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 교회를 향한 메시지 계2:1-7 서 론 요즈음 저희 교회 새벽기도회에서 요한계시록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말씀을 받고 기도하실 분은 누구라도 언제든지 나오시면 좋습니다. 지난 주에 새벽기도회에서 잠시 드린 메시지를 다시 묵상하며 정리하여 이 한시간 은혜를 나눌 때에 하늘 문이 열어지고 온 우주에 펼쳐진 전능자의 기운, 성령의 임재가 이 교회와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모든 삶에 영역에 두루 퍼져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려움이 해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크신 위로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계시록에 대한 서론과 에베소교회에 대해 잠깐 살펴 보고 말씀을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을 피해 다닙니다. 베드로후서 1;20에서 베드로가 말하기를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요’ 라고 합니다. 또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요한계시록을 사사로이 풀어서 교회의 표상을 흐리게 한 많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을 무서워 하고 피해 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계시록 1:3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고 합니다. 계시록을 보는 것이 복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계속 나옵니다 ‘때가 가까움이라’ 때는 종말의 때,재림의 때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을 읽으며 예수재림을 인식하고 말세에 성도로서 늘 깨어있는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계시록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예수재림 하시고 심판하실 때 예수 잘 믿어서 칭찬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에베소란 도시는 우상이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당시에 아데미신전이 있었습니다. 아데미신전은 기둥이 156개나되는 엄청난 규모의 신전이었습니다.여사제가 있어서 신전에서 매음을 하는 것이 제의였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타락을 가져왔고 아데미 신전에서 돈이 너무 많아서 은행역할을 하는 등 금융권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참 복음이 뿌리박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약 3여년간 에베소교회에서 열심히,체계적으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말씀이 흥왕하여 믿는 신도수가 많아졌습니다. 바울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이지요. 바울에 이어서 2대 목사로서 디모데가 사역을 했고, 다음으로 요한이 그 곳에서 사역했습니다. 그만큼 에베소교회는 당시 기독교계의 기둥들이 목회하던 곳이었습니다. 그 결과 에베소는 예루살렘, 안디옥에 이어서 3대 기독교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흥한 에베소교회에도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하나하나 살펴 보면서 예베소교회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를 우리 보성교회에도 적용시켜보고 사랑하는 성도님 개인들 에게도 적용시켜 보아서 고칠 것 고치고 배울 것 배워서 더욱 예수를 잘 믿어드리는 말세의 교회가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 론 1절을 봅니다.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여기에서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으시고 교회의 사자에게 대표로 말씀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자란 교회를 지키는 수호천사도 되고 목사를 칭하기도 합니다. 여하튼 한 교회에서 교회의 질서와 덕을 위하여 교회에서 영적인 대표인 목사에게 말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공식적으로 드리는 설교메세지와 심방예배시에 드리는 메시지, 기타 틈틈히 말씀을 통해 나가는 메시지를 소홀히 받지 마시고 ‘아하!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나에게 주신다’ 라고 겸손하게 받으시고 순종하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이는 목사님이 말씀을 주시면 받을 생각보다도 판단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신학을 조금했을 때에 목사님 설교가 신학적이니 아니니 많이 판단했습니다. 그러면 복을 못 받습니다. 저 또한 목사가 되어서 설교를 하니 여기 저기에서 성도님들이 판단할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내 죄 값을 받는 구나’ 라고 하면서 자신을 돌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꼭 부탁 드립니다. 저의 허물과 부족함을 보지 마시고 메시지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되겠다’ 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받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멘 1절을 계속 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여기에서 일곱 별이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교회 이라고 1:20에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일곱이란 성경의 완전 수입니다. 그래서 일곱 별과 일곱 촛대란 전세계의 모든 교회와 주의 종(목사)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는 것은 모든 우주의 교회의 머리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교회와 모든 성도님들을 그 의로운 오른손에 꽉 붙들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십시다 ’예수님께서/나를/꽉/ 붙잡고 계신다’ 2절-3절을 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에베소교회를 칭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6절입니다.’오직 네게는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우리는 여기에서 에베소교회는 일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부지런하게 봉사하고 열심을 품고 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진리에 온전히 서서 이단들과 대항하며 진리를 지킨 수고하고 힘쓴 교회라는 것을 금방 압니다. 