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타고 입성 하시는 평화의왕

나귀 타고 입성하신 평화의 왕/마21:1-11

나귀 타고 입성하신 평화의 왕
마21:1-11





오늘은 73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 수원교회를 세우신 교회 창립주일입니다. 이성봉 목사님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단 본부의 파송을 받아 수원에 내려와서 전도하고 개척예배를 본 날이 73년 전에도 4월 8일이 부활주일이었는데, 오늘은 고난주일입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고난 당하신 한 주간을 시작하는 날이어서 고난주일이라고 합니다. 이 날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나와 인류의 죄를 담당하신 주님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 오늘은 종려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스가랴의 예언을 따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에 옷을 펴서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로마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고 있는 때에 십자가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백마를 타지 아니하시고 나귀를 타고 계셨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전쟁으로 피를 흘리는 왕이었으나 예수님은 이 땅에 하늘의 평화를 펼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 평화의 왕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시대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으나,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는 기대가 어그러지자 그 많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외로운 주님의 일행을 따뜻하게 접대해 준 가정이 있었습니다.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 3남매가 사는 가정에서 받은 사랑은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떠났을 때 보여준 것이어서 더욱 깊은 인상을 준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두 제자에게 맞은 편 마을에 가서 나귀 새끼를 가져 오라 하시었습니다. 제자들이 나귀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니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었습니다.

무리들이 자기 겉옷과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환호하였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로다\"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니 온 성이 소동하였습니다.

도대체 \"이는 누구뇨?\"하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선지자 예수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도대체 이 큰 무리들의 호산나 소동은 왜 일어난 일인지 의문입니다. 갈릴리에서는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 다 떠나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했으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으며, 내 목숨을 내어 주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실망하여 떠나 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는 지금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예루살렘에 거의 다 오셔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이벤트 행사를 보이셨는데, 많은 무리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어 소동을 부렸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지배 하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있었던 다윗의 왕국이 붕괴한 후, 바벨론 제국과 파사제국, 헬라제국을 거쳐서 로마의 지배를 받아온 수치의 역사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메시야의 출현으로 그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로마의 치하에서 해방을 받고 위대한 왕을 세워 주시기를 기대했는데, 스가랴서의 예언이 생각났습니다.


스가랴 9:9의 말씀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라.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오매불망 메시야를 기다리던 백성들인지라 나귀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군중들은 삽시간에 모여들고, 환호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고난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시면서 입성하실 때에는 이러한 극적 행위를 연출하신 것이겠습니까? 그가 하신 일은 한 가지 한 가지가 다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시었으나 그들이 기대하는 전쟁의 왕이 아니라 평화의 왕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가 이룩하실 나라는 평화의 왕국입니다.

예수님은 기치창검을 번쩍이며 높은 마상에 올라 교만한 모습으로 입성하는 세상의 왕이 아닙니다. 말은 전쟁과 승리를 상징하지만 나귀 새끼는 절대 평화를 상징합니다. 나귀새끼를 타심은 전혀 때묻지 않은 순수한 평화를 의미한 것입니다.


주께서 이제까지 가르치시고 살아오신 평화의 삶과 그 방식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왕들은 교만하나 하늘나라의 왕은 겸손하게 나귀를 타셨습니다. 당시 헤롯왕가의 왕들은 포악하고 잔인하며 간교하기까지 하여 예수께서 \'여우\'라고 까지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왕 예수님은 모든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들의 친근한 벗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시는 왕이 아니시고, 백성들 사이에 나귀 타고 지나가시는 친근하신 왕입니다.


지금도 세상은 저마다 왕이 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립니다. 무력전이 정지되면 경제전을 펼칩니다. 강자는 약자를 정복하고 유린합니다. 일본은 지난 날 무력으로 이웃나라를 짓밟은 역사에 향수를 느끼고 그 역사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만들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비행기 사고는 첨예한 힘 겨루기를 보여주고 있어서 세상을 불안하게 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지금 저마다 대통령 되려고 대권 경쟁에 이미 돌입하였습니다. 이런 경쟁의 와중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주님이 나귀 타고 입성하신 것은 주께서 세우실 교회의 모습이 세상의 모습과 비교되어야 할 것을 교훈 하십니다.


