를 받으시고 감사하시면서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그 주신 능력 안에서 정성껏 섬기고 바치던 그 정성을 보시고 천배, 만배의 복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주일날 교회로 가야할 집사가 등산을 좋아해서 산으로 갔습니다. 되돌아 올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고 산을 거의 내려올 지경에는 캄캄한 밤이라 그만 잘못하여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답니다. 순간적으로 \\\"이제 죽었구나 집사가 주일을 빠뜨리고\\\"하는 생각과 함께 한 소나무를 간신히 잡게 되었습니다. 주위가 캄캄한데 위를 보아도 도무지 오를 수 없고 손을 놓게되면 저 밑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날 것을 생각하며 더욱 잡은 손을 움켜쥐었습니다. 그는 절벽 위를 향하여 힘껏 소리를 지릅니다. \\\"그 위에 아무도 없소?\\\" \\\"사람 살리세요\\\"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무서움이 엄습합니다. 그때 절벽 위에서 바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납니다. \\\"애, 아무개 집사야\\\" 생명줄을 얻은 것 같은 기쁨으로 소리쳤습니다. \\\"예, 여깁니다. 살려주세요\\\" 그러다가 이상한 생각이듭니다. 자기 이름을 이 밤중에 부르다니…, 그래서 \\\"누구십니까\\\" 물었습니다. 그때 절벽 위에서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만 계시는 줄 알았는데 이 절벽 위에도 계셨군요. 그런데 괜히 사람들을 불렀군요. 하나님 빨리 올려주세요. 팔이 아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안달을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네가 진정 나를 믿느냐? 내가 진정 너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 이럴 때 하나님 안 믿으면 어떡합니까?\\\" \\\"정말 믿습니다. 비록 오늘 교회는 빠졌어도 제가 집사 아닙니까? 집사가 하나님 안 믿으면 누가 믿습니까?\\\" 그때 위에서 다시 소리가 났습니다. \\\"진정 나를 믿는다면 내가 너를 이 위로 올려줄테다 그러나 먼저 네가 잡고 있는 손을 놓아라\\\" 집사는 곰곰히 생각합니다. \\\"이 손을 놓으면 박살이 나는데…\\\" \\\"하나님이시라고 했고 올려 준다고는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하나님이 실수하신다면 정말 큰일 나는데…\\\" 한참 고민하던 집사는 결국 \\\"아이고 하나님, 이 손을 놓으면 죽는 다니까요\\\"하고는 더욱 큰 소리로 \\\"그 위에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 없소? 살려주시오\\\"라고 악을 씁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믿음이란 옷을 못에 거는 행위입니다. 못이 있는 한 옷이 걸려 있습니다. 유한한 인생이 무한의 하나님에게 생을 걸어 놓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도 만에 하나 그 못에 이상이 있다면 하는 것이 인간의 사고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는 여러분의 한 부분을 요구하시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바치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결단입니다. 하나님을 잡기 위해서는 지금 가장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생명 줄이라고 생각하는 손을 놓지 않고는 신앙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200% 확신입니다. 소나무에서 손을 놓을 때, 200% 하나님의 손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정성입니다. 둘째, 말씀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지키는 교회였습니다. 선지자 아모스가 말하기를 \\\"이 시대의 기갈은 양식이 없어서 기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기갈이라고(암8:11)에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역시 그 때와 같은 시대임을 느끼게 됩니다. 물질적으로는 무척 풍요로워졌습니다. 세상의 학벌수준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적 지식은 기갈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세상의 풍부함과 편리함들이 더욱 영적인 상태를 고갈시키고 있다고 표현해야할 것입니다. 에스라7:10절을 보면 에스라가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서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백성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바가 있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배운 말씀에 겸손히 순종할 때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이 조심해야 되는 것은 성경지식을 조금 배우기 시작하면 생기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교만한 마음입니다. 성경을 배웠다고 해서 배운 지식으로 교만하여 남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거울이란 것은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지 남을 비추어 보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약1:23절에 보면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우리는 말씀에 거울로 항상 자신을 비추어 보고 배운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캐논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자(尺)라는 뜻이 있습니다. 무엇을 재는 것입니까? 바로 자기 자신을 재는 것입니다. 계11:1절에 보면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배하는 자들 즉 말씀을 듣고 있는 자신이 말씀대로 순종했는지 자로 재어 보라는 말씀입니다. 