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아디라 교회 계2:18-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소아시아의 네번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대하여 생각할 시간입니다. 이 교회가 어떠한 교회인지 생각해 봅니다. 두아디라는 버가모에서 동남방으로 45마일 떨어진 지점에 있는 아주 작은 상공업 도시인데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아니한 보잘것 없는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상공업도시이기 때문에 직조업과 염직업이 성행했는데 때문에 이 곳에서는 직공과 상인들을 위한 조합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자주장사 루디아가 이곳 출신입니다. 이곳에서는 다른 도시들처럼 핍박이나 환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아디라 교회는 겉으로는아주 조용하고 편안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1.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그 교회가 세속화되었다는 것입니다. 18-20 두아디라 교회는 하나님을 잘 믿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많은 사업을 했고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했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어려움속에서도 참고 인내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이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졌다고 주님은 칭찬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이 세월이 갈수록 점점더 나아지는 신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자는 처음에는 뜨거운 것 같다가도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지는 신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빨리 파악하고 고쳐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두아디라 교회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교회였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중에 이세벨이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세벨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구약시대의 시돈 왕인 엣바알의 딸인데 나중에 이스라엘 나라의 아합왕의 왕비가 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바알신을 섬기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나라로 시집을 오면서 자기 아버지가 섬기던 바알신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신을 섬기도록 강요했습니다. 만일 거부하는 자가 있으면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이때 죽임을 당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나봇이라고 하는 포도원 주인이었습니다. 이 당시에 활동한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 선지자인데 그가 갈멜산에서 바알신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싸운 일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있고나서 엘리야는 이세벨이 자기를 잡아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멀리 광야로 도망을 갑니다. 불같은 능력을 받았던 엘리야 선지자도 이세벨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이스라엘 벡성들을 공포에 떨게 한 사람이 바로 이세벨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타락시킨 사람이 바로 이세벨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세벨같은 선지자가 두아디라 교회안에 있어서 성도들의 신앙을 타락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앞에서 두아디라 도시에는 상공업도시이기 때문에 직공과 상인들을 위한 많은 상인 조합들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조합원들이 모여서 회식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회식을 할 때에는 꼭 이방신전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방신에게 경배하는 종교적 행사로 회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상앞에 제주를 붓는 것으로 회식을 시작하는데 그 때 그들이 먹는 음식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신앙양심상 참여하기가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참여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조합원의 권리와 이익까지도 배당받지 못하게 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때에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여선지자 이세벨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고민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상은 신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신도 아닌데 우상앞에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이 죄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죄를 체험해 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체험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것이 죄다 아니다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앞에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즉 육체는 어떻게 되든지 영혼만 깨끗하면 그것이 정말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몸을 팔아도 온 몸이 망가져도 내 마음만 더러워지지 아니하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지주의 이단의 이론입니다. 그는 이러한 이론으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믿음만 가지고는 살 수 없고 때에 따라서는 적당히 타협도 할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인간의 처세술을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여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은 먹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생수와도 같은 것입니다. 살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성도들은 아무 꺼리낌없이 회식에 참석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면서 타락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먹고 살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며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처세술을 가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세속화된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2. 주님은 믿음을 떠난 그들에게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21-23 오늘 말씀 18절에 보면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그들의 신앙의 상태를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불꽃같다는 말씀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신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주님은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고 나타나셨습니다. 이 발은 원수를 밟아 부수어 뜨릴 때 나타나는 발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진리를 버리고 그릇되고 거짓된 세속적인 삶을 따라가는 그들을 발로 밟아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까지 진노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21절 말씀에 그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세가지로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는 이세벨에 대해서 주님은 그를 침상에 던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2). 침상은 병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를 병상에 던져서 거짓을 가르친 죄에 대하여 벌을 받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이세벨의 사상을 따라가고 추종하는 자들에 대하여 주님은 그들이 그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란 가운데 던져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2).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하는 것은 거짓을 가르치는 자도 잘못이지만 그것을 따라가는 자도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거짓을 따라가는 자들에 대하여 강음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간음이 무엇입니까? 야고보 선생님은 야고보서 4: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니라” 한마디로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짝하여 돌아다니는 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간음하는 행위이며 그러한 행위를 하는 자는 그때부터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주님은 이세벨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의 자녀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자녀들을 사망으로 죽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3). 