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상 가운데 선 버가모 교회 계2:12-17 버가모는 요한이 편지를 쓸 당시, 이미 300년간 소아시아도의 수도였습니다. 다른 곳보다 높은 지형이며 군사적 요새였습니다. ‘버가모’는 ‘양피(parchment)’라는 뜻인데, 그것은 아마도 그곳에 양피로 만든 책이 있는 도서관이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제일 먼저 황제숭배의 전이 세워졌습니다. “사탄의 위가 있는 데”라는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역보다 행정과 종교적 중심지입니다. 그리스의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며, 특히 제우스신전, 아테네신전, 아스클레피오스(뱀-치유의 신)신전 등이 있었습니다. 가이사(황제)숭배로 인하여 크리스천들이 큰 핍박을 받았으며 이 무렵, 순교자 안티파스가 출현했습니다. 이교도와 이교사상의 온상지에 교회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버가모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좌우에 날선 이한 검을 가지신 이”[12절]입니다. 로마의 총독 중에는 칼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칼을 가진 사람은 시민의 생사를 맘대로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즉석 사형이 가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바로 그런 심판자의 모습으로 사탄의 회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표현입니다. 버가모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칭찬, 우상 가운데 있지만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입니다. 사단의 위가 있다는 말은 그 지방이 황제 숭배와 각가지 우상 숭배의 본 고장으로 이교도의 중심지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버가모교회는 두 가지 칭찬을 듣습니다. 1.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13절]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득실거리는 버가모에서 신앙을 지켰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사단의 지배력이 가장 강한 곳에서 버가모교회는 믿음을 지켰기에 칭찬을 듣습니다. EX) 속리산 안의 교회, 신앙인은 바로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어떤 환경, 어떤 처지인지 다 아십니다. 주님은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 사정을 다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주눅 들어 할 필요도, 너무 자고할 이유도 없습니다. 기독교는 도피의 종교가 아니라 정복의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비진리가 판을 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좋은 환경보다는 힘든 환경에서 신앙 생활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더 알아주십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대부분의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굳게 잡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는다 함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구원을 주는 이름입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구원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17절] ‘새 이름을 기록한 돌을 준다’는 표현에서도 등장합니다. 2.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안디바가 순교하였는데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안디바는 당시 버가모교회의 감독으로 황제 숭배를 거역하다가 순교 당한 사람입니다. 안디바는 예수님께서 충성된 증인으로 인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칭호는 예수님 자신의 칭호입니다.[계1:5, 3:14] 얼마나 안디바의 숭고한 죽음을 높이 평가하고 계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핍박이 오면 신앙을 저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우들은 그러지 않았기에 칭찬을 듣습니다. 당시 바가모교회는 우상 숭배의 늪에서 핍박 가운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버가모교회 성도들은 이런 악조건 가운데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칭찬꺼리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하셨던 말씀을 지금 실천하고 계십니다. [마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안디바를 비롯한 버가모교회 교인들의 신앙을 인정하고 칭찬하십니다. 우리도 이런 인정과 칭찬꺼리가 되어야 합니다. 책망, 우상 가운데 있기에 [14절]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5절]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우상숭배 소굴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상숭배의 나락으로 떨어진 자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받느냐는 중요합니다. EX) 술주정뱅이 아버지 둔 아들, 부정적인 영향이 아니라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발람의 교훈이 버가모교회에 영적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발람의 교훈은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음”을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민25:1-5]에 나와 있습니다. [민24장]에서 발락왕은 발람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했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음으로 실패했습니다. 발람은 이후에 모압 여자들로 이스라엘 청년들을 유혹케 하므로 음행과 우상숭배를 하도록 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니골라당의 교훈 역시 발람의 교훈과 같은 것입니다. 어원상 둘이 같습니다. 구약에서 발람이라면 신약에선 니골라당입니다. 니골라당이란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출된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니골라에 의해 창시된 교회 안의 한 파당입니다. 니골라당은 율법을 무시하고 선한 것은 영뿐이므로 육체는 어떤 짓을 하든지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이들은 세상과 타협한 자들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오늘날도 많습니다. 이 이단은 교회 밖에서 온 게 아니라 교회 안에서 나타난 이단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이런 이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버가모는 용납했습니다. 이 이단은 우상제물을 먹게 하는 것과 문란한 행음을 낳았습니다. 우상제물과 행음은 말 그대로 해석할 수도 있고, 영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당신 우상숭배 모습이 그랬으니 가능합니다. 영적인 해석은 우상제물이나 행음을 비진리라는 면에서 보는 것입니다. 니골라당은 버가모교회에 비진리인 이단사상을 유포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권면과 축복 [16절]은 권면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날선 말씀의 검을 가지신 분이기에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의 검을 사용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의 싸움은 말씀과 비진리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늘 묵상하고 적용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7절]은 축복의 약속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기는 자에게는 만나와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만나’는 광야의 그것처럼 하늘양식(시78:24)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영적 사귐을 말합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은 승리의 훈장이며, 노예가 주인으로부터 풀려날 때 주던 자유의 표식과 관계가 있습니다.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은 그들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줄 것이라는 엉뚱한 해석을 하는 이단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받은 자만 그 기쁨을 압니다. 버가모교회는 우상의 한 가운데 위치하였기에 물든 사람도 있고 믿음의 순수성을 지킨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면에서 물질만능, 권세 등 우상의 소굴 속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때 환경에 긍정적으로 대처하고, 물든 이는 회개함으로 주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새 이름의 축복을 누리는 이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