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머나 교회 계2:8-10 어떤 목사님이 진도견 새끼 한 마리를 선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그 이름을 진순이라고 지어서 불렀습니다. 하얀 강아지 진순이는 두 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잘 자랐습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는 더이상 키울수가 없었기 때문에 목사님은 그 강아지를 어느 집사님 집으로 보냈고 얼마후에는 다시 권사님의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렇게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며 자라는 진순이는 이제는 키가 커서 무섭고 여엿한 진도견이 되었습니다. 1년에 한두번씩 가족들이 권사님의 집을 방문하면서 진순아 하고 부르면 목소리만 듣고서도 반갑다고 난리였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도 무섭다는 진도견이었지만 목사님 식구들에게는 여전히 어리광부리는 강아지였던 것입니다. 진순이가 다른 집으로 간 후 목사님은 요크셔 한마리를 얻어 왔는데 그 이름은 미나 였습니다. 큰 아들은 온갖 정성을 기울여 그 강아지를 키웠는데 목욕도 시키고 추운 겨울에는 이불속에 숨겨 재우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에게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큰 아들은 미나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아부어서 강아지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러던 큰 아들이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큰 아들은 미나와 떨어지는 것을 몹시 서운해 했습니다. 가끔 전화를 할 때면 미나의 안부를 묻고 동생에게 미나 목욕 잘 시켜 주라고 단단히 당부도 했습니다. 그러던 큰 아들이 11개월만에 휴가를 나왔습니다. 큰 아들은 제일 먼저 미나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미나를 찾았지만 미나는 사납게 짖어 댔습니다. 그래도 반가워서 손을 내밀자 이번에는 손을 덜컥 물려도 달려 들었습니다. 큰 아들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목사님은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미나는 애완견이어서 사랑만 받을줄 알지 충성심이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도견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전에 자기를 기르던 주인이 1년에 한두번 찾아올 때에도 잊지 않고 반갑다고 강아지처럼 어리광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자를 절대로 요크셔처럼 자기 주인도 몰라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가 아니라 진도견같이 주인을 알고 주인에게 헌신적이고 충성스러운 성도로 목양해야 하겠다 라는 새로운 다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신자입니까? 스스로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주 우리는 정의와 진리를 앞세우다가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교회를 생각하면서 그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찾으라고 책망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정의는 살아 있었지만 그대신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베소교회의 약점입니다. 그런데 서머나교회는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린 그 사랑을 다시 찾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랑도 있고 진리도 있는 좋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사랑과 정의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이 두가지가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우리의 신앙이 바로서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서해상에서는 북한군과 우리 군과의 교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부의 햇볕정책에 따라서 북한에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영토를 굳게 지켜나가는 것은 진리요 정의입니다. 만일 우리가 햇볕정책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생각해서 서해상에서 저들이 우리의 영해를 침범하고 들어오는 데에도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앉아 있다면 이것은 사랑때문에 진리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생명이 없는 허수아비와 같고 정의가 없는 사랑은 뼈대가 없는 집과 같습니다. 두가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스스로 자기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서머나교회는 순교하는 교회였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내 목숨은 내어 주어도 신앙은 내어줄 수 없다는 정신이 바로 순교의 정신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내 생명을 다 바쳐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진리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과 진리가 공존하는 교회가 바로 좋은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교회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서머나교회가 어떻게 충성햇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서머나 도시 서머나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40마일 지점에 있는 항구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고 그래서 「아시아의 왕관」이요 「이오니아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예로부터 로마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도시였습니다. 즉 로마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로마황제에 대한 충성은 황제는 신이 될 수 없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곧바로 환란과 핍박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그 도시에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해 들어옴으로서 서머나교회는 더욱 박해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머나교회는 「순교하는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주님의 제자 폴리갑은 이 곳에서 열두번째의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요 당시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자신을 잡으러 온 군인들을 위하여 자녁식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들이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에 그는 그 옆에 서서 자신과 교홰ㅣ의 성도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묶여서 서머나의 노천극장으로 끌려 갔습니다. 극장 안에는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고 한쪽에서는 굶주린 사자들이 으르렁거리고 있었습니다. 