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기쁨

구원의 기쁨/벧전1:8-12

구원의 기쁨/벧전1:8-12
2001-11-08 10:03:21 read : 241

한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는데 그 아들이 말썽을 부려서 늘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는 달리 이 아들은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유태인들이 꼭 지키는 성년축하식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했습니다.

\"네가 만일 성년축하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너를 성지로 보내서 좋은 유대인을 만들 것이다.\"

결국 이 아들은 성년축하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를 성지로 보냈습니다. 6개월 후 아들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좋은 유대인이 되어 온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혼란에 빠진 아버지는 친구를 찾아가서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 참 재미있군! 사실은 나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네. 좋은 유대인이 되라고 성지로 보냈더니 그리스도인이 되어 돌아왔지 뭔가?\"


두 아버지는 함께 고민을 하다가 랍비를 찾아가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둘 다 아들의 문제 때문에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들이 좋은 유대인이 될 것을 기대하고 성지로 보냈는데 그리스도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말을 듣고 랍비는 의아해하는 눈길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 참 재미있군! 나도 역시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네. 나도 내 아들이 좋은 유대인이 되기를 기대하고 성지로 보냈는데 그만 그리스도인이 되어 돌아왔지 뭔가?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사람은 진지하게 한 참을 토의하다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모두 같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들을 좋은 유대인으로 만들기 위해 성지로 보냈는데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때 천둥 번개와 함께 에코가 들어간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 참 재미있군! 나도 사실은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네. 나도 내 아들을 유대인으로 성지에 보냈는데 그만 그리스도인이 되어 돌아왔지 뭔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들과 분명히 다른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러한 문제도 우리가 갖고 있는 확신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은 흩어져서 고난을 당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8절의 끝을 보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처한 삶의 정황을 생각하면 이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도대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할 수가 있습니까? 그 비결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합니까? 오늘 본문은 아주 간단하게 말합니다.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구원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구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생명이 위협받는 현실에서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할 수가 있습니까?


이 문제를 풀려면 먼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큰 틀 속에서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구원의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I.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세 단계


성경은 구원이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아주 세세하게 구원을 열 단계 이상으로 설명하는 분도 있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복잡합니다. 그래서 크게 나누면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믿음으로 시작되는 구원


먼저 구원은 예수님을 믿을 때 시작됩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불러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은 아직 의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인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선고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영접할 때 이루어집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은 칭의의 구원을 잘 설명해 줍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2. 성화의 과정인 구원


두 번째로 성경은 또한 성화의 과정을 구원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지식을 통해 자라가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3. 예수님의 재림 때에 완성될 종말론적 구원


세 번째 단계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완성될 종말론적인 구원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로 이 세 번째 단계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장 7절에서는 시련을 통해 연단될 신앙을 강조합니다. 그렇게 연단된 사람이 마지막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II. 본문 묵상 : 구원


오늘 본문은 그런 배경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미래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종착역은 결국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전서를 읽는 독자들은 핍박을 당하면서도 마지막 날에 얻을 구원을 생각하면 너무 감격스러워서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구원은 그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고난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을 설명하면서 역설적으로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지극히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구원은 그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모진 시련을 당해도 마지막 날에 얻을 영원한 구원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1. 보지 못한 가운데 믿는 믿음으로 얻고 누리는 구원


그렇다면 그런 미래의 구원이 어떻게 오늘 우리의 삶에서 살아 역사할 수 있습니까?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우리가 미래에 얻을 구원을 이 땅에서 누리는 비결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본문 8절은 보지 못한 가운데 믿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믿음이라는 것은 안 보이는 것을 본다고 믿은 다음에 그 결과를 정말로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만나본 정도가 아니고 3년 동안 함께 먹고 함께 잠을 자면서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수많은 기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는 달리 이 서신의 독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육신으로 만나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보지 못한 것이 우리가 주님을 믿는데 결코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결코 보는 것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베드로는 주님을 직접 보았지만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때 베드로도 함께 있었습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한복음 20장 29절). 그 때 도마는 비로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전서의 독자들은 놀라운 축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지 않고 믿는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고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주석가 윌리엄 바클레이는 그의 주석에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예수님이여, 내 눈이 아직 주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빛나는 형상을.


주님의 성스러운 얼굴과 나 사이에는


어둠의 베일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주님의 모습도 주님의 음성도 모르는 나


그러나 주님은 나와 함께 있네.


주님과 만나는 장소인 이 땅은


비할데 없이 정다운 곳.


내 비록 눈으로 보지 못했어도


여전히 믿음만 의지할 뿐.


사모하는 주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보지는 못했어도 모르지는 않습니다.


