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좋은 교회 계2:18-29
전통적으로 연극에서 희극과 비극을 나누는 표준은 마지막에 어떻게 끝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재미있고 우스우면 희극이고 슬프고 눈물나면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정확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희극의 절대조건은 마지막이 행복하게 끝나는 것입니다. 중간에 주인공이 아무리 고생을 하고 어려움을 겪어도 마지막이 행복하게 끝나면 그것은 희극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의 내용이 어떠했던 마지막이 슬프게 끝나면 비극이 됩니다. 유명한 세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오대 희극이 있고 사대 비극이 있습니다. 희극은 보면 전부 해피 엔딩입니다. 그러나 비극은 예외 없이 마지막에 주인공이 죽는 것으로 끝납니다. 마지막이 좋으니 희극이 되고 마지막에 슬프게 끝나니 비극으로 분류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비극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희극이기를 원합니다. 즉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이 좋기를 소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마지막이 좋아야 합니다. 마지막이 좋아야 좋은 것입니다. 마지막이 좋지 못하면 그동안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결코 좋은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 보면 솔로몬은 처음이 좋았던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복된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잘 정비된 나라를 물러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지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하나님도 잘 섬겼습니다.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이 좋지 못했습니다. 우상 섬기는 이방 여자들을 아내를 맞이한 결과 노년에 그들을 위해 온 예루살렘에 우상의 신당을 지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우상 섬기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솔로몬의 노년입니다.
그런가하면 구약 성경에 라합이라는 사람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할 때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습니다. 우리말은 기생이라 되어있지만 거기 원어는 창기라는 단어입니다. 분명 좋지 못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왔던 이스라엘 군사들을 숨겨주었고 나중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 온 식구와 함께 구원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 나중 살몬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는 보아스라는 아들을 낳습니다. 이 보아스는 룻의 남편이요 이세의 할아버지입니다.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노년입니까? 기생이었던 이방여인이 다윗의 조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라합의 생애는 갈수록 좋은 생애였습니다. 개인도 교회도 이렇게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야 합니다. 나중이 좋아야 진정 좋은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주님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도 받았고 책망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보면 특별히 두아디라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칭찬의 말씀이 귀합니다. 우리 모두가 진정 사모하고 또 받아야 할 축복이 여기 있습니다. 본문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라고 했습니다. 사업, 사랑, 믿음, 섬김과 인내에 있어 처음보다 나중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모습이 갈수록 좋았습니다. 한 마디로 처음보다 나중이 좋은 교회, 갈수록 좋은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하겠습니다. 갈수록 더 좋은 교회, 갈수록 더 좋은 성도들이 되는 이 축복 우리 모두가 사모하고 또 누려야겠습니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업이란 돈버는 사업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일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국가를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 국가에서 훈장을 줍니다. 동상을 세워주기도 합니다. 주님을 위해 많은 일 한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영광을 얻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습니다.
이 주님의 일에 있어 중요한 것이 갈수록 더 잘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혼자 주님의 일 다 할 것처럼 나서지 않아도 좋습니다. 순교라도 할 것처럼 열심을 내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변치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좋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갈수록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형식화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마지못해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나의 모습이 지난날 보다 더 충성스러워졌습니까? 더 진실해졌습니까? 갈수록 주님의 일에 더 충성하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사랑도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았다고 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에 성숙해 가는 교회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성숙이 여기 있고 교회의 참된 성숙이 여기 있습니다.
결혼식 주례를 할 때마다 식이 끝날 때 신랑신부 행진을 시키고는 뒤에 서서 마음 속으로 기도합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변치 말아다오\\\"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마음 변함이 없었으면 하는 기도입니다. 부부생활에 제일 중요한 것은 변함 없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가구도 바뀌고, 집도 바뀌고, 자녀들도 자라가면서 변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 다 변해도 부부간의 사랑은 변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바뀔 수가 없습니다. 변함 없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아져야 합니다. 갈수록 더 깊어지고 갈수록 더 풍성해져 가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여러분은 예수님 사랑하기 시작한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 사랑이 더 깊어져왔습니까? 아니면 점점 식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랑에 더 풍성해져 가야 합니다. 처음 보다 나중 사랑이 더 많은 것,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귀하고 큰 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라 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믿음이 점점 자라갔고, 그래서 믿음이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처음보다 나중이 많다고 칭찬 받았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정말 성경에서 전무후무한 복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는 실상 실수가 많고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갈수록 그의 믿음이 자라갔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 처음부터 큰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약속을 받은 후 아무런 소식이 없을 때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엘리에셀로 아들을 삼자고 했고, 그런가하면 덜렁 하갈이라는 사라의 몸종을 첩으로 얻어 아들을 놓기도 하셨습니다. 분명히 큰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날이 갈수록 자라갔습니다.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해갔습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독자를 제물로 바치면서도 그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줄로 믿는 절대적 믿음의 자리에까지 성숙합니다. 바로 이 믿음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근원임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성장해 가야 합니다. 얼마나 오래 예수를 믿었느냐가 아닙니다. 믿음의 성장 없는 예수 믿은 연한만큼 허망한 것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까지 믿음에 자라가야 하고 그래서 믿음에 있어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다고 칭찬 받아야 합니다.
