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교회를 향한 권면


에베소 교회를 향한 권면
계2:1-7


요한 계시록 2-3장에는 일곱 교회가 등장합니다. 스코필드(scofield)는 말하기를 “일곱 교회는 교회 역사상에서 재림 때까지 있을 일곱 시대를 대표합니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에베소 교회는 초대 교회 시기를 말합니다. 그러나 일곱 교회를 교회사의 시대로 맞추는 것은 무리가 갑니다.

오히려 이 일곱 교회는 지상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 일곱 교회는 현대의 교회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에베소 교회는 교리나 신앙을 잘 보수(保守)하였으나 사랑을 잃은 교회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에베소와 에베소 교회

(계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에베소는 알렉산더리아, 안디옥, 빌립보 등과 지중해권 위치한 도시로 당대 로마의 정치와 문화와 그리고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이 지역에서 수도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며 로마 군대가 상존하지 않고 자치제가 실시된 자유 도시였습니다.

종교적으로 에베소는 아데미(다이아나)라는 여신을 숭배하는 중심지였습니다(행19:23-41). 그 여신상이 세워진 신전의 규모는 대리석으로 된 기둥이 120개나 될 정도로 대단히 켰으며 수천의 남녀 사제들이 신전에 종사했었습니다. 그 여사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제식(祭式)에 매음으로 헌신하였습니다.

다른 큰 도시처럼 이 도시도 로마와 아테네를 비롯한 각지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이곳에 로마인과 원주민 그리고 헬라인 및 유대인 등 여러 사람들이 뒤섞여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정신적 흐름을 세우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이런 곳에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중 이곳을 잠깐 들르기는 했으나(행18:19), 제3차 전도 여행때(A.D. 53-58)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함께 교회를 개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행18:18,19:1-10). 바울은 이곳에서 2여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두란노 서원을 세워 열심히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에베소 뿐 아니라 인근 지방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까지 간접적으로 전도하는 등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이처럼 에베소의 특성은 상업상으로는 매우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종교적으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여신상이 있어서 미신이 성행하였으며 황제 숭배가 행해지던 부도덕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독자적 행정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영적, 정신적, 도덕적 타락의 온상인 이곳에 참된 진리의 종교인 기독교가 소개된다는 것은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그 결과 이곳은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제3의 기독교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본문에 언급한 주님의 모습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에서 ‘붙잡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크라톤’은 단순히 ‘잡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요동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며 지배하고 계심을 시사합니다(1:13,16,20). 한편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역시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을 사랑하고, 능력 가운데 교회에 임재하고 계심을 암시합니다.



2. 주님의 칭찬

이처럼 놀라운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은 그들에게 몇 가지 강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배소 교회의 그 부분을 향하여 칭찬하셨습니다.

(계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첫째, 에베소 교회의 ‘행위’, ‘수고’ 그리고 ‘인내’에 대한 칭찬입니다. ‘행위’(에르가, ἔργα)란 포괄적인 의미로 행동 전반을 가리킵니다. 또한 ‘수고’(코폰, κόπον)란 단순한 노력 정도가 아니라 전력 투구하는 성실함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에게는 항상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수고가 요구됩니다. 그리고 ‘인내’(휘포모넨, ὑπομονήν)란 불리한 환경에 대한 수동적인 대처가 아니라 끝내 대적하는 그 환경을 변화시키는 참음과 기다림을 가리킵니다.

둘째, 영적 통찰력을 가진 것을 칭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 교회는 악한 자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구체적 실례는 없지만) 실체를 바로 분별한 영적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취한 단호함은 오늘날의 교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됩니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셋째, 에베소 교인들의 핍박에 대한 인내를 칭찬하였습니다.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들에게는 비록 황제 숭배를 강요하는 로마의 탄압과 예수님의 성육신(成肉身)하심을 부인하는 악한 무리들의 도전이 있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옛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과 믿음을 간직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세상에서 당하는 온갖 고난과 유혹을 떨쳐 버리고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수고를 요구하십니다.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3. 주님의 책망

