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디라교회

두아디라 교회
계2:18 -29



가. 들어가는 말.

우리는 계속해서 이 시대에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들을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통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를 하나씩 묵상하다가 보면 우리나라 교회가, 우리 교회가 지금 하나님의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에 얼마나 많이 떨어져 나와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있는 두아디라 도시는 상업이 매우 발달한 지역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4절에 보면 비단장사인 루디아의 고향이 바로 이 두아디라입니다.

특별히 이 지역은 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끼리 조합이 결성되어서 이 조합에 들지 않으면 도저히 장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업이 많이 발달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이 상업조합에 들려면 자연히 이방인들과 같이 때로는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 식사는 대부분 거기에 많이 있던 태양신이라는 아폴로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자연히 신전에 있던 여자 사제들과 음행으로 이어지는 무서운 죄를 범하게 하는 도시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외부에서 오는 박해도 아닙니다. 또 유대인들이 괴롭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두아디라 교회 내부에서 나오는 엉터리 가르침이요 신앙 행동 때문입니다. 이러한 엉터리 가르침은 바로 두아디라 성도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타협점으로 나왔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은 두아디라 지역에 있는 상업적인 조합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 소속된다는 것은 곧 믿음의 본질을 우상 숭배와 행음으로 더럽혀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소속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바로 먹고 입고 사는 것이 이 조합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세상적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가? 돈을 벌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것인가?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손해보더라도 그리스도인의 방법으로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성도님들과 이야기 하다가 보면 오늘 우리나라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장사할 것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이 두아디라 성도들이 갖는 문제가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두아디라의 사회와 동일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오늘 읽은 본문말씀입니다. 우리는 두아디라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듣지 않고는 우리 교회도, 우리나라도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 몸 말.

두아디라 교회에게 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알아야 하는 교회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일이 점점 많아지는 교회입니다.

19절 말씀에 보니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처음 행위보다 점점 많아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인 사업과 성도간의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성도의 서로 섬김의 봉사와 성도간에 또는 교회 외부에서 오는 아픔과 고통을 견디고 참는 인내가 점점 많아지는 교회가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우리는 성장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이러한 교회를 우리는 성숙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점점 성숙하면서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점점 확대하는 교회가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성장과 성숙을 한다는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로, 복음의 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그것은 영적인 일이 점점 많아져서 영적인 일로 바빠지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이제 영적인 일에 바빠져야 합니다. 교회에서 영적인 일로 분주해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교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영적인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이 많이 자주 있어야 합니다. 모여서 다른 성도 흉보고 다른 성도의 단점을 재미있다는 뜻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로 채우기를 힘쓰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나는 일이 영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암송하는 일로 바쁘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일로 바뻐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일로 바뻐 질 때에만이 우리 생활에 영적인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우리의 교회가 영적인 열매로 가득해 집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애쓰는 일이 영적인 일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성경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변화시킨 감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 바쁜 것이 바로 영적인 일입니다. 그토록 좋은 것이면 다른 사람에게 좀 나눠주십시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을 모르기 때문은 아닙니까? 아직도 겉으로만 예수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영적인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지금도 사람을 보내십니다. 이 일에 동참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일입니다.

영적인 요구들이 나에게 많아지고 영적인 일로 내 일이 점점 바빠진다는 것은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일주일 내내 교회와야 됩니다. 그러면 내 생활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올해 우리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 중에는 화요일, 수요일, 앞으로 목요일 , 금요일 주일 교회에 나오셔야 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향한 영적 성숙과 은혜를 주시기 위한 요구로 여기고 기쁘시게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후서 7장 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영적인 일이 점점 많아지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일로 분주해지는 성도들로 가득 차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우리 교회, 우리 성도님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영육 간에 순결함이 있는 교회여야 합니다.

