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교회


에베소 교회
계2:1-7


1. 들어가면서
오늘부터 이번 한 주간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 보낸 주님의 편지에 대해 살펴볼려고 합니다. 주님의 편지를 통해 주님이 바라시는 참된 교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들을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곱교회에게 보낸 일곱 편지를 통해 또한 우리 교회의 모습을 진단해 주실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 속한 성도 한 사람 한사람의 신앙을 점검해 주실것입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는 권면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은혜로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굳건하게 세워지는 역사가 있을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일곱교회는 그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교회들입니다. 이들 교회는 오늘날의 교회처럼 실제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어있었습니다. 슬픔과 기쁨, 성공과 실패과 함께 어울져있는 현실 교회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현실감있게 들려질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초대 일곱교회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지역교회를 향해서 주님께서 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지역교회의 중요성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지역교회를 소홀히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지역교회에서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속된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에 경청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2. 에베소 교회

로마 당시 에베소는 세계적인 무역도시였습니다. 피온산 기슭의 대극장 옆에는 시리아, 인도, 아라비아, 이집트 등 세계각국에서 몰려온 상인들이 식료품, 향료, 고급옷감에서 금은보석, 도자기 및 노예판매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품을 거래하는 동양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습니다. 시장이 형성되면 사람들의 이동도 많은 법입니다. 풍부한 물자뿐만 아니라 각처에서 몰려온 상인들, 은행업자, 창고업자, 운수업자들은 물론 그들의 분쟁을 행결하는 법률가, 대서업자, 예술가, 철학가드응 수많은 사람들이 예베소로 몰려왔습니다.

이 시장은 기원전 3세기로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시장바닥은 대리석으로 포장되었고 그 주위기둥들로 둘려져 있으면서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헤엄치느 연못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시장의 개점 및 폐점을 알리는 해시계와 물시계도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도 대단히 풍요로왔습니다. 시민들을 위한 위락시설로 2만5청명을 수용할수 있는 원형극장이 아직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하고 있습니다. 경기장과 체육관 음악당, 거대한 목욕탕등이 있었고, 지식인들을 위한 도서관과 학교, 여행자들을 위한 여관과 유곽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많은 여성들은 에베소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로 대단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 도시는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우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온갖 종교와 마술이 성행하던 도시였습니다. 에배소 도시는 미신이 판을 치고 부적장사와 우상장사들이 판을 치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은 바울과 같은 복음전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후 50년경에 고린도에서 건너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함께 이곳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였습니다. 이들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두란노서원에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복음을 강론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막론하고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복음전도의 결과는 미신에 바져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이들은 마술책을 불사르게 되는데 은 오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의 이런 왕성한 활동은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됨에 따라 은세공업자들이 더 이상 장사를 할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이 은세공업자들이 장사가 안되자 바울에 대해 큰 소동을 일으키게 되고 이댄 알렉산더의 중재로 바울은 이 소동에ㅐ서 겨우 살아남게 됩니다.(행19:33-41)

이렇게 시작된 에베소 교회는 특히 사도요한에게는 의미가 있는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개척하고 디모데가 뒤를 이어 목회하다가 아데미 여신의 축제일에 군중들로부터 매를 맞고 순교합니다. 그 뒤에 요한은 이곳 에베소에 예수의어머니 마리아를 모시면서 노년까지 목회를 하다가 순교합니다.

3. 에베소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

우리는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나타내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2:1)

1) 주님은 일곱별을 붙잡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20절에 보면 일곱 별은 일곱교회의 사자요, 일곱금촛대는 일곱교회라고 했습니다.

일곱별 곧 일곱교회의 사자는 각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며 다스리고 목회를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들을 가르키고 있다고 이해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곱교회의 지도자를 붑잡고 있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붙잡는다고 할 때 어떻게 붙잡는냐에 따라서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책을 이렇게 붙잡고 있다면 누군가 힘있는 사람이 낚아 채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지금 붙잡고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도록 확실하게 붙잡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목회자를 붙잡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가장 중요한 자는 목사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목회자는 주님의 손에 붙잡히는 목회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주님으로부터 능력받고, 주님의 권위하에 사로잡혀 있는 목회자를 하나님은 쓰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가 주님의 손에 붙잡혀서 목회하는 목사될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성도들이 목회자를 위해 시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손에 붙잡힌 목사되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성도들이 목회자를 통해 은혜받기 원한다면 목회자를 위한 기도후원을 해야 합니다.

2)주님은 일곱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세상교회를 일곱금촛대로 배유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안에 거하십니다. 아무리 약하고 작은교회라도 영광스러운 주님이 임재하고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저는 원합니다. 이 은혜로 교회에 거하시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매번 나올 때 마다 만나시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는 곳이 되길원합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의 상처들이 치유되고 질병이 고침을 받고 여러분의 삶이 새로워지는 주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시길 원합니다. 이번 한주간에 이런 역사를 체험해 보십시오, 주님을 만나고 싶으면 이곳에 오시면 됩니다.

