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
계2:8-11





지난 주부터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통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에베소 교회에 관하여 묵상하였습니다. 오늘은 에베소 교회와는 여러모로 대조가 되는 서머나 교회를 통하여서 우리 교회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필라델피아 교회와 더불어 일곱 개의 교회 중에 칭찬만 받은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서머나라는 도시에 관하여 우리가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머나 도시는 무역, 상업도시로서 매우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지금도 약 25만명이 사는 크기의 도시입니다. 서머나 도시는 수없이 많은 신전들이 있던 곳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폴로 신전이 있어서 해마다 화려하고 장엄한 신전에서 웅장하게 드리는 예배의식이 있는 도시입니다. 또한 서머나 도시는 로마 황제숭배의 극치를 보였던 도시입니다. 서머나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특별히 이 유대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도시의 분위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척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신전과 요란하고 웅장한 축제와 비슷한 로마인들의 예배와 그저 숨어서 초라하게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서 오는 패배감입니다. 또 하나는 유대인들과 황제에 대한 충성심 경쟁으로 인한 박해와 핍박으로 늘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의 고통은 도시의 대부분의 상권을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 극심한 가난으로 인하여 생활을 유지하기가 무척이나 힘든 교회가 서머나 교회의 모습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신앙생활하기에 가장 고통스러운 지역이 바로 이 서머나 지역입니다. 이 서머나 교회는 오늘날 우리에게 신앙을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이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서머나 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신앙생활을 승리하게 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서머나 교회를 칭찬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모습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어렵지만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면서 산 서머나 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서머나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진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나. 몸 말.

먼저, 서머나 교회는 물질적인 조건을 뛰어넘어 영적인 부유함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오늘 말씀 9절 말씀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서머나 지역의 유대인들에 의하여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궁핍이라는 말은 단지 가난하다 라는 뜻이 아니라 웅크리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부족한 배를 움켜쥐는 모습입니다. 이 가난은 그냥 가난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극빈입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이러한 극빈의 상태로 있게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유대인들이 당시의 서머나 지역의 상권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눈에 벗어난 그리스도인들은 자연히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부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방인들로부터 날마다 박해를 받으니 이웃집에 박해를 받으면 그 집에 자녀들을 먹여 살리고 또 다른 집이 박해를 받으면 그 집을 도우고 서로 나누어 살다보니 재물이 모일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원래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모인 부류가 당시에 종이나 노예들이 많고 하층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가난하게 된 것은 이들이 결코 개으르거나 나태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 사흘 굶어서 담 안 넘는 사람이 없다] 고 이러한 극빈은 또 가난은 우리들의 생활뿐 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상태도 무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구약 욥기를 보면 사단이 욥을 시험할 때에 제일 먼저 욥의 재산을 칩니다. 사단은 욥의 소유물을 치면 욥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부인할 것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도 40일 광야에서 금식을 하시고 난 뒤 가장 처음 유혹을 받은 것이 바로 이 먹는 문제입니다. 돌들로 떡을 만들어라. 는 것입니다. 이처럼 재산은 하나님의 은총임과 동시에 사단의 가장 우선적인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더 나아가 이 재산은 우리의 신앙의 길을 방해하는 가장 우선적인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재산이 너무 많이 있어서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재산이 너무 없어 먹고 살기에 바빠 신앙생활이 개을러집니다. 그러나 재산이 많든 적든 간에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데 제일먼저 방해물이 이 재산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때 부유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은혜를 받은 사람은 부유한 사람들이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이렇게 가난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보고 실상은 너희가 부유한 사람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왜 이런 말을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말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성경에서 나오는 부유하고 복이 있는 사람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가 복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올바른 사람/ 이웃과 관계가 사랑의 관계인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복된 사람이요 부유한 사람입니다. 시편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은 소유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른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 있는 사람도 하나님과 사람과 관계가 올바른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부유함이 참된 부유함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부유함은 손에 얼마만큼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과 얼마만큼의 교통이 있는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살아가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실상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로 비록 가난하여 너희 형편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너희들은 이것으로 인하여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영적으로 부유한 모습을 보니 참으로 너희가 부유한 사람들이구나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는 재물이 많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아니하고 재물이 없다고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부유함이 자랑이 되고 긍지가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나에게 만족할 만한 세상의 재물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영적으로 부유함을 가질 때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서머나 교회는 비난의 말을 뛰어넘는 영적 성숙함이 있는 교회입니다.

9절 말씀 중간부터입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당이라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괴롭고 힘이 든 것은 물질적인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주변에 잇는 사람들의 비방이었습니다. 이 비방의 주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방이란 [중상모략]입니다. 중상모략이라는 말은 없는 말을 지어내고 일부러 나를 침몰시키기 위하여 개략을 짜고 모함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서머나 성도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들은 주로 로마 사람들과 한 통속이 되어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비방하고 모략하고 모함을 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만 서머나 교회의 로마인들의 핍박과 박해의 2/3 이상이 바로 유대인들의 중상과 모략에 의한 악의에 찬 말들에 의하여 생긴 것들입니다.