형 집행관인 서머나의 총독이 폴리갑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리스도를 욕하고 모른다고 하라. 그러면 내게 맹세코 너를 살려주리라 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폴리갑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내가 86년동안이나 예수를 섬겼으나 그 분은 단 한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나의 주님을 어찌 감히 모른다고 하고 욕하라고 하느냐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사랑하는 주님, 저를 순교자의 하나로 택하사 부활과 영생의 잔을 주시오니 그 은혜를 감사드리오며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 영원토록 영광과 존귀를 드리옵나이다 라고 기도하고는 천사처럼 불에 타서 순교했습니다. 이와같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바로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신앙 본받아 충성을 다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충성이라는 말의 의미 히브리어로 충성은 ‘확고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주인을 향한 생각이 변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헬라어로 충성은 ‘꾸준하다’라는 뜻입니다. 꾸준히 자기가 맡은 일을 감당한다는 말입니다. 국어사전에서 충성은 ‘참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이라고 하였고 ‘나라나 임금에게 바치는 곧고 지극한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문에서 보면 충성은 ‘마음 중심으로부터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을 의마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머나교회는 입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자기의 목숨을 바치는 충성으로 보여 드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서머나교회에서 순교자가 많이 나온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충성은 사랑과 정의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종합예술이며 최고의 열매입니다. 영국 런던의 워커 미술관에는 콘트러라는 화가가 그린 유명한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그 그림은 폼페이라는 도시가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인해 그 화산재에 묻혀 전멸당하는 비참한 모습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화산재와 용암이 비와 눈처럼 폼페이 성에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화산재와 불을 피해 성 밖으로 몰려 나갔습니다. 이들로 인해 대환란이 야기되었습니다. 이 혼란 속에서도 성문 곁에서 묵묵히 서 있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그 성의 문지기였습니다. 뜨거운 화산재와 불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그 혼란속에서도 자신의 맡은 일에 충성하고자 그는 서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바로 \\\'충성\\\'이었습니다. 충성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죽음을 이기는 사명감을 가지고 섬기는 것이 바로 충성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 되시기 바랍니다. 3. 그들은 어떻게 충성하였습니까? 서머나교회는 이처럼 충성을 다하는 교회였지만 그 생활은 대단히 궁핍했습니다. 로마에 유달리 충성스러운 도시에 교회가 세워지니 로마황제에 대하여 충성하는 사람들 때문에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웠을 뿐만아니라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생활도 몹시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면류관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이처럼 가난하고 어려운 중에서 핍박받는 교회였는데 특히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사탄의 무리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마귀의 종이 되어 있는 것이 바로 유대인들인 것입니다. 저는 이번 세미나 중에 워싱톤에 있는 유대인의 기념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그들이 나치의 학살로 고통받은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곳에서는 나치가 유대인들을 벌거벗겨서 거대한 목욕탕에 들여보내고 가스로 질식사 시키는 과정을 그대로 조각해 놓았고 그 벌거벗은 시체들을 끌어다가 불도져로 밀어서 구덩이에 쳐 넣고 파묻는 모습이 담긴 영상기록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었습니다. 저는 그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왜 나치에 대해서 그렇게 이를 가는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고통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 피의 댓가를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이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가는 곳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그 죄에 댓가를 그들이 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그들이 주님의 뜻에 어긋났으면 주님이 그들을 사탄의 무리들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 틈에서 신앙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순교로써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첫째로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 이렇게 믿음을 지키는 서머나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8)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과 함께 내가 다시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순교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그들이 열흘동안 환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받는 고통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받는 어려움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끝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들은 환란중에서 충성을 다짐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받는 고통이 마귀가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을 버리는 것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지는 것입니다. 신자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믿음을 바로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 승리한 것입니다. 넷째로 그들은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주님이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하루하루를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서머나교회는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목숨을 바쳐 주님을 섬긴 충성스런 교회였던 것입니다. 