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가모 교회 (2) 계2:12-17 [좌우에 날선 검]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버가모 교회의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을 12절이 설명을 하는데 좌우에 무슨 검을 가지신이라고 합니까?---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고 했습니다 검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성경에서 검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계1:16에 보시면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라고 합니다 여기에 일곱별을 붙잡은 분이 주님이시고 그 주님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오늘 본문에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이라고 했는데 이 주님이 가진 검.....그리고 이 입에서 나온 검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름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님이 버가모교회에 오시면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이로 오실 수 밖에 없는 이유 다시 말하면 심판의 말씀을 들고 오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버가모에는 대규모의 신전이 3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1, 버가모는 황제숭배의 대신전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에베소와 서머나는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로 상업이 성행한 도시라면 버가모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100키로미터를 올라가---내륙에 위치했다고 했습니다 내륙도시이기에 상업은 발달하지 않았지만---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리적 영향으로 인하여 당시에 소아시아를 지배하던 로마는 이 버가모 도시를 굉장히 중요시 하였고 소아시아의 여러도시 가운데서 공식적으로 수도로 지정하게 됩니다 버가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사는 도시가 소아시아의 중심도시가 되자--- 거기에 보답이라도 하듯이---당시 황제숭배에 앞장을 서는 도시가 되고 심지어 황제를 숭배하는 대신전을 버가모에 건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아에스 쿨라피우스--라는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뱀을 신으로 섬기는 신전인데-- 이 뱀이 인간에게 질병도 주고--- 병을 낫게 하는 치료의 신도 된다는 것입니다 뱀이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건강을 주관하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뱀을 신격화하고---뱀이 신격화 되다보니 뱀 신전을 세워서 거기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섬기는 거대 신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3)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제우스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3대 신전이 버가모에 있음으로 말미암아--하나님이 보실 때--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고 하실 수 밖에 없는 지역이 버가모입니다 거기다가 버가모는 20만권의 장서를 가진 거대한 도서관이 있는 시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지성의 도시입니다 이런 지역---우상의 도시오--지성의 도시인 이 버가모도시에----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여기에 찾아오시는 주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좌우에 날선 검--말씀의 검을 가지신 이로 오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버가모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받아야 하고 말씀이 모든 삶의 기준이 되고--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버가모 교회만 말씀의 검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쟎아요----오늘날 교회도---그리고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받아야 합니다 이 말씀의 검을 받아야 바른 신앙생활을 합니다 검을 받아야 좋은 신앙인이 되고---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검은 잘못된 부분을 해부합니다---수술합니다----병든부분을 찔러 쪼갭니다 그래서 히4:12은 증거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았습니다---운동력이 있습니다 좌우의 날선 검보다 예리합니다 위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변화시킵니다---- 맞습니다------말씀을 받아 보십시오 마음이 바뀌쟎아요---생각이 바뀌쟎아요---뜻이 바뀝니다 좀 새벽시간과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새벽시간에 안나오신 분들이 많아서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만 제가 지난 토요일 오후에 설교준비를 하다가 인터넷에 접속한 후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가 “어찌 이런 일이” 였습니다 바로 탈렌트 정다빈(실명:정혜선)씨가 자살을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은주, 그리고 유니......또 정다빈씨라니 제발 이번 만은 기독교인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의 인터넷을 검색하던중 역시 정다빈씨도 기독교인이었음을 알고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쉽게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가? 이쁜 미모와 몸매 그리고 최고의 인기까지 누려본 그들이 왜 죽었다 말인가? 자살사건이 일어나면 공통점으로 부각되는 것이 우울증이란다 우울증은 누구에게 옵니까? 간단히 말한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일이 안될 때 자신이 무가치하고--무기력하고---무능력함을 느끼고 절망감을 느끼는 것인데 이런 우울증은 부정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상에 섰다가---떨어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가치와--무능력과 무기력함을 느끼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되고---결국은 이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실패와 고난과 역경--- 그 사람들만 격는 것일까?---분명히 아닐 것이다 이땅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겪습니다 혹시 그들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기독교인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삶의 기준이 성경에 있어야 하쟎아요 성경은 세상 삶속에서는 분명히 환란과 고난이 있다고 증거한다 아브라함도--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그런데 거기에 기근이 있었습니다 요셉도 꿈에 비전을 보았습니다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를 둘러서서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곡식을 묶는데 자기의 단이 중앙에 일어서고-- 형제들의 단이 자기를 둘러서서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까?