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으로 이루어야 할 구원/벧전1:18-23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영국의 웨일즈라는 시골에 사는 과부가 어느 날 밤, 자기 아기가 위독하다며 10km를 걸어와 의사에게 왕진을 청했습니다. 의사는 처음에는 가 봤자 가난한 과부에게서 사례를 받는 것도 문제고 또 안 간다면 아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바꾸어 이해타산보다 의사로서의 책임과 인도적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준비를 하고 시골길을 걸어 급히 그 집으로 갔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의사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위기를 넘긴 그 아이는 장차 영국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사회보장제도의 기초를 확립하고 1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회의를 주도한 로이드 조지가 바로 그 어린 아이였습니다.
만약 그 의사가 그날 밤 왕진을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혼 구원은 육체의 구원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는 발걸음이야말로 장차 영국 수상이 될 아이를 살리는 것과 같은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마더 테레사는 1910년,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나 일평생을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녀의 사역을 보면 처음에는 그녀 혼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였지만 점차 그의 일을 돕는 사람이 많아져 후에는 수녀 3천명, 수사 4백명이 함께 일하는 봉사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녀가 세운 학교도 97개로 늘어났고, 학생 수도 만 4천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 굶주린 한 사람을 도우려고 했던 것이 후에는 매일 십이만명을 급식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사람을 치료하려고 했는데 후에는 십팔만명의 문둥병자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세계는 그녀의 사랑의 행위를 칭송하며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는데, 그녀는 이렇게 수상 소감을 말했습니다. \"나는 결코 수많은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만 한 사람만을 깊이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한 번에 한 사람 밖에는 껴안을 수 없기 때문에 한 사람 밖에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난 오직 한 사람만을 붙잡았습니다. 만일 내가 그 한 사람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나는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처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사랑하십시오.\"
우리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는 \"세계인구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거룩이 있다면 이 해가 가기 전에 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며, 참으로 행복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닷물의 염분 농도는 약 3%인데 이로 인해 바닷물이 썩지 않고 정화된다고 합니다. 죄악의 도시였던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만 있었어도 멸망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성경의 기록은 이 땅에 참된 그리스도인이 10%만 있어도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가 21%나 되는 이 세상은 여전히 미움과 시기, 긴장과 갈등이 만연하여 분열과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기독교인구가 1/4이나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타락의 양상은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고도 남습니다.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끌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해 온 교회가 왜 이렇게 무능하게 되었습니까? 1200만 기독교인들은 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어두워져가는 이 사회를 바라만 보고 있습니까?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눈길이 부정적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변화되지 않고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변화해야 합니다. 그 변화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나가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1.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에 하나같이 죽을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롬 5:14).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영화는 잠시 잠깐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고 해도 허무하게 인생을 마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인간이 죽음의 허무함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본문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은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24-25)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으로는 우리가 거듭나는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3)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 난다는 것은 말씀의 씨앗이 우리의 마음에 떨어져, 그 말씀이 죄악된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밭에 떨어져 꽃피울 수 있도록 그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해야 됩니다. 말씀의 능력은 인간의 지혜로 감히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키는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들 속에 생명의 씨앗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씨앗이 자라나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젊었을 때에 방탕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밀란의 정원에서 로마서 13장 1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읽고 변화되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이 말씀을 읽고 완전히 변화된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근원적으로 변화되어 성자가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도 로마서 1장17절에 있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종교개혁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 또한 물질이나 명예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가정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는 말씀처럼, 우리는 이제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직 천국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우리는 성화의 삶을 통해 구원을 완성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는데 그 목적지는 지상의 가나안만이 아니라 천상의 가나안, 곧 하늘나라였습니다. 우리들 또한 이 하늘나라를 향해서 나가는 나그네요 순례자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3)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순례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이미 구원의 확증은 얻었지만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구원의 증거들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구원을 얻은 자답게 개인적인 삶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돌보아 주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완성을 향해 계속해서 성숙해가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을 이루어가는 방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구원을 완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의 일생을 살면서 하늘나라에서 살 준비를 하지 않고 세상에서만 살 것을 준비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살 곳은 하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은 나그네 인생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버드의 유명한 헨리 나우웬이라는 교수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뒤로하고 캐나다 토론토의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그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저서인 <치유의 기적 ; 루카스 이야기>에서 보면, 한 그곳에 살고 있던 장애인 부부가 아이를 간절히 원하다가 결국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의 뇌에 이상이 있어서 태어나 봐야 15분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들 낙담하고 그 아이를 낙태시킬 것을 권하였지만 장애인 부부는 잠시라도 좋으니 자신의 아이들 안아 볼 수만 있다면 원이 없겠다며 간절히 아이 낳기를 원했습니다. 그 부부의 뜻대로 아이는 태어났습니다. 그러자 장애인 부부는 뛸 듯이 기뻐하며 아이를 안고 행복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5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그 아이는 그 후 17일을 더 살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진작 아이를 포기하지 않아서 슬픔이 더 커졌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장애인 부부는 비록 17일이라도 아이와 함께 살았던 때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헨리 나우웬 교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17일을 살든지, 70년을 살든지 인간은 결국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장애인 부부가 뇌에 이상이 있어 일찍 죽은 그 아이를 자신들의 생명보다 더 아끼듯이 영적으로 죄의 장애에 빠져있는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시면서까지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아담 이후 죄로 인해 죽을 운명에 처해 있었던 모든 인간은(롬 5:14), 죽음으로 치닫는 시한부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구원, 즉 거듭남은 세상의 지식이나 학문, 또는 노력이나 수양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는 구원을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므로 전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
기독교를 가리켜 \'사랑의 종교\'라고 할 만큼,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피에는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18세기 독일 작센에 진젠도르프(Zinzendorf 1700∼1760)라는 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넓은 영지를 가진 백작이었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이 어느 날 미술관을 방문했습니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보는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그림 앞까지 왔습니다. 그 그림을 보는데 문득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가 실제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오 예수님,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다음부터 진젠도르프 백작은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이라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로 피난을 왔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기쁜 마음으로 자기 영지의 일부를 내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헤론후드(Herrnhut)라는 신앙공동체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피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피에는 용서가 담겨져 있습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화란 사람이었습니다. 2차 대전 중 쫓기는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나치 수용소에 갇혔고, 혹독한 고문 끝에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전도자가 되어 온 세계에 다니며 용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 그를 청하여 특별 집회를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자기 손을 잡은 노신사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자기 가족을 고문하여 죽게 하고, 자신의 꽃다운 처녀시절 옷을 벗기고 때리고 고문하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주던 바로 그 전범이 아직 살아서 자신과 악수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나는 그 사람까지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노라.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힘입고 그 원수까지도 용서하였으며 그를 마음으로 용서하는 순간 그 순간에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이기에 십자가의 피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진정 용서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거듭난 것은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새 생명을 소유한 우리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며, 천국에 이를 때까지 거룩하고 흠없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서로 사랑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며, 서로 칭찬하고,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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