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의 비전 계2:8-11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서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전은 주신다. 꿈을 꾸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헛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선한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우리가 흔히 꾸는 그런 무의미한 꿈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하나님이 주신 꿈은 잊혀지지 않는다. 어떤 꿈은 우리가 꿈을 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나에게 최선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은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그것은 결코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좋은 것을 준다해도 그것과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꿈은 최고의 가치가 있다. 이 세상 어느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을 포기 하더라도 그것을 얻으려 한다.(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하나님이 주신 꿈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한다. 모든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방향지워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속적인 삶에 관심이 없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현재 나의 모습을 점점 변형 시킨다. 왜냐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내 자신을 준비 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업그래이드한다. 꿈이 없는 사람은 하루 하루 그저 그런 일로 세월을 보낸다. 그래서 점점 속물이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주신 꿈은 모든 고난을 이기게 한다. 꿈이 없으면 고난이 닥칠 때 쉽게 포기한다. 고난이 없을 수 없다. 길을 가다보면 언젠가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산길을 넘어야 할 때도 있다. 위험한 낭떠러지를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할 때도 있다. 피곤하고 졸음이 쏟아지지만 결코 졸아서는 않되는 위기가 닥칠때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기도한다. 이것이 비전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우리교회도 세상의 많은 교회 가운데 하나이지만, 나름대로 꿈이 있다. 우리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비전이 있다. 우리교회는 대형교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목적은 아니다. 그런 모습들은 우리가 소망하는 목적이 이루어지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외형적인 성장이 목적은 아니다.
우리교회는 선한 이웃이다. 아무런 댓가 없이 선한 마음으로 서로를 돕는 교회이다. 우리는 선을 베풀고도 고맙다는 인사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교회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선한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을 차고 누군가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듣는가? 아니다. 오히려 함께 공을 차서 즐거웠다고 말할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선한 일을 즐기는 교회이다.
미식가가 좀더 맛있는 음식, 고품격의 음식문화를 찾는다. 그렇듯이 우리교회는 진리를 찾는 교회이다. 모든 거짓을 가려내고 모든 불합리한 것과 부정을 가려내고 진리를 탐구하는 교회이다.
거짓은 삶을 부패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개인과 가정을 위태롭게하고 심지어는 넘어지게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이다. 우리는 선행을 쌓는것은 의로운 은행에 저금을 하듯이 이웃을 돕는게 아니다. 하나님의 벌을 모면하기 위해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꼭 복을 받을 목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선을 행하는 것 그 자체가 복이 된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을 행한다. 우리는 가난한 자와 고난을 당하는 자, 마음이 아픈 사람, 억눌린 사람,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우리도 그런 마음을 품게 하시는줄로 믿는다. 그래서 우리가 선을 행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이고, 성령께서 우리안에서 일하실 뿐이다.
우리가 진리를 사랑하는 것도 거짓을 행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그들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을 적으로 삼고 그들과 싸우기 위함도 아니다. 거짓 자체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파멸시킨다. 오직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하고 나에게 평안을 주고 참된 기쁨을 준다. 하나님은 진리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은 진리 그 자체이시며,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진리는 사실은 거짓임을 우리는 고백한다. 우리 교회는 진리가 살아있는 교회이다.
선린교회의 목적은 거창하지 않다. 다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켜나가고 확장시키려 할 뿐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누구든 여기에 동참할 수 있다. 같은 목적으로 전진할 수 있다.
이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보다 실제적인 우리의 비전을 바라보고자 한다.
