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머나 교회에 주신 소망의 약속 계2:11 처음이요 나중이고, 죽었다가 살자나신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 대하여 그들이 환난과 궁핍을 당했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라는 칭찬을 하셨습니다. 재산을 몰수당하며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훼방을 하는 것을 아셨으며 대적들의 악독함과 거짓을 모두 아셨지만 그것들을 모두 이겨내고 영적인 성장을 이룩한 서머나 교회를 칭찬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장차 고난을 받을 것이지만 그 고난 중에도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장차 다가올 핍박에서 몇 사람이 감옥에 갇히기도 하는 환난이 올 것이지만 온 교회가 힘을 합해 그 어려움을 이겨내며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그 환난을 이기는 자만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교육하고 선교하며 봉사하는 교회가 소망 가운데서 인내하는 해를 살며 더 좋은 소망으로 인내하되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란 말씀 믿고 소망하며 인내하는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온 세계를 지배하려는 로마의 제국주의적 횡포가 극에 달했던 시대에 가장 극심한 박해를 받았던 교회입니다. 독실한 신앙인에게는 옛 부터 고난이 크게 있었습니다. 교회사의 시조로 알려지는 에유세비오스의 글을 통하여 우리는 그것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테바이(더베)의 순교자들이 받은 고난과 형벌은, 아무리 설명한대도 다 할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갈구리로가 아니라 조개껍질로 살을 도려 낸바되어 살해되었습니다. 여인들은 한 다리를 꺾이고, 옷을 벗기운 후, 알몸 그대로 높은 곳에 달리워 구경거리로 되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일부러 만든 도구, 즉 나무 가지 중 가장 센 것들을 한꺼번에 휘게 하여, 그 하나하나에 손발을 결박한 후, 그것을 일시에 놓음으로써, 반동으로 손발이 찢어져 죽도록 된 신자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수일간, 또는 잠시 동안 행해진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행해졌습니다. 하루에 10인 이상, 20인 이상, 또는 30인 이하나 되는 날 없이, 60인, 100인의 남자들이 각양 형벌의 언도를 받고, 아내와 어린이들과 함께 하루 동안에 피살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있어서는, 선고가 신자들에게 내려지기가 무섭게 다른 신자들이 재판관 앞으로 달려나가 자기도 그리스도인임을 용감한 태도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써 최후의 죽음의 선고를 받아 들였습니다.\\\" 로마 황제들의 핍박이 얼마나 심했는지 교회사에서는 10대 박해를 다루기도 합니다. 성경 다니엘서를 통해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만들고 낙성식에 모든 바벨론의 관리들을 불러모아 그 앞에서 절하게 하였으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여호와께 대한 신앙으로 인하여 그 명령을 거부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만들었는데 이는 매우 큰 것이었습니다. 높이는 육십 규빗이고 광은 여섯 규빗이나 되는 금 신상은 바벨론 도의 두라 평지에 세워졌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세운 것은 자신의 세력 확장과 정복을 기념하고 금으로 비유되었던 꿈을 실현해 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세우고는 금 신상의 낙성식에 많은 사람들을 오게 했습니다.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을 불러모아 거대한 낙성식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느부갓게살 왕은 금 신상 낙성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반포하여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고 명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이 자신의 권세와 영광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했으므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금 신상에 절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경배를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즉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신의 위치에 앉아 찬양을 받으려 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을 것을 명했습니다. 이는 강제적으로 우상 숭배를 강요한 것으로서 악한 권세자의 모습을 잘 드러내 준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명을 좇아 모든 사람이 금 신상 앞에 절하였을 때에 유다 사람들 중에 왕의 명을 어기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 이 사실을 갈대아 사람들이 왕에게 나아가 참소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명을 어겨 금 신상 에 절하지 않았다고 고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행위가 곧 왕을 높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 대해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고소하였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자신의 명을 어기고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분노를 발하였습니다. 왕이 풀무불 속에 던지겠다는 협박까지 하며 내린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한 불쾌감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제라도 금 신상 앞에 절하면 모든 것을 용서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만일 그들이 금 신상 앞에 절하기를 거부한다면 즉시 풀무불 속에 던져짐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시한번 세 사람의 신앙이 시험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따라 죽음과 삶이 결정되어지는 순간에 이르른 것입니다. 이제라도 금 신상에게 절하면 목숨을 살려 주고 거부하면 풀무불 속에 던져질 것이라는 협박을 당한 세 사람은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곧 금 신상에게 절할 수 없으니 자신들을 죽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말하기를 만일 자신들을 풀무불 속에 던질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능히 구해 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풀무불 속에서 구원하시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습니다. 즉 그들은 죽음을 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면 받아들이겠다는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을 것을 확실히 밝히자 왕은 몹시 분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낯빛을 변하고 명하여 그 풀무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고 했습니다. 왕은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을 명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지게 했습니다. 용사들이 그들을 잡아 풀무불 속으로 던질 때에 불이 너무 뜨거워서 그 용사들도 불에 타 죽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 속에 던져 넣고는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다가 불 속에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 있음으로 인하여 심히 놀라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풀무불 속에서 타죽지도 아니하고 불 가운데로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러한 광경을 보고는 넷째의 모양이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내려와 불의 세력을 억제하고 세 사람을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떠한 가운데서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그때에야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도구로 사용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며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신임을 받아 높은 권세를 얻게 되자 악인들은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에게서 고소할 거리를 찾지 못하자 왕만을 경배하라는 법령을 선포케 하여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함을 인하여 고소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법령에 따라 사자 굴속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구원받고 원수들이 대신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남을 인하여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려고 하자 총리들과 방백들은 다니엘을 모함하여 좌천시키려고 했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포로 된 자로서 왕의 신임을 얻어 자신들 위에서 다스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연고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모든 일에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으므로 악한 자들이 그의 허물을 찾아 고소하려 했으나 고소할 틈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하려고 기회를 찾았으나 다니엘이 고소할 틈을 주지 않자 악인들은 다니엘을 모함하여 고소할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에게서는 다른 모든 것으로 흠을 찾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율법에 대하여서만이 모함 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방 나라는 국가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다니엘의 신앙적인 문제로 그를 고소하여야 한다는 계략이었습니다. 