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 계2:8-11 본문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중에서 요한계시록에서 소개하는 두 번째 교회이다. 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신 하나님은 자신을 가르켜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 해 주고 있다. (계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여기의 ‘처음이요 나중이요’라는 표현은 1:17,18에서도 반복된 표현인데, 이것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 전체를 지배하시며 태초에도 계셨으며 역사의 종말에도 계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나타낸다. 한편 ‘죽었다가 살아나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부정 과거 시제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역사적이며 단회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계시하신 것은 투옥과 사형의 핍박 가운데 있는 서머나 교회 교인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 주신 것이다. 1. 서머나 교회 ‘서머나’(Smyrna)는 에베소 북쪽 약 80km 지점에 있었고, 당시 인구가 약 20-30만 정도로 소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다. ‘서머나’란 말 가운데 ‘머’(Myrrh)는 ‘유향’이란 뜻으로 이곳은 향료 수출지로도 유명하였다. 서머나는 오늘날까지도 상인들에 의해서, 큰 무역의 중심지요, 부요의 도시였던 것으로 유명한 도시였으며, 아마 일곱 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오늘날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은 호머의 출생지이며 학문, 특히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도시였다. 종교적으로는 이교 문화와 종교의 집합처로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서머나는 소아시아 도시들 가운데서 지리적으로나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복음이 순수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황제 숭배가 성행하는 등 혼합화와 박해가 뒤따른 도시였다. 이런 상황에서 본문은 수난하는 교회에게 위안과 소망이 되는 말씀을 전하고 있다. 한편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본 서신 외에 잘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폴리갑의 생애에서 바울이 이곳에 전도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서머나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던 폴리갑(Polycharp, B.C.155-166)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서머나 교회가 갖는 특징 중에 하나는 다른 교회와 같이 책망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서머나 교회는 가난하지만 부요한 교회였다. 한편 버가모 교회는 나쁜 환경에 있는 교회였지만 굳건히 믿음을 지킨 교회였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는 반대로 외적으로는 부요하나 실상은 가난한 자였다. (마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 스위스의 법학자이며, 철학자인 힐티(Carl Hilty)는 현대세계가 고난을 무서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 세계 전체의 특징인 고난 공포증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의 논리적 귀결로서 극히 당연하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므로 생기는 것은 비단 고난 공포증뿐 아니라, 좌절과 낙망, 포악 등 모든 악이 다 생길 수 있는 것이다. 2. 서머나 교회의 실상 (계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서머나 교회가 당시에 당했던 어려움을 보면 다음의 세 가지로 교회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첫째로, 환란을 당했다. ‘환난’(qliyi\\\", 트립시스)이란 단어는 헬라어에서 ‘무거운 물건 밑에서 눌려 부서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받는 외부적 핍박을 시사한다. 서머나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서머나의 유력한 위치에 오른 자들이 많아서 기독교를 박해하고 방해하였다. 예를 들면 황제 숭배를 이용하여 거짓된 말로 로마 제국을 충동해서 서머나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을 처형한 것을 볼 수 있다. 둘째로, 궁핍을 당했다. ‘궁핍’은 ‘외적 핍박으로 생긴 물질적인 빈곤’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절함으로 당한 경제적 제재나 적대 감정을 가진 유대인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가리킨다. 때로는 우리가 신앙을 지키려다가 물질적인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그 당시 서머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였다. 그러나 그 풍요는 황제 숭배를 지지하는 지배 계층들에게 국한되었으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빈민에 머물러 있었다. 더욱이 불신자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의 재산을 강제 수탈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인 것을 천국 시민권으로 오해함으로 더욱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다. 실제로 초대 교회 여러 이단들과 잘못된 사상들 가운데 유대주의는 가장 포괄적이며 무서운 기독교 진리의 훼방자였다. 셋째로, 유대인의 박해를 받았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신령한 이름을 가졌으나,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사도요한은 그들에 대하여 ‘사단의 회라’고 했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여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서머나의 유대인들은 사실상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유대인은 혈통에 의한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에 의한 이면적 유대인이기 때문이다(롬2:28,29). 서머나의 유대인은 도리어 사단의 회였다. ‘사단의 회’는 자칭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여호와의 총회’라 했으나(민14:27,35), 그들의 실체는 사단의 자식이며,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적대자임을 시사한다(요8;31- 47). 그들은 교회와 복음을 방해하며 교인들을 핍박하였다. 예) 한국교회는 일제 신사참배 하에서 수 많은 순교자를 내었으며 그 피위에 교회가 세워다. 오늘의 축복된 세계 제 2위의 선교국가 된 것은 한국교회가 고난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3. 부요한 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는 외적으로 당하는 고통으로 인하여 궁핍한 것 같았지만 영적으로는 부유한 교회였다.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서머나 교회였지만 본문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했다. 서머나 도시 자체는 부요한 도시였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온갖 핍박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궁핍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 부요하다고 인정하신다. 