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장이 잘 된 교회 계2:1-7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다양한 교회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옛날에도 교파나 교리에 따라서 강조점이 달라 신앙의 모습들이 차이가 났으나, 지금의 교회의 모습은 교파나 교리에 상관없이 각 교회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방언을, 어떤 교회는 제자훈련을, 어떤 교회는 열린 예배로, 어떤 교회는 상담이나 내적치유를 중요시하여 교회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런 다양한 교회의 모습 가운데서 어떤 교회가 바른 교회의 모습이냐? 하는 데에 대한 혼란이 일어납니다. 교회의 처음 모형은 노아가 산 위에 지은\\\" 방주\\\"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처음 교회의 모습이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바로 눈에 보이는 대로 \\\'배\\\'로 생각했기에 그들은 교회에 오지 않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식구 여덟 사람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구원이 판가름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참 생명을 줄 수 있는 구원의 방주와 같은 교회가 되라고 우리 샘솟는 교회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여섯 교회를 보았습니다. 여섯 교회의 주님의 칭찬과 책망을 보면서 과연 샘솟는 교회는 주님과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주었고, 교회의 사명을 다했는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럼 오늘 본문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교회의 모습을 보시겠습니다. 본문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입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많은 장점을 소유한, 아주 안정된 교회로 완벽에 가까운 교회였습니다. 건전한 교리와 신앙의 열심을 간직한 흠이 없는 완벽한 교회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랑을 잃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교회를 겉포장이 잘된 교회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라고 하면 우리 귀에 가장 익은 교회일 것입니다. 신혼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교회입니다. 결혼을 하면 \\\'에베소서\\\'라고 아이를 가지라고 하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베소는 항구도시로서 당시에는 육상 교통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은 시대에는 대부분의 화물이 해로로 운송되었습니다. 그 무역길인 해상도로가 에베소에는 세 군데나 있고, 또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로마로 통하는 육상의 길이 세 개가 에베소에 집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는 항구를 끼고 있고,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인 동시에 정치적으로 비중이 있어, 도시가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된 곳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칠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데미신전, 혹은 다이아나신전이 있는 가장 세속적이고, 온갖 종교와 마술이 성행하던 도시로서 미신이 판을 치고, 부적 장사가 한 몫을 잡는 도시였습니다. 다시 말해 에베소는 정말 \\\"복음\\\"이 필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행전에 보면 에베소 교회는 일찍부터 말씀의 역사가 있어, 복음으로 인해 미신에 빠져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돌아와서 마술 책을 불사르니까 은 오만이나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뛰어난 주님의 종들에 의해서 가르침이 많았던 곳으로서, 바울도 여기서 고린도에서 건너온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와 함께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들 중에서 가장 정통적이고,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뿌리가 깊은 교회여서 그런지 역시 주님으로부터 칭찬들을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전통이 있고, 대단히 분별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만큼 역사가 깊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저런 유명한 분들이 교사로 있으면서 말씀을 가르쳤고, 옛날에는 이런 놀라운 일도 해 낸 적이 있다\\\'고, 복음보다는 자신들의 전통을 더 의지하는 경향이 있기에 주님이 일곱 별을 붙드시고,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이런 것이 에베소 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여러 가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이나 복음의 능력보다는 자기들의 자랑을 더 앞세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교회에 교회의 주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그들이 참된 겸손과 복음의 능력을 되찾지 않는다면 결국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이\\\"가 지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여기 행위는 한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과정과 행동 하나,하나를 다 아신다는 것으로, 우리의 양심까지도 아시니 그 어떤 비밀도 그 분께는 남아 있지 않고, 숨길 수가 없습니다. 즉,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한 약한 자를 용납치 아니한 것도 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폭로 한 것을 알고 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고 주님이 말씀합니다. 주님은 에베소교회가 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으며, 얼마나 열심을 품고 섬겼는지도 알고 계십니다. 교회는 연인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기꺼이 땀흘리는 봉사자들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지치도록 수고한 자들이 안식을 얻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까?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은, 지역 교회를 통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바람을 쐬기 위해서 여기에 올라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여기에 나온 것은 주님을 위해 땀흘리기 위함입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사역에 전적으로 투신했습니다. 