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수님의 생일과 우리 교회 창립 53주년 기념일 사7:14,요1:1-4,롬12:3-8
오늘은 우리 교회 창립 53주년 기념일인 동시에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두 번째 주일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일은 언제 입니까? 흔히들 12월 25일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가 세상에 태어난지 몇 해가 되느냐고 사람들이 말하면서 1998년이라고도 하고 2003년이라고도 짐작하지만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12월 25일을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라고 해서 이렇게 큰 축제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까? 이 날은 교회가 동방과 서방으로 갈라졌을 때 동방에서는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지 않습니다. 반면에 서방교회는 로마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고 일년중 제일 큰 축제가 태양을 숭배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태양에 대한 축제가 12월 25일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시 우리 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오늘 읽은 요한복음에 얘기한 것처럼 예수를 빛이라 불렀습니다. 세상에 어두움을 뚫고 들어오신 빛이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빛의 탄생, 그래서 로마 사람들이 태양을 섬기는 축제의 날을 우리 크리스마스로 했던 것입니다.
그날을 어느 날로 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도대체 예수님의 생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기에 죽고난뒤에 이천년이 넘도록 지키고 있는 것인가는 물음에 대한 답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에는 바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하나님이 약속한 메시야가 오는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 그날, 하늘 위 높은 곳에 계시고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서 기도하며 쳐다보던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 와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은 한 분인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읽은 요한복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분은 1998년전에 태어나신 분이 아니고, 전 우주가 태어나기 전에 태어나신 분이시다. 우주의 모든 만물을 그가 창조하신 것이다.\\\\\\\\\\\\\\\" 그가 창조하지 않은 것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 요한복음서 기자는 말합니다.
그분이 이러한 인간의 죄로 인하여 어두움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 빛이 되어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 되어 들어올 때에 거기에 어두움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빛이 예수그리스도이시고 그 빛의 탄생이 바로 크리스마스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도들은 그러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두 번째 주에 우리는 교회53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 빛이, 태초에 말씀이, 생명이, 이 세상 속에 들어와서 온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땅위에 그대로 남아서 자기 몸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는데 그 몸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 땅위에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한 대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몸이 지체가 다 같지 않은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개교회만이 아니라 전체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확실하게 아시고 앞으로도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은 이것은 창립기념일때마다 해온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서울안에 교회를 하나더 세우자 이런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 교회라는 이름을 붙이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안에서 믿는 사람들이 꼭 모여서 이런 일을 꼭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모임이 우리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개인마다 특기가 있고 성격이 다른 것처럼 교회도 교회마다 특기가 다르고 특징이 다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의 특징이 오늘에 와서도 꼭 지켜져야 될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특별히 두 세가지 정도로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경동교회라고 할 때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젊은 교회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는 곳 마다 제가 소개를 받을 때면 항상 젊은이들 교회의 목사라고 그랬습니다. 그것은 나이로 볼때도 우리가 맨 처음 예배를 드릴 때는 30세이상의 나이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교인의 90%이상이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때 예배를 인도하던 제가 새파란 청년이었는데 저도 이제는 80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때 주일학교 하던 사람들도 여기 몇몇 있습니다만 전부다 회갑이 지났습니다. 늙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빛이 내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는 그래서 하나의 공동체를 가지는 것이라면 절대로 우리는 늙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이하에서 바울은 우리가 겉사람은 늙어가지만 속사람은 날이 갈수록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속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늙은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항상 싱싱하고 젊은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이제 1년이 지나면 21세기입니다. 이제 연령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어떻게 해야 젊어지느냐는 것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컴퓨터 앞에 자란 사람들이고 정보화사회 속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물리학적으로는 이제 우주시대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들도 그런 새시대의 감각을 다 가져야 됩니다. 그 말은 우리는 이 교회 안에서 서태지의 노래를 대학생들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나도 여러분도 같이 부를 수 있는 그런 젊음을 가져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교회는 신문이나 다른 곳에서 소개할 때는 항상 같이 쓰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앞서 가는 교회\\\\\\\\\\\\\\\' 그리고 하나의 \\\\\\\\\\\\\\\'미래지향적인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창립기념주일때마다 항상 주보에 보시는 것처럼 바울이 빌립보서에 말한 대로 \\\\\\\\\\\\\\\"내가 뒤에 있는 것들을 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 달음질 치노라\\\\\\\\\\\\\\\"하는 성경구절은 우리 교회를 나타내주는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처음부터의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내일을 향한 교회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성서에 보면 구약 이사야서에도 그리고 묵시록에도 \\\\\\\\\\\\\\\"하나님은 누구냐?\\\\\\\\\\\\\\\"라는 물음에 대해서 항상 새로운 일을 하시는 분이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점에서 우리들이 정말로 새로운 일을 미래지향적으로 산다면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비판하고 새롭게 봐서 청산을 할 것은 청산하는 그런 개혁이 있어야 됩니다. 부단한 개혁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평화스럽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안 드는 사람들도 있고, 드는 사람들도 있고 그것은 밖에서도 그렇고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개혁이기 위해서 그런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넘어서야 되는 것이지 그것이 두려워서 우리 개혁을 전진을 정지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요사이 뒤에 앉아 예배를 드리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내가 옛날과는 달리 밖에서는 센바람이 안 불어오고 또 안에서도 골치 아픈 갈등이 없고 그 조용한 평화가 흐르고 있는데 언뜻 좋은 것 같지만은 저는 그것이 진정 정체화가 되어 가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만일 교회가 정체화가 되면 교회는 죽어버립니다. 여러분이 교회가 죽다니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요한계시록 3장 1절을 읽어보면 사백교회를 향해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은 네가 지금 살았다하는 이론은 가지고 있으나 이미 너는 죽은 교회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우리 경동교회에게도 같이 말씀하시는 경고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교회가 이렇게 죽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교회가 된다고 하는 것은 부단히 새로운 토양, 부단한 새로운 전진, 그것은 어떤 어려움이라도 뚫고 나갈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경동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수백만명의 실업자와 가족이 있고 이북에는 수백만명이 굶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들 속에서 무엇을 봅니까? 우리는 그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주렸을 때 그들에게 준 것이 바로 내게 해준 것이다라는 말은 예수가 내안에만 있고 당신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은 굶주리고 있는 그 사람들 속에, 바로 감옥 속에 들어가 있는 죄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 사람들 속에서 사랑으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면 그것은 다시 말하면 사랑과 생명과 창조적인 에너지를 받았다는 그 증거는 우리가 나가서 하루 하루 사는 것이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에 나 자신이나 다른 것들은 날이 갈수록 하나씩 낡아가고 허물어져 가지만 그러나 새하늘과 새땅은 저리로써 이리로 오는 그 주님을 향하여 우리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용기와, 정열과 창조적인 에너지와 전진하는 자세로 뭉쳐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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