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칭찬 듣는 교회 계2:8-11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기도하는 중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됩니다.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중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두아디라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버가모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하나하나를 들어서 지적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교회는 칭찬만 듣는 교회, 어떤 교회는 책망만 듣는 교회로 어떤 교회는 책망과 칭찬으로 예리하게 지적하여 말씀해 주셨던 말씀을 사도 요한은 기록에 남긴 것중 일부분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조금 바꾸어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지상에 현대교회 성도들 더 나가서는 이곳에 앉아계신 여러분 하나하나에게 주께서 말씀하신다면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를 향해 말씀하심과 같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무섭게 책망만 받을 성도들이 이곳에 있을 것이요, 어떤 이는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을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칭찬만 많이 받을 성도들이 이곳에 계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말씀을 들을 때 교회라 할 때 성도가 되는 나 하나를 교회로 함께 생각해 주실 때 바로 이 시간 은혜의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당시 일곱 교회는 일곱교회 성도들을 말씀했던 것 같이 오늘 현대교회는 현대교회를 드나드는 성도 하나하나를 의미한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서에 나타난 일곱교회는 세 가지 교회로 말씀했습니다. 책망만 듣는 교회, 칭찬과 책망을 듣는 교회, 칭찬만 듣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시간 저는 지상의 교회를 네 가지 교회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Ⅰ. 그중 하나는 무덤교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무덤교회란 계시록 3장 1절에 말한 사데 교회같은 교회였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라고 사데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직분자로 성경을 들고 다니는데 죽은신앙으로 책망받을 교인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무덤교회는 책망 받을 자들만 모인 교회입니다. 무덤은 죽은 시체들만 있는 곳입니다. 죽은 시체가 있는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증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곳은 소리가 없는 곳입니다. 이곳은 기도의 소리도 없습니다. 찬양하는 소리도 없습니다. 말씀의 소리가 없습니다. 지금 이시간 나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나는 어떤 신자인지를 말입니다. 또 하나는 움직이는 운동력이 없는 곳입니다. 무덤가에 가보면 수천수만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에서도 활동하고 움직이는 모습은 낮이나 밤이나 새벽을 막론하고 움직이는 일이 없습니다. 무덤교회는 죽은 신앙의 사람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저는 30여 년 전에 양봉을 재미로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따뜻한 이른 봄인데로 벌 소리도 없고 움직이지 않는 벌통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하여 열어 보았더니 벌들이 모두 죽어있었습니다. 죽은 신앙, 죽은 무덤교회에서는 소리도 없고, 움직이는 활동도 없는 교인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Ⅱ. 또 하나는 박물관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교회는 과거의 전통만 주장하고 자랑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지금 서구에 가면 박물관 교회들이 대도시마다 즐비하게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에 가보면 유명한 「리버사이드 취취」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만 해도 그 웅장하고 장엄한 교회가 가득하게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미국의 엄청난 부흥의 시대를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술적이면서도 장엄한 교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나온 과거의 신앙이나 전통만 주장하고 시들고 잠자는 교인들이 머물러 있는 교회를 박물관 교회라고 했습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염려하고 있습니다. G.N.P 2만불이 넘게되면서부터는 교인이 줄어들면서 교인없는 교회가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인없는 텅빈교회는 지난날의 찬란한 신앙을 기념하는 박물관 교회에 지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지난날의 신앙생활의 찬란함을 자랑하고 오늘날 신앙을 잊고 사는 박물관 신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Ⅲ. 세 번째는 극장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구경꾼들만 모여드는 교회입니다. 극장의 관람객들이 좋은 프로를 따라 모였다 헤어지는 것같이 현대교회도 모였다 헤어지는 구경꾼 신앙인들이 모인 교회를 극장교회라고 이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 의식을 가지고 섬기고 봉사하고 섬기면서 일하려는 교인이 되어야 하는데 말씀입니다. 예배는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데 예배 보러 나오는 교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설교를 들어보려 나오고 찬양이나 기도하는 일이나 다른 이들이 은혜 받는 것을 보고 돌아가는 극장교회 교인들이 있습니다. 주일날 예배당에 나와서 일하고 열심히 하는 교인들이나 구경하는 교인들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께 앞서서 헌신하고 봉사하면서 드리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교회는 구경꾼 교인이 더 많다고 하는 슬픈 사실입니다. 나 자신을 구경꾼 교인이 아닌가 깊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의 몸된 교회에서 남들이 헌신하고 봉사하는 모습이나 구경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십일조하여 복되게 신앙 생활하는 것을 구경하는 하는 교인이 바로 극장교회의 교인이라 하겠습니다. 나로 주의 몸된 교회 생활에서 친히 주의 일에 참여하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구경꾼 교인은 극장교회를 만들어 가는 이들이라 할 것입니다. Ⅳ. 네 번째는 살아있는 칭찬듣는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같이 칭찬받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이 땅에도 현대교회 중에는 책망 받을 교회도 있거니와 칭찬듣는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칭찬듣는 교회는 주께로부터 칭찬듣는 성도들이 가득한 교회입니다. 내가 칭찬듣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영신교회는 주께로부터 칭찬듣는 교회가 되게 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살아있는 칭찬듣는 교회를 초대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말씀 전도 운동이 불같이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복음 전도를 위하여 일하는 성도, 일하는 교회는 주께로부터 칭찬듣게 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 뜨겁게 기도 운동이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 성령충만된 교인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모이면서 기도하며 기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교회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게 위해 고난받는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죄로 인해 영원히 형벌 받을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탄생 때부터 고난의 현장이었고, 생을 마지막 할 때도 십자가 위에서 고난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칭찬 받는 교회는 고난받는 이웃과 함께 하는 고난받는 교회가 되게 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칭찬 듣는 교회』라 했습니다. 칭찬 받은 성도가 있는 곳에 칭찬 듣는 교회가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나의 믿음과 나의 사명을 감당키 위하여 고난을 담당하는 성도는 주께로부터 칭찬 받는 축복이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잘했다 칭찬듣는 교회가 된 것처럼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듣는교회로 오늘 우리에게 크게 감명을 주고 신앙의 본이 된 것 같이 우리 영신교회와 성도들이 주께로부터 칭찬듣는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