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회를 만들자 계3:7-13
오늘은 좋은교회가 창립된 지 2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그 동안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은혜를 주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를 세우실 때에도 그렇지만, 좋은교회를 세우실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섭리가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구원받는 백성들을 세워주셨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찬양과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창립 2주년을 맞이하여 좋은교회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말 좋은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좋은교회라는 이름을 지을 때에 여러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나서 맨 처음에 하신 말씀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무려 여섯 번이나 강조하시고 계십니다. 창세기 1장 3절, 10절, 12절, 18절, 21절, 25절 이렇게 여러 번에 걸쳐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또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나서는 심히 좋았더라(창1:31)고 하셨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교회 그런 교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교회 이름을 좋은교회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에 큰 기대를 걸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교회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좋은교회(The Good Church)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섬기는 좋은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정말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헌신하여야 할 것입니다.
좋은 교회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교회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교회는 성도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우리 각 사람이 먼저 좋은 성도가 되면,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자연히 좋은 교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좋은 교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델을 살펴보도록 해야 합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책망을 겸하여 받은 교회가 있고, 칭찬은 없고 책망을 받은 교회가 있고, 칭찬만 받은 교회, 이렇게 세 부류가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으로부터 책망은 없고 칭찬만 받은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뿐입니다. 이 두 교회는 정말로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창립 2주년을 맞이하여 빌라델비아 교회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좋은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살펴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교인 수가 많지 않았어요. 빌라델비아 교회는 7-80명 정도의 교인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숫자를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선교의 사명을 온전하게 수행해 나갔기에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교회는 적게 모이든 많이 모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가 모였든지 간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주님의 사역을 온전히 감당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아시아의 다른 교회들보다 작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어느 교회보다도 많은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된 것입니다.
8절 중간을 보세요.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적은 지식, 적은 재산, 적은 능력 때문에 열등감에 빠지거나 아예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안돼. 우리 교회는 못해”그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그들의 적은 숫자로도 결코 기죽지 않고, 오히려 믿음의 능력으로 막강한 사탄의 세력을 이겼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초보적 수준으로도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어떤 고난도 견뎌내며 이겨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외형적으로 크다든지, 큰 능력이 있어야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면, 그러한 교회가 능력이 있는 교회이고 큰 일을 하는 교회이고 칭찬받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힘은 사람의 수나, 건물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힘은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난번 새생명축제를 통하여 능력을 받으셨나요? 오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계시나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능력을 가지고 헌신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서 칭찬해 주시고 책망해 주시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받은 좋은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인내의 말씀을 지킨 교회였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에서 책망을 받은 교회들의 공통점을 보면 한결같이 행함이 약했습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을 자세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에베소 교회는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고 행동으로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 당과 발람의 교훈을 따라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을 하였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이라는 여인의 꼬임에 빠져서 음란한 행위를 하였습니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 형식에만 치우쳐 외식하는 신자들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한 신앙태도 때문에 차든지 덥든지 한가지 행위로 올바로 하라고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위의 다섯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것은 주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여서가 아니라, 그들의 행위가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교회라고 칭찬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교회가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을 몰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새생명축제 첫째 날의 말씀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믿음의 거목은 누가 될 수가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믿음의 거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믿음의 거목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내 생각은 이런 대요. 말씀은 맞지만, 직장에서는 그렇게 하면 손해납니다.” 하는 사람은 믿음의 거목이 될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믿음의 거목이 될 수가 있고, 그러한 교인들이 좋은 교인이 되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좋은 교회는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의 서두마다 동일한 표현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여기에 표현하고 있는 사자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지도자를 가리킵니다. 지도자는 교회의 대표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잘 되고 못된 모든 일에 대하여 교회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칭찬할 것이 있으면 그 교회의 지도자를 칭찬하시고, 책망할 것이 있으면 그 교회의 지도자를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칭찬하시고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속해 있는 교회 전체를 보시고 칭찬하시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교회가 달라집니다. 지도자가 살아 있으면 교회가 살아있습니다. 지도자가 영적으로 병들어 있으면 그 교인과 교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으로 병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지도자가 시험에 빠져있으면 그 교회는 역시 시험에 빠집니다. 시간 문제입니다. 모든 것이 지도자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지도자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바로 서야 교회가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책임은 지도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도자는 외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교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교회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지도자가 어떤 정신을 가지고 어떤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느냐에 따라서 그 교인들이 달라지고 그 교회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지도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칭찬받는 지도자를 만들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도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도자와 친해져야 합니다. 지도자를 좋아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도자가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차원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정이 가고 안 가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간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관계에서는 지도자와의 관계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선생님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영어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좋아하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2학과 3학년 때는 공교롭게도 2년을 한 선생님이 담임을 하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셨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저를 잘 봐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비서실장을 세워주셔서 2년을 했어요. 그러다가 보니까 선생님하고 아주 친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을 전도하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교회를 가게 되면 선생님이 수요일에 교회를 가시면 저를 불러서 이러셨어요. 그 때만해도 밤 10시전에는 자율학습이라고 해서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러세요. “찬길아, 내가 오늘 교회에 가는데, 누가 떠드는가 잘 봐라”이러고 가세요. 그러면 “제가 알았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하거든요. 선생님이 교회에 갔다 오셔서 물으세요. “오늘 누가 떠들었냐?”“아무도 안 떠들었습니다. 모두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그랬어요. 나중에는 선생님하고 어느 정도로 가까워졌느냐 하면 여러분이 믿으실 지 모르지만, 우리 반 60명의 대학 원서를 제가 다 섰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과 옆에서 상담을 하고 나서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가라고 하면 제가 그것을 원서에 받아 적었어요.