우리 보성교회에도 에베소교회 처럼 봉사하는 일꾼, 전도하는 일꾼,기도하는 일꾼, 가르치는 일꾼 등 수많은 일꾼들이 그 은사대로 열심히 부지런히 일을 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물질을 심기를 원합니다. 이 토론토에서 말세에 완전히 쓰임 받는 강하고 담대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곳에 있는 모든 성도들마다 하나님의 크신 복락이 또한 있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일하는 생동력있는 교회가 되도록 힘씁시다. 그러나 이렇게 일을 많이 부지런히 한 에베소교회에 예수님이 책망할 것이 있었습니다. 같이 4절을 읽어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교회는 처음의 사랑을 버렸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다 보니 교회에 대해서는 잘 알고 , 열심히 기도생활, 말씀 읽는 생활, 봉사생활, 전도생활 했지만 예수사랑은 그 안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했지만 그 안에 참된 예수사랑이 없습니다. 그러하니 어떨 때는 열심히 봉사하고도 허탈하고,짜증도 나는 것입니다. 더 심한 자는 양심이 화인 맞은 자처럼 양심이 무감각하게 되어 한 입술로 어떤 때는 세상의 속된 말들을 한 입으로는 예수 이야기를 한 손으로는 술병을 잡고, 더러운 이익을 잡고,음란한 책을 넘기며 다른 한 손으로는 성경을 끼고, 손을 들어 주를 찬양한다고 합니다. 한발로는 세상의 가치관에 두고 다른 발은 교회 문턱에 걸치고 하나님 우선 주의로 살지 않습니다. 이렇게 형식과 외모로 가득찬 율법주의적인 외모만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자신도 모르게 변질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진실된 예수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작은 일 하나 하더라도 예수사랑으로 하시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방에서 봉사하는 이가 있습니까? 이 음식 먹고 성도가 신앙이 자라고 예수사랑이 넘치게 해달라고 하는 진실된 마음으로 주방에서 봉사하시고 아이를 가르치는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이를 보살피는 참된 예수사랑의 마음으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예수사랑 가지고 하십시오. 이것이 에베소교회를 향한 주님의 간곡한 부탁입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예수사랑을 가지고 하거라.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사랑을 실천한 한 인물을 봅니다. 그는 사도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때에 그리스도의 심장 즉, 스프랑케톤이란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오장육부를 이야기하지요. 성도를 사랑할 때에 오장육부가 끊어지고 허파가 뒤집어지도록 사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말하지요.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으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참으로 이래라 저래라 말만 하기 좋아하지 말고 아비의 마음으로 성도의 고통을 안고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여! 주님은 말합니다. 하나님 사랑하시기를, 교회사랑 하시기를, 성도사랑 하시기를 참된 예수사랑 가지고 사랑하라. 참으로 우리의 자녀를 사랑하는 반만큼만 가지고 나가더라도 예수님께서 책망치 않으시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한다고 시험 들지 마십시오. 제가 한국에서 교회를 개척한 얼마 후에 저의 교회를 쭉 나오는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자녀교육을 위해 온 정열을 쏟는 그 집사님은 결국 자신의 유익을 위해 교회를 떠나가셨지만 교회생할 하실 때에 예수님과 교회는 껍데기처럼 여기시고 자녀를 금이야 옥처럼 여기신 분이셨습니다. ‘너무도 심하다 싶은데 주님 앞에 울고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쌍히 여기거라 만약 예수님께서 몸의 어느 신경 하나라도 건드리시면 10년 20년 자녀교육이 허사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무서운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분들을 위해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주님 사랑하십시오. 참된 예수사랑을 가지시고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꼭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사랑을 가지고 사랑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예수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가? 예수사랑 구호만 외칠 것인가? 아닙니다. 첫째,예수사랑을 하기 위해서는,예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첫 사랑을 가진다는 것은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친밀이 이어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사이에도 첫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다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억 만 가지의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가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받아드리며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말씀을 했죠. 하나님의 백성들아 돌아오너라. 돌아와서 나와 다시 사랑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흰눈과 같이, 진홍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같이 되게 해주겠노라. 이렇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협박도 하고, 부탁도 하고 하는 것은 다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이지요. 그러나 때로는 사람의 체면과 과연 내가 이렇게 많은 죄를 지었는데 나를 용서해 주실까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며 못 나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하여 다시 사랑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옛날에 아주 말썽장이 자식이 있었죠. 부모의 마음을 난도질하고 부모를 떠나며, 이젠 다시는 부모를 찾지 않겠노라고 말하며 떠난 자식이 있었죠. 그는 상경하여 온갖 일을 다했지요. 