\\\"섬김\\\"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근본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섬겼습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높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보잘 것 없는 일이 없습니다. 주님의 이름 안에서 행하는 섬김의 일이라면 가장 작고 미미한 일일지라도 얼마나 귀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바로 이 섬김 속에 우리의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섬김에 자라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인내\\\"라고 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인내에 있어서도 갈수록 좋았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인내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하나님을 바라보고, 제한된 인생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따라가는데는 절대적으로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괴로움과 어려움을 참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인내에 점점 더 성숙해가고 있습니까?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인내로 훈련시키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금도 참도록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답답하게 만들고 안타깝게 만들고 그래서 기다리게 만듭니다. 우리는 나의 모든 환경 가운데서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에 성숙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생각해봅시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갈수록 좋아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갈수록 좋아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댓가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잘 하다가 왜 중간에서 흐지부지해집니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좀 했는데 그만한 댓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망합니다. 여러분, 수고는 언제나 수고로 끝나야 합니다. 부부간이나 형제간이나 부모 자식간에도 그렇습니다. 희생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희생하는 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무엇을 되돌려 받겠다는 것입니까? 변변치 못한 것들 가지고 되돌려 받겠다고 하다가 낙심합니다.
신앙생활은 더욱 그렇습니다. 헌신으로 시작해서 헌신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다른 것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깨끗하게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 몰라도 하나님 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조금 충성했다고 당장에 물질을 주시고 이것저것 주셔야 하나님 알아주시는 것이겠습니까?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좀 더 인내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화근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나중에 잘못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지 말아야한다는 뜻입니다. 앞서 솔로몬을 말씀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마지막이 잘못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젊은 시절 수많은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젊은 시절 총명했을 때 그것을 별 문제가 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많아졌을 때 그 여자들이 전부 자기들의 우상을 숨겼고 솔로몬마져 거기에 넘어가게 됩니다. 젊은 시절 화근을 둔 것이 나중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잘 섬기기를 소원하는 미혼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 그것은 무서운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나가지 못하게 하고 무섭게 핍박하고, 결국 눈에 피눈물이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의 신앙이 점점 좋아지기를 원한다면 화근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죄악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흔히 보면 은혜를 받았을 때 은혜 받은 것으로 끝납니다. 화근을 제거하지 않고 그냥 둡니다. 은혜가 충만한 동안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마안가 그 죄악이 우리를 꼼짝 못하게 옭아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화근을 제거해야 합니다.
셋째는 주님 의지하며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연악한 인생들입니다. 내 힘으로 계속적으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주님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고 성령님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에 있어 처음보다 나중이 더 많아집니다. 점점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칭찬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 이런 좋은 교회도 책망 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좋다가 다 좋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 잘되어도 그 가운데 잘못된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20절에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했습니다. 이세벨은 아합왕의 왕비로서 온 이스라엘로 우상숭배의 죄악에 물들게 했던 사악한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내 종들을 가르쳐 행음하게 하고 우상을 재물을 먹게 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우상숭배에는 행음과 재물을 먹는 의식이 따랐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의 죄악과 타협하게 한 자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죄와 타협하는 사람, 그가 이세벨입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 그가 이세벨입니다. 이런 사람을 추종하는 사람 있다면 그도 이세벨입니다. 여러분, 죄와는 절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죄의 요소를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22절 23절에는 이세벨을 따르는 자가 받는 징벌이 나타납니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 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침상에 던진다고 했습니다. 병들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큰 환난 가운데 던진다고도 했습니다. 자녀들이 죽임을 당한다고도 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다 잘 했으니 한 두 가지 죄악은 덮어주시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추호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용납하지 않습니다. 죄에는 오직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이세벨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살 길입니다.
그리고 25절에는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너희에게 있는 것,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입니다. 이 귀한 것들을 잘 지켜가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해 왔습니다. 그래서 점점 좋아졌습니다. 그대로 해 나가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새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받은 은혜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이미 있는 것을 지키기만 해도 점점 나아자게 됩니다. 그래서 거기 마지막에 주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26이하에는 그러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나타납니다. 먼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재림하셔서 천하를 다스릴 때 우리도 그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열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을 때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고, 다섯 므나를 남겼을 때 다섯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고 그것을 더 풍성히 지켜갈 때 마지막에 엄청난 상급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만국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리고 새벽별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계 22;16에 보면 예수님을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했습니다.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주님이 친히 소유가 되어 주십니다. 주님이 상급이 되어주십니다. 주님이 소유가 되어주시는 것, 이것이야 말로 실로 가장 큰 축복입니다.
젊은 남녀가 결혼 약속을 했습니다. 처녀는 신랑으로부터 귀걸이 목걸이 반지 옷 등 좋은 선물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처녀는 좋아하는 이유는 그 선물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 받았다고 좋아하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약속입니다. 앞으로 신랑과 함께 살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많은 은혜 받았습니다. 많은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약속일 뿐입니다. 주님이 신랑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그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점점 더 좋아질 때 그 마지막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소유되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갈수록 더 좋은 그리스도인 되십시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에 있어 날마다 성숙해 가십시다. 성숙해가기를 소원하면 주님 의지할 때 주님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이세벨은 늘 경계하고 살피십시다. 그래서 이 은혜를 이루어갈 때 마지막에는 엄청난 영광이 있습니다. 천하를 다스리게 될 것이요, 새벽별 되신 주님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총을 사모하면서 갈수록 좋아지는 여러분, 갈수록 좋아지는 우리 교회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처럼 저희들도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에 있어 갈수록 좋은 그리스도인 꼭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화근을 두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늘 주님 의지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모두, 나아가 우리 교회가 갈수록 좋은 교회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세벨의 유혹이 항상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경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미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므로 갈수록 더욱 풍성케 되어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별의 은총을 누리는 저희들 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