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버가모교회 계2:12-17
오늘은 소아시아 일곱교회중 버가모교회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에베소를 아시아의 경제중심지라고 한다면, 버가모는 정치중심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버가모라는 도시는 아시아의 수도로서, 정치적 이유로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사탄의 총본부였습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을 보면,
“너희가 사는 곳은 사단의 왕좌가 있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버가모시에는 로마 황제숭배를 위한 커다란 신전이 지어져 있었고, 그리고 버가모시는 강력한 이교도 신봉의 중심지가 된 것입니다. 버가모는 사탄의 영향력이 가장 심각한 도시였고,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기가 정말 어려운 영적전쟁터였던 것입니다.
I. 버가모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13절).
그런데도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은 참 훌륭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그 당시 로마 시민은 일년에 한번씩 황제 신전에 가서 시이저에게 분향을 하고, “시이저는 주시다”라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시이저보다 예수님을 더 존귀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만을 높이는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주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있나요? 오늘 우리는 이 불신앙의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의 입술로, 또 우리의 삶으로 예수님의 주되심을 얼마나 높게 받들고 계시나요?
다윗이 하나님께 사랑받고 축복받은 이유를 든다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아주 존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블레셋의 거장 골리앗을 향하여 뭐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까?
“저 할례도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이 누구길래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삼상 17:26)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45절)” 우리 주님은 당신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를 고상하게 높여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자리,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교회출신 안디바가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 버가모교회에 주님의 책망들을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버가모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십시다.
12절을 보면 주님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주고 있습니까?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엡 6:17). 예수님은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정확하게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말씀을 절대기준으로 하여 흑백, 좌우, 진위, 옳고 그름, 참과 거짓, 진짜와 가짜를 명확하게 구별하 신다는 뜻입니다.
II. 버가모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무엇이었습니까?
1. 발람을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14절).
그럼 발람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발람은 민수기 21장부터 25장을 읽어보면 나오는 선지자로서 모압왕 발락에게 팔려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포섭되었던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선지자가 돈에 팔려서 모압을 위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는데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세 번 다 저주대신 축복을 하고 맙니다. 그때 발람이 이런 식으로는 절대로 이스라엘을 넘어지게 하지 못하고 저주하게 하지 못하니 하나의 간교를 발락에게 알려줍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무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올무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가만히 우상의 제물을 놓고 여인들을 두어서 그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이 여인들과 간음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물량공세와 미인계입니다. 보기 좋은 세상의 것들을 미끼로 이스라엘의 신앙을 허물어 버려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게 하는 방법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이 올무에 걸려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다가 염병이 돌고 2만4천명이 죽고 맙니다.
2.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15절).
니골라당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일부러 방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을 무시하고 폐기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안에서 모든 율법은 성취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은 필요없고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하는 자기들이야 말로 신앙적인 자유함을 아는 자들이고, 자기들처럼 이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율법의 멍에에 얽메여 있는 사람들이라고 비웃으면서 자기 멋대로 죄를 짓는 사람들이 니골라당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전혀 자신들의 삶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분들은 좀처럼 구속당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배만 드립니다. 그리고 나머지 생활은 일체의 간섭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에 이런 니골라당의 모습이 많은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신앙이 너무 자유를 구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예배만 드리고 나머지 생활은 전혀 통제를 받지 않는다면 이미 그 사람은 신앙의 순결을 팔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것은 죄에 대한 자유이지 이렇게 신앙적으로 구속당하지 않는 자유가 아닙니다.
시편 1편 1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발람의 교훈은 출세와 성공을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을 지적하는 말씀이요, 니골라당의 교훈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방종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5:13, 14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어 살아갈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이 사회의 어두운 곳, 그늘진 곳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 사랑의 빛을 비추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III. 주님은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적으로 회개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설사 모든 교회가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교회안에 그것이 용납되고 있다는 사실은 전 교회가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이 일을 아파하면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16절)” 만일 버가모 교회가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교회의 감독자이신 주님 자신이 이들을 제거하여 교회의 순결과 거룩을 보존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두가지를 약속하십니다(17절).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만나는 메시아 시대에 주어질 은혜스러운 영적 양식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요6:31-35, 48, 51). 흰돌은 고대에 흰돌이 종종 축제에 참여하는 입장권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메시아 축제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가리킵니다. 승리를 상징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타협 하지 않는 절대 표준의 신앙자세가 필요합니다. 기독교 초기의 교부 아다나시우스(Athanasius)는 이런 절대적 신앙관을 가지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이 나를 반대하는가? 나도 온 세상을 반대하노라\\\"
그러므로 우리가 결코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주님은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