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가모 교회 계2:12-17 1. 버가모의 상황 에베소 교회에게 주시는 성령의 음성은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바울과 사도요한 당시 그 주위사람들을 변화시켜 예수믿게 햇던것처럼 다시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삶이 힘들고 핍박과 환란이 심해져도 죽기까지 충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버가모 교회에게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현제 버가모지역은 페르가마라는 현지명으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시내에 아침 일찍 갔습니다. 식당에 문이 연곳이 없어서 찾아헤메다가 물어 물어 찾아갔습니다. 오리지날 터키식 양고기 숩과 닭고기 슙을 먹었습니다. 우리나라 곰탕처럼 진하게 우려낸 물에 고기들이 들어있었습니다. 먹을려고 코를 대는 순간 노린내가 비위를 상하게 했습니다. 선교사들이 그 지방에 가면 먼저 음식에 적응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선교사가 된 기분으로 국물을 들었습니다. 몇번 먹고나니 먹을만 했습니다. 옆에 고추가 있기에 약간 깨물어 먹었습니다. 매콤하게 쏘아왔습니다. 매워서 입을 벌리면서 먹엇습니다. 옆에서 식사하던 터키인들이 고추먹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더 먹으라고 고추를 갖다주었습니다. 사실 청량고추만큼을 맺지가 않았습니다. 고추를 먹는 우리들의 모습이 재미었었던 모양입니다. 고추를 국물에 덤성 덤성 손으로 끊어서 넣었습니다. 그랬던니 노린내가 없어졌습니다. 아주 맛있게 한그릇을 비웠습니다. 고대 버가모의 그리스와 로마에 걸친 찬란한 고대 유적들은 수백년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땅속에서 잠들고 있었습니다. 1878년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과 서머나였던 이즈미르의 철도공사를 감독했던 독일의 토목기사 칼휴만에 의해 이 유적들이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인부들이 마치 뒤에 대리석에 부조된 한 유물의 파편을 싣고 가는 것을 보고 이것을 얻어 베른린의 고고학자에게 보냅니다. 그것이 고대 페르가몬의 유물임을 판명되면서 이 지역의 발굴과 복원작업이 시작되었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6평방킬로미테에 달하는 이지역의 발굴 작업은 20-30%정도하고 합니다. 요한 당시 버가모 지역은 에베소나 서나나처럼 상업적인 항구도시가 아니라 내륙에 자리잡고 있는 정치도시였습니다. 버가모에 소아시아 전체를 관활하는 행정적 수도였습니다. 로마제국당시 약 16만의 인구를 가진 로마제국의 아시아 수도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버가모가 행정수도로 번영하게 된 것은 아마 지형적으로 약 390m의 가파른 산이 있고 그 위는 평평해서 외적의 침략에 대해 강력한 방어벽을 가진 천연요새지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버가모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은 모두 4개의 방으로 되어있는데 13*16m의 넓이와 6m의 높이로 되어있습니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장서만 20만권 이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분량입니다. 그 옛날 인쇄술이 발전되지 않은 그당시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썻던 책 20만권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책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양피지에 쓰여졌는데 버가모는 양피지의 생산지였습니다.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이 유명한데 이곳은 당시 의과대학 병원입니다. 환자들을 위한 병동이 있고 의료학교가 있었습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바로 이곳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아스피클레피온은 그리스 신화이 아스클레피우스에서 유래하는데 그는 의료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아스피클레피우스의 상징인 뱀의형상이 돌에 부조되어있습니다. 이렇게 해놓은 것은 뱀들을 환자를 스치고 지나가면 그 환자는 치료된다고 믿는 미신 때문입니다. 버가모에는 마스클레피우스 신전뿐만 아니라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이자 전인류의 통치자이며 천둥과 번개를 비롯해 기후를 주관하는 제우스 신전이 있었고, 그리고 그리스 당시 뛰어난 영웅들이 죽으면 그들을 신격화해 숭배했던 헤룬 신전이 있었고, 디오니소스 신전, 아테네의 수호신이고 예술과 전쟁에 지혜를 주는 아데나 신전, 오곡과 초목을 풍성케해준다는 데메테르 신전, 불의 신이라 불리는 세라피스신전, 그리고 로마황제를 숭배하기 위한 황제신전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곳 시민들은 하루라도 신상을 보지 않고는 살수가 없었던 곳이 었습니다. 2. 버가모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 학문적 자부심과 이교사상의 오만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버가모 교회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볼필요가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12절) 버가모에 찾아오신 주님은 그손에 좌우에 날선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검은 전쟁무기입니다. 이 무기로 적군을 무찌르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합니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는 전투적인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에 대해 영향력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의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마귀를 물리치지 못합니다. 세상에 대해 도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영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이 반석위에 내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후 주신 첫 번째 약속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다시말해 세상에서 승리하며 영향력있는 교회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더 이상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좌우에 날선검을 가지고 나타나신 주님을 모습을 보면서 우리교회와 나자신을 다시 살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이 지역사회에 무엇으로 도전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까? 잠자고있진않은지요? 무기력한 모습으로 주저않고 있진 아닌지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등지고 있던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옵니까? 사단이 우리를 보고 우리교회를 보면 억울해서 이를 갈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를 통해 지역사회에 신선한 도전과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요? 우리교회를 통해 악의 세력의 무너지고 무당집이 없어지고 부도덕한 문화가 바뀌고 있습니까? 