때로는 이 말들이 우리를 어렵게 만듭니다. 때로는 이러한 말들이 우리 신앙의 길을 발해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내가 여러 가지로 어려울 때 그리고 그 어려움이 오래 지속될 때 이러한 말을 들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약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영적인 혼돈이 오기 때문입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도 저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가? 어쩌면 저들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봐라 저들은 잘살고 윤택하게 살지 않는가? 그러므로 저들이 믿는 하나님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비방의 말을 들을 때에는 처음에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다. 그러나 오래 듣다가 보면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 영적인 깊이에 돌이 던져져서 의심의 파도가 일어나가 시작합니다. 또한 우선 나타나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유대인들은 보기에도 잘살고 평안해 보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왠지 형편이 없어 보입니다. 때로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때로는 숨어서 가만히 예배를 드려야 하기도 하고 도무지 예수 믿어서 좋아 보이는 것이 하나도 안보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 영적인 혼란이요 의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이 우리에게 가하는 두 번째 신앙의 방해물입니다. 그 비방의 말이 때로는 우리의 친척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교회의 성도일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이 비방의 말들을 듣게 함으로 우리와 인간관계를 치명적으로 만들고 우리의 신앙생활의 의욕을 꺾어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심의 도가니로 몰아갑니다. 회의 우물에 빠지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진심을 가장하여 예수 믿으면 떡이 생기나 밥이 생기냐 ? 작작 믿어라. 적당하게 믿어라, 너희는 어찌해서 너희만 옳다고 하느냐? 지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전도는 뭐꼬? 너나 잘 믿어라, 너 보니 예수 믿고 싶은 생각 안 든다. 고 우리의 열심과 헌신을 보고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인들은 이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볼 줄 아는 영적인 성숙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들리는 비방의 말은 영적인 성숙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사람은 이것이 사단의 모습인 줄 모르고 거기에 말려 상심하고 의심하고 신앙생활을 중단해 버립니다. 성도님들이 상심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 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교회는 이러한 것쯤은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의 본질을 알 수 있는 영적인 성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비방의 말을 너끈히 이길 수 있는 성숙함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칭찬을 듣는 교회가 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것을 이기고 능히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성숙함이 있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세 번째로는 서머나 교회는 박해를 뛰어넘는 영적인 능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서머나 교회는 성도들은 유대인들의 모함과 중상 때문에 심히 많은 환란과 고통을 받게 됩니다. 특별히 서머나 지역을 황제숭배의 정도가 다른 지역보다 심한 지역이기 때문에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유대인들이 고발하고 이들의 탄압의 빌미를 만들어서 퍼트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충성이라는 말은 진실하라 ,신뢰하라, 믿으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라는 말입니다. 죽을 때까지 너의 신앙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라는 말입니다.



이들이 당한 박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 정원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 기름이 필요하였는데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사람기름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기름을 정원 불 밝히고 잔치하는데 사용합니다. 서머나 지역의 사람들은 사냥을 좋아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도망가게 만들고 그 뒤를 사냥개가 쫓고 다가가서 사냥감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죽였습니다. 때로는 끊는 물을 붓는 고문을 하였습니다. 실로 이들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습니다.라는 말이 바로 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겪은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박해의 한가운데서도 능히 신앙을 지키고 더욱 곤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박해를 이길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능력이 로마서에서 그것이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 고 사도바울을 말합니다.



우리 교회도 이처럼 죽기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실한 충성과 믿음을 가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고통과 아픔이 와도 이것을 뛰어넘어 진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제공하는 확고부동한 신앙의 고백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능력입니다. 이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맞고 옳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으면 아니다 라고 분명하게 선언할 줄 아는 영적인 능력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이렇게 영적인 부유함과 영적인 성숙함과 영적인 능력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우리도 능히 이러한 영적인 강건함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하시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가 말한다고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음이요 나중이다 라는 말은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서머나 교회 교인들의 핍박이 있고 환란가운데 있지만 그 모든 것의 처음과 끝까지 있는 유일한 분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비록 악이 성행해서 그리스도인들이 환란과 핍박을 받고 있지만 이들은 다 사라질 것들이고 처음과 나중까지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당하는 고통과 환란을 나도 당하고 있고, 그 아픔을 알고 있다라는 말이 처음이요 나중이다 라는 말입니다.

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이 란 말은 지금은 환란과 박해로 죽어가는 모습이지만 부활하신이가 너의 주인이요, 너의 고통을 ,죽음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주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환란과 환란은 이미 자신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긴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 고 믿을 때 서머나 교인들은 영적인 능력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환란과 핍박을 아시고 죽음을 아시기 때문에 처음과 나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죽음과 환란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인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다. 마감 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님들입니다. 신앙생활하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는 시기에 영적인 부요함이 넘치는 성도님! 영적인 성숙함이 있는 성도님! 영적인 능력이 충만한 성도님들이 되시어서 최후에 그 날 생명의 면류관을 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