즉 거짓을 가르치는 자 뿐만아니라 그 거짓된 사상을 추종하고 따라가는 자도 심판하시고 그 자녀들까지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까지 엄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들이 주님의 교회를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교회를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또한 심판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하나님이 두려운 줄 알고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시대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재산을 다 팔아서 사도들의 발앞에 바칩니다. 그런데 다 바치지 않고 절반은 감추고 절반만 바쳤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재산을 바치고 존경받는 것을 보고서 자기들도 존경받기 위하여 꾀를 쓴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묻습니다. “이 것이 전부이냐?” “예, 전부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베드로가 이 말을 하는 즉시로 그들은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앞에서 성령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들이 죽어서 나가는 것을 보고 성도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하나님앞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신자가 된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에서도 이처럼 거짓을 가르치고 따라가는 악한 자들을 심판하여 다시는 교회안에서 이러한 악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교회를 흔들지 말아야 합니다. 예로부터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를 해롭게 하고 복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올바른 신앙 지켜서 주님앞에 설때에 부끄럽지 않은 신자 되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은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 대하여서는 순수한 믿음을 그대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24-29 이처럼 두아디라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성도들이 세상으로 달려갈 때 같이 따라가지 아니하고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않았고 회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때문에 그들은 조합원의 권리와 이익을 배당받지 못했고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순수한 신앙을 끝까지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전 씨랜드 화재사건으로 많은 어린아이들과 교사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화재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훈련원 씨랜드가 불법으로 인허가를 받은 사실이 밝혀 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끝까지 투쟁했던 이장덕이라고 하는 한 연약한 말단 여직원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는 비망록에서 씨랜드와 관련해서 상사로부터 끊임없는 압력과 회유와 협박을 받았음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여러가지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상사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자 과장은 “당신이 군수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일이지”라는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한번은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전화가 집으로 걸려와 남편과 함께 친척집으로 피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500,000원이 든 돈봉투가 배상자와 함께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계좌번호를 확인하여 그 돈을 되돌려주고 “굶어 죽어도 그런 돈은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힘없는 말단 직원,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온갖 회유와 협박을 받아가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올바른 행정을 펴기 위해 노력했던 실무 공직자였습니다. 이렇게 하고 어떻게 사회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적당히 타협하고 살았으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이 옳았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를 받았고 경찰은 그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그는 이제 20년의 공직생활을 끝내고 가정주부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자를 찾으시고 이러한 자를 기뻐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다른 짐을 지울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신앙을 내가 다시 올때까지 굳게 잡고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면 그들에게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28). 이 새벽별은 임금이 손에 들고 있는 홀을 말하는데 이것은 장차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오시는 날 주님과 함께 왕노롯하며 살도록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고생스럽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나아가는 자가 결국은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 가지고 살아가는 신자 되시기 바랍니다. 조갯살이 없고 조개 껍질만 남은 조개가 있습니다. 조개잡이가 빼낸 것도 아닌데 꼭 닫혀져 있는 조개에서 조갯살이 빠져나간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때 조개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조개껍질 위에 조그만 구멍이 나 있는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쇠고둥이라는 것이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쇠고둥은 조그만 송곳같은 것을 가지고 조개껍질에 구멍을 냅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조금씩 조갯살을 빨아서 빼내 먹는 것입니다. 쇠고둥은 아주 작은 존재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조개의 살을 다 빼먹는 위험스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껍질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조개를 살리기 윈한다면 이 쇠고둥을 죽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서서히 메말라가고 형식만 남은 교회생활을 하다가 세상으로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싱싱했던 교회생활은 이제 어떻게 된 것일까? 그날의 감격과 헌신의 다짐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마도 그에게는 자신만이 아는 죄악이 있을 것입니다. 숨겨진 죄악, 세속화의 물결, 그것을 방치하고 때로는 즐기며 지내는 동안 그의 영적인 삶은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짓된 것은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된 것은 배우지도 말아야 하며 따라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지키는 것이지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는 타협이나 인간의 처세술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따라갈 때에 신앙이 병들고 세속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구별되지 못한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짓을 버리고 진리를 따라가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노력하지도 않고 내 신앙이 자라고 복을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가오는 2,000년대를 맞이하여 온갖 세속화의 물결이 교회안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처럼 거짓을 용납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교회는 더이상 주님의 교회로서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마땅히 거룩해야할 신자의 신앙생활이 세속화되어가는데 대한 경고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물밀듯이 밀려오는 세속화의 물결속에 진리를 지키고 믿음을 지키는 신자가 되어 이 후에 주님앞에 섰을 때에 잘했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주님 저희들은 말세를 당하여 온갖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때에 믿음을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리로 무장하게 하시고 거짓을 물리치게 하시고 주님앞에 바로 서는 신자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세상과 타협하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이 교회를 진리가운데 지켜주시고 마지막 때에 이 시대의 등불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성산교회에 다니는 모든 성도들 주님앞에 바로 살아서 주님 사랑받는 신자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