본론
나는 계시록에 나오는 서머나교회를 참 동경한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 주님께서 얼마나 서머나 교회를 사랑하시는지 잘 알 수 있다. 우리교회는 하나님 앞에 천덕꾸러기가 되어서는 않된다. 서머나교회같이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하리라.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주님이 서머나 교회에 편지 하시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말씀하신다 하였다. 처음과 나중은 모든것 되신 주님을 의미한다. 전지전능하시며 온 우주의 주인이신 주님,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그 뜻대로 이루시는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셨다. 당시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으며 지속적인 핍박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 가운데 있는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다. 현실적으로는 커다란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전능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힘을 불어 넣고 계시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선언하고 계신다. 이것은 승리하신 주님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죽음이란 모든 것이 끝나고 멸망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이것은 기적과 같은 승리, 절대적인 승리를 뜻한다. 서머나 교회가 실제로 죽음에 직면해 있더라도 주님을 따라 부활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죽음 조차도 서머나교회를 이길 수 없다. 전능하신 주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 하였듯이 서머나교회가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교회는 승리하는 교회이다. 아무것도 심지어는 죽음도 우리를 이겨내지 못한다. 아무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교회의 비전이다. 우리교회는 승리하는 교회이다.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그러나 현실적으로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는 교회였다. 게다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교회를 훼방하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기득권을 가졌던지, 그 도시의 유력자이든지, 아니면 권력자들과 결탁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사사건건 서머나교회를 핍박하였다. 경제적으로 압박하든지 말로 협박하든지 되먹지 않는 이론을 내세워 영적으로 공격하든지 여러가지 모양으로 교회를 훼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서머나교회가 부요한 교회였다. 세속적인 부자들은 넘쳐나는 재물을 주체할 길이 없어 그 재물로 자기가 원하는 온갖 짓을 다하고, 재물을 팔기도 하고 다른 재물을 사들이기도 하면서 욕심에 사로잡히고 영적인 눈은 멀어 버린다. 그래서 재물을 가지고 얼마나 선한일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답답한 마음을 채울길이 없어서 재물을 자랑 하기도 하고 그것을 끌어안고 더 부풀리려고도 하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왜냐면 그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댓가없는 선행과 봉사로만 채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실때는 그보다 더 불쌍한 모습이 없다. 그러나 서머나교회는 부요한 교회였다. 그들은 환난 중에, 궁핍한 중에도 결코 이웃을 모른척 하지 않았다. 베풀 수 있는 모든 것을 베풀며 살았다. 자기가 베풀 수 있는 모든 것을 베풀었으니 실상은 가장 부요한 자였다. 서머나 교회는 선한 이웃이었다. 우리교회는 모든 이웃에게 부요한 교회이다. 궁핍한 중에도 부요한 교회가 우리교회의 비전이다.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서머나교회가 세워졌을 당시는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때였다. 서머나교회는 갖은 핍박을 겪었지만 결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무도 서머나교회의 신앙을 꺽을 수 없었다. 서머나교회의 감독은 요한의 제자 폴리캅이었는데 그는 86세워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로마당국에 의해서 붙들렸다. 마침 당시의 로마 총독인 스타티우스는 폴리캅과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다. 스타티우스는 폴리캅에게 예수를 모른다고 한마디만 하면 풀어줄테니 멀리 도망가서 믿으라고 하였다. 그때 폴리캅은 ‘86년간 나는 그분을 섬겨 왔고, 그분은 나를 한번도 모른다고 한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하란 말인가?’하고 거절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스타티우스는 그를 살리려고 하였지만 성난 군중은 그를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화형 시키고 말았다.
서머나교회는 황제 숭배를 끝까지 거부한 교회였다. 그래서 많은 박해를 받았으나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교회는 서머나교회 뿐이다. 서머나교회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였다. 어떤 핍박도 서머나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서머나교회는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였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고난 앞에 믿음을 버리지 않는 교회였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10일동안 환난을 받게 될 것이지만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하셨다.
10일이란 정해진 기간이란 뜻이다. 실제로 100년 경부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밀라노 칙령이 발표될때까지 교회는 핍박을 받았다.
사실은 세상의 모든 교회가 환난을 당한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온 세상이 환난을 당하는데,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교회는 비전이 있기 때문에 그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모기가 있으면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물려서 가렵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기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여러가지 환난이 있고, 심지어는 그 환난 때문에 죽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죽음이 곧 끝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멸망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사랑이 있지 아니한가? 사랑은 묘약이다. 모든 고난을 잊게 한다. 궁핍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게 한다. 죽음 앞에 무릎을 꿇지 않게 한다. 이것이 사랑의 힘이다. 우리에게는 비전이 있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비전이다.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다음으로 우리에겐 성령이 주시는 소망이 있다. 그것은 가장 두려운 것,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소망이다.
둘째 사망은 영원한 사망이다. 지옥에 떨어지는 사망이다. 두번다시 기회가 없는 완전한 사망이 둘째 사망이다. 환난 중에 당하는 죽음은 고작 첫째 사망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모두다 겪는 사망이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사망이 있는데 그것은 둘째 사망이다. 아무도 두번째 사망을 당하고서 부활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성령께서 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승리하였으니, 결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으리라 약속하셨다.
이것이 우리교회의 소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며 살고 마지막에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거기는 다시는 사망이 없는 곳이다. 거기는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우리교회의 비전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에 보면 7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기록되어 있는데 서머나교회는 책망이 없는 교회이다. 서머나 교회는 아무런 흠도 없는 교회였을까? 나는 여기에서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세상에 흠이 없는 교회는 없다. 다만 책망이 없을 뿐이다. 왜 책망이 없을 수 있을까? 그것은 회개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회개하는 교회에게 책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책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책망이 필요없다. 나는 우리교회가 흠이 없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지 않는다. 다만 책망이 필요없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영적인 생명력이 우리교회의 비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