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역 되는 사람들

기억되는 사람들/교회 창립 주일/말4:1-6

기억되는 사람들
교회 창립 주일
말4:1-6





오늘 우리는 한 해 52주중 특별한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 수송교회 창립 66돌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살이 중 기념일들이 많은데 그 날들의 의미는 사람을 기억하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아버지나 어머니를 추모하는 날에는 그 어른을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독립일 기념일에는 독립을 위하여 싸우던 분들을 기억합니다.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창립일에는 창립자들을 기억하고 동시에 지금까지 그 기관이나 단체를 위하여 애쓴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 66돌의 날에는 우리 수송교회를 창립한 분들을 기억하고 동시에 이제까지 이 교회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립니다. 특별한 공로가 있는 분들을 뽑아서 표창도하고 상장도 드리고 선물도 드리는 일을 기념주일에 거행합니다. 우리는 지난 60주년 때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신 분들을 위하여 표창을 했고 선물도 드렸습니다. 대체로 5년마다 한번씩 표창식이나 선물증정식을 준비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앞으로 4년 후인 70 주년 때에는 특별히 기억하고 표창하고 선물도 드리고 그 공로를 인정해 드려야 할 분들이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창립 60년사 에는 많은 분들이 기억되어 역사책에 담았습니다. 머지 않아서 70주년 준비위원회가 조직되어 60주년 때처럼 교회의 역사책을 보완하고 그 어간 10년간에 몸된 교회를 위하여 충성한 일꾼들의 이름들이 계속적으로 기억되게 해야할 것입니다.



후대 사람들이 선대의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왕이면 여러분들의 이름이 우리 교회 역사책에 올라서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자주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로 이들은 자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사람들의 기억속에 만이 아니고 하나님이 영원히 기억해주는 인물들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라기서에서 읽으신 대로 모세가 기억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성경 전체 속에 계속적으로 기억되는 이름입니다. 구약의 제일 마지막 장에서도 모세가 기억되고 있음을 보여드리려고 오늘의 본문을 택했습니다. 모세는 거룩한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을 받을 만한 신앙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는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에게 기억되었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기억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부은 막달라 마리아를 복음이 전파되는 곳 어디에서나 기억되게 하겠다고 예수님이 친히 약속하였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어느 곳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인간적으로 말해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보잘 것 없었던 한 여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의하여 영원히 기억되고 그리고 예수를 믿는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게 하셨으니 참으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향유값 300 데나리온이 일꾼들의 일년간의 봉급이라면 지금 돈 약 2000만원 내외의 봉헌으로 그녀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돈의 크고 작음을 보신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의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드리는 그 마음을 기꺼이 받은셨습니다.



오늘 신약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이 많은 성도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적고 있습니다.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에배네도, 안드로니고, 유니아, 암불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등등 많은 이름이 거명되고 있습니다. 이 이름들이 성경책에 기록되어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 교회 60주년사에 기록된 성도들을 모두는 다 거명하지는 못하지만 거기에 기억된 분들 일부를 다시 기억하고 싶습니다. 제일 먼저 기억하고 싶은 분들이 38면에 있는데 처음 창립예배에 참석한 분들의 명단입니다.:\\\"이 때 참석한 분들은 홍병덕, 정원모 두분 장로와 이정진 영수, 황현숙 전도사, 나재하, 정성채, 김자평, 임전순, 박연순, 정수면, 이범천, 이귀인, 이덕자, 신석환, 홍신희, 김은경 집사와 정영채, 이범준, 이태영, 정환린, 장덕승, 정진웅, 정창희, 전달현, 김재수, 이해정, 박찬호, 정찬모, 임성숙씨 등이다.\\\" 모두 29명인데 현재 생존해 계신 분은 박한호장로님분입니다. 이 명단에는 없지만 이해순 권사님이 어머님의 품에 안겨서 그 자리에서 있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처음 시작한 집이 바로 이해순권사님의 아버지 댁이었기 때문입니다.



