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 /히12:18-29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 /히12:18-29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지난 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8월은 휴가와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설교하지를 못했습니다. 이 점을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열 넷째 주일이며, 설교본문은 히브리서 12장 18절에서 2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신앙이 나태해지기 시작하며 또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에서 등을 돌릴 위험에 처해 있는 독자들에게 설교를 합니다(2:1,3; 5:11-12; 10:25, 35:12:3,4; 12:13; 13:17). 히브리서의 저자와 독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은 히브리서에서 찾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히브리서를 읽고 추론할 수 있을 뿐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거명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히브리서가 헬라사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영향 받은 헬레니즘적 유대교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개종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실만을 확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히브리서의 독자 역시 누구인자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히브리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색은 저자가 플라톤의 관념론을 활용하여 유대교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서의 독자는 헬라화 된 유대인 그리스도교 공동체라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상적으로 볼 때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구약성서를 잘 알고 있었고 헬라 철학의 이원론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래 전에 복음의 기초에 대해 교육을 받고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했으나 최근에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신앙적 열기가 식어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고 외적으로는 박해와 환란에 직면하였습니다. 그들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직면하여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신학적인 면에서 독자들이 처했던 가장 큰 위협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완전성과 충만성에 회의를 품고 유대교 제사 제도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의 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신앙의 소망과 열정을 회복하도록 촉구합니다. 그 방편으로써 예수님과 모세, 복음과 율법, 십자가의 희생과 동물의 희생을 대조시키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인해 모든 것이 충족되었음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주석적으로 입증합니다. 동시에 저자는 당시의 널리 퍼져있던 헬라철학의 이원론을 수용하여 ‘영원한 것-보이지 않는 것-위의 것’에 대한 소망을 고취시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이론적 논증 사이사이에 실천적인 권고를 삽입합니다. 이렇게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론적 논증과 실천적 권고를 엮은 독특한 문학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히브리서를 ‘서신’이라기 보다는 ‘권면의 말’ 혹은 ‘설교’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이같은 특성이 잘 집약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구약의 역사가 대조되어 있고, 헬라철학의 이원론을 생각나게 하는 용어와 도식들이 발견됩니다. 동시에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에 대해 응답하라는 강력한 권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의 본문은 히브리서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 얼마나 완전하고 놀라운 것인가에 대해 의심하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그 완전성을 확인시키며 그 놀라운 은혜, 즉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에 대한 응답을 어떻게 하며 살 것인가를 촉구하는 권면의 설교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은 11장부터 읽어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11장부터 13장까지가 히브리서의 결론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11장에서 저자는 환난가운데서 믿음을 잃지 않았던 신앙의 위인들을 열거합니다. ‘이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는 12장 1절은 이 모든 위인들 이야기의 결론으로서, 죄를 벗어 버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자고 권면 하는 설교를 합니다.

실제로 독자들은 심각한 환난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12장 3-11절에서 저자는 독자들이 당하고 있는 환난에 대해 암시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와같은 맥락에서 이어지는 예시적설명과 실제적 권면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8절부터 24절까지는 예시적 설명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시내산과 예수님이 인도하신 하늘의 시온산을 대비시킴으로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큰지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25절부터 29절까지는 엄중한 권면(경고)입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은혜를 거부하는 것도 씻기 어려운 죄였다면,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진 은혜를 거부하는 것은 얼마나 더 큰 죄인가! 은혜가 큰 만큼, 그 은혜에 대한 응답의 책임도 크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이것을 명심하고 바르게 처신하라는 권면 내지 경고하는 설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은혜, 그것은 값없이 선물로 받은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구원(은혜)을 감사하며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저자가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졌는가를 설명하고, 그리고 우리가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권면하는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우리가 살펴 볼 말씀은 18절에서 24절까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부분을 풀어주는 열쇠문장은 18절에서 시작하여 19절에서 끝나는 “너희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말씀과 22절의 말씀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이다”라는 문장이고, 열쇠 말은 ‘아니다’와 ‘이다’입니다.

여기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구별을 ‘시내산’과 ‘시온산’의 대조를 통해서 첨예화시킵니다. 시내산은 모세가 올라가서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옛 언약의 산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히브리서 독자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른 곳은 옛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렀던 시내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독자들은 다시 시내산으로 가고 싶어했습니다. 즉 모세의 율법과 유대교제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에 대해 의심이 생겼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여기에서 믿는 자들이 설자리는 시내산(율법과 제사)이 아님을 명료하게 천명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설자리는 어디입니까? 그곳은 ‘시온산’입니다. 본문 18절부터 다시 보십시다: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피를 뿌린 시온산이라”(22-24)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이른 곳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인도해 주신 시온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언약으로 구원함을 받은 우리들은 더 이상 옛 언약을 받은 시내산으로 되돌아 갈 수 없고, 가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죽음이 있는 시내산에 되돌아 갈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시온산’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영원히 머물 산은 바로 시온산입니다.



그다음, 오늘 우리의 본문은 시온산에 이른 우리 그리스도인들,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고, 장자의 유업을 받을 하나님나라의 시민이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권면합니다(29-29절).

첫째, 우리는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28절의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라는 말씀에서 ‘은혜를 받자’는 말은 ‘감사를 드리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의 첫 번째 응답은 감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참으로 감사하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둘째,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경건함’은 ‘존경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경건함과 두려움’은 ‘경외감’(敬畏感)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 ‘경외심’과 ‘기쁨’은 꼭 손을 잡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홀이 여기는 것도 잘못이요 하나님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하심을 알고 인정하면서도 우리에게 행하신 그 분의 인자하심을 깨달아 그 앞에서 행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삶에 진지함과 기쁨이 늘 함께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인 29절의 말씀,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는 이 경고의 말씀을 다시 명심해야겠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의 축복을 팔아버린 에서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에서는 세상의 썩어 없어질 식물(물질)을 얻기 위하여 장자의 축복권 곧 영원한 구원을 포기해 버렸습니다(12:16).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받은 은혜가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결코 값싼 구원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값비싼 것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받은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하나님 편에서는 너무나도 비싼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아들,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속전’으로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 전체를 우리를 위해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얼마나 값비싼 것이고, 놀라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값없이 받은 그 놀라운 은혜(구원)’로 인하여 늘 감사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충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