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3) 계2:12-17 버가모 교회는 나쁜 환경 가운데 서 있는 교회였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당시 버가모는 에베소나 서머나처럼 중요한 상업도시는 아니었지만, 정치적 종냅岵막灌?이들 도시보다 더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버가모는 로마의 아시아 도시 가운데 공식적인 수도였기 때문에 황제숭배에 있어서도 아시아의 중심역할을 했습니다. 버가모에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는 말은 이방신은 물론 황제숭배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로마는 그들이 지배하는 지역 백성들에게 로마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게 함은 물론, 거대한 신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황제를 주라 칭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버가모는 황제 숭배 및 우상숭배가 극심해서 성도들에게는 신앙의 박해가 심했습니다. 특히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성도들은 로마정부의 눈에 불충성하고 반역하는 자들로 보였기 때문에 박해는 더 심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충성된 증인 안디바\\\\\\\"는 어떤 인물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터툴리안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놋쇠가마에서 서서히 구워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는 이런 환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13) 버가모 교회는 핍박을 이겼고 환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순교자를 내기까지 하면서도 환난과 핍박 중에서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이것이 버가모 교회의 충성된 신앙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핍박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안했습니다. 또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성도의 생활원리는 도피가 아니라 정복이요, 극복입니다. 진실한 성도는 도주하지 않고 지배합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말씀을 새롭게 음미합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썩어 냄새나는 세상의 방부제요, 삭막한 세상의 조미료와 같은 소금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어두운 세상의 빛이요 냉냉한 세상의 뜨거움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둘 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데 유의해야 합니다. 버가모 교회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 설립되었으나 동화되거나 흔들리지 않고 교회의 명맥을 굳게 지켰습니다. 같은 가정, 같은 학교, 같은 환경 속에서도 한 형제는 웅장한 집을 짓지만 다른 형제는 오두막집을 짓습니다. 약자의 길에 있으면 장애물이 되는 바위도, 강자의 통로에서는 디딤돌이 됩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통하여 환경을 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버가모 교회가 바로 그런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 있었으나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1. 주님은 버가모 교회의 죄를 책망하고 있습니다.(14,15) 버가모 교회가 환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킨 확고부동한 신앙이 있었으나, 그러나 그들에게도 책망 받을 죄가 있었습니다. 버가모 교회가 범한 죄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들 중에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발람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거짓 선지자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범죄케 하였습니다. 그는 싯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브올 숭배를 가르친 장본인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로 모압 여인들과 간음하게 했습니다. 또 감언이설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섬기도록 부름 받은 이스라엘이 이렇게 범죄 함으로 24,000명이 염병으로 죽음을 당했습니다.(민25:9, 31:8) 발람은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많은 백성들로 하여금 부도덕과 우상숭배에 참여케 함으로 그들을 부패케 하였습니다. 안디바 같은 충성스런 종들은 순교하고 다른 많은 성도들은 박해와 위협을 무릅쓰고 믿음을 지키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발람의 교훈을 쫓는 자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이제 믿음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한편에서는 서로 행음했습니다. 이 같은 죄가 사방에 퍼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 중에 또 니골라당의 교훈이 퍼졌다는 것입니다. 이니골라당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도 이들을 정죄하셨습니다. 우상과 음행에 관계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무율법주의, 무도덕주의자들인 듯 합니다. 그들은 율법은 이미 때가 지났으므로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으며,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기 때문에 육신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행하던지 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육의 죄에 대하여 무책임한자들이었습니다. 버가모 교회안에 이런 무리들이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컨데 버가모 교회 안에 신앙의 타협과 세속화의 물결이 서서히 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타협주의 신앙이 꿈틀거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핍박이 심하고 생명의 위협 앞에 로마황제가 우리의 주님입니다. 라고 말했다하여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저버린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우리 주님을 열심히 섬기되 세상에 나가서는 가이사 앞에 절할 수도 있고 우상의 제물일지라도 때에 따라서는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적당히 믿으면 나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상황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술한잔 한다고 해서 예수 믿는 믿음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주일날 등산하다가 잠시 예배 드릴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일주일마다 계속되는데 특별한 때는 한 주일쯤 결석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항변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서도 술도 마시고, 도박도 하고, 점도 치고, 담배도 피우면서 적당하게 살아갑니다. 