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18:18-30
오늘은 참으로 축복의 날입니다. 지난 4년 동안 소망 교회를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드리는 날이요, 한 생명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날입니다. 이 축복의 날에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 여러분들과 가정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마19:16-29,막10:17-30). 본문에 등장하는 어떤 관원은 청년이었고(마19:20), 부자였습니다(눅18:23). 여기 \'관원\'은 지방 회당의 관리를 가리키거나, 로마 정부에 의해 임명된 정부 관리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청년으로서 지도자적인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였고 젊은 청년으로서 당시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실로 그는 세상적인 행복의 조건들을 구비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부자이면서도 종교적 의무감도 철저하여 율법이 요구하는 의식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종교적인 면에서도 상대적 우월감에 젖어 있었습니다(21절). 그러나 종교적 열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괴롭히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생\'의 문제였습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일은 인류의 최대의 관심이요, 최상의 과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하고 영생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고대 중국의 진시황도 죽음의 공포를 잊어 보려고 불로초(不老草)를 찾고 찾았으나 사망이 그를 쏘아 죽게 했습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말씀하심으로 죄로 얼룩진 인생의 최후의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소유하고, 확인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본문 18절에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여기 \'영생\'은 \'끝이 없는 삶\', \'중단을 모르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즉 영원히 계속되는 내세의 생명을 말합니다. 이러한 영생에 대한 관심은 인간만이 가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생 문제를 지니고 있는 피조물입니다. 영생에 대한 추구는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특유의 것입니다. 그 어떤 다른 피조물들이 영생 문제로 고심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영생 문제는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생만이 가지는 문제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의 영광이요, 절정입니다. 인간만이 본래 지음을 받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소멸되지 않는 존재로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아담과의 행위 언약 관계에서 아담이 언약을 파기함으로써 무서운 죄의 결과가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음으로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창3:17-18), 여자에게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해졌고(창3:16), 남자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게 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철저한 범죄! 그것으로 인생은 영생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죄 아래 있는 모든 인생은 자신의 힘으로는 영생에 이르는 가능성이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인간의 전적 무능력이요, 전적 타락입니다. 죄인은 스스로 회개할 수 없고, 복음을 믿거나 그리스도에게로 올 수도 없습니다. 타락한 본성으로는 자기를 구원에로 변화시킬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망이요, 죽음이요, 슬픔뿐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하면서 영적 사망 선고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 사망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모든 축복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상실된 영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자요, 관원인 청년이 고민하며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 문제가 혹시 여러분의 문제는 아닙니까?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이 없음을 알려주는 질문입니다.
본문 21절에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청년으로서 젊을 때 가지기 어려운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세보다는 현실의 쾌락 추구에 자기의 혈기와 정열을 쏟을 수 있는 청년임에도 그는 영생에 대한 근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상당히 빗나간 질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이란 무엇을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도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얻은 자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부를 때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한 것도 예수님도 선한 일을 함으로 영생을 얻은 자로 착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함으로 영생을 얻으려는 청년에게 예수님은 계명을 소개하였습니다(20절). 이때 이 청년은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자신 있게 답변했습니다. 그의 고민이, 근심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어려서부터 그토록 다 지켰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기에게는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율법의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측면에만 충실했을 뿐 율법이 지향하는 사랑의 실천에는 무지한 자였습니다. 율법이 인간의 전적 무능을 깨우쳐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도록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갈3:24). 그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킴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도 습관화되고 형식에 치우친 신앙생활의 연륜이나 주일 성수, 헌금 생활이 그의 믿음의 궁극적인 척도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그가 많은 율법과 계명과 규례들을 다 지키었으나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의 진정한 정신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네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2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그리스도를 믿고 좇을 때 가능합니다. 결코 율법 자체를 지킨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 청년에게는 어려서부터 지켰던 율법의 행위로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근심케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선한 행실도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지 못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3. 영생은 오직 예수를 믿고 따를 때 얻게 됩니다.
본문 22절에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영생을 얻고자 하는 청년에게 예수님은 영생을 제시하셨으나 이 청년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왔으나 결국은 영생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든 것은 바로 재물이었습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돌아가는 이유를 공관복음에서는 \"재물이 많은 고로\", \"재물이 많음으로\", \"큰 부자인고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청년의 자만심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 그 정곡을 찌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큰 부자였기에 현실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보다도 재물을 더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다고 하는 그의 고백은 순간에 위선이었음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재물의 문제는 이 청년의 우상이요,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영생이냐? 재물이냐? 하는 이 문제에 있어서 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이 부자들은 모든 재물을 다 팔아 무조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결코 아닙니다. 부자라 하더라도 자기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위해 유용하게 활용하는 자는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할 수 있으나, 가난한 자라고 할지라도 먹고 마시는 일에만 연연하여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찬 자는 영생과 거리가 멀어진 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가진 자는 대개 그 부(富)를 믿는 까닭에 주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이라고 하는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항상 이 세상에다가 묶어 놓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생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입니다(엡2:8,요1:12).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은 죽음 앞에 어찌할 수 없는 인생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 하는 절규입니다. 인생은 영생하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인생을 영생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인해 그 영생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없는 인생에게는 영원한 진노(지옥)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영생을 상실한 인생들은 그 본래를 되찾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나 어떤 의지도 영생하고자 하는 욕망을 채워 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믿음을 통해 영생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죽어도 사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결코 영생은 인간의 행위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도 지켜 왔던 율법의 행위가 부자 청년에게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아무런 공로 없이 영생을 선물로 받은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이 축복의 날에 우리에게 영생(천국)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구원의 감격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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