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사랑이 있는 교회

처음 사랑이 있는 교회
계2:17


흔히 교회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The Visible Church)\\\"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The Invisible Church)\\\"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우리 신시내티 한인 장로교회처럼 현실 속에 있는 교회를 말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란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많은 교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바라보고 나아갈 때 바른 교회의 모습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의 모습이 과연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 속에 존재했던 교회의 모습에 대해 주님께서 평가하신 내용이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으리라 볼 수 있겠습니다.

요한 계시록 2장과 3장에는 그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대표적인 일곱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와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우리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그 당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한 평가의 말씀을 해주심으로 보이는 교회가 보이지 않는 교회에 어떻게 충실할 수 있는 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모습을 염두에 두면서 오늘날 우리 신시내티 한인 장로교회가 부활의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바르게 간직하고 나아가는지를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봅니다. 우리가 한 크리스천으로서 교회를 바르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뿐 아니라, 장차 우리 교회를 통해서 신앙 생활을 하게 될 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바른 교회의 모습을 늘 지향하는 것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이 일곱 교회에 주시는 예언의 말씀은 같은 pattern으로 되어 있습니다.

1. 각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 우리는 여기서 각 교회를 통해서 드러나기를 원하는 주님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나 단점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 우리는 여기서 각 교회의 현실적인 상태와 모습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그 교회가 극복해야 할 문제에 대한 방법을 말씀 - 우리는 여기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치유책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말씀을 따르거나 따르지 않을 때의 결과도 말씀 - 이는 대개 약속이나 아니면 심판의 모습으로 주어지는데 우리는 여기서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pattern 하에서 계 2-3장의 아시아의 7 교회의 모습을 살피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지닐 수 있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되겠다고 봅니다.

오늘은 에베소 교회를 보면서 우리 교회가 보이지 않는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의 모습에 충실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원하심은 \\\"처음 사람을 회복하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몇 가지 칭찬의 말씀을 하지만 귀중한 한가지 책망을 하십니다: 4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람을 버렸느니라.\\\"

이것은 에베소 교회가 가진 많은 장점들 -
* 행위와 수고에 있어서 오래 참음의 모습과 더불어 힘쓴 사실,
*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
*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해 보아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은 것,
*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 과 같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실수요 먼저 해야할 바를 행치 않은 모습이라고 책망합니다.

그렇다면 이 \\\"처음 사랑\\\"이란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개인의 경우 : 우리의 처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일 것입니다. 부부가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을 때, 그래서 그 자녀에게 잔뜩 기대를 하게되고, 그 자녀 키우는 맛에 모든 어려움도 잘 참고 나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면서 자신의 삶을 잘 감당해 나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복된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10계명 중 사람에게 주시는 계명의 첫 번째가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라는 사실에서도 우리는 이를 잘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에게는 형통하며 잘되며 오래 사는 복을 주신다 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한 개인으로서의 처음 시작이 부모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경우 : 처음은 무엇입니까? 부부간의 사랑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셨을 때의 감격도 될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 서로 처음 맺어질 때의 감격과 자녀의 태어남의 감격을 늘 지니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국가의 경우 : 지도자의 다짐이나 국민을 향한 헌신이 처음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히 우리 한국의 경우 역대 지도자들이 처음에 가졌던 정신과 약속을 스스로 위반하여 우리 한국의 현대사에 어려움을 가져다주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요즈음 한국 상황은 대통령 아들의 문제로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혼란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한국 주재의 외국 신문 기자가 한국의 혼란한 상태를 표현하면서 \\\"이러한 혼란은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시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결과\\\"라고 분석하여 발표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처음의 모습을 상실했다\\\"라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개인이건 가정이건 교회건 나아가서는 국가까지도 처음의 모습을 간직할 때 든든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의 처음 모습에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처음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바로 \\\"감격\\\"입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때에는 반드시 감격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이 감격적인 모습이 바로 처음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감격에는 무언가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힘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진행되면서 감격이 사라지게 되면 점점 습관적이 되고, 피상적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을 마지못해서 하게 되고, 의무감으로 하게됨으로 짜증나기 쉽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늘 기쁘고 감격적인 마음으로 하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이러한 마음이 식어지면 신앙 생활은 습관적이 되고, 때로는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게 됩니다.

