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
계2:1-7

가. 들어가는 말.

제가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이제까지 계속 가지고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먼저, 교회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왜 만들어 놓으셨는가?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하여 무엇을 원하시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을 갖춘 교회일까? 많은 재정이 있어서 선교사도 많이 보내고, 사회구제사업도 많이 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도 많이 하는 교회일까? 도대체 어떤 교회가 하나님이 이 땅위에서 어떤 교회를 만드시고 원하시는 것일까? 라는 생각입니다.

세 번째는 지금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되기 위하여서는 어떤 것이 보강되어야 하고 필요한가? 입니다.

이 질문은 저 뿐 만 아니라 이 땅위에 수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에 관하여 고민을 하고 기도하면서 좋다는 교회, 소위 잘된다는 교회를 연구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이야기 할 때 그것은 곧 성도들이 교회에서 어떻게 생활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이 땅위에서 생활하는 방향을 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생활할 때 우리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교회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방향으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목회자와 성도가 같이 세워야하는 이 땅위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우리는 우리의 교회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만들어가기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교회의 모습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를 통하여 묵상하려고 합니다.



나. 몸 말.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이 일곱 교회는 초대교회의 일곱 교회를 뜻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의 일곱 가지 유형의 교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 일곱 교회를 잘 살펴보면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책망만 들은 교회도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칭찬만 들은 교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함께 들은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만 들었든 칭찬만 들었든 칭찬과 책망 두 가지를 들었든 간에 이 일곱 교회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음성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책망은 고치라는 사랑의 소리요, 칭찬은 계속하라는 격려의 소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에베소 교회는 바로 이러한 책망과 칭찬을 아울러 들은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바울이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선교한 지역입니다. 바울은 대부분 몇 주일 정도 머물다가 다른 곳에 선교를 하러 떠났는데 유독 이 에베소교회만은 3년동안 머물면서 두란노 서원을 개원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일깨웠던 곳이기도 한곳입니다.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가면 이제 유대인들에게 잡힌다고 가지 못하게 하는데 성령에 이끌려 예루살렘으로 떠날 때에 에배소 교회 장로님들이 와서 서로 목을 껴안고 엉엉 울 정도로 사도바울과 깊은 연관관계를 가진 교회입니다. 또 디모데도 여기서 목회를 하였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같은 위대한 평신도가 있었던 교회입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하나 알게 됩니다. 바울이 3년 동안 목회를 하였고,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라고 하는 디모데가 믿음으로 양육하였던 곳이 에베소 교회이지만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가 보시기에 부족한 것이 있는 곳이 교회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모습이 없습니다.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에서 성도와 목회자가 함께 온전한 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애 쓸때 이루어지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만들어 나가시고자 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을 위한 열정과 헌신이 있는 교회가 되라는 요구입니다.

2절 말씀을 처음을 보시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에베소 교회를 향한 첫 번째 칭찬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고라는 말은 노동이라는 말입니다. 전심전력을 다하여 진이 빠질 정도로 일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수고라는 말의 뜻입니다

. 인내라는 말은 그냥 마지못해서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승리를 보고 참고 승화시키는 적극적인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을 위한 열심히 있는 교회, 하나님을 위한 자기 헌신이 있는 교회,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고 갈등과 아픔을 만나면 잘 참고 견디어 이겨나가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가 칭찬을 받는 교회이고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자기를 드리고 헌신하는 곳에는 의미가 있고 그것이 열매 맺을 때에는 기쁨을 얻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서는 그저 받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받지 못하면 섭섭해하고 자기를 무시하는 것과 같은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을 위하여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끼지 않았던 교회입니다. 이처럼 교회에 자신을 투자하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헌신을 열정적으로 드릴 때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과 한 알 만드는데도 아픔이 있고 갈등이 있고 괴로움이 있는데 서로 못난 사람, 성격이 다른 사람, 죄 많은 모난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데 아픔과 괴로움 갈등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성자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 교인들처럼 인내하면서 참을 때 기쁨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기쁨을 얻고, 재미를 느끼고, 의미를 찾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자신을 쏟아 부으십시오.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에 자신의 것을 투자할 때 그곳에 애착이 있고 사랑이 있고, 열심히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볼 때 기쁨과 생활의 환희를 느끼는 것입니다.

