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
계3:14-22



사도 요한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7교회에 보내는 메세지를 통해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들에게 오실 재림주를 기다리면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대처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본문은
그 7교회중 마지막 일곱번째로 언급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메시지를 담고있슴니다.

지형적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내륙에서 바다로 나가는 관문인 에베소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기에 무역이 성행했으며, 양모를 생산하고, 의학의 발달로 안약과 고약으로 유명하였으며 특히 금융업이 발달되어 모든 시민들이 부유하게 살았슴니다.

특히 교인들이 부유한 생활을 했으며 그중 상당한 부자들도 있는 매우 좋은 경제적 환경을 가졌고 외부로 부터도 핍박을 받지않은 현대교회와 많은 면에서 유사한 교회였음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펴온 7교회중 4교회는 외적 이단의 극심한 핍박을 받았고 3교회는 내적 어려움을 당한 것을 볼수가 있었으나 그 7교회중 가장 환경이 좋았던 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주님으로 부터 칭찬없이 책망만 들은 가장 믿음이 적은 신앙을 가진 교회였다는 사실에 우리의 촛점을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즉 세상과 타협하여 살아 감으로서 영적 전쟁을 포기한 오늘날의 교회와 너무나 유사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최 저급한 신앙으로 꾸중만들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 무엇이 잘못되어 책망을 들었는가를 찾아봄으로서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정검해 새롭게 도약하는 믿음의 계기가 될 수있도록 은혜받는 귀한 시간되시기 바람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14절 “내가 네행위를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이렇게 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신후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말씀하십니다. 물론 “더웁다”라는 뜻은 라오디게아에서 북쪽으로 11Km쯤에있는 뜨겁기로 유명한 온천수를 비교하여 말씀하신 것으로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 잘하는것을 의미함과 동시 “차다”는 표현은 교인들이 잘 알고있는 인근 골로세에 있던 찬 우물로 유명한 냉수를 배경으로 신앙생활에 냉담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냉담한 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냉담하다는 것을 알고있음으로해서 오히려 회개하고 고칠 수 있는 비젼이 있지만, 차지도 덥지도 않아 “미지근”한 신앙은 자신들은 잘 믿고 있다는 착각으로 인해 오히려 고칠 기회조차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와같이 미지근한 신앙을 하고있는 교인들에게 16절 “내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라” 말씀하십니다. “역겨운”것이 들어가면 토해내듯이 “불신앙”만큼이나 가증스러운 미지근한 신앙은 주께서 가차없이 정죄할것임을 말씀하심니다. 세상과 타협하여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교인들을 향해 세상을 떠나 온전히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못하면 결국 내침을 당하고 말것이라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내침을당한다”는 말은 한번 구원을 받은 성도가 구원에서 내처진다는 말이 아니라 비록 그가 교인이라 할지라도 참 신앙을 소유하지 못하면 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므로 그상태가 계속되면 구원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미임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저들의 미지근함을 지적하시며 해답을 주심니다.
17절 “나는 부자라 나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저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부자였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신앙생활을 잘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적으로 “곤고하며, 가련하며, 가난하며,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무섭게 책망하심니다. 곤고 하다는것은 전쟁으로 파괴되고, 약탈당함으로 겪는 생활의 어려움을 의미함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판단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판단과 정반대였슴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요하고 부족함것이 없다고 했으나 인생의 짐으로 곤고 했으며, 영혼과 인격적인 면에서 빈곤했으며, 참 진리를 보지 못하는 영적 장님이였으며 이런 그들은 가련할수밖에 없었슴니다.

이런 그들에게 끝까지 저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은 3가지 처방을 내리심니다.
첫째 18절 “불로 연단한 금을사서 부요하게 하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순도높은 금을 사라”는 말씀임니다. 즉 “불로 연단해 불순물이 없는 금”을 사라하시는 말씀임니다. 그러니까 저들의 신앙은 세상것으로, 자기 욕심으로,자기 주장등 불순물로 혼합된 금빛갈을 내는 합금에 불과하다는 것임니다. 따라서 불로 연단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필요없는 것은 태워버려야 한다는 말임니다. 더욱 저들의 신앙은 불로 연단할 어려움이 없었다는 근거를 가집니다.