여러분, 선생님하고 친해지니까 국어가 좋아졌어요. 전에는요 국어 과목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국어는 한국말이니까. 여러분은 어떠셨어요? 국어 공부에 열심히 하신 분이 있어요? 대다수는요 국어는 수업 시간에 공부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니까 점수가 안 나오는 거예요. 선생님을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좋아지게 되고, 선생님이 좋아지니까 국어가 좋아졌어요. 국어가 좋아지니까 얻은 결과가 나왔어요. 성적이 잘 나옵니다. 국어 시험을 봤다하면 높은 점수가 나왔어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친구들이 참 많았어요.
그것을 통해서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좋든 싫든 선생님하고 친해지면 나에게 유익이고, 선생님하고 멀어지면 내가 손해라는 거예요. 선생님하고 멀어지면 선생님이 손해날 것이 없어요. 내 자신이 손해가 나요. 선생님하고 가까워져야 해요. 그래야 내가 유익한 거예요. 제가 이 사실을 고등학교 1학년 때에 깨달았더라면 영어를 아주 잘했을 거예요. 그 때는 그것을 몰랐거든요. 참 아쉬워요.
여러분, 이러한 진리는 세상 어디에든지 다 포함이 됩니다.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좋은 교인이 되려면 목사와 친해져야 합니다. 목사를 사랑해야 합니다. 목사와의 사이가 좋아야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게 되고 그럴 때에 좋은 교회를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여러분이 저와 친해져야, 저를 사랑하셔야 제 설교에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잘 하게 됩니다. 담임목사와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지도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목사가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마음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판단만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영혼이 순식간에 병들어버리고, 감당할 수 없는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집에서 먹는 밥 있잖아요. 내 집 밥맛이 어떠니 저쩌니 해도 내 집에서 먹는 밥을 잘 먹어야 건강한 것입니다. 밖에 나가서 먹는 밥이 맛있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내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이고, 그것이 보약이고, 그것이 건강한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여러분의 영적인 생활을 지도하고 있는 담임목사에게 은혜를 받아야 신앙생활이 건강하고, 좋은 교인이 되어서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과 행복이 교회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도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아시지요?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담임목사가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말씀의 권세와 기도의 능력이 날마다 나타나도록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둘째는, 교회의 중직자들이 중요합니다. 제가 7년 전에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라고 생각이 되는 분들을 제 나름대로 일곱 분을 선정을 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과 같이 굉장히 훌륭하신 분들은 제외하고 젊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그 목사님의 설교집을 사서 읽으면서 연구를 하고 그 교회를 방문해서 주일 예배도 드리고 목사님을 찾아 뵙고 말씀도 나누곤 했습니다. 그런 교회를 보면서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목사님도 훌륭하지만, 목사님 못지 않게 훌륭한 중직자들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을 잘 못 봐요. 겉으로 나타난 것만을 봐요. 목사님도 훌륭하지만, 중직자들도 훌륭해요. 틀림없어요. 훌륭한 목사님과 함께 훌륭한 장로님이 계시고, 훌륭한 권사님이 계시고, 훌륭한 집사님들이 있어요.