교회에 어떤 그룹이든 소속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기에 주어진 일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처럼 전심전력하여 쏟아 부으십시오. 그때 우리에게 교회가 기쁨과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때로는 그 수고와 인내가 나타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섭섭할 때/ 실망스러운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의 수고와 아픔과 갈등의 인내를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된다는 심정을 가지고 자기가 맡은 일에서 하나님을 위한 수고와 인내를 감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생활의 기준이 분명한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2절 말씀 후반부을 보십시다.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악한 자들이란?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이란 거짓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6절 말씀에 나오는 니골라 당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두 가지 중요한 도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주는 시련이요 박해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 내부에서 사도라고 말하면서 아무렇게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하여서 성도들의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기기 위하여서 초대교회는 두 가지의 힘이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는 외부의 박해를 이기고 견딜만한 믿음이 필요하였습니다

. 이것을 위하여 이들은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올바른 복음을 지킬 만한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였습니다. 또한 아무곳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복음의 지조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신중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관계가 중요하지만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교회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에베소 교회는 지리적인 여건상 외부적인 박해보다는 내부에서 나오는 거짓된 가르침이 더 기승을 부렸고 이것을 이기기 위하여 이들은 말씀을 바탕으로 하고 신중하게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니골라 당을 구별하여 내기도 하였습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위대한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곧 에베소 교회가 자기 신앙생활의 기준이 분명하였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의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면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분명한 신앙생활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영적인 분별력과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칭찬하는 것입니다.



올 일년 우리의 교회생활도 이래야 됩니다. 기도 능력이 좀 있어 보인다고 소문을 듣고 혹하여 아무 곳에나 가서 머리를 조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바탕을 둔 분명한 신앙생활의 기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분명한 영적인 목표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생활을 인간관계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바탕을 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솔깃하게 귀울이지 마시고 내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분명한 기초를 두고 있는가를 매순간순간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믿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서 일년동안 교회에서 열리는 성경공부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올 일년 우리가 이러한 신앙생활의 기준을 가질 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진보와 순수함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은 우리 교회가 감격을 가진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4절 말씀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의 처음사랑을 버렸느니라 고 에베소 교회를 하나님은 책망하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위한 수고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요즈음 말로하면 열심도 있고 헌신도 있고 참을 줄도 알았습니다. 이것만 있어도 교회는 성장할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 교회는 3절 말씀에 거짓 교사들을 분멸 할 줄 아는 영적인 분별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틀린 것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생활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책망을 받습니까? 그것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신앙적인 전통도 있습니다. 진리와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도 있었습니다. 열정적인 헌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릇에 담을 내용인 사랑이 없었습니다. 복음의 목적이나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사랑만이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전통이라는 그릇 안에는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신앙은 형식이 되고 죽은 것이 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열심과 헌신과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 속에 사랑이 없으니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회칠한 무덤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은 있는데 그 안에 내용이 없습니다. 맨날 빈 그릇 들고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다는 말은 감정이 없다는 말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잘한다 불쌍하다) 이러한 생각들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 잘하는 것을 보고 잘한다/ 아픔을 당하면 불쌍하다 어쩌면 좋을꼬 라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이러한 것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신앙의 생활의 형식은 가지고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윤리와 도덕입니다. 신앙은 윤리와 도덕이 아닙니다. 윤리와 도덕은 공자나 맹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기독교는 더군다나 윤리와 도덕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윤리와 도덕을 이야기하지만 그것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올바른 신앙의 전통이 이어져 가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교회는 능력을 상실합니다. 우리의 수고와 헌신의 그릇 속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일하는 가운데 서로 실수를 용납하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아파하는 사랑의 눈물입니다. 일이야 한번하고 다음 번 두 번째 하면 잘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다음 번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이러한 사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가지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매순간 순간 가져야 할 위대한 하나님의 원리가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바로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기억하라는 말은 내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를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내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좀 비딱하다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감격을 가지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감격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감격을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자기 자리를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감동이 없는 사람은 모두가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자신의 지금 자리를 보라는 말입니다.

회복하라는 말은 원래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원래 자리가 어디입니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형편없는 나를 인정하시는 하나님로부터 감격을 받고서/ 사랑받지 못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감격을 받고서/ 위로 받지 못하고 , 용기를 받지 못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용기와 위로를 받는 감격을 받는 자리에 있으라는 말입니다. 다시 이러한 감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감동을 주는 자리에 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감격이 잇고 그 감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감동을 주는 사람이 모인 곳입니다.



7절 말씀에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사랑의 불빛을 비춘다면 하나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나님은 약속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낙원에 있는 생명과실을 먹어서 하나님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교회, 하나님의 생명력을 이 세상에 나눠주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을 먹고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이 지배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바로 살아있는 교회요, 능력의 교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다. 마감 말.

사랑하는 성도님 !

하나님을 위한 수고와 인내가 있는 교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충만한 교회, 하나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매일 먹을 수 있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목회자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도님 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우리 교회를 이렇게 만드실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에서만이 우리에게 늘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