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주신 약속

교회에 주신 약속
계2:17


오래 전 (1830년대) 어느날 독일 트리에(Trier)에 살던 유대인 소년이 그의 법률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유대인인데 왜 유대인 회당에 안가고 교회(독일 루터교회)에 나가요?\\\" 아버지의 대답은 전혀 신앙적인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아,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외면(왕따) 당하지 않고 이 땅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단다\\\" 본래 이 소년의 할아버지는 유대인 랍비였습니다. 그의 큰 아버지도 역시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랍비였습니다. 그러나 현실 감각이 빠르고 이재에 밝았던 이 소년의 아버지는 유대인들에 대한 사회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개신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러나 진정한 회심의 경험이 없었던 그는 자기 아들에게 아무런 신앙적인 영향을 끼칠수 없었습니다. 나이 6살에 유아세례를 받게 했지만 그것이 이 소년을 믿음의 아들로 자라나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자라던 이 소년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교회를 완전히 떠납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해 1847년 그는 엥겔스라는 사람과 영국 런던에서 유명한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칼 막스(Karl Marx)였습니다. 결과적인 가정이긴 하지만 만일 이 소년이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면 세상의 역사는 얼마나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교회 안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은 교회 안에서 자라나고 교회를 출입하며 살아가면서도 믿음을 배우지도 못하고 믿음을 지키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이는 당시 로마의 총독이 검을 사용해 사형을 집행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비교하면서 예수님이 선악과 정사를 가리는 권세를 가진 분이라는 상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교인들의 처한 환경이 어떤가를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당시 버가모는 사단의 위, 즉 제우스 신의 신당이 있었고 황제 숭배의 뿔리 깊은 전통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버가모 교회의 교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을 칭찬하고 계신 것입니다.

버가모 교인들이 믿음을 굳게 지켰으나 그중에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발람의 교훈이란 우상 숭배와 음행 사건이 겹쳐졌던 민25장의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이러한 교훈을 따랐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버가모 교회에는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또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 신앙생활을 가리치는 것이었으므로 배격되어야 마땅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버가모 교회 교인들에게 회개하라고 권면하십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입 속에 있는 검으로 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잘못을 돌이키고 온전히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감추었던 만나, 즉 천국의 양식을 주며 성결과 신자의 상징인 흰 돌을(벧전2:5-6)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1928년 황금의 바리톤 목소리를 소유한 목사의 아들이었던 한 그리스도인 청년이 돈이 없어 대학을 중퇴하고 보험회사 세일즈 맨이 되었습니다. 우연히 방송국 공개홀에서 노래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 NBC방송국의 전속가수로 활약해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23세였습니다. 그 앞에는 이제 돈과 인기가 보장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그가 좋아하는 교회에서 그리고 복음집회에서 찬양할 기회가 날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며 기도하던 그가 자기 집 응접실 피아노앞에 앉았을 때 어머니가 평소에 좋아하여 10년을 애송해온 신앙시 한편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시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 제 목소리, 제 존재, 제 젊음 모두 주를 위해서만 드리겠습니다.\\\"그는 자기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멜로디를 어머니가 애송하는 신앙 시에 맞추어 작곡을 시작합니다. 이날 탄생한 찬송이 찬송가 102장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조지 베버리 쉐아(George Beverly Shea)옹의 이야기입니다. 그 후로 그는 전도자 빌리 그래함을 만나 그와 더불어 평생을 동역하며 찬양과 간증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역에 헌신하게 됩니다.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믿음-이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존귀하고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이기는 자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십니다.