이것은 육신적으로는 궁핍하나 내적으로 정결하고 부요함을 의미한다(눅12:21, 고후6:10, 딤전6:17,18, 약2:5). 이는 외적으로는 부요하나 내적, 영적으로 궁핍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정반대이다(3:17).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 정신분석학자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인간 본성과 환경이 주는 영향을 실험적으로 조사한 것이다. 너서리 병원에는 많은 신생아들이 누워 있는데, 한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그 울음은 다른 아기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여기저기에서 울기 시작한다. 학자들은 무엇인가 불편해서 우는, 세상에 태어나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 영향을 받고 있는 신생아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그들이 듣던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 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었더니 아기들은 하나씩 울음을 멈추기 시작하여 평화스럽게 잠들었던 것이다. 모든 신생아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혹은 부적응에서 오는 불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기들에게 근원적인 환경인 모태라는 환경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시킴으로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인간의 참다운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 돌아갈 때만 본래 인간이 지니고 있었던 평화를 가질 수 있으며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4. 죽도록 충성하라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서머나 교회에 대한 서신에서는 책망과 심판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고 곧 바로 권면을 통하여 고난을 상기시키며 두려워 말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보아 당시의 신자들이 장차 임할 핍박과 고난을 생각하고 두려워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에서의 ‘두려움’은 노예가 갖는 두려움을 가리킨다. 이러한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전혀 두려움이 없이 담대해질 수 있다. 비록 죄는 두려움을 유발시 킬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사랑을 소유한 자들에게 사랑은 담대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본문은 장차 서머나 교인들이 받게 될 핍박의 내용이다. 서머나 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이 유대인이든 당시 정부이든 간에 그 핍박의 주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였다. 마귀는 서머나 교인들을 시험하기 위해 몇몇 사람을 감옥에 넣을 것이었다. 한편 ‘시험을 받게 하리니’에서 시험은 감옥에서 받을 온갖 고난이나 핍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난과 핍박을 그리스도인들은 감수해야 하며 심지어 순교로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증명해야 한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과거의 순교자들이 순교하기까지 충성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드러냈던 것처럼 서머나 교인들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야 함을 시사한다. 이것은 당시 극심한 황제 숭배 강요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던 교인들을 향한 단호한 명령이다. 한편 ‘생명의 면류관’은 죽기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에게 주어진 상급이다. 이것은 운동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진 ‘승리의 관’을 의미한다. 우리는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듯이 온갖 핍박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켜 생명의 면류관을 얻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생명의 면류관’(약 1:12) 외에도 ‘썩지 않는 면류관’(고전9:25), ‘자랑의 면류관’(살전2: 19), ‘의의 면류관’(딤후4:8), ‘영광의 면류관’(벧전5:4) 등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이 받을 상급이다. 예) 6.25 전쟁과 맥아더- 1950년 6. 25 전쟁이 터지자 미국의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한국의 전황을 살피기 위해서 한강 인도교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쌍안경을 가지고 인도교 건너편의 형편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미 이때는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어 있었고, 강 건너편에는 이미 인민군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쌍안경으로 강 건너편을 보게 된 맥아더 장군은 이쪽 편에 서있는 부동자세의 군인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자기가 탄 지프차를 타고 이 병사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 병사에게 물었다. “왜 끊어진 다리 앞에 서 있느냐?” 이 병사가 대답했다. “이것이 제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언제까지 여기 서있을 작정인가?” 이때 이 병사는 부동자세 한 자세로 대답했다. “새로운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입니다.” 전세는 위급하고 지휘 계통은 사라지고 지휘관들도 도망하는 형편에서 적이 바로 코앞에 와 있는데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위치를 지키는 이 병사의 투철한 군인 정신을 목격한 맥아더 장군은 감탄했다. 그래서 외쳤다. “이런 군인이 있는 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감동을 받은 맥아더는 그 날로 당장 미군 병력의 출동 명령을 내리고, UN군이 참전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전투를 뒤집어 놓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맥아더 장군의 회고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가난한 집안에서 효자가 나오고, 세상이 어지러워져야 충신을 알게 된다.” “국가 존망의 시기에 신하의 정조를 분명하게 알 수 있고, 난세를 만나서야 비로소 참으로 충성된 신하를 알 수 있다.” 예) 미국 독립 전쟁에서 한 독립군 병사가 적군에 붙잡혀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마지막 할 말이 없느냐?”고 묻는 집행관에게 그 병사는 이렇게 대답하고 죽었다. “내게 내 나라를 위해 바칠 목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유감이다.” 결 론 우리는 어떠한 환란이나 핍박이 온다고 하여도 두려워하거나 떨지 말고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되면 어떤 시험과 핍박이 와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서머나 교회는 어려움으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시련에 봉착하였으나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시련과 핍박을 참고 이기면 결국은 부요한 자인 것이다. 이런 시련과 시험을 참고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상급은 생명의 면류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