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상은 부요한 교회라 계2:8-11 서머나 라는 도시에 붙여진 별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시아의 면류관이라는 별명입니다. 그만큼 서머나는 명망이 있는 도시이고 특히 폴리갑이라는 감독이 영적인 감화력을 크게 나타낸 도시입니다. 그래서 서머나는 모든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는 도시였고 서머나에서 폴리갑의 순교는 교회사적으로나 그 당시 초대교회 복음증거에 획기적인 역할을 했던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서머나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환란과 궁핍 8절을 보면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서머나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서머나 성도들의 환란 당한 일, 궁핍 당한 일을 알고 계신다고 격려했습니다. 환란과 궁핍은 그 당시에 로마에 의해서 핍박받는 성도들의 모습을 잘 묘사했습니다 . 그때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또 직업을 박탈당하는 사회적인 핍박까지 겹쳤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이 박해뿐 아니라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모든 특권과 권리를 잃어버리는 환란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압박과 함께 육신의 궁핍까지 겪어야 하는 그런 자리로 떨어졌던 것입니다. 이런 서머나 성도들의 고난을 주님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받아들일 메시지는 서머나 성도들은 신앙생활 하기에 가장 극악한 환경을 잘 극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환란과 궁핍, 이 두 가지는 신앙생활 하기에 매우 어려운 환경입니다. 종교적 환란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입니다. 지난날에 한국교회가 박해를 받고 있을 때 교회를 섬겼던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섬겼습니다. 이 환란은 참으로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궁핍함도 매우 견디기 어려운 고난입니다. 지난날 궁핍한 시대를 살아본 경험이 많이 계십니다. 내가 주리는 것은 견딜 수 있다 할지라도 가족이 주리고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궁핍에 처하는 것을 함께 견딘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와 같은 환란과 궁핍에 대해서 주님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오해 서머나 교인들이 그 당시에 받았던 환란과 고난은 로마라는 나라의 환경에서는 일반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그 당시 교회가 핍박을 받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 사람들이 기독교를 핍박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조작입니다. 첫째는 성찬식을 가지고 예수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 먹는다고 해서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라는 오해를 했습니다. 두번째는 기독교인들이 함께 모여서 공동식사를 하고 친교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은밀하게 모이는 것을 불순하게 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모여서 도덕적으로 방탕하고 남녀가 어울리는 모임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한 것입니다. 세번째는 예수를 믿고는 가족들이 서로 분리가 되고 서로 불화하기 때문에 가정을 파괴시키는 죄를 범하고 있다고 해서 핍박을 했습니다. 네번째는 로마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보고 무신론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신상도 없고 안 보이는 신을 믿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이라고 기독교를 곡해했습니다. 여섯번째는 기독교인들은 불로 이 세상이 심판받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고 해서 기독교인들이 방화범일 수 있다고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네로 황제는 실제로 로마의 화재사건에 기독교인들에게 죄목을 씌워서 핍박을 가했습니다. 이렇게 그 당시에 교회를 핍박하는 구실로 그들은 잘못된 이론을 가지고 교회를 압박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회는 환경적으로 매우 예수믿기 어려웠고 신자노릇하기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환경을 잘 극복을 한 서머나 교회를 주님께서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물은 기온이 내려가면 얼어붙습니다. 또 날이 따뜻하면 녹습니다. 그러나 얼어도 물이고 녹아도 물입니다. 물이 언다고 해서 물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물이 어는 것과 녹는 것은 추위와 더위에 적응하는 것뿐인데 그리스도인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면도 그런 원리라고 봅니다. 우리가 환경이 악화되면 같이 고난을 당합니다. 우리도 병들면 고통 당해야 되고 우리도 궁핍하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사업이 실패하면 거기에 따라오는 후유증은 말로 다 못합니다. 우리들에게 부딪혀 오는 환경은 역행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여야 되고 거기에 우리도 함께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환경을 극복해야 됩니다. 실상은 부요한 자라 예수님께서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저는 오늘 본문 안에서 이 말씀이 큰 격려가 된다고 봅니다. 너희들이 겪고 있는 환란과 고통을 안다, 그러나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당당합니다. 서머나 성도들은 긍지가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 대하여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환란과 궁핍이 있지만 내실을 보면 네가 부요한 자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암시를 주고 있는 격려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잘못 믿으면 겉과 안도 없습니다. 교회가 예배당을 자랑할 만 합니까? 서울에 오는 관광객이 예배당을 구경하러 옵니까? 겉은 교회가 자랑할 게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오늘 본문말씀대로 드러나지 아니한 네가 부요한 내실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갖추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 내실마저 없다면 겉도 없고 안도 없는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라는 거대한 나라를 향하여 서머나 교회가 견고히 서 있을 수 있었던 것도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하는 영적인 내용입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책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책망을 받지 아니한 교회가 서머나 교회입니다. 다른 교회들은 책망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가 주님의 격려를 받게 된 요인은 보이지 않는 실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순교 당하신 우리 나라의 이기선 목사님이 심문하는 검사와 주고받았던 말이 있습니다. \\\'영감, 천황폐하가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당신은 이것도 저것도 다하고 살아야 될 사람인데 내가 보니 큰 일이요, 당신은 천국법을 지켜야 되고 우리 나라 국법도 지켜야 되는데 어떻게 하겠소?