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머나 교회 계2:8-11 1. 서머나 교회의 상황 서머나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칭찬과 격려만을 받았던 교회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만 있는 서머나 교회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서머나는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이다. 터키의 3대 도시중의 하나로 현재 3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사도요한 당시 서머나의 인구는 약 15만에서 2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서머나는 로마제국의 큰 항구 도시였습니다.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로마황제숭배가 처음으로 시작된 도시가 바로 서머나입니다. 기원전 195년 신격화된 황제를 위해 신전이 최초로 건축됩니다. 1세기 후 로마 군인들이 폰토스의 미트라다테스4세와의 전투에서 참패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서머나 공회는 서머나인들의 옷을 벗기어 사기가 떨어져 있던 로마인들을 도와줍니다. \\\"서머나인들은 우리이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오랜 원조자\\\"라고 키케로가 격찬할 정도로 서머나인들은 로마에 충성을 다합니다. 이들은 로마 황제의 제례를 위한 신전을 세웠고 그 충성심을 인정받아 기원전 23년에 티베리우스 황제를 위한 신전을 건설하고 로마황제로부터 자치 도시이며 자유의 도시로 승격을 받게 됩니다. 그후 이곳은 순회재판이 열리는 등 로마의 중요한 정치적 도시가 되면서 서머나인들은 가난을 면할수 있게 됩니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이 로마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계절에 상관없이 로마의 부자와 귀족들은 이곳에 몰려듭니다. 서머나는 천연의 아름다운 휴향지로 그 명성을 구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는 파고스의 언덕에서는 연일 자극적인 경기와 연극이 공연되었고, 모든 목욕탕과 술집 그리고 여관들은 휴일이 없이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로부터 많은 돈을 뜯어내기 위해 보다 자극적인 장사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 사람들의 주된 고민거리였습니다. 서머나를 정복한 로마인들는 알렉산더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신들이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시내 곳곳에 수 많은 제단이 만들어지고 제우스와 디오니소스 케베레 게다가 로마 황제들까지 어울려 서머나는 신들의 공원을 이루게 됨으로 결국 서머나는 종교의 집합처요 황제숭배의 중심지가 되고 맙니다. 이런 종교의 집합체와 황제숭배가 중심이 되고 있는 상황속에서 심한 박해를 받았고, 또 그들을 지독히 괴롭히는 유대인들의 회가 있어서 심한 방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법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게 되어 재산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풍요속에서도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서머나 교회를 위해 성령은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들어봅시다. 2. 서머나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 8절말씀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사도요한은 일곱교회에게 편지하면서 각기 다른 상황속에서 신앙생활할고 있는 성도들에게 멘 먼저한 일은 그들이 당한 현실에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고 있습니다. 일곱교회의 상황과 형편이 다르듯이 오늘 이시대 교회들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성도들 각자의 삶의 형편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주님은 한분이지만 각자 교회와 성도들에게 가장 적적한 모습으로 다양하게 제시되어 지고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 무엇을 교훈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섬기는 주인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어떤형편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되 우리의 형편에 맞게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상황 그 형편에 가장 적적한 모습으로 우리를 돕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바라보는것입니다. 수시로 변하는 상황속에서 다양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을 우리는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제시되는 예수님의 모습은 다른사람에게는 대수럽지 않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서머나 교인들에게는 아주절박하고 꼭 필요한 모습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런 모습은 서머나 교회는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도 남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될것입니다. 1)처음이요 나중이신 주님 주님은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하고있습니다. 극심한 환란 가운데 있고 또 그 환란을 통해 몇몇 순교자를 배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서머나교회를 분명히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주님의 이런 모습속에는 다른 사람이 알수 없는 약속의 비밀이 있습니다. \\\'처음과 나중\\\'이란 말은 애굽의 바로의 압제 아래 노예로서 고통당하고 있을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치 자기가 신인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바로에게 대해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신 스스로 계신하나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처음과 나중이신 스스로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바로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인도하시던 하나님이 생각났을것입니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지금 자신을 괴롭히고 박해하고 방해하는 수 많은 세력들 가운데서 신음하고있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물리치게 되고 자신들은 반드시 구원받게 될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현재 상황이 이들처럼 고통과 환란과 역경속에 있습니까? 괴로운과 아픔과 눈물이 있는 상황입니까? 처음이요 나중되신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셨듯이 여러분을 그강한 손으로 구원해 주실것입니다. 2)죽었다가 부활하신 주님 두 번째로 주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의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죽음은 고통입니다. 슬픔입니다. 절망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기쁨입니다. 영광입니다. 승리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죽음의 벽앞에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이젠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하신 주님이 바로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을 넘어서면 영광의 부활이 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사신 주님의 모습은 육신적인 죽음앞에 두려워떨지 않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수있게 됩니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자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갑은 이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명상록의 저자이며 스토아 철학의 마지막 대변자였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0-180)는 처음에는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경향을 나타내 보였으나 아첨자들의 영향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잔인하게 박해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채찍에 온 몸이 찢기우고, 속살이 드러나고 창자가 밖으로 터져 나올때까지 맞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바닷조개 껍질이나 땅 위에 박아놓은 창 끝에 눕혀져 온간 고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사나운 짐승의 밥으로 던져졌습니다. 