37쪽에 보면 승동교회에 갈라 나온 장년 교인들이 120여명이었다고 합니다. 때는 35년 4월인데 5월 12일에 헌금을 하여 40간 집을 사서 예배당으로 개조하여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여성도인 홍사명씨가 10원을 내서 건축헌금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집사도 아니었던 한 여자 평신도가 불을 지른 것입니다. 7000원을 주고 산 집인데 이정진 영수가 1000원(7의 1) 나재하집사가 기외집을 팔아서 초가집을 사고 남겨서 1000원(7분의 1), 정성체집사느아끼던 풍금을 팔고 몽땅 바쳤고 거기다가 봉급 100원을 몽땅 바쳤습니다. 무명의 여자 집사가 많은 헌금을 했다고 했고 나머지 성도들 전원이 각자의 분수에 넘는 헌금을 하여 첫 교회 예배 처소를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초대 당회장으로 전필순목사님이 되셨고 2대에는 윤인구목사, 3대는 최석주목사가 기억되고 있습니다. 1대와 2대 당회장 중간에 함태영목사님이 잠시 목회를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분들은 우리 수송교회에서 오랜동안 목회를 아니 하셨지만 우리 교계와 사회에서 큰 일들을 하신 거목들입니다. 후에 함태영목사님은 부통령을, 윤인구목사님은 연세대 총장을 지냈고 최석주목사님은 공보처 차장을 지낸 분입니다. 이들은 목사로서나 사회 지도인사로서 큰 일들을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창설된 때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극렬하게 탄압하던 시기였습니다. 1938년에는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42년에는 모세5경과 계시록을 성경에서 삭제시켰고 찬송가도 여러 장 삭제했습니다. 목사가 강대상 에서는 일본복을 입도록 강요했습니다. 43년 9월부터는 주일 저녁예배와 삼일예배를 페지하였습니다. 이런 때 시작된 수송의 공동체가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를 여러분들은 충분히 미루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 목사 전필순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시지요:

\\\"수송교회의 설립은 홍병덕, 정성채, 이정진, 나재하, 임전순 등 제씨의 합심협력으로 발족하였다. . . . 이들은 교육가, 관리, 은행가, 가정 주부들인 바 그들은 자기 개인 보다 직장 보다 사업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였다. 전도하는 일은 좀 처럼 진보하기 어려웠으나 그 밖에 다른 것들은 다른 교회에 지지 않았다. 전도하는 것도 신자들의 실생활을 통하여 물질과 시간은 유무상통을 하여서 가위 초대교회를 현대화시키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우리 교회의 역사책에는 1945년 해방 때부터 6. 25.전쟁 사이의 역사가 전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6.25. 때에 자료들이 교회가 폭격당하는 바람에 모두 소실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동란때 우리 교회가 당한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74쪽에:

\\\"당시 장로 다섯분 중에서 내무국장이었던 이정진장로, 보이스카웃의 전신인 척후단을 창설하여 초대간사장을 맡았으며 사회적 정치적 활동이 활발했던 정성채 장로, 농림부 총무과장이었던 홍기윤 장로 등 장로 세분과 국민당 부당수이던 박보렴 여집사, 상업은행 동대문 지점 대리이던 이순재 집사와 박정수 성도 등 여섯 분이 북한으로 납치되었고 김자평 집사가 서울에서 인민군에게 피살되었으며 강봉희, 김순옥 두 여자 성도가 피난지에서 병사하였다.\\\"



당시의 등록교인이 100여명중의 10%가 납치되거나 사살되고 사망하였으니 실로 큰 인명손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수송교회 예배당은 폭격에 파괴까지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어수선한 분위기였겠는지는 짐작이 잘 아니 갈 것입니다. 당대에 수송교회의 정성채장로님의 부인이셨고 교회 집사님이셨던 정수면권사님(59년에 권사임직)이 며누리 엄세숙권사님께 아야기를 해 주신 글을(75쪽) 읽어보겠습니다:

\\\"수복후 서울에 돌아 온 것은 1953년 8월 15일로 막내 아들과 함께 다른 가족들 보다 먼저 올라왔다. 교회가 궁금하여 다음날 일찍 가 보니(당시에 수송동, 지금의 한국일보 뒷쪽) 교회당은 간데 없고 황폐하여 동네 사람들이 채소밭을 가꾸고 있었다. 기가 막혀 어찌해야 할지 암담하였다.\\\"

6.25. 때 납북당한 남편의 소식을 듣고자 먼저 서울에 올라오신 정수면권사님 앞에 나타난 허허 벌판이 된 수송교회 예배당 자리! 그 기막힌 마음을 어찌 우리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전쟁의 참화에서 살아 남은 성도들은 목숨을 잇게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천막으로 예배당을 만들고 예배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년 후에 새로운 예배당을 짓기로 하고 기도하면서 헌금하여 56년 10월에 준공을 보게되었습니다. 창립 21년만에 두 번째 예배당이 세워지면서 모이기 시작한 성도들의 숫자가 약 60여명이었다고 역사는 적고 있습니다(80쪽). 그래도 성가대가 주일 마다 성가를 불렀는데 7, 8명으로 조직되었고 지휘는 집사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했다고 합니다.