세상은 정복과 힘으로 통치하지만 교회는 평화와 사랑으로 통치합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교회는 이기는 것도 없고 지는 것도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이긴 자도 이기는 것이고, 진자도 이긴 자가 됩니다. 평화의 왕 예수께서 통치하시는 교회는 모두가 다 승리자가 되며, 서로 양보하여 모두가 자원하여 지는 자도 됩니다.

지금부터 73년 전에 나귀 타고 수원 일각을 지나시면서 우리 교회를 주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평화의 왕이 다스리십니다. 아무도 이기지 않고 아무도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이기고, 모두가 져줍니다. 참된 평화가 다스리는 교회의 본을 세상에서 우리 교회가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니 무리들이 길가에 겉옷과 나뭇가지를 펴고 앞과 뒤에서 환호하며 따랐습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시편 118편 25절에 있는 말인데, 이시는 장막 절이나 유월절에 성전에서 불렀습니다. 호산나는 히브리어의 호샤아나(hosha-ha)로서 \'비노니 우리를 구원하소서\'의 뜻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차차 변용 되어 우리말에 \"만세\"라는 말과 같이 사용되었습니다.
군중들은 이제야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시는가 하여 감격하여 호산나를 불렀습니다. 낡은 질서를 뒤 짚이고 공의의 평화의 새 질서가 눈앞에 전개되는 구나 하여 열광적으로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환호와 아우성은 절정에 달했으나 주님은 묵묵히 행진하실 뿐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려고 가시는 길을 그들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잘 아십니다. 지금 환호하던 그들이 조금 후에는 변하여서 돌을 던지는 어리석은 무리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시었습니다.

진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군중에 의해 모독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사람들의 머리 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의 환호를 고맙게 생각하시면서 도 이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며 진정한 왕이십니다. 지금 세상은 다수가 가는 길로 갑니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 교회고 가려고 합니다. 어떤 것은 다수가 중요하나 어떤 것은 다수에 의해 변경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예수께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것 같이 73년 전에 수원성에 오시고 세우신 교회는 사람들의 소란함과 여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원의 진리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호산나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의 표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얼마 후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는 군중으로 변하고 말았지만, 이날의 장면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로 거리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아직 로마의 식민지이나, 장차 올 해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장차 이루어 질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는 곳입니다. 장차 하늘나라에 가면 천군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승리자, 경쟁력 있는 자를 칭찬합니다. 이 피나는 경쟁과 전쟁의 시대에 거리엔 상처난 사람, 피 흘리는 사람들로 넘칩니다. 이 세상은 아직 평화가 없으나, 교회는 세상의 왕이 아니라 평화의 왕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힘입니다.

70년대 말 미국의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베이징에서 한 마리 나비가 공기를 흔들면 미국에서는 폭풍이 불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나비 효과로 미세한 변화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한 마리의 날개 짓에 따라 수많은 나비들이 날개 짓을 일으키고, 그것들이 바람을 일으켜 거대한 태풍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는 20대 80의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20%의 고객이 전체 매상의 80%를 구매하며, 교통사고의 80%가 20%의 운전자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으로 소수가 다수를 좌우한다는 이론입니다.

평화와 구원의 주님을 찬양하는 20%가 전쟁과 성공과 승리를 추구하는 80%의 사람들을 이끌고 갈 수 가 있습니다. 교회 창립 73주년을 맞이하여, 베이징에 날고 있는 나비의 몸짓이 뉴욕에 폭풍을 가져온 것처럼, 우리 교회의 선한 몸짓이 이 세상에 선한 충격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파레토의 20대 80의 원리를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80%를 이끄는 20%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