우리는 왜 주님께서 좌우에 날선검을 가지고 나타나셨는지 그 이유를 물어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좌우의 날선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하면 버가모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는 말입니다. 언제부터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소홀해 졌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세상과 어두움의 세력과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있기에 주님은 좌우에 날선검을 가지고 나타나신것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분됩니다. 세상속에 있지만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 그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씀의 검을 가지고 있을때는 세상을 공격하고 세상에서 승리합니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에 영향력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는 이젠 그런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세상과 그 차이를 찾아볼수 없습니다.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세상기관과 모임들과 다를것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필요와 이기심을 채우기에게만 급급합니다. 교회가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면 더 이상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할수 없습니다. 언제부터 내가 세상사람들에게 대해 하던 전도가 끊어졌습니다. 내가 세사을 향한 봉사가 끊어졌습니까? 언제까지 한발물러 서서 구경만 하고 있을것인가요? 3. 버가모 교회에 대한 칭찬 버가모 교회가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버가모 교회는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단의 위에 있으면서도 그는 충성된 증인이 되어 죽을때까지 충성했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숨내놓고 증인의 노릇을 했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사단의 위\\\' 라고하는 말은 사단의 보좌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이방신과 황제숭배의 본거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믿음을 지키고 이들과 싸움하는 일은 쉽지가 않은 일입니다. 신앙생활하기가 만만치 않은 곳입니다. 그러나 안디바라는 사람은 끝까지 목숨내놓고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충성된 증인으로 그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모델을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여기에 나온 여러분이들이 안디바와같은 충성된증인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지 내가 아노니\\\"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산다\\\'라는 말은 \\\'거주한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거한다\\\'라는 말을 사용할때는 대부분 임시거주자를 말합니다. 이 세상 어디도 영원히 거주하지 않는 순례자로서의 모습을 말합니다. 영원히 거할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쓰여진 말은 영원히 안정된 처소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 의미는 이것입니다. 사단의 능력과 영향력이 만연한 곳에 살고 있으면서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 살아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떠날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여기서 살면서 그리스도인임을 승리자임을 보여야 할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서 이곳 은혜로 교회가 그런 곳이라고 말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발 교회떠난다 말씀하지 마십시오, 누구 때문에 신앙생활못하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살다가 영광스럽게 죽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은혜로 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이 여러분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결정이 아니라 주님의 결정입니다. 신앙생활하기에 가장 열악하고 힘든 이곳에 우리를 이곳에 두게 하신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에 충성된 증인으로 살라고 이곳에 두신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떠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 여기서 영광스럽게 증인으로 죽어야 할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안디바의 이름을 거론했듯이 여러분의 이름을 거론하며 너는 충성된 증인이었고 죽기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칭찬듣는 나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버가모교회의 책망 그러나 문제는 다 충성된 증인이 아니었습니다. 충성된 증인으로 목숨을 바친사람은 단 한사람 안디바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은혜로 교회에서 주님이 인정하시는 안디바가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13절의 칭찬과는 반대로 14-16절까지 길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발람의 교훈을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발람의 교훈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발람은 히브리인이 아닌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던 선지자였습니다. 발람은 돈에 자신의 예언을 다 팔아먹은 대표적인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발람선지자 때문에 다 망할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모압광야에 진쳤을 때의 일입니다. 모압왕이 발락이었는데 이스라엘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미 사막의 모든왕이 참패했고 하나님의 백성이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발락은 발람선지자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그 저주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압왕의 부탁이 왔을 때 하나님은 가지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발락은 발람을 높여주고 무슨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발락의 신하들을 따라나섭니다. 돈이 탐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길을 나서자 하나님의 사자가 길에서 칼을 들고 서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발람이 계속 앞으로 나아갈려고 하자 그를 태웠던 나귀가 그것을 보고 옆으로 피합니다. 