아마 에베소 교회도 이러한 모습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비단 에베소 교회뿐만 이겠습니까? 많은 교회가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신앙의 처음 감격을 상실하고 습관적이나 의무감으로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가 싶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만일 우리들도 그리하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김동길 교수가 쓴 책에서 이런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완행 열차 안에 다섯, 여섯 살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어른도 없이 혼자서 앉아 있었답니다. 이 아이는 같이 가는 어른들도 없는지 낯선 사람들 틈에 끼여 있었으나 조금도 근심스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차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앉아서 신문을 보기도 하고, 옆 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신문지로 얼굴을 덮고 자기도 하고, 때때로 왔다갔다하면서 음식 파는 장사꾼에게 먹을 것을 사서 먹기도 하면서 이 지루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이런 광경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호기심 섞인 얼굴로 쳐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창 밖의 풍경을 보면서 가는데, 어른이 없는데도 조금도 불안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기차가 정거장에 설 때마다 꼭 밖에 나갔다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해서,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얘야, 너 혼자니?\\\" \\\"네.\\\" \\\"무섭지 않아?\\\"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런데 너는 정거장에 설 때마다 밖에 나갔다 오는데 왜 그러니?\\\" 이 어린이는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아빠한테 갔다 오는 거예요.\\\" \\\"너희 아빠가 어디 계신데?\\\" \\\"네, 우리 아빠가 이 기차의 기관사예요.\\\"

이 어린아이가 지루한 여행길에서도 지루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여행할 수 있는 비결은 그 기차를 몰고 가는 기관사가 자기 아버지란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감격을 상실하지 않고 신앙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비결을 배울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의 열차를 끌고 가시는 기관사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알고, 기차가 설 때마다 잠시 아버지를 만나고 오는 이 아이처럼 될 때라고 봅니다. 우리 인생 길의 기차는 이렇게 주일마다 정거장에서 쉽니다. 이 \\\"주일\\\"이라는 정거장에 쉴 때에 우리는 우리 인생 길의 기관사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다면, 우리는 감격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다. 에베소 교회가 예배를 안 드렸겠습니까? 주일마다 모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왜 감격이 사라졌을까요? 하나님이 인생 열차를 이끌고 가는 기관사이신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종교적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엿새동안의 삶의 주인과 주일날의 주인과를 분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하나님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모습에 쉽게 싫증을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실에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인생의 기관차를 끌고 가시는 분이 내 아버지이심을 알고 또 믿는 모습이 있을 때에 라야 감격을 상실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꼭 간직해야 할 우리들의 모습은 나의 삶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내 직업에서, 내 학문에서, 내 가정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그 분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에 순종하고 믿고 맡기는 모습을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인생 열차가 정거장에서 잠시 쉴 때, 즉 주일에 바깥으로 나아와 기관사 되신 아버지를 뵐 때에 감격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반대로, 엿새동안 내 맘대로 내 기분대로 내 멋대로 지내다가 후회하는 기분과 허탈한 감정으로 주일날 나와 예배드린다면 여기에 감격이 주어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밤에 잠을 잘 자려면 깨어있는 낮에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낮에 별로 활동을 안 하면 밤에 잠을 잘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엿새동안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의를 행하다가, 주일에는 나와 예배드림으로 하나님을 뵐 때에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구역예배를 통해서 공부하셨겠지만, 하나님의 나라라는 보물을 어디서 찾았습니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던 중에 찾은 것 아닙니까? 교회에서 찾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다고 가르쳐 주는 곳이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비로소 주일에 드리는 예배가 감격의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처음 사랑을 유지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이렇게 감격을 유지함으로 처음 사랑을 지니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렇게 이기는 모습을 늘 지닐 수 있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엿새동안의 생활 속에서 보이지 않게 우리의 인생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함으로 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기쁨을 간직하십시오. 이 모습이 잘 이루어질 때에 우리의 삶과 예배는 늘 감격적인 모습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 -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승리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아시고 모두 이기는 자의 상급을 받을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