--- 천만에 도리어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죽음직전에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에게도 고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고난이 있을 때 고난을 뚫고 나가는 자가 성도이다 고난이 없고 승승장구하고 모든 일들이 잘되고 항상 일등만 하는 것이 성도가 아니다 때로는 위에 올라갈 때가 있는가 하면--밑바닥의 인생도 살아보아야 한다 좋은 때가 있었다면 환란의 비바람도 맞을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이런 환란과 고난의 세찬 풍파들이 몰려올 때] 성도는 풍파에 날아가는 존재가 아니라---그것을 뚫고 나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아브라함이요---요셉이요---다윗이었다 송명희 시인 같은 분을 보십시오 그는 뇌성마비 일급장애자입니다 팔도 바로 써지못하고--바로 걷지도 못하고 눈까지도 바로 뜨지 못하고---말도 바로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죽을 결심을하고 자살을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난뒤---자신은 가치 있는 인생임을 알았다고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자신을 대신해서 죽을 만큼 자신이 존귀하고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임을 알았다는 거죠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것을 들었고 나 남이 받지못한 사랑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남이 가진것 나 없으나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님이 없는것 갖게하셨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송명희 시인이 자신의 처지를 보면 정말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무가치하쟎아요 그래서 죽고 싶을 수 밖에 없는 몸을 가진 사람이예요 이런 사람도 말씀의 검을 받으니---- 마음이 변화고 생각이 변화고 뜻이 변화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위치에 세우시던지---그분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실패하고---불행해보이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남이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고 남이 보지못한 것을 보았고---남이 받지 못한 사랑받았고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수없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그는 살만한 세상으로 보았고--가치있는 존재로 자신을 보았습니다 말씀의 검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할렐루야 [환경을 아심] 13절을 보십시오---다같이 읽습니다--읽고 난 뒤 13절의 시작을 이렇게 합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데라” 사단위 대신전이 3개가 있는 도시가 버가모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당시에 버가모가 소아시아의 중심도시라고 할지라도 지금처럼 인구가 수백만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많다고 해봤자 수십만에 불과할 것입니다 수십만의 인구라면--일거수 일투족의 감시가 가능합니다 이런 가운데 신앙생활하기란 거야말로 힘든 시대입니다 특히 이때는 로마의 패권으로 인하여----당시에 국가종교 국교가 황제였습니다 국가의 종교---국교가 황제숭배였다면---이것을 거부하면---죽음입니다 이 황제숭배를 거부한 대표적인 사람이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이었쟎아요 이것이 서머나교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13절에 보면 주님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사단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데 이 안디바 역시---황제숭배를 거부함으로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부 터툴리안에 의하면 안디바는--당시 버가모교회의 감독으로 황제숭배를 거부하여---스스로 불속으로 들어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신앙을 지키기가 너무 힘든 그러한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믿음을 지키기 힘든 이 시대였습니다 아니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할만큼 힘든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네가 어디에 사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지금 너의 처한 환경을 알고--- 믿음을 지키다가-신앙의 정조를 지키다가 그것 때문에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사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주님이 우리를 보시면서도 안다고 하실거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너희들이 어떤 시대--어떤 환경에서 신앙생활하는지 안다고 하실 거라는 거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와 버가모 당시의 시대를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얼마나 신앙생활하기 좋은 시대입니까? 국가에서 기도하러 간다고---주일지킨다고---하나님 섬긴다고 감옥에가는 사람이 있습니까?---아니면 사형을 시키는 사람이 있습니까? 적어도 우리나라 만큼은 지금 없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하기 좋은 이 시대라면 더 좋은 신앙인들이 나와야하는데 장마가 들면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아서 마실 물도 많은 것 같지만 도리어 장마로 인하여 집중호우로 인하여 물바다가 되면 마실 물이 더 귀하듯이 오늘 이시대 신앙생활하기 너무 편한 시대라 생수와 같은 참 신앙인들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너희들이 어느 시대 어떤 환경에서 신앙생활 하는지 안다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 앞에서는 날 그렇게 신앙생활하기 좋은 시대에 그토록 주일 지키기 좋은 시대에---봉사하기 좋은 시대에 헌신하고 충성하기 좋은 그 시대에 네가 어떻게 이렇게 밖에 신앙생활하지 못하였느냐-- 이 책망을 안 받아야 할 만큼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이 교역자 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성도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부끄럽지 않도록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이 시대---목숨 걸 일이 없습니다----감옥에 보낼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강제로 재산 빼앗아가는 정부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시대 충성된 증인 안디바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보면서 이 안디바가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우리 푸른교회 성도 모든 분들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헌신하고--스스로 충성하는 증인이 되어 주님이 버가모 교회의 안디바를 자랑하듯이 오늘 대구푸른교회에도 나를 위하여 이렇게 충성하는 증인 00 00가 있다고 자랑할 수 있도록 믿음의 길을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