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 계2:1-7 목회자 클락의 이야기 클락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대한 전도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분은 미국 시카고에서 목회하는 분입니다. 그는 매일 밤 전도 집회를 합니다. 꾸준하게 회중이 모입니다. 그 회중의 대부분은 술주정꾼 도둑놈 소매치기 투전꾼 등입니다. 그야말로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클락의 설교는 형편없습니다. 지루하고 싫증이 납니다. 느리고 흐리멍덩한 음성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매일 밤 5, 600여명의 회중이 모입니다. 무엇에 단단히 매인 것처럼 열심히 설교를 듣습니다. 결신자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나옵니다. 무슨 까닭일까요. 싫증이 나서 제대로 들을 수조차 없는 설교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감동이 될까요,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클락의 진실 된 사랑을 믿습니다. 사랑처럼 사람의 마음을 깊이 찌르고 매력은 없습니다. 클락의 눈에는 사랑의 눈물이 언제나 고여 있습니다. 지난 날 클락이 이곳으로 처음 왔었을 때 그는 그 불쌍한 회중들의 가련함을 알고 울었습니다. 그 후 그는 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 했습니다. 남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마음을 차갑게 가졌습니다. 그 결과 그의 울지 않는 노력은 성공 했으나 설교에는 능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는 시간 날 때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내 눈에 눈물을 돌려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그에게 눈물을 돌려 주셨을 뿐만 아니라 놀랄만한 능력도 주셨습니다. 진실한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람들을 이끄는 매력이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경견한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해설] 에베소 교회는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금 촛대는 영원히 옮기어 지고 말았습니다. 옛날 그 교회들의 전성기를 자랑하던 폐허에서 지금은 흔적마저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외양은 훌륭하여 1200만명의 교인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사랑이 메말라 가는 현상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사랑으로 시작하지 아니하는 교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은사의 경험은 많지만 사랑의 경험은 없습니다. 은사는 한국 교인들을 열심 있게 하는 반면 교만하고 비뚤어지게 합니다. 사랑을 체험하는 성도들 처음 사랑을 가지는 교회들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에베소 교회처럼 주님은 그 자리에서 금 촛대를 옮기실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교회도 동일합니다. 처음 사랑으로 시작한 교회가 처음 사랑이 식어질까 두렵습니다. 가정도 개인도 동일합니다. 사랑의 마무리를 잘 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시작한 개인과 가정이 미음으로 마쳐진다면 안 됩니다. 지속적인 사랑으로 마무리를 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 교회는 요한 계시록을 통하여 주님이 아세아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 중에서 첫 번 수신 교회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가이스텔강 어구에 있습니다. 로마제국 시대에서 아시아도의 수도였습니다. 지중해 동부에는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가 에베소와 함께 번창(繁昌)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이 도시들을 로마로 연결하는 육로와 해로상의 교차로였습니다. 항구 도시로서 교통의 중심지였으니 얼마나 번창(繁昌)하고 화려 했던가를 짐작할 만 합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에베소를 찾는 여행객들은 장엄했던 아데미 신전의 폐허에 서서 옛 영화를 더듬느라고 발길을 돌리지 못합니다. 에베소는 정치 상업 면에서 뿐만 아니라 종교 면에서도 요충지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이나 체류하면서 전도했습니다. 그 결과 에베소 여러 지방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어떤 서신보다도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의 교훈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마 사랑이 풍성했던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도 보면 사랑이 그 주제입니다. Ⅰ. 에베소 교회는 칭찬이 있습니다. 계 2:2-3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는 칭찬 듣는 교입니다. ⑴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넘치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행위와 수고와 소망이 있는 교회가 바로 그 뜻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주님께 인정을 받아 아세아 일곱 교회 중에서도 일등교회였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에베소 교회를 본받아 에베소 교회와 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⑵ 이단을 용납하지 않았다. 계 2:2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 2:7에서 보면 니골라 당을 네가 미워하는 도다 하였다. 이 같이 진리위에 굳건히 서 있는 교회입니다. 절대로 비 진리를 용납하지 않고 진리를 파수하는 교회임을 보여준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가려냈습니다. 진리에도 충만했던 교회였습니다. 이단 사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또 에베소 교회는 어떠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⑶ 주를 위한 교회입니다.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 같은 것을 보면 이 주를 위한 교회입니다.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것은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주님을 재판장으로 모시고 그를 기다리며 게으르지 않고 일을 하였다는 것이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끝까지 견디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폴리캅입니다. 폴리캅은 로마의 군대가 예수의 이름을 저주하고 배반하면 그에게 영예와 권세를 주겠다고 유혹 했습니다. 폴리캅은 86년 동안 주님은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셨는데 내가 왜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느냐 하면서 장작더미 위에서 장엄한 순교의 화형을 자청하였습니다. Ⅱ. 칭찬 듣는 원동력은 사랑입니다. 문제는 이 같이 훌륭한 교회로서 칭찬 듣는 교회가 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 말씀의 내용을 분석한다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어의를 생각해 보면 처음 사랑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버렸다고 하는 말은 처음에는 있었기 때문에 버리게 된 것입니다. 소유가 있었는데 이제는 소유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사랑으로 시작한 교회이기 때문에 칭찬 듣는 교회가 되어진 것이다. 책망 듣는 것은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책망을 듣게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모든 신앙행위에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져 버렸습니다. 주님이 불가불 편지를 써서 보내지 않으면 안될 만큼 사랑이 식어져 버린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다시 회복하지 않으면 버림을 받아야 할 만큼 위험한 지경에까지 놓인 것입니다. 처음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요. 