4. 에베소 교회를 향한 칭찬
에베소 교회에 대해 말씀하시는 주님은 모든 것을 안다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교회는 대단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2-3절에 보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라고 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는 교회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면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들고 있습니다. 바로 에베소교회가 이런 신앙의 삼원색을 갖춘 교회였습니다.

1) 믿음의 행위
여기서 행위는 믿음의 행위를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으면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비성경적인 직업들을 집어치웠습니다.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던 마술의 책들을 다 불태워버렸습니다. 이들은 우상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얼마나 결단력있는 신앙인지 모릅니다. 예수 믿으면서 술과 담배에 질질끌려다니지 않았습니다. 도박과 여자문제를 끊었습니다. 폭력을 앞세우던 사람들이 완전히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달라진 믿음이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의 결단력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위해서러면 믿음의 결단을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2)사랑의 수고
이들은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남을 돕고 대접하는데 힘써 수고했다는 말입니다. 당시 복음을 전하는 순회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을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전도자들이 에베소를 떠나서도 에베소 성도들의 사랑의 수고를 기억했습니다. 어떤사람들은 교회를 위해 봉사할때 말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으로 수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고는 자신의 몸이 드려져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위해 몸으로 수고하는 자되시기 바랍니다.

3)소망의 인내
이들의 믿음의 특징은 인내하는데 있습니다. 웬만한 어려움은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오래 인내하면서 그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로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냄비에 끊는 물같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이 발견되면 그것을 참지못하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알려서 온 교회를 시끄럽게 합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 오래 참았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도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오래 참았습니다. 신경질 내지 안았습니다. 분내지 않았습니다. 욕하지 않았습니다. 다투지 않았습니다. 왜 욕합니까? 왜 성질냅니까? 왜 다툽니까? 인내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오래 참았습니다. 환란과 고통속에서도 여기에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게지 하면서 오래 참았습니다.

4)악한 것을 용납하지 않고 거짓선지자를 분별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굳게 붙들고 있는 교회입니다. 자기들이 생각과 기준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악한자를 선별합니다. 거짓사도들을 분별합니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다시말해 말씀에 대해 능통한 자들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성경을 가르치던 아볼로를 오히려 가르칠정도로 박식했습니다. 성경에 대해 전문가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을 분별할수 있는 말씀의 지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렇게 되길 소원합니다.

5)니골라 당을 미워했습니다.
여기서 니골라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곱집사의 한사람인 니골라를 의미한다도 하지만 분명한 근거가 없습니다. 단지 니골라당은 율법을 무시하고 폐기하는 자들의 가르침을 두고하는 말입니다. 예수안에서 모든 율법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율법은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이제 예수 안에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받았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자를 미워한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믿는자의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음란하게 살아온자는 그 음란한 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수고하지 않고 남의 노력으로 살아온 사람은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의 값비싼 구원의 은혜를 값싼 구원으로 전락시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 에베소교회를 향한 책망
이 정도하면 거의 완벽한 교회입니다. 정말대단한 교회입니다. 칭찬받아 마땅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주님께서 에베소교회에게 심각하게 책망하시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4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복음에 대한 감격과 감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래된 교회와 성도의 특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든 것이 기계적입니다. 교회에서도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왜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손님대접도 잘합니다. 왜요 부모님으로부터 그렇게 하는 것을 늘 보아왔기 때분입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많이알고 있습니다. 설교를 하면 먼저 결론부터 내리고있습니다. 이들은 대단히 윤리적인 삶을 살고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복음의 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도 이제는 무미건조합니다. 정말 말씀을 들으면서 울면서 감사해본적이 오래입니다. 문제는 에베소교회에 새로이 눈물흘리며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었습니다. 바울 당시 왕성했던 복음전도의 모습이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이 없습니다. 새생명의 역사가 끊어진 교회입니다. 새롭게 예수를 믿는 자들이 생기지 않는 교회는 첫사랑을 버린 교회입니다.

이것은 성도에게 도 마찬가지입니다. . 처음 사랑을 잃은 성도의 특징은 복음의 감격이 사라진것입니다. 다시말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그를 통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신는 책망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나는 복음의 감격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나는 나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낳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합니다. 과거에 화려햇던 명성이 무엇이 필요합니까? 이미 폐허가 되어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바뀌어버린 사람들이 살지못하는 생명이 없는 땅이 무엇이 의미가있습니까?

주님의 진단과 해결책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어디서 떨어진것인지 생각하십시오, 회개하고 처음행위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을 통해 생명의 감격을 다시 되찾기 바랍니다.

6. 귀있는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누가 귀있는 자들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자입니다. 오늘 그냥돌아가시지 말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게 깨닫게하거나 찔렸던 말씀이 있다면 성령이 내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성령이 주시는 말씀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을 주기 위합입니다. 새로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하리라\\\"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기쁨을 맛보게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감격 새생명의 탄생을 통해서 이런 영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