주님은 그 백성의 투쟁과 업적, 헌신적인 삶, 곧 수고와 인내를 모두 알고 계시면서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샘솟는 교회에 속해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바로 여러분 자신이 이 교회를 통해서 주께 헌신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은, 그 교회를 위해 땀을 흘리는 사람은 주님이 주는 위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이 땀흘려 수고하고, 어려움 가운데서 참고,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견디어 낸 여러분을 칭찬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크게 칭찬 받은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에게 거짓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대접을 받으려 거짓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전화 한 통하면 거짓 목사들의 신분이 확인되지만, 옛날에는 이런 일이 쉽지 않았고, 목사를 의심한다는 것은 말도 안됐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어떠한 가르침을 받을 때, 그 가르침이 진정한 주님의 가르침인지, 그리고 가르치는 자는 그 가르침에 입각한 신실한 자인지를 끝까지 확인하여, 섣불리 트집을 잡고 기분에 따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신중하게 그 가르침이 거짓된 것이라는 사실을 본인이 시인하도록 하여 교회에서 쫓아냈습니다. 이런 점을 본다면 에베소 교회의 특징은 오래 믿은 신실한 형제가 많았고, 대단한 분별력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나름대로 신앙 생활 하나만큼은 옛날부터 배워 온 대로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모범적이요, 신실한 교회요, 교인이었지만, 실상 그 안을 들추어보면 과연 여기를 교회라고 불러야 할지, 부르지 말고 무슨 집단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정도의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존립자체가 흔들릴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4절) 그것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처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을 처음 믿을 때 가지는 복음에 대한 감격과 감사를 말합니다. 이들은 오래 믿다 보니 모두가 기계적입니다. 왜 교회 일에 열심을 냅니까? 하고 물어보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어렸을 때부터 배웠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생활보다 교회생활에 익숙합니까? 하고 물으면, 늘 교회에서 생활해 왔기 때문에 세상적보다 교회생활이 좋습니다. 왜 손님을 대접하는데 열심을 냅니까? 부모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늘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왜 인내합니까? 늘 이렇게 생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윤리적이요, 도덕적입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늘 윤리적인 설교를 듣습니다. 대단히 필요하고, 또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설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의 능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자신들은 다 그리스도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은 이들은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교회 생활을 착실하게 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복음은 끝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들은 이미 의인이 되었고, 이제는 다시 십자가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여 그들은 의롭게만 살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설교를 들으면서 눈물 흘리거나, 하나님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한 지가 너무나도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교회생활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은 엄숙하게 지키고, 모두 십일조를 해야하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헌금을 다 합니다. 목회자를 잘 받들고, 또한 목회자 자신도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고 분별력 있게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는 복음이 빠지고, 구원의 감격이 빠짐으로 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가 없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들은 신종 바리새인들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는 빠르고 정확했으나, 자신들을 돌아보고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안에 뜨거움이 없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기도가 없고, 찬양이 없고, 눈물 없이 오직 자기 힘으로 모범적인 종교 생활에 만족하고 삽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복음의 감격이 없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렇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5절) 주님은 어디서 어떻게 떨어졌는지 찾아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이 교회가 언제부터 복음의 감격을 잃어버렸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어떤 계기가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디서 떨어뜨렸는가를 생각합시다. 처음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감격이 있고, 눈물이 있고, 뜨거운 성령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교만이 스며들었고, 언제부터인가 자기 만족이 들어와서 더 이상 초신자의 아름다운모습을 잃어버리고, 이미 모든 것이 다 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누구를 돕고, 무엇을 하기 이전에 서로 모여서 솔직하게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신 것은 이런 의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닌,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살아있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신앙 생활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예배의 감격이 없고, 의례적인 종교생활만 남아있는 그 이유와 언제부터인가를 찾아내어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체면과 염치를 불구하고 내가 경험하고 있는 신앙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함께 찾아내어 신앙을 점검합시다. 만일 그것이 싫어서 계속 체면만 지키고 있으면 우리 교회는 생명의 불길이 꺼지게 됩니다. 교회의 존폐여부가 달렸습니다. 우리 샘솟는 교회가 일어서느냐, 주저앉아 문을 닫느냐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오늘 이 교회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후 온 교회가 모여서 서로 진실하게 이야기 할 때, 교회의 능력이 샘솟음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