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승리하는 교회

믿음으로 승리하는 교회
계2:12-17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 시리즈 3



독일의 트리에(Trier)라는 지역에 한 유대인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법률가였습니다.
어느 날 소년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유대인인데 왜 유대인 회당에 안가고 교회(독일 루터교회)에 나가요?”
“아들아,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따돌림 당하지 않고 이 땅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단다.”
본래 이 소년의 할아버지는 유대인 랍비였습니다.
그의 큰 아버지도 역시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랍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의 아버지는 유대인들에 대한 사회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심의 경험이 없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런 신앙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나이 6살에 유아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년을 믿음의 아들로 양육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자라던 이 소년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교회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 해 1847년, 엥겔스라는 사람과 영국 런던에서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을 발표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공산주의 창시자인 칼 막스(Karl Marx)입니다.

만약 이 소년이 부모로부터 신앙의 교육을 받고,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다면 인류의 역사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어쩌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런 비극은 되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올바른 믿음생활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할 때도 있습니다.
결국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지 못하고,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비극의 주인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버가모 교회가 바로 이런 믿음의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강한 교회 비전을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마다 자신에 대하여 각기 다른 표현을 쓰셨습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다니는 이”라고 자신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서머나 교회에게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난 이”라고 자신을 소개 하셨습니다.
오늘 버가모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다같이 12절을 보겠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주님께서는 자신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주님께서 칼을 가지셨다”는 말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듭니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습니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에 보면,
일본 칼은 회 뜨기에 적당하고, 중국 칼은 돼지비계 내려치기에 적당하고, 한국 칼은 배추나 무를 썰기에 적당하다고 합니다.
당시 총독과 로마 군인들은 양쪽으로 날이 선 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칼을 가지고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죽이는데 사용했습니다.
주님께서 좌우에 날선 칼을 가졌다는 것은 주님만이 진정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권세는 칼을 통한 무력이나 폭력이 아닙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계시록 1:16절에 “그(예수)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히 4:12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병든 자를 치유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모든 악의 권세를 물리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곧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표준도 바로 말씀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말씀으로 교회를 다스리시고,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날선 검과 같은 심판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12절에 나타난 검이 16절에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오늘 말씀을 듣는 버가모 교회가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회개할 것인지 아니면 심판 받을 것인가를 촉구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면 버가모 교회가 처해있는 상황을 살펴봅니다.
13절 말씀 상반절을 보십시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버가모 교회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56Km 정도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버가모 시는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지식과 문화의 중심도시입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은 아프리카 북단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입니다.
당시 이 도서관에 필적할 만한 곳이 바로 버가모 도서관이었습니다.
모든 책을 손으로 쓰던 시대에 장서가 무려 20만 권에 달했습니다.
애굽왕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일하던 사서가 버가모로 일터를 옮기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감옥에 가두고, 세계 유일한 종이인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시켰습니다.
버가모는 종이가 없어 책을 만들 수 없게 되자 송아지 가죽이나 양의 가죽을 얇게 가공처리해서 새로운 종이 개발해 냈습니다.
버가모(퍼가모)라는 이름에서 퍼가미르 종이란 이름의 파치먼트(parchment, 양피지)란 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둘째, 소아시아 지방의 수도로서 행정중심도시입니다.
공무원들과 군인들이 많았습니다.
로마가 파송한 총독이 있었습니다.
당시 총독에는 두 종류, 통수권이 없는 총독과 통수권을 가진 총독이 있었습니다.
통수권을 가진 총독이란 주민의 재판권과 생사까지도 관할하는 권력을 가진 총독으로 어떤 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할 수 있는 절대 권세를 가지고 총독입니다.
버가모 총독은 바로 그런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던 총독이었습니다.