예레미야 2장 2절에 보면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이라고 말한 그 사랑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려는 가슴 설레는 순간의 기쁨을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말로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가슴과 가슴으로만 전달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손이나 발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타는 뜨거운 가슴만이 또 다른 가슴을 뜨겁게 불태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주님을 내 구주로 처음 모셔 들일 때 그 가슴 설레게 하던 기쁨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 십자가 위에서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두 손과 발에 쇠못이 박히고 온 몸이 갈갈이 찢기어 방울방울 선지피를 흘리며 나의 힘든 죄 짐을 대신 짊어 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코허리가 시큰해지는 감동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 주님이 나를 사랑하사 당신의 몸을 버리셨다는 말을 듣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 내 모든 죄를 고백하면서 그렇게도 죄악이 더럽고 추해 보이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뜨겁고 간절하게 주님을 사모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런 것들이 저의 첫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날의 감격 주님께 대한 그 사랑스러움을 영원히 잊을 수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감사해서 불타는 정열 다 바쳐 주님을 섬겼습니다. 밥을 굶어도 배고픈 줄 몰랐습니다. 자지 못하여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먼 길을 걸어도 싫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위하여서라면 생명을 내어 놓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후 제 인생은 새롭게 변했습니다. 끊임없이 뜨거운 열정이 솟아올랐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거리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외쳐 전했습니다. 젊은 날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벌어먹기 위하여 일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그것이 더 고맙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후회 없는 삶이었습니다. 이 복음 위하여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첫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에게 미쳤다고 수군대던 것이 싫지도 않고 부끄럽지도 않았습니다. 아 !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께 제 인생의 전부를 걸었습니다. 모두를 희생 했습니다. 그 달콤한 주님과의 첫사랑의 밀월관계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Ⅲ. 처음 사랑을 잃었습니다. 훌륭한 에베소 교회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위대한 교회의 금 촛대를 옮겨 버릴지도 모르는 위험이었습니다. 그것이 왜 그랬을까요.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모든 면에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이 없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교리적으로 완벽해야 합니다. 교리는 교회의 뼈대와 같고 기둥과도 같습니다. 교리를 잘 지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소망이 있어야 하고 그 소망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견디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교리가 뼈대와 같다면 사랑은 살과도 같습니다. 뼈대가 없을 수 없지만 뼈대만 엉성한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나치게 살이 쪄서 뚱뚱한 것도 보기 흉하지만 바짝 말라 뼈만 엉성한 것도 보기 싫습니다. 척 보기에 혐오감을 줍니다. 적당하게 살이 오르면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건강합니다. 사랑 받게 됩니다. 교회가 그렇습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나무는 뿌리가 수분을 섭취하여야 잎이 푸르러 집니다. 수목이 울창한 것은 수분섭취를 잘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나무의 수분과 같아서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그 때 그 처음 사랑의 진실이 없습니다. 그 감격도 시들어 가고 그 기쁨도 없습니다. 진실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던 날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없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천 날을 하루 같이 지냈습니다. 라반의 딸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던 사람과의 결혼이 성사 되었습니다. 신방에 들었지만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라헬보다 언니 레아와 먼저 결혼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절망이라는 낱말이 없습니다. 희망의 샘입니다. 무한한 인내의 샘물을 솟아오르게 합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하여 7년을 더 일합니다. 7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 7년을 하루 같이 보낸 것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세월을 단축시켜 줍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어떤 시련도 이기게 해줍니다. 인내를 주고 불평불만을 없애 줍니다. 만사를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해줍니다. 이런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마무리를 잘못함으로 그 교회는 촛대를 옮겨야하는 불행스러운 교회입니다. 개인이고 교회이고 가정이고 간에 첫 사랑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면 에베소 교회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맺는 말 사랑을 했으면 사랑의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사랑은 자로 잴 수 있는 성격의 것이아니다. 저울로 달아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사랑을 알 수 있는 것은 가슴으로 알 수 있습니다. 체험으로만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또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생활 속에 체험하지 않고는 알지 못합니다. 가슴으로 해야 한다. 항상 뭉클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1장 8절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아니고서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사랑을 알게 하시고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사랑 일반적인 원칙에 관한뿐만 아니라 실제적적용이 되는 사랑을 가지라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랑을 지식으로만 가지지 말고 행함으로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마음과 입으로만 하지 말고 몸으로 생활에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 일가 3대 5명 익사(一家三代五名溺死) 1978년 1월 18일 오후 3시쯤 충남 서산군 음암면 상흥리 앞 상흥 저수지에서 마을 원 기성씨(35)의 장남 도연군이 살얼음이 있는 저수지에서 동네 아이들과 얼음을 타다가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동네 아이들이 보고 200미터 되는 가족에게 알리자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 원씨와 어머니 이 혜자 할아버지 원 동환씨 할머니(김 伊粉) 등이 어린이를 구하려다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이는 자식을 사랑하는 열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행동으로 옮기는 사랑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퇴색해 지며 언젠가는 살아지게 된다. 금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에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던 여러분들이여 낙심하지 말고 보다 더 열심히 사랑으로 마무리를 q로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