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는 교회


지구 상에 존재하는 교회들의 모습
계2:1-7



에베소는 소아시아에서 첫째가는 도시로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또한 에베소는 그 당시 아시아에서 제일 큰 항구도시로서 아시아의 빛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에는 풍년과 생명, 성(성)을 주장한다는 아데미 여신상(다이아나 신전)으로도 유명합니다.
쾌락과 우상 숭배, 미신으로 가득찬 에베소에도 복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제 3차 전도원정 때(주후54-59년) 설립된 교회로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에베소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3년 동안 머물면서 목회했던 곳입니다. 그 유명한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친 곳이 에베소입니다.
우리는 7주 동안 소아시아의 7교회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 존재한 교회를 역사적 고찰로 살펴보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때 그 교회들이 오늘날 모든 교회들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기에 그 교회들을 통해 더욱 중요한 의미를 찾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일곱 교회는 역사 속에 존재했던 특정 지역의 교회이지만 이것은 또한 지상에 있는 전 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에 담긴 메시지는 각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메시지라는 귀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다양한 교회들을 보면서 우리 교회를 진단하며,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진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에베소 교회를 살펴보면서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들을 해부하고 치료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1. 에베소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

본문 1절에 보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여기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는 1장 20절에서 이미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일곱 별 즉 일곱 교회의 사자를 붙들고 계십니다. 여기 붙잡는다는 의미는 부분적으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붙잡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 장악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곧 교회의 모든 사역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붙잡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손에 붙잡혀 있기에 누구도 건들 수 없고, 빼앗을 수 없습니다.
왜 붙잡고 계십니까? 그것은 곧 주님이 일곱별의 소유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교회의 유익을 나타내시기 위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목회자가 주님의 손에 붙잡혀 사역할 수 있도록 성도들은 힘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손에 이탈된 목회자가 아니라 주님의 능력의 오른 손에 붙잡혀 사용되는 목회자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일곱별을 붙잡은 주님은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십니다. 이것은 곧 주님이 일곱 교회를 다니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 \\\\\\\'다니신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주님은 모든 교회 안에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직접 교회를 관할하고 계십니다.
모든 교회를 관할하고, 치리하고, 주관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미미한 교회라 할지라도 영광스러운 주님이 임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말씀입니다.
모든 교회를 통치하시는 주님은 모든 교회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이 교회를 향해 칭찬과 책망을 하실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2. 에베소 교회의 장점

본문 2절과 3절에 에베소 교회의 장점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위해 수고한 교회였습니다.
여기 수고는 지나치도록 한 수고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곧 주님을 위해 힘을 다해 수고했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위해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구원하심에 대한 감격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다 아십니다. 여러분이 얼마큼 땀흘려 봉사하며, 어려움 중에서도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주를 위해 사는 지를 세밀하게 아십니다.
저들은 지나친 수고와 함께 주의 일을 하면서 인내할 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여기 인내는 \\\\\\\'아래 머물다\\\\\\\'는 뜻으로 소극적으로는 \\\\\\\'견디는 것\\\\\\\'을 말하고 적극적으로는 \\\\\\\'극복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참으로 신앙생활에서 인내가 없이는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저들은 인내와 함께 게으르지 않고 주의 일에 힘썼던 자들입니다.
또한 저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자들 즉 거짓 사도들을 용납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영적 통찰력이 민감한 교회였습니다. 진리에 대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교회였습니다.
지금이야 각 교회마다 목회자들이 목양을 하고 있기에 아무나 강단에 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순회하는 사역자들을 통해 말씀이 전파되었고, 누구나 자유스럽게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회당 예배의 전통에 따라 누구든지 할 말이 있으면 이야기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잘못된 자들이 강단을 지배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교회들이 시험에 빠지고, 진리에서 벗어나 비진리를 좇는 사례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이장림, 이재록, 이초석, 정명석씨들의 거짓된 진리로 말미암아 참 교회들이 얼마나 시달림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의 정체를 드러낸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저들은 특히 니골라당(6절)의 행위를 미워했습니다.
여기 니골라는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데(행6:5) 그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여 이단 교리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니골라당의 교리는 크게 세 가지인데 복음의 시대에는 율법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은 더럽고 영만 선하다는 이원론을 주장했습니다. 이런 사상 때문에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되기 때문에 어떤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런 이단적인 가르침을 싫어했습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의 모습을 유지시켜 나갔습니다. 이렇게 정통성을 유지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참으로 칭찬받을만한 교회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3. 에베소 교회의 책망

본문 4절에 보면 \\\\\\\"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완벽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진리를 사수했으나 사랑의 실천이 마비된 교회였습니다. 거짓 사도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내었지만 성도간의 사랑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초기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버리고 오직 정통만을 붙잡는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처음 설립될 당시의 그 뜨거운 아가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밖에서 들어오는 이단 방어에만 몰두하다 보니 형제애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독선과 편협, 비판적이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찾다 보니 인간의 열심이 앞서게 되고 용서와 아량이 상실되어 버렸습니다.
첫사랑을 상실한 신앙은 그래도 모양새는 있습니다. 예배 시간만 되면 여지없이 이렇게 나옵니다. 그렇지만 첫 사랑이 식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감격이 없습니다. 벅찬 감격에 찬 찬송이 없어집니다. 마음을 열고 기도하는 시간들이 줄어듭니다.
참된 기도 생활이 없고, 찬송도 없고, 그저 자기들의 종교 생활에만 만족하는 자리로 떨어집니다.
주님은 이런 모습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를 향해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우리 교회를 향해 무슨 책망을 하실까요? 주님의 책망을 귀담아 듣는 교회와 성도는 아직도 소망이 있습니다.

4. 에베소 교회의 살길

본문 5절에 보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세 가지 처방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신앙생활에 감격이 없어지고, 그저 종교 생활만 남았는지 그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그 신앙, 그 감격, 그 믿음, 그 사랑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이 떨어져 버린 그 상태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생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회개하는 것이 교회의 소망입니다. 마음을 돌이키는 것, 방향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폭적으로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셋째로는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대로 복구하라는 말입니다. 본래대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만약 회개치 아니하면 심판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에베소 교회는 회개치 않았고, 그 결과 주후 262년에 다이아나 신전과 에베소의 전 시가는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갈대가 무성한 늪지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주적 교회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역 교회는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데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지역 교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할 때 존재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할 때 주님은 그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7절).
우리는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귀가 있어야 합니다.
이기는 자 즉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참 믿음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에베소 교회처럼 진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가르치고 살려는 몸부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처음 사랑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진리를 다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 사랑이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통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도 주님은 오늘의 교회들이 진리를 지키기를 바라고 계시고, 또한 처음 사랑도 잃지 않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소망 교회와 성도들이 되도록 우리 모두 경성하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위해 힘을 다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