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아디라 교회 계2:18-29 두아디라 도시는 남쪽과 북쪽으로 두 강이 흐르고 있는 아주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도시는 작았지만 다양한 공업들이 크게 발달된 상업도시였습니다. 이 작은 도시 두아디라 사람들은 많은 이방신들을 섬겼는데 이 도시 사람들이 대표적인 신이 태양신 아폴로와 여신 보레이테네입니다. 이렇게 이방신들을 섬기는 두아디라 도시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그 교회가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오늘은 이 교회에 대한 주님의 칭찬과 책망, 그리고 약속이 무엇인가를 통해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올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이 교회에 대한 주님의 칭찬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주목을 끄는 말씀은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라는 칭찬의 말씀입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첫 번째인 에베소 교회는 출발할 때 굉장한 열심과 사랑을 가지고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에는 미약하게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굉장히 열심을 보인 교회였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열심인 두아디라 교회를 주님께서 칭찬하십니다. 처음에 열심인 경우는 우리 주위에서 종종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중에는 그 열심히 식어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로마 황제 가운데 네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네로는 17세에 로마 황제가 되었습니다. 젊은 날 그는 로마 제일의 스승 세네카와 부르크스에게 학문과 철학을 배웠습니다. 그는 시와 노래에도 다재다능 할 뿐더러 예의 범절이 단정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과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집권 초기에는 정치를 잘하여 로마 시민들에게 인기가 대단하였습니다 . 그런데 중반에 들어서서 그는 사치와 방탕에 빠졌고 후반에 가서는 성품이 더욱 거칠어지고 잔인하여서 많은 신하를 죽이고 로마 시민들을 학살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 시가지에 불을 지르고 그 허물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어 많은 성도들을 처형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형제와 자매까지도 정권의 도전자로 여겨 살해하고 자기의 스승이자 고문관인 세네카까지도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살해하였습니다 . 그러니까 네로는 완전한 폭군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네로가 자기 주변 사람들을 버리니 로마의 시민들도 네로를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사면초가가 되고 말았던 네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결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31세였습니다. 인생도 처음보다 나중이 더 아름답고 중요하듯이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아름다워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나 신앙도 처음보다 나중이 더 풍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도전을 드립니다. 처음보다 지금 내가 더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처음보다 지금 더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풍성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오늘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언제부터 영적인 삶이 나태해 졌는지 그 원인을 찾아서 회개하고 다시 불을 붙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이 교회에 대한 주님의 책망이 있습니다. 이세벨은 아합왕의 부인으로서 이미 구약에 나타났던 인물입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져들게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 중에 소수를 우상에 빠져들게 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세벨과 동명 이인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우상을 섬기면 이것을 가리켜 영적 간음이라고 하였습니다 .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간음은 바로 영적 간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세별이 어떻게 두아디라 교인들 중에 몇몇 성도들을 우상을 섬기도록 했을까요? 두아디라 도시는 일찍부터 직조와 모직, 섬유와 가축, 염색과 도색등 다양한 공업들이 크게 발달한 상업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이 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모두 조합에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합은 자주 단합대회를 가졌는데 참석하지 않으면 많은 불이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단합대회를 가지게 될 때에는 모든 근로자들이 자기들의 수호신 앞에서 제사를 드리게 합니다 . 그리고 그 제사 음식을 먹게 하고 식사가 끝나면 춤과 노래와 유희와 행음들의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이세벨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에게 외쳤을 것입니다. \\\"이 도시에 살면서 조합에 들지 않고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조합에서 관습적으로 우상에게 한번 절하고 그 음식을 먹는다고 더럽혀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이세벨의 사상과 철학이 두아디라 교회 안에서 몇몇 성도가 동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2000여년 전에 쓰여진 이 계시록의 말씀을 보면서 이것이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되어 지십니까?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이윤추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는 사고 방식이 통하고 있습니다. 우상 앞에서 무릎을 끓고 절을 하지는 않지만 오직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성경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물론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까지 얼마나 성경적으로 이행하는가 이것 역시 목표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후 시험을 받으실 때 사단이 예수님을 지극히 놓은 산으로 데려가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며 나에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이때 사단이 노린 것은 \\\"지체할 것 없다. 십자가를 통할 것 없이 곧바로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라. 길게 끌 것 없이 빨리 목표만 달성하면 되지 않느냐. 동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이 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가 눈앞에 있었지만 그것을 버리시고 비록 고난의 길이고 어려운 길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그 목표를 이루시는 길을 선택하십니다. 그것이 좀 더딜지라도, 그 길이 아픔의 길이고, 치욕의 길일지라도 그것이 성경적이고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축복 받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꿈과 이상을 갖는 것만이 최고가 아닙니다. 얼마나 성경적으로 축복을 기대하십니까? 꿈과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그 삶이, 그 과정이 얼마나 성경적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꿈을 가져도 성경적으로 갖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공을 해도 성경적으로 성공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세벨의 거짓교훈에 몇몇 성도들이 동조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몇몇 안되는 소수의 성도들이었지만 그들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셋째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주님을 보십시오. 주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회개하지를 않습니다. 왜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회개하면 이제까지 행하여 왔던 모든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참된 회개는 눈물 흘리고 통곡했으면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저들은 이제 우상에게 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되면 여러 불이익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마 그들은 좀 더 있다가 회개하자 나중에 차차 하자 이러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마음은 그들을 점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게 하였고 그들의 마음은 닫혀버리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회개할 것이 있을 때 그 즉시 해야합니다. 다음으로 미룬다면 마음의 문, 영혼의 문이 닫혀 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들의 죄를 깨닫고 주님 앞에 뛰쳐나와 통회자복하고 회개해 보십시오. 내 인생이 새로와 지고 내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성경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면 용서한다입니다. 그래서 평생 죄만 짓고 살았던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보세요. 마지막으로 회개했더니 낙원에 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것을 잊어선 안됩니다. 회개를 거절할 때는 그 다음에는 진노가 따릅니다. 그래서 지옥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이세벨 교훈에 빠지지 않고 믿음으로 굳게 서있는 이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몇몇 성도들이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의 거짓 교훈에 미혹되었지만 미혹되지 않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 성도들에게 주님께서는 끝까지 믿음을 굳게 잡고 참고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거짓 교훈에 반대하여 믿음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 어쩌면 그들에게 경제적으로 불이익과 환란, 핍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그 어려움, 그 힘든 일이 \\\"내가 올 때까지\\\"라도 합니다. 영원히 핍박받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닙니다 . 그분이 오실 때까지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가 살아있을 때까지 오시지 않으시면 어떡합니까? 그 분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께 가면 됩니다. 그래서 시험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도 핍박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험을 이길 때 무엇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까?「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주님과 함께 만국을 다스릴 자라는 것을 알게되고 이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지금 우리들에게 있는 고생, 핍박, 환란을 참을 수 있고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곳에서 사느냐, 얼마나 내 상황이 불편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해 주신다면 나에게 환난이 있고 핍박이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인내함으로써 승리한 성도는 온 세상을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권세를 갖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이 약속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여기에 있는 성경의 약속입니다. 진실로 우리를 위해 예비한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것이 확실히 믿어지고 주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이 믿어진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좀 어려운 삶, 좀 힘든 삶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그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