그러자 발람은 째찍을 가지고 나귀를 마구 때립니다. 그러자 참다 못해 나귀가 자기의 주인에게 말합니다. 왜 나를 때립니까?라고 말합니다. 돈에 미친 발람은 나귀가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발람은 모압왕 앞에갔고 그가 시키는 대로 제단위에 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하는데 입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발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저주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말입니다. 나중에는 그 입에서 메시야가 도래할 것을 예언까지 합니다. 그러자 발람은 모압왕에게 한 계책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앞에 우상제물을 놓고 먹게한후 여인들과 간음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압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자를 보내어서 \\\"우리는 당신들과 싸울의사가 없습니다. 몇날 몇일 큰 잔치를 베풀테니 오셔서 실켯먹고 즐기고 가십시요\\\"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땅으로 건너갑니다.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했던 진귀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습니다. 입에만 대면 넘어가는 포도주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옆에서 분위기를 돋구는 모압여자들이 그들에게 서비스합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이 모압여자들과 음행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발람의 계교였습니다. 아데미 신전의 축제일이 되면 짐승을 잡고 우상에게 절을 합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한풀이 합니다. 그리고 그 축제의 절정에 달하면 제사를 지내던 여자사제들이 남자 성기모습을 한 술주전자를 들고 남자들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으면서 즐기는 것을 끝이 납니다. 축제일이 되면 1000명의 여자들이 활동하게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우상제물을 먹지 않는 것은 사회생활에 큰 부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생업과 관련된 고객들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인인 아닙니다. 그들 모두에게는 수호신이 있습니다. 축제일 자기 거래처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만약에 그 수호신의 축제 자리에 초청을 했는데 참석하지 않으면 고객들의 미움을 받게되고 나아가서 거래의 단절은 물론 따롤림을 받게 되어있었습니다. 만약 이들의 초청이 있을 때 그들의 청을 거부하게되면 살아가는 막대한 지장을 받게됩니다. 왜냐하면 사업상 거래가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몇 교인들이 그 제사에 어쩔수 없이 한번 참석하게 되고 한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되면서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무디어져서 우상제물을 먹게되고 성적으로 방종하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버가모 교회의 일입니까? 오늘날에도 나의 직업과 사업과 관련되어서 이런 종류의일이 버러지지 않습니까? 접대라는 차원에서 거래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행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일차가 이차되고 이차가 삼차가 되지 않습니까? 마지막 단계는 무엇입니까? 성적인 타락으로 이어지지 않습니까? 2)니골라당이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니골라당은 성경을 잘아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용서를 이야기 합니다. 예수 안에서 참자유인이 되었기에 형식과 율법에 억매일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일부로 방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와 같지 않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라고 비웃고 있습니다. 그런면서 자기처럼 자유를 누리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자기멋대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일주이에 한번은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다스림과 가르침을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지도없이 혼자서 신앙생활 잘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로부터 신앙과 삶의 통제와 지도를 받지 않으면 신앙의 순결을 팔아먹고 다니는 것입니다. 5. 회개하라. 주님은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이말씀은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라는 말입니다. 그 자리에서 돌아서라은 말씀입니다.만약 돌아서지 않으면 내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싸우겠다는 것은 무서운 말입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입니다. 6. 약속 회개하고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다음과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17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1)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수단 방법 쓰지마십시오,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이 무엇있습니까? 신앙의 정절을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이스라엘 200만 백성들을 광야에서도 굶기지 않았습니다. 만나를 내려주셔서 그들로 먹게 했습니다. 주님이 공급해주신시는 비밀 양식이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삶을 위해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비밀만나가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신앙팔아먹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을 굶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회개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책임져주실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즐기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입니까? 삶의 보장입니까?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기독교인의 목표가 되어서는 않됩니다. 죽기까지 충성된 증인이 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2)흰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흰돌은 인정과 입장의 표지입니다. 검은돌은 거절과 쫓겨남을 의미합니다. 흰돌은 보딩패스와같은것입니다. 버가모 사람들 가운데서는 사람들의 초대 때문에 주님의 초대에 거부당하는 자들이 없길 바랍니다. 사람들에게는 거부당해도 주님께 초대받은 흰돌을 받는자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