\\\' 이기선 목사님 대답이 \\\'둘 다 지키지요\\\' \\\'영감님, 둘 다 어떻게 지켜요?\\\' 그때 이기선 목사님은 \\\'예수님이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했으니 나는 예수를 믿는 천국법을 지킬 것이고 천황이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라 하니 내가 그것도 순종할테니 죽이라\\\'고 당당히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실상이 있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이제 우리의 인생은 실상을 배태해야 합니다. 벼농사나 보리농사를 지어보면 이삭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품고 있는 배태기가 있습니다. 그 때가 참 중요합니다. 이 배태기 때 병충해를 많이 입습니다. 벼농사 지을 때 잎사귀만 보고 방심하면 안됩니다. 배태기 때 멸구나 병충해가 스며드는 것을 잘 막아 주어야 합니다. 배태기 때 병충해가 침입해 버리면 그것은 농사가 바로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살이가 출소된 것, 드러난 것에만 집중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드러나지 아니한 우리의 내실을 충실히 갖추면 이것이 때가 되어 충실한 열매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내실을 못 갖추고 있으면 때가 되어도 쭉정이 밖에 없는 농사를 짓고 만다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는 서머나 교회의 이 모습은 오늘 현대교회가 갖추어야 될 자세라고 봅니다. 우리는 항상 외형적 평가에서 답을 구하지 말고 내실을 갖고 답을 찾는 알찬 신앙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당부를 했습니다. 주님은 아무 교회를 보고 이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이 말씀은 죽을 때까지 충성하라는 충성의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 가지 해석을 집합해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충성을 끝까지 하라는 말입니다. 지금 충성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님이 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충성을 끝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서머나 교회가 주님을 섬기고 있는 그 충성을 인정하면서 오늘 너의 충성을 마지막까지 지켜가라는 것입니다. 지금 충성하지 아니하면 네가 목숨 바쳐 충성하겠다는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충성하고 있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두번째 의미는 드러나지 않는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드러나는 것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일에까지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맡겨진 자입니다. 일꾼은 맡겨진 자입니다. 맡겨졌다는 데서 사명이 일어나고 이 사명 때문에 우리는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 맡은 일 외의 것에 집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맡은 일에 충성한다는 것은 철저한 신앙적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긴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맡기지 않은 것까지 몰두하면 우리의 인생은 파산이 일어납니다. 주님이 맡긴 그 사명 앞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맡겨주시는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죽도록 충성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사회적으로 자꾸 문제가 되는 원조교제의 \\\'원조\\\'라는 말은 일본에서 건너온 말로 도와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거기에 관계된 철없는 아이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따지고 보면 용돈이 궁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또 한 부류는 갖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핸드폰을 다 갖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그것을 가질 시기도 아니고 아닌데 그렇게 갖고 싶어하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갖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그것을 충족을 시켜준다는 것입니다. 총체적 방탕입니다. 맡은 일에 충성한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얼마나 건전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잡념을 가지고 탈선하여 필요 없는 무익한 일을 하면 거기에 인생살이의 파괴가 일어납니다. 내게 허락되지 아니한 것을 갖고자 하면 거기에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안 가져도 될 것을 갖고자 탐욕을 부리면 거기서도 또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맡겨진 대로 살면 됩니다.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한도 안에서만 감사하고 누리면 됩니다. 분수를 넘어서서 가질 필요도 없고 내게 허락지도 않은 것을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은 그런 한계를 분명히 설정한 의미가 됩니다. 맡겨진 일에는 목숨을 걸어도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맡긴 그 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자랑거리가 되는 최봉성 목사님은 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지 못한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성령에 충만하여 한국교회의 복음역사에 한 페이지를 만든 목사님입니다. 이 분이 1939년도에 신사참배 반대를 하다가 투옥이 되었습니다. 옥중에서 고문을 당하는 중에 자신이 아무래도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이렇게 죽는 것보다 기도하다가 죽는 게 낫겠다 싶어 옥중에서 콩밥도 거부하고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금식을 무기한으로 하니까 사람이 약해져서 보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유증으로 결국 목사님은 하늘나라로 소천을 했는데 유명한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최봉성 목사님이 죽기 전에 \\\'천국에서 전보가 왔도다. 나를 오라 하신다\\\'는 말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이 어른은 일생동안 예수 천당을 전하다가 가셨습니다. 이 분은 목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로서 어디든지, 누구에게든지 예수 천당을 전했고 이 분의 전도는 가장 어리석은 전도같이 보이지만 가장 권능 있는 전도였습니다. 그 분의 전도 앞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는 열매가 있었습니다. 최봉성 목사님은 어떤 위인처럼 화려한 경력을 갖춘 목사님은 아닙니다. 이 분은 그에게 맡겨진 대로 일하고 가신 분입니다. 맺는 말 오늘 서머나 교회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게 된 동기는 오늘 이 세상의 실상을 보면 속이 다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서머나 교회가 주님 앞에 인정받았던 그 칭찬이 오늘 우리 교회의 칭찬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칭찬이 되기를 바랍니다. \\\"네가 실상은 부요한 자다, 네가 실상은 승리자다, 네가 실상은 행복자다\\\'라는 주님의 격려가 있는 내실을 갖춘 우리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