즉 말씀대로 행함이 얼마나 있는지 또한 그 말씀을 얼마나 전파하였는지를 반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의 장점은 바로 이 말씀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곧 복음인데 그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이 바로 복음전하는 것입니다. 전도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궁극적 사명은 선교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에서도 성도 여러분들이 열심히 전도하셨고 그리고 전도와 선교 그리고 구제를 위해서 열심히 헌금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선교의 비젼과 열정을 가지고 또한 우리 이웃들의 아픔에 동참하며 더욱 열심히 전도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헌신해야합니다. 셋째,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는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환란 중에도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당시는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습니다.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사자 밥이 되게 합니다. 톱으로 죽입니다. 이러한 환란 속에서 배교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의 이름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신하가 어떻게 왕을 배반할 수가 있겠습니까? 목숨에 위협을 받아도 신하는 왕을 배반할 수 없으며, 온갖 세상의 달콤한 유혹을 받아도 신부는 신랑을 배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십니다. 우리는 신하로서 왕되신 우리 주님께 충성을 다 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신부로서 신랑되신 예수님께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어떤 시련, 어떤 유혹이 몰려와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 33년 동안 가장 마음 아팠던 사건은 십자가 고통보다 가룟유다의 배신이었습니다. 가룟유다는 두 개의 가면을 쓴채 주님 곁으로 다가오면서 거짓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중국 어느 마을에 예전에 미국선교사 한 분이 찾아와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그 마을 사람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모택동의 공산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금지합니다. 평화스럽던 마을에 위협이 닥쳐옵니다. 어느 날 공산당원들이 교회 정문에 \\\"예배를 금한다\\\"는 공문을 붙입니다. 그러나 주일이 되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공산당원들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음 주일부터 예배를 드리면 그 때마다 한 사람씩 총살시키겠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다음 주일 모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공산당원들이 몰려 왔습니다. \\\"약속대로 한 사람을 총살 시킬터이니 누구든지 나오라\\\" 그때 목사님이 나섭니다. 그러자 장로님 한 분이 달려 나와 목사님을 밀어 제치며 목사님은 남아서 예배를 인도하셔야 하니 내가 먼저 죽겠습니다. 그러자 공산당원들은 장로님을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집사님이, 그 다음 주일에는 권사님이, 굴하지 않고 계속 예배를 드립니다. 노인 한 분이 나섭니다. 이번에는 어린아이가 나섭니다. 예외 없이 공산당원은 총으로 쏘아 죽입니다. 그랬는데도 여전히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이상하게도 그 후로는 그 마을에 공산당원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아무런 방해없이 자유로이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의 상처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 상처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내가 빛을 바라보고 서 있으면 내 얼굴이 밝게 빛납니다. 그러나 빛을 등지면 내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생기게 됩니다. 영원한 빛이신 주님을 똑바로 바라보고 내 얼굴을 주님께로 향하면 우리의 삶과 우리의 모든 생각들이 밝고 환하게 빛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성경은 어떤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첫째,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기둥이 없으면 집이 무너집니다. 기둥이 없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집을 지탱하는 귀중한 역할을 합니다. 가정의 기둥, 가문의 기둥, 교회의 기둥, 국가의 기둥 같은 인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세 가지 이름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새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 그리고 주님이 새 이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곧 하늘의 시민권을 주시고 너는 내 것이라고 인쳐 주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늘 나라의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정성을 다 바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키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는 교회가 되어서 나라와 민족과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기둥 같은 교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