교회가 좋으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담임목사에게도 달려 있지만, 중직자들에게 있어요. 제가 한국을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는 부탁을 합니다. “이러 이러한 교회를 갔다 오세요.” 지금 중국에 출장 나가있는 문팀장에게도 한국에 들렸다가 온다고 하길래, 어느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방학 때에 한국에 가는 청년들에게도 말할 거예요. 청년들도 제가 권하는 교회에 가서 반드시 예배를 드리고 오세요. 한번 가 본다고 뭐 달라질 것이 있으랴 하지만, 아닙니다. 그런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보세요. 영감있는 예배를 드려요. 예배 분위기가 다르고 은혜가 달라요. 뜨겁게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헌신하는 중직자들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가 있어요. 그런 모습을 배워서 우리교회에서도 그렇게 헌신하며 예배를 드리라고 보내는 거예요.
우리 교회로 이야기하면 팀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뜨거우냐, 얼마나 헌신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교회냐 아니냐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그러대요. 성장하는 교회, 좋은 교회의 특징은 “이거 내가 해야 합니까?”라고 말하다가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말한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일곱 교회를 가만히 보면 교회가 성장하고 안정 되어가니까, 지도자가 병들고 중직자들이 배가 불러서 신앙이 멈추어 버렸어요. 성장이 멈추었어요. 사데 교회를 보세요. 영적으로 죽은 교회가 되었다고 했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교회가 영적으로 죽었으면 그게 교회인가요? 아닌가요? 그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생명은 영력인데, 그게 죽어 있으면 어떻해요.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는 돈을 너무 사랑해요. 자기 쾌락을 추구하는데 온 정신을 쏟아요. 라오디게아 교회를 볼까요? 나는 이만 하면 됐다고 하고서 열심을 잃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주님이 뭐라고 해요? 토해내고 싶을 정도가 됐다고 하잖아요. 얼마나 열심을 잃어버렸으면 주님으로부터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책망을 받을까요.
여러분, 안일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열심을 내지 않아서 기도도 하지 않고, 말씀도 보지 않습니다. 영적인 싸움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요, 안일하고 나태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특별히 팀장들이 그러면 안 됩니다. 교회의 중직인 팀장은 나에게 맡겨진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 꾸준히 기도해야 하고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열심히 헌신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은 교회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중요합니다. 좋은 교회는 교인들이 어떠한 신앙과 어떠한 열정을 가지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교인들의 신앙이 뜨거워야 하고,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면 좋은 교회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어느 교회의 부흥회를 가니까 예배가 끝나고 섬기고 헌신하는 사람이 없어요. 본 교회 교인들인 것 같은데, 모두가 대접을 받으려고만 해요. 다들 서 있어요. 헌신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 교회 사모님이 저한테 부탁을 해요. 물론 그 교회가 아주 적게 모이는 교회라면 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지요. 그런데 그 교회는 우리 교회보다 몇 배 많이 모여요.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요. 근데 모두들 서 있어요. 다과를 준비했는데, 자기만 먹고 그냥 집에 가요. 이런 정신을 가진 교인들이 모인 교회는 절대로 좋은 교회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은혜는 받으려고 하는데,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헌신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사역이 어떤 일이든지 간에 책임있고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감사하여 즐겁게 헌신하여야 합니다. 은혜 받으려고 사모하는 마음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칭찬 받은 좋은 교회를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성전의 기둥이라고 하는 표현은 이런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위치해 있는 터어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처럼 지진이 일어나는 지역입니다. 당시의 건축 양식이 얼마나 견고하고 화려한가요? 그런데 지진이 일어나니까 모든 건물들이 무너졌어요. 교회도 무너졌어요. 끝까지 남은 것은 기둥밖에 없어요. 그 모습을 보시면서 말씀을 지키며 적은 능력을 가지고 충성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이 하나님 나라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가 막히게 좋은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좋은 교회를 만들면 하나님 나라의 기둥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늘 기도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 좋은교회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둥과 같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형제 자매들이 속해 있는 곳에서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교회를 만들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은혜를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영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좋은 교회는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이 빨리 됩니다. 은혜도 잘 받습니다. 영적으로 포근합니다. 편안합니다. 우리 좋은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창립 2주년을 맞이해서 좋은교회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20주년 40주년 창립기념 주일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의 후손들이 교회의 발자취를 살펴보면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좋은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이렇게 열심히 헌신하여 우리가 좋은교회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고 간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후손들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의 후손들이 긍지를 가지고 자랑스러워하는 좋은교회를 저와 여러분이 만들어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주님이 칭찬해주시는 좋은 교회를 만드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칭찬해 주시는 좋은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런 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큰 믿음으로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목사와 팀장들과 온 교인들이 힘을 합하여 좋은 교회를 만들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믿음의 후손들에게 좋은 교회를 유산으로 물려 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헌신하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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