\\\'감추었던 만나\\\'는 후손들을 위해 언약궤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가(출16:32-34; 히9:4)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예레미야 혹은 천사에 의해 감추어졌다가 장차 메시야 왕국에서 공개 된다는 유대 전설을 반영한 것으로(마카비하2:4-6; 바룩29:8) \\\'감추었던 만나\\\'는 신령하고 참된 양식으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를 통해 주어지는 것으로 봅니다(Greijdanus, Charles, Johnson,
감추었다는 것은 그 신령한 비밀이 감추어졌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계시된 책이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깨닫는 책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비밀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비밀을 깨닫게 됩니까? 성경을 읽을 때 구구절절 아-멘 소리가 연발되도록 깨닫는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신앙의 순결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박해를 이기는 자들입니다. 신앙의 선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꿀 송이보다 다 달고 금보다 더 귀한 감추인 만나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추어진 만나\\\'는 생명나무의 열매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나라에서 주실 영원한 생명을 상징합니다(Beasley-Murray).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뜻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요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흰 돌을 줄 터인데

북 구라파의 숲속에 사는 흰 담비라는 짐승은 그 털 모피로 이름 있는 짐승이라 합니다. 옛날부터 귀족들이 즐겨 사용하던 이 하얀 모피털의 주인공인 흰 담비는 본능적으로 자기의 하얀 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가 있다합니다. 흰 담비를 잡으려는 사냥군들은 그 짐승의 굴을 먼저 찾아낸다합니다. 그리고는 더러운 껌정으로 굴 입구의 안팎을 다 칠해 놓고 수풀 속에서 사냥개들이 흰 담비를 찾아내면 흰 담비는 도망을 치고 개들은 뒤를 쫓습니다. 도망하여 자기의 굴로 달려온 흰 담비는 굴의 입구가 온통 껌정으로 더러워진 것을 발견합니다. 이 작은 짐승은 자기의 깨끗한 털을 더럽히며 굴속에 들어가 살기 보다는 뒤로 돌아서 죽음의 길을 택하여 그 큰 개들을 상대로 싸우는 자세를 취한다합니다. 그러면 이때에 사냥 군들이 도착하여 흰 담비를 잡 는다고 합니다. 성결에 대하여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만나와 더불어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흰 돌은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상합니다. 피에 그 옷을 씻었으면 그 옷이 붉어져야 하는데 그런데 성경은 희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흰색이 우리의 사죄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흰 돌이 나오는 것은 당시의 재판제도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에도 배심원 제도가 있었습니다. 배심원들이 피고와 증인의 진술을 듣고 유죄이냐, 무죄이냐를 판단해서 의사를 표시합니다. 이 때 피고가 유죄라고 생각하는 배심원은 검은 돌을 던졌습니다. 피고가 무죄라고 생각하는 배심원은 흰 돌을 던졌습니다. 주님은 최후 심판에서 우리에게 흰 돌을 주십니다. ‘너는 무죄이다!’ 하십니다. 믿음으로 이기는 자들이 되어 흰 돌을 받아 ‘너는 사죄함 받은 존재이다.’ ‘너는 이 흰 돌과 같이 깨끗한 존재이다.’ 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 사실이 주님을 통해 선포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흰 돌은 또 가장 귀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색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에서 흰 것은 가장 귀한 것을 말할 때 사용되는 일이 많습니다.
특히 옷의 경우에 그런 일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그 옷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마17장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무덤을 보려고 갔는데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고 마 28장 1절에서 3절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 곁에 서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합니다(행1:10).