시골에서 가져온 돈 얼마를 다 사기 당하고,짜장면 배달, 청소부, 신문배달, 심부름 센타 온갖 궂은 일 다했지요. 돈을 좀 벌면 부모의 마음을 난도질하고 부모를 저주하고 떠난 것이 마음에 걸려서 술 먹고 주색잡기 하다 보니 건강도 잃고 기침하면 피도 나고, 돈도 없고 참으로 처량한 삶을 살다가 어차피 죽을 바에는 부모님께 용서빌고 죽어야겠다 하고 결심합니다. 부모님에게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 불효자식을 용서 하옵소서. 제가 이제 고향으로 갈려 하오니 용기가 없습니다. 만약 부모님께서 저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신다면 집에 큰 나무에 흰 수건을 하나 걸어 두시면 용서하신 줄 알고 들어 가겠습니다. 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집이 기차타고 가다 보면 보이는데 집에 다 가까이 다다라서 옆에 탄 사람에게 부탁합니다. 내가 차마 볼 수 없으니 혹시 나무에 흰 수건이 걸려진지 봐주겠소? 그런데 그 나무는 흰수건이 아니라 온 나무를 흰 꽃이 핀 것처럼 집안의 모든 흰옷을 다 걸어두고 온 동네에 내 아들이 돌아온다며 흰 수건을 빌려서 나무에 가득채워 두었답니다. 이 것이 부모마음 입니다. 그는 비록 피를 토하며 죽었지만 따뜻한 부모의 사랑의 가슴 안에서 죽었죠. 이와 유사한 것 많습니다. 부모의 배신하고 떠난 탕자, 돈도 다 날리고 몸도 상하여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 쥐엄 열매 먹다가 죽더라도 아버지 집에서 죽어야지 하고 돌아가니 아버지가 먼치에서 자식을 알고 맨발로 뛰어나가서 영접하고 금가락지를 끼우고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인 탕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압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 우리를 만든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나의 중심으로 사신 것들 다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참된 예수사랑 가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예수사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많이 하기 보다도 예수님 앞에서 나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서 Doing 과 Being 입니다. 많이 무슨 일 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Being 먼저 나의 존재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장하고 많은 일을 하기 보다도 자기자신을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왜 우리를 만드셨습니까? 우리와 사랑을 하시기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사랑은 대상이 있어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므로 죄 가운데 빠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짓밟고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돈을 더 사랑했고, 명예와 지식, 일의 성취를, 세상의 술과 잡기, 노는 것, 환락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형상은 일그러졌습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우리의 삶은 파괴되고 죄 많은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습 이 대로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꾸미 댈 필요가 없습니다. 이 추한 모습 이대로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회복하자고 말하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여서 이렇게 주님을 떠나 방황하는 삶을 사는지를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사랑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졌음을 명심하십시다. 이 모습을 그대로 주님께서 사랑하시도록 드리십시다. 따서 하십시다. 우리는 사랑의 대상으로 지어졌습니다. 다같이 5절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사랑(사랑을 가지고)으로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예수사랑을 잃어버렸는지 이 시간에 성도님의 마음에 가득한 예수사랑으로 차지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잘못된 모든 삶들을 뒤 돌아 보고 회개하시고 예수사랑을 회복하는 기도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에 기도할 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창조된 고귀한 존재임을 또한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결 론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사랑, 예수님 안에서 사랑의 대상으로서 사랑을 회복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습니다. 먼저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예수사랑을 회복하며 내 속에 담은 예수사랑으로 봉사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교제하는 예수사랑가진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5절을 읽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리라’ 예수사랑회복하지 않고 떠들어 대면, 진실한 교회사랑 없이, 예수사랑없이 교회에서 시끄러운 소리내고 , 기도한다 하면서 참 사랑을 가지고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육신을 실상 더 사랑하면서도 교회와 예수사랑 하는 척하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말하십니다. 촛대란 사명의 촛대,직분의 촛대, 삶의 축복의 촛대입니다. 목사든지 장로든지,집사든지, 누구든지 거짓의 탈을 벗어버리고 진실된 예수사랑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절을 다같이 봅니다. ‘귀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귀있는 자도 있고 없는 자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한없는 복을 예수께서 주시나니 하늘 낙원의 생명나무과실을 먹게 하리라. 하늘의 영생의 기쁨에 참예케 하리라. 반드시 잘되고 잘되는 복을 주리라. 축복하리라. 지금 이 시간에 주님의 쟁쟁한 부탁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까? 반드시 축복하리라. 반드시 잘되게 하고, 영생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리라. 참으로 진실되게 예수사랑으로 무슨 일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