신앙의 사람들에게 불신앙의 요소들이 오염되어 번지고 있습니다. 신앙의 표준이 퇴색하고 불신앙의 요소들로 변질되어 갑니다. 마음은 하늘을 동경하고 몸은 세상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부자처럼 살다가 나사로 처럼 죽기를 원합니다. 세상향락도 버리기 싫고 천국축복도 놓치기 싫어합니다. 그 결과 충성된 증인의 목소리보다는 발람의 목소리가 더 컸고 진리 편에 선 자들의 수보다 니골라당의 수가 더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결국 교회는 진리를 잃고 순결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버가모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독선적인 율법주의 때문에 사랑을 잃었는가하면, 버가모 교회는 무율법주의적인 방종 때문에 순결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율법주의도 아니고 무율법주의도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진리와 사랑을함께 간직해야 합니다. 종말이 가까운 이 암흑시기에 하나님은 진리와 사랑을 고루 갖춘 참 교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2. 주님은 버가모 교회로 하여금 회개하고 경고합니다.(16) 여기 버가모 교회에 대한 주님의 권면은 회개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회개하여 신앙을 회복하지 않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버가모 교회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올무에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발람의 추종자들을 칼로 심판하신 것처럼 버가모 교회도 검으로 심판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이 이 계시록을 쓰고 있을 당시에 로마황제는 버가모 통치자에게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글라비\\\\\\\"라고 하는 검을 하나 하사했다고 합니다. 버가모가 소아시아의 수도인 점을 감안했는지 아니면 정책도 잘 따르고 세금도 많이 바친 때문인지는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버가모의 집정관이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죄인을 처형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주었다 합니다. 그러니까 소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로마황제로부터 사형집행권을 부여받은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이 도시 사람들은 이 점을 제일 무서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도 이 버가모 교회에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으로 등장합니다. 그분의 검은 버가모 집정관의 검보다 무서운 검입니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로마 황제를 섬기지 않는다고 버가모 집정관의 칼에 죽기도 했고, 찔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검보다 더 날카롭고 무서운 검을 가진 주님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버가모 교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과 싸우리라\\\\\\\" 물론 승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항상 당하기만 했던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이때에 큰 힘을 얻고 위로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버가모 교회 성도였던 안디바는 세상 왕보다 이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순교자가된 것입니다. 가이사 황제의 칼보다 주님의 심판의 칼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 왕입니까? 돈 많은 사람입니까? 힘있는 세력가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주님입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와를 의뢰하여 안전하리라\\\\\\\"(잠29:25)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히13:6)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우리는 이런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과 사람들을 두려워한 믿음 없음을 회개해야 합니다.\\\\\\\"그러므로 회개하라\\\\\\\" 3. 주님은 믿음으로 승리한자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17) 믿음으로 승리한자에게는 두 가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사단의 유혹은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합니다.(창3:6) 세상과 타협하면 거기에는 쾌락이 있고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다고 약속합니다. 그래서 버가모 교인들 중에서도 발람의 길을 추종하는 자가 있었고 니골라당의 길에 선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중에서도 세상을 기웃거리며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참만족이 없고 참 행복이 없습니다. 세상에 가면 탕자처럼 가난해지고, 삼손처럼 불행해집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요4:13) 이스라엘이 광야를 헤맸을 때 그들은 굶주리고 배고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리사 40년을 먹였습니다. 진정한 만족과 배부름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이 승리자에게 주시려고 감추었던 만나를 먹을 때 참 만족이 있습니다. 이 은총의 자리에서 제외되는 자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흰돌을 줄 터인데\\\\\\\" 당시 중동지방에서는 재판소에서 무죄의 증표로 흰 돌을 주는 관례가 있었고 또 경기장에서 경기에서 이긴 자에게는 흰 돌에 이름을 새겨 우승의 증표로 흰 돌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 흰 돌은 공적인 축제에 참석할 수 있는 증표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기는 자에게 흰 돌을 주신다는 것은 천국의 영광과 그 시상대의 축제에 참여하는 자격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안디바 처럼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는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 이니라\\\\\\\"(요한일서5:4)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받는 자만이 아는 영광스런 이름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