어느날 젊은 재상이 왕에게 나아와서 어떻게 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맡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왕은 기름이 가득한 잔을 주면서 한 시간안에 지시하는 거리를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왕은 기름을 쏟거나 시간이 늦으면 엄벌에 처한다고 말하면서 칼을 든 군인이 그 뒤를 따르게 했습니다. 젊은 재상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기름을 쏟지 않고 제 시간안에 도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재상이 도착했을 때 왕은 만족한 듯 웃으면서 재상을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기름을 들고 갈 때에 모퉁이 구두가게를 보았는가? 못보았습니다 그럼 쌀가게는 보았는가? 못보았습니다 그럼 가구점은 보았는가? 죄송합니다. 기름을 쏟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처럼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주인을 위하여 다른 것은 모두 포기하는 것입니다. 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충성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주님을 위하여 목숨도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처럼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충성을 다하는 신자되어야 하겠습니다. 4. 충성하는 자에게 주님은 이처럼 충성하는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에게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어떠한 고난속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주님은 그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하늘에서 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상을 받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상을 놓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의 열두 제자는 똑같이 제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열한 제자는 하늘의 열두 진주문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가룟유다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일곱 일꾼은 똑같이 일꾼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스데반은 순교하는 자가 되어 주님이 일어서서 맞이하여 주셨지만 니골라는 이단으로 빠져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주님앞에 가서 받을 상이 있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둘째 사망은 지옥의 형벌을 의미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지옥의 형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가끔 천국과 지에 대해서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면 그것이 천국이고 세상에서 고통스럽고 괴로운 삶을 살면 그것이 지옥이지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죽을 때 후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반드시 죽는데 죽은 후에 갈 곳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천국을 이루어야 하지만 저 영원한 천국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농부가 암소와 당나귀를 함께 쟁기에 매어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는 당나귀에게 \\\"오늘 내가 병난체하고 누워 있을거야. 그러면 오늘 일하러 안나가도 되겠지 !\\\"하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하렴. 그렇지만 난 일하러 가겠어\\\" 하고 당나귀는 대답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은 암소의 몸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맛있는 짚을 먹게하고 마굿간에서 편히 쉬도록 했습니다. 그날 밤 당나귀가 돌아오자 암소는 당나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주인이 뭐라고 하든? 아무말 없었어 좋아. 내일도 연극을 해야겠는 걸 다음날 저녁에 암소는 당나귀에게 또 물어 보았습니다. 주인이 나에 대해서는 아무말 없었니? 응, 나에게는 아무 말 없었어, 그런데 말이야 주인 아저씨가 푸줏간 백정 아저씨하고 한참 동안 얘기하는 것을 보았어. 이 주인은 무엇때문에 푸줏간의 백정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었을까요? 병든 소를 팔아버리기 위한 것입니다. 일하지 않는 소는 더이상 주인에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서머나교회를 중심으로 우리 교회의 나아갈 길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두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사랑과 진리를 두루 갖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가 건전하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진리로 무장한 교회는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며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옳은 일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순교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목숨을 바치는 것이고 세상에 대해서는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통하여 진리를 파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한쪽으로는 얼어붙은 북한 땅을 녹이기 위해서 햇볕을 비추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땅을 침범하는 일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사랑과 진리가 하나가 될 때 온전한 교회, 온전한 신자, 온전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서머나교회 성도들처럼 사랑과 진리로 무장하고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신자되어 새로운 1,000년의 시대를 믿음으로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서머나교회에 대하여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진실된 믿음을 주시고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는 신자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다가오는 천년의 시대를 준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주를 위해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진리위에 굳게 서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게 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지켜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하시기를 원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