바사의 총리들과 방백들은 다니엘을 고소하기 위하여 계략을 꾸미고 다리오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들이 꾸민 계략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잡아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나아가 법령을 세워 공포하되 삼십 일 동안에 왕 이외의 다른 신에게 경배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넣자는 것이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악인들의 꾀임에 넘어가서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습니다. 악인들의 궤계는 일단 성공을 거둔 셈이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별 생각 없이 자신만을 숭배한다는 말에 넘어간 것입니 다. 그런데 악인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다니엘을 잡으려 한 데에는 다니엘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다니엘의 신앙은 악인들이 인정하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비록 목숨을 빼앗긴다 해도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순교의 신앙을 다니엘은 악한 자들로부터 인정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해치려는 자들이 일부러 왕에게 그와 같은 조서를 내리로록 만든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 조서에 어인이 찍혀 어느 누구도 그 법을 바꿀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 이는 목숨을 건 기도였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모해하려는 자들이 자신을 감시할 것을 알았지만 개의치 않고 하나님에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을 그의 대적들이 목격하였습니다. 다니엘을 해치려고 악한 생각을 갖고 있는 자들은 왕에게 나아가 다니엘의 위법 사실을 고하기 전에 금령의 내용을 다시 확인시켰습니다. 그것은 왕이 다니엘을 특별히 사랑함을 알므로 왕에게 금령을 확인시킴으로써 다니엘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악인들은 왕에게 다니엘이 왕의 법령을 어기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한다고 고소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왕에게 다니엘을 죽이라고 정식으로 요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 말을 들은 다리오 왕은 번민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제일로 신임하여 모든 나라의 통치를 맡기려 하던 다니엘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되었으므로 근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왕은 다니엘을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이라 할지라도 어인을 찍어 공포한 법을 변개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 굴속에 넣도록 명하였습니다. 왕은 다니엘이 죽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법을 따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왕은 다니엘에게 말하기를 그가 섬기는 하나님이 다니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왕이 꼭 그렇게 될 줄로 믿었다기보다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속에 집어넣고 근심에 싸여 밤이 다 가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에 가서 다니엘을 부를 때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심으로 자신이 무사하다고 증거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고 사자 굴에서 구원받았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왕은 그때서야 모든 것을 초월하여 다니엘과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얻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지게 한 악인들을 사자 굴에 던지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 다니엘을 핍박하던 자들로 사자의 밥이 되게 하심으로써 공의로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순교적 신앙은 결국 그 자신을 사망의 올무에서 구원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널리 전파하게 하였습니다. 성도는 다니엘과 같은 신앙으로 사단의 시험을 이기고 항상 승리하여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밝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에 선교사로 갔던 한 핀란드 여선교사가 폐병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휴양하며 농사일을 돕던 중 이번에는 탈곡기에 오른쪽 팔을 크게 다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선교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제 오른 팔이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면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여선교사는 \\\'왜\\\'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무엇을\\\'이라고 함으로써 고난을 극복했습니다. 둘째 사망은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가 직면하게 되는 육체적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이 당할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 곧 영원한 죽음을 가리킵니다(Ladd). \\\'둘째 사망\\\'이란 불 못에 들어가는 영적 사망, 곧 영원한 사망을 뜻합니다.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이것은 지상 최대의 형벌이 될 것입니다.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인생에게 가장 큰 고통은 죽음의 고통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죽음을 맞아야 합니다. 그것도 소망이 전혀 없는 영원한 죽음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잠시 잠간의 고통과 환난을 인내하지 못하며 세상에 속해 사는 자는 이러한 저주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이미 주께서 복을 주셨고, 거룩하게 하셨으므로 사망의 권세가 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끊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최후에 비그리스도인이 당할 불 못 즉 영원한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한번 태어나 두 번 죽고 믿음의 사람들은 두 번 태어나 한번 죽는다 합니다. 육적으로 만 태어난 사람은 육적인 죽음과 영원 한 죽음 둘째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육적으로 타어나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는 육적인 죽음만 맛보고 영원한 죽음 둘째 사망과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미국의 어린 소년 하나가 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선고받은 그날부터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23편의 내용을 어린 아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The Lord is my shepherd) 이 구절을 영어로 읽으면 꼭 다섯 글자입니다.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꼽으면서 이 말씀을 가슴에 심었습니다. 특별히 네 번째 손가락을 꼽을 때는 아들의 손에 힘을 주어 쥐면서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고 너의 목자가 되신다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없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너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거야. 우리가 그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너의 목자로 신뢰하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두 시간 후, 이 어린 소년은 눈을 감았습니다. 차디차게 식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본 순간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은 죽어가면서 자기의 오른손으로 왼손의 네 번째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어린 소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영원한 집을 향해 출발한 것입니다.(예화뱅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지라도 받을 수 있는 주의 도움이 있습니다. 부르짖어 구하기만 하면 주께서 달려오십니다. 그의 지팡이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실 것입니다.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에 주신 약속의 말씀이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십니다. 이 소망 안에서 고난을 이기고 충성하며 생명의 면류관 받기 까지 안내하는 모두가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