요한계시록에서는 특히 흰 옷을, 이기는 자, 순교자, 구원 받은 자, 주님, 그리고 하늘 군대들이 입는 것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하신 말씀중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6장 11절에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에게, 줄여 말해서 순교자들에게 각각 흰 두루마기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계 19장 14절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께서 백마를 탔는데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옷만 흰 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계 14장 14절에는 머리에 금 면류관이 있고 손에 예리한 낫을 가진 인자와 같은 이가 흰 구름 위에 앉아있는 것이 나옵니다.
계 20장 11절에는 심판주가 크고 흰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흰 돌을 주겠다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을 주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이기셔서 흰 돌을 받으시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딸 일곱 분이 첫 딸 낳고 그만 그치라고 지일 둘째 낳고 괴이하다고 괴이 셋째 낳고 항상 딸만 낳는다고 항삼 넷째 낳고 분하다고분사 다서째 낳고 웃긴 소오 여섯째 낳고 별일이라고 별육 일곱째 낳고 망했네 하고 망칠일고 했답니다.
아홉 낳은 뿐이 첫 딸을 낳았습니다. 그럴법한 일이라해서 의일, 다음에 또 딸을 낳았습니다. 간혹 그럴수도 있다해서 혹이, 그런데 또 딸을 낳았다. 이건 너무 많다하여 과삼, 연거퍼 딸을 또 낳고 참 너무도 심하다 해서 심사, 또 딸을 낳고 정말 분하다고 오분, 이제나 저제나 하고 아들을 기다리는데 또 딸을 낳고는 화가 치밀어 육노, 그런 후 또 딸을 낳아 고만 놀래서 칠경, 얼마 후에 또 딸을 낳고 보니 나오는 것은 한숨과 탄식뿐이라 팔탄, 한탄만하고 지내는 데, 또 딸을 낳고 보니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와 구소라 이름지었다합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의 일. [프레데릭스버그 대전튜]에서 남북은 많은 부상자를 낸 채 서로 후퇴, 재 접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군의 한 병사가 물통을 들고 부상자에게 달려갔습니다. 곧 북군에서 일제 사격을 가하였으나 그는 멈추지 않고 달려가 부상자들에게 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북군의 장교가 사격중지 명령을 내리고 잠시 휴전을 제의, 부상자들을 치료하자고 했습니다. 휴전 때 장교는 남군의 용감한 병사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 이름은 크리스천이오]

흰 돌에는 새 이름이 기록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새 이름\\\'은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이름으로(Kiddle, Lohmeyer, Rist). 혹은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상태에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으로(Beasley-Murray). 세상에 감추어져 있으나 장차 드러나게 될 그리스도 자신의 이름이든지(3:12; 14:1),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이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사야서는 뒷부분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 대해 말하면서 62장 2절에서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사62: 2)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꾼들, 종들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사야서 65장에는 패역한 자들, 여호와를 버리며 하나님의 성산을 잊고 우상에게 예배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대조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패역한 자들은 여러 가지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사야서 65장 15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은 저줏거리가 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겠다고 합니다. 새 이름으로 부르겠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그의 종들, 크게 쓰시는 일꾼들에게 새 이름을 주신 일이 있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사래에게는 사라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발꿈치를 잡았다.’는 매우 이상한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야곱에게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바요나 시몬, 또는 게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제자에게는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사울은 바울이 되게 했습니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그를 바나바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행4: 16)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권위자 입니다.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기쁜 일입니다. 예수님은 70인이 돌아와 보고할 때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 20) 하셨습니다.
우리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 꼭 그래야 되는 일입니다. 안 그러면 정말 큰 일 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불러 주셔야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있어야 그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기록되는데 저 끝에 조그맣게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사죄함 받고, 귀한 존재가 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해서 새로운 이름을 갖고 그 이름이 흰 돌에 큼직하게 기록되어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서 새 이름이 흰 돌에 기록되는 것은 더할 수 없는 복입니다.
이기는 자들이 되어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되어서 새 이름을 받는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이겨서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952년 7월 3일 한국에 출전한 미국의 공군대령 데오도어 헤리스는 비29기가 추락하여 벼 밭으로 낙하했습니다. 벼 밭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는 곧 중공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중공군은 의약품의 투여도 없이 땅굴 속에 그를 가두어 두었습니다. 영하의 강추위를 막아주는 것이라곤 소량의 붕대밖에 없었습니다. 14개월 동안 중공군은 무자비하게 그를 고문했습니다. 그가 강요받은 것은 미국이 한국전역에 세균을 퍼뜨렸다는 서류에 서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서류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고문은 1953년 9월, 포로교환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해리스 대령이 굳게 믿었던 것은 사실은 사실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극심한 핍박을 겪었지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둘로스 자료-거짓 고문을 이겨낸 헤리스 대령)

우리도 이 처럼 우리의 신앙의 절개를 지켜 하나님의 일을 빛나게하는 사람이 되고 감추었던 만나를 받는 자리에 함께 해야 합니다.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약속대로 이기는 자가 되고 감추었던 만나를 먹고 흰 돌을 받아 그 돌 위에 새 이름이 기록되는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