이렇게 훌륭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의 부족한 점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당신에 대한 순결과 그들의 영적 분별력을 칭찬하셨으나 그들이 ‘처음 사랑’을 저버린 것에 관해 단호히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처음 사랑’이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졌던 사랑을 뜻합니다. 또 이것은 새로이 결혼한 부부가 그 배우자에 대한 불타는 사랑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내적 뜨거움과 헌신을 뜻합니다. 만약에 부부가 처음의 사랑을 그대로 유지하다면 평생토록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본문은 에베소 교회가 교리적(敎理的)으로 칭찬할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생명 없는 형식주의로 전락하여 사랑을 상실했음을 단호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에 가겼던 헌신적인 사랑과 영적 뜨거움이 기초되지 아니면, 아무리 열심히 있고 신앙적 정통성을 자랑하더라도 사랑하는 일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면 될수록 찾아 드는 위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무미건조하고, 무감각한 신앙적 타성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4. 첫 사랑의 회복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의 단점을 징책하신 후 그들에게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셨습니다.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첫째, 사랑이 어디에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즉 현재의 각박한 상황과 과거 그들의 뜨거웠던 사랑과 헌신과 열정을 비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까닭에 그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성전에서 너무 분주하여 예수님을 잃어버렸고, 마르다는 주방에서 봉사에 전념하다가 더 중요한 것을 놓쳤습니다. 롯의 처는 세상을 사랑하다가 멸망을 당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의 물질적인 일에 관심을 두다가 하나님을 원망하며 신앙생활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직장생활과 사업, 친구와 공부 등으로 인하여, 또는 교회 생활 속에서 봉사와 섬김이라는 명분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떨어져 갈 수 있습니다.

둘째,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잘못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있음을 고백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회개는 대 전환임과 동시에 즉각적이며 단번에 이루어는 결단입니다.

(겔 18:3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셋째,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성도라도 그가 하나님 앞에서 고백 한대로 회개에 대한 합당한 열매가 없으면, 모든 것이 헛일이다. 회개의 참된 증거는 변화된 행동이요, 새로워진 삶이어야 합니다.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여기서 ‘합당한’(앝시오스)이란 단어는 ‘같은 분량의’란 뜻으로서 마음속의 실제 회개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행위(열매)로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외형적으로는 많은 의로운 일들(righteousness actions)을 행하였으나, 그들의 내면은 결코 의롭지 않기(not righteousness) 때문에 하나님의 기준에는 합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건 외견상 의로운 행동들을 할 수 있으나 그에 합당한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예수님께 에베소 교인들에게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말씀의 의미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열매를 나타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회복의 길을 제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약 돌이키지 않을 경우 그 촛대를 옮기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에베소 교인들이 계속해서 자신만을 고집한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들과의 교제를 단절해 버리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가 단절된 성도나 교회는 더 이상 성도로서 또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는 신앙의 생명력이 단절된 죽은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창세기 28장에 야곱은 집을 떠나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서 이 신앙의 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32장에 그가 20년 후에 고향으로 돌아 올 때에 형의 분노로 위기에 처했을 때에, 얍복강에서 신앙적 회복으로 말미암아 극복하였고, 34-35장에 세겜에서 그의 딸 디나와 하몰의 아들과의 사건으로 죽게 되자 그는 다시 벧엘의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습니다. 이것이 그가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게 된 원인이었습니다.

결혼을 부모의 체면이나 중매쟁이의 권고에 따라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물, 학력, 집안, 재산 등 모든 외적인 조건은 참조가 되겠지만 배우자를 생각하는 사랑과 호감에 그 근거가 우선되어야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불같은 애정도 1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초기의 뜨거웠던 사랑이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하고 식는 이유는 우리 몸속에 있는 특정 화학물질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과학자들은 사랑의 원천이 되는 인체 내 화학물질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1년 만에 감퇴된다는 것입니다. 파비아 대학의 엔조 에마누엘레 교수팀은 18-31세의 연인 58명 쌍을 조사해본 결과 신경성장인자(NGF, never growth factor) 수치가 연애 초기에는 보통사람들 보다 훨씬 높았으나 1년 뒤에 다시 조사해본 결과 일반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 때에 선물을 하는 것은 결혼하기 전에 가졌던 순수한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삶의 청량제 역할을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뜨거웠던 신앙생활의 때를 다시회복하기 위하여 내 자신의 신앙의 침체 원인을 주의 깊게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하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하나님 앞에 나타내 보여야 할 것입니다.



결 론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 귀절은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끝맺음으로 동일하게 사용된 문구로 복음서에 언급된 것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이 말씀을 하시는 자는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과 교통하며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며 깨우치시고 또한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며 신앙의 회복 운동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의 회복은 나태하고 무감각한 우리의 신앙을 뜨겁게 불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에베소 교회에 경고하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