박해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자 끔찍한 고문과 죽음의 공포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는 자들이 있긴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고문과 박해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지도자 폴리갑은 붙잡혀 총독앞에 끌려갑니다. 그때가 요한의 편지를 받은 후 40년이되던 155년이었습니다. 이들은 고소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이렇게 고소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아비요, 교사입니다. 회중들에게 희생 제사나 에배에 불참하도록 가르쳐서 우리의 신들을 훼방하는 자입니다\\\" 총독은 재판자리에 앉아서 폴리갑을 향해서 회유의 말을 던집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그를 모른다고 하라, 그리하면 맹세코 내가 너를 놓아주리라\\\" 이말에 폴리갑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86년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한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 왕 그리스도를 모독할수 있겠습니까?\\\" 총독은 화가나가 \\\"그럼 내가 너를 화형에 처하겠다고 소리칩니다.\\\" 그때 폴리갑은 \\\"당신은 잠시 타오르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형벌을 알지못하고 있기 때문이요\\\"라는 말을 남기고 화형대에 올랐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합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지옥형벌을 두려워해야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자는 죽음앞에 떨지 않습니다. 3. 서머나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9절) 중요한 것은 주님의 평가가 어떠한가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아닙니다. 신앙은 주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두가지 어려움은 가난과 훼방이었습니다. 1)부요한자 주님은 서버나 교회를 보면서 너는 가난하고 지금이 삶은 힘들고 고통이 있지만 너는 참으로 부요한자다. 물질이 부요보다도 믿음에 부요한자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귀중하게 보십니다. 분명히 아십시오, 사람이 사는 즐거움은 풍부한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부요함에서 나옵니다. 서머나 교회는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그들의 실상은 가난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부요한자엿습니다. 물질의 기업과는 비교되 않되는 더 나은 기업이 있습니다. 영원히 잃어버지 않는 영원한 기업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부요함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일하십니까? 물질의 부요를 위해 일하십니까? 아니변 믿음의 부요를 위해 일하십니까? 잠깐있다가 없어지는 세상을 물질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보장되는 하늘나라의 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서머나 교인들은 신앙 때문에 재산도 잃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재산을 포기했습니다. 여러분 이런각오로 신앙생활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위해 돈을 포기해야합니다. 하나님 말씀배우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손해 볼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지키기 위해 좋은 직장도 포기할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부요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 본젓있습니다. 잘하신일입니다. 예수 때문에 포기하신적 있으십니까? 더잘하신일입니다. 예수 때문에 조롱당한적있으십니까? 우리주님의 여러분을 기뻐하시고 인정해주실것입니다. 2) 유대인의 훼방을 알고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또 다른 어려움은 자칭 유대인이라는자들의 모임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유대인이라고 부르면서 교회를 교회를 공격하고 곤경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혈통적으로 종교적으로 말하면 유대인이 맞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여호와께속한 자들이 아닌 사단의 회에 속한 자들입니다. 신분과 배경보다 더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신분과 배경이 하나님께 속하게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신앙은 아닙니다. 열심히 하는 것 보다 바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전혀 하나님백성답게 처신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기독교인들을 향해 비방하고 고소합니다. 사도행전에도 보면 유대인들이 \\\"세상을 뒤집어 엎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합니다. 사단의 주특기는 참소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절대로 남을 비난하는 일에 가담하지 마십시오, 사단은 속한자들의 모습입니다. 사단은 밤낮없이 성도를 비난하고 성도를 헐뜯고 성도를에게 무엇인가 악평하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성도를 비난하고 교회를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사단의 도구로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비방하는 자들 참소하는 자들에게 대해 주님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도구가 되지 마십시오, 4. 주님의 격려와 약속 10절말씀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오늘 주님은 네가 당하는 고난을 면제해주겠다. 너를 괴롭히는 자칭유대인이라고하는 무리를 제거시켜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시험과 환란이 있을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계속 지속되는데 더 심해질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서머나 교회에게 주시는 격려의 말씀은 무서운 소식입니다. 반가운 소리가 아닙니다. 앞으로 계속 고난이 될것이고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신실한 형제중 몇 명은 옥에 던져지고 시험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시험은 단순히 감옥에서 고생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순교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점은 언제나 현실적입니다. 이세상적입니다. 이세상에서 편하고 잘되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점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세상의 삶이 더 고달파지고 힘들어져도 지금이 삶의 규모보다 훨씬 좋지 못해도 두려워말아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두려워말하고 합니까? 더 심해져도 그것은 끝이 있습니다. 10일동안 이란 말이 한정적이란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삶과 형편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지 주님이 보시는 것은 환경과 현실보지 말고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일에 소홀해지지 마십시오, 삶이 궁핍해지고 문제가 어려워진다고 해서 주님께 대한 충성을 접어두지 마십시오,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주님은 죽도록 충성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교회가 필요로하는 자는 충성하는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세우시고 주님이 주인되는교회, 말씀의 훈련과순종하는 교회, 제자삼는 사역에 헌신하는 교회되길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일에 충성하시는 여러분되실길 바랍니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키워내는 일에 충성하는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환경과 현실 때문에 충성하지 못해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되지 않길 원합니다. 오늘 성령이 우리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입니다. 이 음성을 들을 수 있길 원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람은 한번죽은 것이 아니라 두 번죽습니다. 한번은 육신의 생명이 죽는것이요, 다른 한번은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는 것입니다. 충성하는 자에게 영원이 보장되어있고 영원한 상급이 준비되어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