세째, 우상의 중심도시입니다.
버가모 도시 언덕에는 제우스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 아스클레피우스 등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섬겼던 신은 아스클레피우스(Aesculapius) 라는 신입니다.
이 신은 일명 \\\"의료와 치유의 신\\\"이라고 불리는 뱀의 형상을 한 신입니다.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 의사들이 입는 가운이나 병원의 입구나 현관에 십자가 같은 나무에 뱀이 휘감고 있는 그림을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버가모 지역에서 가장 많이 섬기던 아스클레피우스 라는 신입니다.
이렇듯 버가모 도시 전체가 엄청난 우상들과 악한 영들이 많았기 때문에, 주님은 그곳을 \\\"사단의 위\\\" 즉 “우상의 제단이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 버가모 교회가 있었습니다.
지식인들과 일반 시민들은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이라고 비웃고 비방했습니다.
당시 신앙인들은 황제 숭배와 우상의 신전에 경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총독과 그들과 결탁된 각종 우상숭배자들은 버가모 교인들을 무섭게 핍박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13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무슨 말입니까? 엄청난 우상들과 악한 영들이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순교의 믿음을 가진 버가모 교회를 칭찬하십니다.
버가모 교회는 순교자를 배출한 교회입니다.
그 대표적인 순교자중 한 사람이 안디바입니다.
주님은 그를 가르쳐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우스가 주님이라고, 혹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던 도시에서 그는 담대하게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시고, 주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인들이 믿음을 지킨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책망 받을 것이 있었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그들 가운데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에 대해서는 이미 에베소 교회를 향한 메시지에서 다루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율법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육신의 쾌락과 성적 방종에 빠졌습니다.
이 시대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국적으로 음란의 열풍이 불었습니다.
정부차원에서 성매매 금지법을 만들어서 강력 단속을 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풍선효과 때문에 더 많은 편법으로 음란이 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발람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구약 민수기에 보면 선지자 발람은 발락이 내놓은 돈에 눈이 어두워져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자리로 그리고 음행의 자리로 이끈 자였습니다.
발람의 교훈은 배금주의 혹은 맘몬주의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합니까?
돈 때문에 신앙을 저버리고, 양심을 팔아먹고, 돈 때문에 돈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올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가려면 니골라당의 교훈, 즉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벗어나야 합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 사고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세속적인 쾌락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극복할 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주님께서는 16절에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여기서 주님이 임하신다는 말은 주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자를 징계하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어떻게 하시겠다고 합니까?
검을 가지고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검으로 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약속을 또한 주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감추었던 만나는 곧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생명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채우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로마 법정에서는 무죄한 사람에게 판결을 내릴 때 흰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므로 ‘흰 돌\\\'은 승리의 상징입니다.
‘흰 돌을 주신다\\\'는 것은 승리자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거룩과 순결함으로 살면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을 영원히 기록해 놓으시고 기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버가모 교회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의 비전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봉사를 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헛수고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는 그 어떤 행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산은 돈이나 건물이나 부동산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은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게 만듭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믿음은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만듭니다.
믿음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게 만듭니다.
믿음은 병든 자를 치유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원동력입니다.
믿음은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믿음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믿음은 세상 모든 것을 이기는 힘입니다.

이 사실을 이미 믿음의 길을 걸어간 선진들이 증명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5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세상을 이깁니다.
어떤 상황이나 고난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전능하신 주님께서 이기게 하십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자, 믿음으로 사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바리톤 목소리를 가진 한 청년이 돈이 없어 대학을 중퇴하고 보험회사 세일즈 맨이 되었습니다.
우연히 방송국 공개홀에서 노래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 NBC방송국의 전속가수로 활약해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23세였습니다.
그 앞에는 이제 돈과 인기가 보장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그가 좋아하는 교회에서 그리고 복음집회에서 찬양할 기회가 날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며 기도하던 그가 자기 집 응접실 피아노앞에 앉았을 때 어머니가 평소에 좋아하여 10년을 애송해온 신앙시 한편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시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 제 목소리, 제 존재, 제 젊음 모두 주를 위해서만 드리겠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멜로디를 어머니가 애송하는 신앙시에 맞추어 작곡을 시작합니다.
이날 탄생한 찬송이 찬송가 102장입니다.

♪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조지 베버리 쉐아(George Beverly Shea)의 이야기입니다.
그 후로 그는 전도자 빌리 그래함을 만나 그와 더불어 평생을 동역하며 찬양과 간증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역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섬기는 믿음의 삶이 세상의 명예와 부귀보다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세상 즐거움을 다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귀한 분으로 찬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입술의 고백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향한 사단의 공격 무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핍박이요 다른 하나는 유혹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버가모 교회는 핍박에는 생명을 버리는 순교적인 정신으로 잘 싸웠습니다만,
그러나 세속적인 유혹에는 약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단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때로는 강력하게 공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드럽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삶에 신앙의 도전이 닥쳐올 때 우리는 결단을 내리고 선택해야 합니다.
버가모 교회는 세속적인 쾌락과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믿음을 지키는데 결코 타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위협과 유혹 속에서 신앙의 순수성과 거룩함을 지키는 참된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활활 타오르는 풀무불 앞에서도 의연하게 여호와 신앙의 길을 선택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언제나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생명의 만나를 먹으며, 거룩하고 순결한 믿음을 통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