본문 20~21절 말씀을 보니 두아디라 교회에 대하여 예수님이 책망을 하시는데 이 책망은 고치라는 사랑의 말씀입니다. 그 책망이 이세벨을 용납하였다는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이세벨로 인하여 교회 성도들 중에 행음을 하고 우상에게 바쳐진 재물을 먹는 사람이 있어서 교회의 순결성을 더럽혔다는 말입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왕 중 아합이라는 왕의 왕비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세벨이라는 왕비는 아합 왕에게 시집을 올 때 자신의 나라에 있던 바알이라는 우상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온통 바알 신 앞에 꿇어 엎드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방신들은 모두가 그 제사가 끝이 난 뒤에 재물로 바쳤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광란의 밤을 보내다가 항상 육체적인 행음으로 이어 진다는데 그 죄가 더욱 큽니다.

두아디라 교회에서도 이세벨과 같이 이방인들의 우상 앞에 같이 앉아서 제사를 지낸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 광란의 이방인들과 함께 육체의 행음을 하는 성도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을 교회가 용납하였다. 즉 그대로 두었다는 말입니다. 나아가 그것이 정당화되고 참여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교회에서 용납되었던 것이 바로 장사 때문입니다. 이른바 먹고살기 위하여 자신의 하나님 앞에서의 순결성을 모두 팔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충격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18절에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그 눈이 불 꽃 같다고 소개합니다. 또한 23절에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을 알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에서 이 세상 아무도 모르게 일을 치루었다고 하더라도 누가 보고 계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불꽃같은 눈으로 그 사람의 마음과 뜻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행하는 모든 일들과 심지어 마음의 뜻과 생각까지도 하나님은 보고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육신적인 행음과 영적인 행음은 같은 것입니다. 따로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육신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서는 많은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물질을 가질까? 연구하게 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정도 되면 이미 재물이 우상이 되어 버립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은 , 성도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적인 순결성과 육체적인 순결성입니다. 교회가 이 하나님 앞에 순결성을 잃어버리면 22절 23절 말씀을 보면 침상에 던질 것이요, 큰 환란 가운데 던지고,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인다고 하고 있습니다. 침상에 던진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아픔으로 눕게 된다는 말입니다. 큰 환란 가운데 던진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엄청난 고통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사망으로 자녀를 죽인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자녀는 부모의 희망입니다. 그런데 그 자녀를 죽인다는 말은 생활의 희망을 없애버린다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회개치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너희는 빛의 자녀니 빛 가운데서 행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데살로니가 전서 4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영적인 순결성을 잃어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순결성, 육체적인 순결성은 바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설 때 회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이번 일년은 우리가 진정으로 통회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는 그 어떠한 것 보다 영적인 순결성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순결성이 있어야 육신의 순결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어떠한 것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외에는 어떠한 가르침도 우리의 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을 따라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이끌림도 과감히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요/ 우리 교회요/ 우리 성도님들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말씀 26 ~ 28말씀을 보니 이기는 자 즉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붙잡고 순결함을 지킨 사람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세란? 지배권입니다. 통치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다스리는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끌려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 지탄의 대상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새벽별을 준다고 합니다. 여기서 새벽별이라고 하는 것은 계 22장 16절에 보면 예수님 자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기는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영광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인 영생의 비밀이 없다면 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향기를 나누어 줄 수 없다면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별과 같은 생명의 능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25절에 보니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굳게 잡으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입니다. 헌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외에는 아무것도 이 세상을 다스리거나 통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접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이 권세로 우리는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권세가 아니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으로 나오는 권위가 아니고는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위에 원하시는 교회는 바로 권세 있는 교회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있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 자녀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지배권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교회여야 합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곳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복음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 움직이는 곳 어느 곳이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세상을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다. 마감 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일로 분주한 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영적인 기쁨과 열매로 가득차 넘치는 풍성한 교회생활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하늘의 기쁨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영적이든 육체적이든 간에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뜻까지 아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눈을 피했다고 벗어났다고 하나님의 눈을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눈은 불꽃같이 살아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길 원하십니다. 이 권세는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양심으로 살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굳게 잡고 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리스도인만이 가지는 유일한 특권입니다. 이 권세로 세상을 이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일주일동안도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세상을 이기고 다스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