저들은 다른 6개의 교회들에 비해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핍박을 가장 적게받은 교회였으며 이는 불로연단한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일생이란 아무리 좋와도 “불로 연단하는 생활”임니다. 실력 좋은 학생들이 시험이라는 지옥같은 어려움을 통과해야 하듯이, 실력 좋은 운동선수가 지옥 훈련을 거쳐야 하듯 우리 인생이란 늘 불로 연단하는 “그 과정속에”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연단이란 내가 내편인가? 하나님 편인가를 정하는것임니다! 그리고 이일은 우리에 많은 세월과, 눈물과 좌절속에서 만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부유했슴니다 그리고 이를 하나님 축복이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가난과 어려움과 난관은 신앙이 없음의 결과라 자칭했슴니다.

그러나 정금을 만들기 위해선 불로 태우는 연단으로 “제련과정”이 필요함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임니다. 학생이 유치원에서 대학원까지 20년의 세월을 투자하는 것은 낭비가 아니라 축복인 것 처럼!

세상을 대표하는 “돈”은 엄청난 위력을 갖슴니다. 우선 당당해 짐니다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없슴니다. 만사를 내가 할수있다는 자신감이 생김니다 이것이 영적교만임니다.

“돈”은 영적성장을 사오지못함니다!
사랑과 인내와 용서를 사오지도 못함니다.
더 더욱 천국의 티켓을 사올수가 없슴니다.
하나님의 연단은 우리에게 큰 복이 되는것입니다.

둘째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않게 하라” 하심니다.
과학 문명의 발달은 세상의 모든 가치를 형이하학적으로 끌어 내렸슴니다 우리의 만족이나 행복을 눈에보이는 물질로 대체해 버렸슴니다. 지금 세상엔 품질면에서의 값의 차이는 별것아님니다. 옷만해도 헤어지거나 삭아져서 입지못하는 것이 아니라 작아서 또는 유행이 지난 것이기 때문에 않입습니다. 세상의 행복이나 만족을 돈자랑으로 변형시킨 세상은 명품이라는 요술로(질의차가 십매면, 값의차를 백배로 해 여기서 만족과 행복을찾고(다르다는 것으로) 만족하게 잘사는 것을 찾음니다. 얼마나 우스운 코메디 입니까? 비싼것으로 차별화 해서 행복을 확인한다면 이는 정신박약아 이거나 저능아에 불과한 영적수준인 것입니다.

**** 이를 영적으로 벌거벗어 수치를 보인다고 성경은말함니다****

셋째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 하심니다.
라오디게아는 의학이 발달되어 안약이 특히 유명했다함니다. 주님은 이 안약으로 육신의 눈은 밝게했을지 모르지만 영적인것, 신령한 것은 보지 못했다고 꾸중하심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육신의 것에만 관심을 가졌을뿐 영적인 것에는 무관심했기 때문임니다.

이렇게 책망하시고 대안을 주신 주님께서 “열심을내어 회개하라”사랑의 권면을 하십니다.

열심을 낸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뜨거워지라”는 뜻임니다. 성령을 받고 거듭난 성도란 가슴이 사랑으로 뜨거워진 사람임니다! 기도도, 찬송도, 말씀을 받을때에 아멘 하는것도 뜨거운 성도임니다!

이렇게 권면하신 주님은 유명한 요절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이 내 마음의 문밖에 “서서” “두드리심니다”
“서서”란 시제는 현제완료형임니다. 즉 주님은 오래전부터 문밖에 서서 계셔왔으며 “두드린다”는 시제는 현제 진행형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두드리고 계신다는 표현입니다.

즉 주님은 지극하신 사랑으로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여 마음의 문을 열때까지 인내하시며 죄인의 문을 끈질기게 두드리신다는 것임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내 주시오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이기는 자에게는 하늘의 보좌에 함께 앉는 영광을 약속하심니다.

** 귀있는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님의 간곡하신 말씀이요 지극하신 우리를 향하신 사랑의 말씀이심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에 가슴문을 활짝열고 아멘으로 주를 영접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두에게 임하옵기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