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가모 교회 계2:12-17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버가모 교회는 순교에까지 이른 순수한 믿음이 있는 좋은 점과 우상경배와 패륜에 빠진 니골라 당이 뒤섞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좌우에(양면으로) 날선 검으로 정(正)과 사를 옳게 분별하며 심판 하실 것을 경고하는 말씀의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버가모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안동-대구 거리)에 있는 무시아 주의 수도였습니다. 옛날 도시는 300M 높이의 튀어나온 바위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지만 현재의 도시는 그 바위 언덕의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이 도시는 주전 약 2세기경에는(약 130년) 로마의 식민지로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의학교가 있었고 장서가 20만 권을 헤아리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우상이 굉장히 많아서 버가모의 신이라고 불리는 아에스쿨라피우스 라는 뱀 신이 있었고 그 외에 제우스신 아테네신 디오니소스신 등 무수한 우상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전 29년경에 아구스도 황제에게 바치는 신전이 세워진 후부터 계속하여 황제신을 위한 신전들이 건립되었으며 다른 신들을 포함하여 황제예배 중심지 및 미신들의 본거지가 되어서 본문에서처럼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 불리우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이런 버가모 교회의 신앙적인 혼돈상태에 대처하는 주님의 모습으로 선악과 정사를 가리키는 권위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로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몇 가지 단어들을 살펴보면 ①사단의 위 - 버가모 교회가 우상숭배의 중심이 사실을 가리키며 ②발람의 교훈 - 버가모 교회에 부분적으로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음을 말하며 다른 사람은 핍박과 정면으로 맞서서 순교의 대열에 나서는 동안 이 사람들은 우상과 행음의 유혹에 넘어갔음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교회를 헤치는 사탄의 역사는 늘 어느 곳에 거나 나타납니다. 주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발람에 대한 말씀은 <민 22-25장><민 31:8,16>에 나타납니다. 발람은 돈에 팔려 이스라엘 백성을 정면으로 저주하지는 못했지만 후면으로는 모압 여인을 통해 우상 경배와 음행의 자리로 꾀이게 하였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수 만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발람의 길이요 그 교훈으로 신약 <벧후2:15-16, 유1:>에서 나오며 유대 역사에 있어서 늘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③니골라당의 교훈 니골라당은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 하게 하는 무도덕 주의자들로서 율법은 지킬 필요 없고 육신은 악이고 영은 선이므로 육신은 무슨 일을 해도 관계없다고 하며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보호받기에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행하든 해 받음이 없다고 하는 잘못된 교훈을 가진 자들을 말합니다. ④감추었던 만나 -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여 년간의 생활을 통해 하늘에서 내린 만나로<출16:14> 산 것은 기념키 위해 금 항아리에 만나를 넣어서 법궤 속에 감추어둔 것<히9:4>이 바벨로 침공시 예레미아 및 요시아에 의하여 감추어졌다가 장차 메시아 왕국에서 공개 된다는 구약외경<마카베오П 2:4-7>등의 말씀을 배경 삼아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요6:35>를 통해 신령한 만나를 받을 것을 의미합니다. ⑤흰돌. 새 이름 - \\\"흰\\\"것과 \\\"새\\\"것은 천국의 기본 말이라 해도 될 것입니다. \\\"C harles\\\"에 의하면 흰 것은 천국의 제복이라고 할 정도로 천국에는 흰옷, 흰 구름, 흰말, 흰 보좌등이 있었습니다. (계1:4,3:4,5,18,4:4,6,:2,11,7:9,13,14:14,19:11,14,20:11) \\\"새\\\"것도 그렇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이름을 가진 주민들이 새 노래를 부르며 사는 모든 것이 새로운 예루살렘 등이 있습니다.(계3:12,5:9,14:3,21:1,2,5) 이와 같은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 하늘 나라에서 신앙의 승리자에게 주시는 상급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신앙이란 \\\"나와 하나님\\\"의 관계이기 때문에 체험하는 자 외에는 그 맛을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무서운 핍박과 심각한 유혹, 불같은 혈기, 사소한 함정들을 이긴 성도들이 받을 하늘 나라의 상급은 더욱더 우리에게는 소망의 대상이 되지만 어떤 것인지 진실을 알지는 못하는 것이지요. 