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교회 계3:14-22
오늘 우리 강릉중앙교회는 창립 102주년 기념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 교회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로 사용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된 자녀가 된 우리 성도들 각자가 잊지 말고 기억을 새롭게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합당하게 살고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교회를 \\\'이웃을 위한 존재\\\'로 규정했습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정의(定義)한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과 그 세우신 뜻에 합당해야 그 존재 의의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단지 이 땅에 있는 교회 가운데 하나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의 목적에합당한 교회가 되려면,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인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칭찬을 전혀 듣지 못하고 책망만 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상업도시요 금융도시였기에 물질적으로 꽤 부요(富饒)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빈곤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주님의 인정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책망을 받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거울삼아,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을 오늘날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으로 새롭게 들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교회가 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1.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19절 뒷부분에 보면, \\\"회개(悔改)하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현대인들은 거부감부터 갖습니다. \\\"내가 무슨 특별한 죄를 졌다고 회개하라고 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개의 정확한 의미를 알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을 영어 성경《Today\\\'s English Version》에선 \\\"Turn from your sins\\\"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네 죄에서 돌이키라\\\"는 뜻입니다. 죄(罪)란 \\\'하나님의 본래 뜻하신 목적(과녁)에서 빗나가는 것(missing the mark)\\\'이란 뜻이 있습니다.
궁도(弓道)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되새겨야 할 \\\"執弓諸原則\\\" 중에 \\\"發而不中, 反求諸己\\\"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을 새겨보면, \\\"쏘아서 맞지 아니하면 자신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다시 살피라\\\"는 것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마음가짐과 자세를 취해서 과녁에 명중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것에 대해 조용히 살펴보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살피며, 그 뜻(목적)에 맞게 사는 것이 가장 귀한 삶입니다. 그런데, 그 뜻에 합당하지 못한 삶의 모습을 할 때가 우리에겐 종종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우리가 빨리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에선 \\\'회개(悔改)\\\'라고 합니다. 회개하고 마음과 생각과 자세를 바꾸어,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를 주님은 받아 주시고, 부르신 목적에 맞게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부르신 목적에 합당한 사람들이 됩시다.
2. \\\"마음 문을 열고 주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0절을 공동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또 22절을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열려야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귀하고 복된 말씀을 들려주셔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문밖에 서서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계속 두드리며, 밖에 서 계십니다. 여러분이 마음 문을 활짝 열기를 기다리십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한 때 전도사로 일한 적이 있는 네델란드 출신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에 <씨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친구 베르나르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흙을 온통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보라 빛을 띄고 있네. 잘 익은 보리밭은 양홍 빛을 띤 황토색이네. 하늘은 황색 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흰색이 약간 섞인 황색 1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25호 캔버스. 노란색에 보라색을 섞어서 중성적인 톤으로 칠한 대지에는 노란 물감으로 붓질을 했네.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네. 낡은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 나이든 농부의 집에서 볼 수 있는 달력에는 눈이나 비가 오는 장면이나 날씨 좋은 날의 풍경이 아주 유치한 형식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나. 앙케텡이 <추수>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런 양식 말일세. 솔직히 내가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 시골 풍경에 대해 반감은 갖고 있지 않네.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은 아직도 나를 황홀하게 하며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한다네. 씨뿌리는 사람이나 밀 짚단은 그 상징이지. 언제쯤이면 늘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반 고흐, 영혼의 편지》, 167-8)
여기서 예수님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생각해 봅니다.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먹고,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는데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나왔지만 해가 뜨지 그만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말라버렸고,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했으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잘 자라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가 삽 십배가 된 것도 있고, 육 십배가 된 것도 있고, 백 배가 된 것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은 마치도 딱딱한 길바닥이나 돌밭, 아니면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처럼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아주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을 열고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선한 사업을 많이 합니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양로원이나 요양원을 운영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위한 병원을 세우는 등,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 비슷한 일들을 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본래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 마음을 활짝 열고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여러 가지 일로 왔다 갔다 하며 주님을 대접하려고 애쓰던 마르다 보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듣던 마리아를 더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물론 봉사도 하고, 이웃을 위한 수고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에선 사업이 주가 되어선 안 됩니다. 성도들이 마음을 열고 주의 말씀을 듣는 자세가 우선 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마음을 열고 주의 말씀을 잘 듣는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요, 아름다운 교회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요, 주님의 목적에 합당한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도, 이런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3. \\\"열심을 내라, 열정적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9절에 \\\"열심을 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이 있다면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는 모습일 겁니다.
본문에 \\\"열심을 내라\\\"고 하신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열심을 내는 것은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감당할 때 열정(熱情, passion)을 가지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 미국의 경영 연구기관인 스펜서 스튜어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50대 CEO들의 제일 두드러진 특징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빌 게이츠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매일 일하러 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거기엔 항상 새로운 도전과 기회와 배울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만약 누구든지 자기 직업을 나처럼 엔조이(enjoy) 한다면 결코 탈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열정을 가지고 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미지근한 태도를 가지고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주님도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15-16)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려면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미지근해선 안됩니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큰 것, 위대한 것, 눈에 보기에 멋있는 것에 관심을 둡니다. 하지만, 열정을 지닌 사람은 작은 것을 맡겨도 그것을 열심히 합니다. 이렇게 작은 일에 신실한 사람이 주님의 인정을 받고, 결국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성인(聖人) 중에 소화(小花) 데레사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그분의 별칭이 왜 소화(小花)인줄 아십니까? 그분이 가장 작은 것 안에서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을, 일상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조그마한 것, 사람이 천대하는 것, 사람이 소홀히 하며 경시하는 일상의 것들에 헌신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데레사는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가지고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남이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작다고 생각하여, 남이 가진 큰 것과 비교하여 하찮게 여기고, 맡겨준 책임을 다하지 않았지만, 데레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것을 귀히 여기고, 그 한 달란트에서 넘쳐흐르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으며, 그 한 달란트로도 충분히 감사했던 사람입니다. 데레사는 또한 작은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보잘 것 없는 것도 사랑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온갖 꽃들이 만발한 꽃동산으로 비유하면서 자기를 남의 누에 잘 띄지도 않을 작은 꽃 한 송이(小花)로 비유했습니다. (이상은 이제민, 《하느님의 얼굴》참조)
신명기 6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영어 성경 NIV로 보면,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온갖 것을 다 바쳐서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정성과 열정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주님이 부르신 거룩한 뜻(목적)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무슨 일을 맡기셨든―비록 그것이 남이 보기에 하잘 것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지극히 작은 것이라 해도―최선을 다해, 열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주님에게 합당한 사람이요, 진정 주님이 부르신 목적에 맞는 사람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이룬 교회를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교회가 진정 주님의 목적에 합당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물론이고,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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