교회의 안정을 가져 온 시기에 김용준 목사님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목회자는 세계적인 안목을 지녔던 통이 큰 목회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장로교단이 탈퇴하자 그것을 다시 뒤집는 일에 앞장을 섰었는데 저도 그때 서울노회에 있으면서 그 분을 도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새문안교회 부목사였습니다. 그때 수송교회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었던 과거가 있었기에 7년전 본교회에서 부족한 사람을 초청해줄 때 쉽게 청빙에 응할 수 있었습니다. 김용준 목사님의 건의를 수송교회 당회가 수렴했기에 세계교회협의회 재 가입이 가능했습니다. 수송교회의 당회의 진보성을 저는 그때 실감했습니다.



그 당시에 어린이들을 위한 목회에 크게 기여한 도지덕 강도사가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분은 저의 신학대학 1년 후배인데 작년도에 와싱톤에 갔다가 그 지역 목회자들이 여름수련회로 간 버지니아 비취 쪽에 갔다가 그 분과 연락이 되어 반갑게 만났습니다. 지금은 침례교단으로 이적을 했고 미주한인침례교회의 총회장도 재작년에 역임했다고 합니다. 70주년 때는 초청을 꼭 해서 우리 교회 아동부 전성기를 이룬 공로로 표창을 하여야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고등부의 활성화에 기여한 목회자로서는 조선휘 전도사(지금은 목사님)가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때 중고등부에 7, 80명이 모였다니 대단한 성장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수송교회가 또 한번 도약하는 계기를 삼은 것은 정행업 목사님과 장로님들과 온 성도님들이 위대한 결단을 내려서 이 강남지역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공동의회를 열어서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이 곳에 땅을 구입하여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제 3의 예배당인데 제2의 예배당이 세워진지 26녀만인 1982년도에 준공하여 입당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수고하신 분들의 이름이 211쪽에 나오는데 건축위원장은 김남준장로님, 서기 박한호장로님, 회계 정찬모장로님, 위원으로서 정행업목사님, 이범천장로님 정영채장로님, 이대동집사님, 김철수집사님 제씨의 이름이 실려있습니다. 이미 고인들이 되신 분들의 이름도 거기 있지만 이들의 수고는 늘 기억되고 추모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없이 숨어서 봉사한 성도들 특히 여 성도님들을 우리는 모두 기억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당대의 성도들 중 많은 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창립을 기념하면서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분들의 손떼 묻은 건물과 기구들 하나 하나에 소중함이 있고 정감이 깃든 것을 우리 성도들 모두는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교회 정문 철제문은 박한호장로님이 기증하신 것입니다. 본인의 입으로 말씀 한번 아니 하시지만 그 문을 볼 때마다 그분은 정감이 교차될 것입니다. 교회의 강대상, 올간, 피아노, 기타 식탁 하나 하나에 성도들의 손때와 정감이 서려있습니다. 교회의 긴 역사를 알고 계신 분과 그렇지 못한 분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일 것입니다.



옛 성도들은 이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었는데 새로이 오신 분들은 아담한 교육관을 짓는데 앞장을 서서 영원히 그 이름이 주안에서 기억되고 그리고 앞으로 오는 후대 성도들에게 기억되어 이름을 남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옛 교인들과 새 교인들이 어우러져서 수송의 공동체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아담한 건물을 지으면서 수고한 분들의 마음속에는 그 당대의 모습들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교회를 짓기 위하여 기도를 많이 했고 정성을 기울였고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못 생겨도 내 자식이 최고로 이쁜것 처럼 내가 정성과 물질을 들인 예배당은 마냥 좋은 것입니다. 근자에 우리 교회에 오신 성도님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영구히 기억될 일, 이 교회가, 이 교회 후대들이 영구하게 기억할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관심입니다. 이런 마음이 물질로, 봉사로 나타납니다. 이번 부활절에 교회가 세운 헌금목표에 꼭 절반을 혼자서 헌금한 분이 계십니다. 이와 같은 봉헌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젠 이 교회와 함께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가 그분의 마음속에 깊이 영상되었을 것입니다. 물질이 많아서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배하시는 성도들 모두가 영원히 기억되는 일들을 이 수송의 공동체에 남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