더욱 좋은 것을 위해서 전진하는 소망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오늘 본문의 단어들을 중심으로 버가모 교회의 상황과 오늘 우리의 상황을 대조하고 더욱 굳세고 올바른 믿음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버가모에 우상들이 들끓는 가운데 세워졌던 버가모 교회는 처음 세워질 때와는 달리 점점 주위의 우상 및 다른 시험의 환경 속에 조금씩 굴복하여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교회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 계신 주님께서 좌우에 날선 계시의 검을 가지고 그 버가모 교회에 임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회의 여러 유혹들 속에 교회까지 휩쓸려 점점 인본주의 사상이 뿌리 박기 시작하여서 성도가 성도로서의 삶을 잊어버리고 인본위주로 삶을 살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 중심으로 즉 우리의 신이신 하나님 위주로 신본위주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어 인본위주 즉 \\\"나\\\"\\\"가족\\\"\\\"사람\\\"위주로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가정을 이루어 주시며 그 가정을 토대로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정이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는 경우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이기고 사는 삶이 신앙의 기본이며 하나님 위주의 삶으로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사회 속에서의 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고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늘 들으며 중심 보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 앞에 중심이 올바르게 서 있어야 그 분을 섬기는 자라 할 것입니다. 버가모에도 하나님을 섬긴다는 교회가 세워졌고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 버가모교회가 하나님 섬기는 중심된 일을 버리고 세속물결을 좋아하며 중심이 삐뚤어지고 겉모양만 교회이었기 때문에 중심을 보시는 우리의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하셨던 것입니다. 정확무오한 판단력으로 버가모 교회를 감찰하고 판단하시어 합당한 지체들과 합당티 못한 자체들을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으로 번개 불처럼 번쩍이는 것으로 판단하시고 가르심을 본문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엡6:17)\\\"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여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곧 검이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날에 우리의 모습을 이 말씀의 검으로 비추어 볼 때 쪼개고 짤라 없애야 할 곳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모습이 온전한 모습이냐 팔이나 다리나 한곳이 성하지 않은 잘못된 모습이냐를 상상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자리에서 돌이켜 진리에 충성하며 인본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 본위로 살며 경건한 삶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있듯이 경건은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삶, 찬송이 몸에 배인 삶, 성경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읽는 삶이 몸에 베여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 세 번씩 기도의 사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삶을 살 듯이 새 이스라엘로 부름 받은 오늘의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곤해도 그리고 곤하면 곤할수록 식사시간은 꼭꼭 찾아 새로운 힘을 육체에 비축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인 말씀과 기도가 부족하면 메말라가고 뼈만 앙상하게 남다가 죽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풍족한 삶을 위해서 영의 호흡과 양식인 기도와 말씀으로 시와 때를 따라 먹고 섭취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생활이 곧 경건을 훈련하는 삶이 되며 이런 삶이 곧 항상 기뻐하며 사는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도 다시 돌이킬 때 그리고 이기는 삶일 때 \\\"감추었던 만나\\\"와 \\\"흰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변함없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의 성도와 교회 위에도 만나와 흰돌 과 새 이름을 주심을 우리는 기억합시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이니 곧 신령한 음식으로서 단순히 육체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욕구를 억제하고 지혜롭게 되는 영적인 배고픔을 채워 주는 음식이며 흰돌과 그 위의 새 이름은 세상으로 흐르던 자신의 모습을 돌이키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자에게 주시는 승리의 표시로 받는 자 밖에는 알지 못한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이름은 보다 더 고귀하고 진실한 삶으로 옮겨짐을 의미하며 마음의 변화와 그 변화로 인한 성품의 향상도 의미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