죽음이 내 눈을 감게 하고


죽음이 내 가슴의 고동을 멈추게 해도


찢긴 베일속으로 주님을 볼 것입니다


광채나는 주님의 모습을.


어떻게 우리가 눈으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본문은 그 이유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분을 사랑하여 주님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순교하였습니다.


직접 본적도 없는 그리스도를 향해 그토록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 역사 속에서 위대한 발걸음을 남겼습니다.


A. W. Tozer는 \"천국의 위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 자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Hudson Taylor는 선교의 가장 중요한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한마디로 잘라 대답했습니다. 구세군의 창시자인 William Booth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들을 도와준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에 기초한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미래의 구원을 지금 이 땅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록 이 땅의 현실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종말에 이루어질 구원을 소망하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베드로가 가르치는 구원


베드로는 10절 이하에서 이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 구원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1)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된 구원 (10절)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누리고 있고 앞으로 간절히 소망하는 구원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추구해온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 구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부지런히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온전한 구원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을 비롯한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선지자들이 간절히 갈망하여 연구했던 그 구원을 누리는 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도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완전한 구원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예언자들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언자들이 그토록 갈망하며 연구했던 구원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는가를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실을 직접 첫 번째로 목격한 자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3장 17절)


그렇다면 구약의 선지자들이 연구한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본문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구약의 선지자들은 메시아가 언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오실 것인가를 상고하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아의 사역을 두 단어로 정확히 묘사한 것이 고난과 영광입니다. 주님은 친히 자신의 사역이 고난과 그 후에 영광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입니다.


베드로는 한 때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알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고난받을 것을 말했을 때 간곡하게 만류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 때 베드로는 주님께 사탄이라는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제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고난받고 그 후에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메시아의 사역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라는 인간적인 호칭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공식적인 타이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이 땅에 사는 모든 백성들의 고난을 대신 짊어져야 하는 메시아인 것입니다.


2) 사도들이 확신 가운데 선포한 구원 (12절)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섬겼는데, 그 섬김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바로 신약시대 사람들인 독자들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물론 선지자들의 사역은 당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완성은 신약시대에 이루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섬김은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것은 이제 사도들에 의해서 완전하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사도들의 선포는 성령에 의해 영감된 것입니다.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신 같은 성령이 사도들에게 영감을 주어서 복음의 완전한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령은 오순절 날에 하늘로부터 보내졌습니다. 오순절에 하늘로부터 보내진 성령에 힘입어 사도들은 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순교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고, 안드레는 십자가에 묶여 순교했는데 죽는 자리에서도 전도했으며, 큰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목이 잘려 순교했고, 요한은 기름 가마에 넣었으나 죽지 않자 멀리 밧모섬에 귀양 보내 외롭게 죽었고, 빌립은 브루기아에서 기둥에 매인 채 목매달려 순교했고, 바돌로매는 산채로 껍질이 벗겨져 순교했습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칼에 맞아 순교했고, 도마는 동인도의 코로만델이라는 마을에서 창끝이 등뒤로 나올 만큼 긴 창에 찔려 순교했고, 작은 야고보는 높은데서 떨어지고 몽둥이로 맞아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다대오는 화살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그 외에도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잔인하게 길거리에 끌려 다니다가 순교했으며, 누가는 그리스에서 올리브 나무에 매달려 교수형으로 순교했고, 바나바는 살라미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고, 바울은 네로의 핍박 때에 무서운 고문을 당한 뒤에 목이 잘려 순교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도들이 이렇게 목숨을 버려가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까? 바로 그들 안에 살아있던 구원의 기쁨과 감격 때문입니다. 나 같이 죄 많은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우리의 영과 육이 완전히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 완전한 구원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제한된 육신을 갖고 살지만 믿음으로 그 영생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사도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바쳐 구원의 소식을 증거하다가 핍박의 칼날에 피를 뿌렸습니다. 이것은 2000년 전에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선교지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의 피를 뿌리는 사람들이 수 없이 있습니다. 그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죽을 수 있습니까? 구원의 기쁨 때문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 때문에 사도들은 확신을 갖고 이 구원의 소식을 증거한 것입니다.


3) 천사도 알고 싶어하는 구원 (12절 후반부)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고 앞으로 완전히 이루어질 이 구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천사들도 이 구원이 그리스도를 통해 신자들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원했습니다. 여기서 \'살펴본다\'는 말은 \'몸을 구부려 내려다본다\'는 말입니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을 보기 위해 몸을 구부린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고 앞으로 완전히 이루어질 구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렇게 가치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을 불식시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가치 때문에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각오하고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III. 구원의 확신과 감격이 있으시기를!


여러분 안에 이 확신이 있습니까? 이 기쁨이 있습니까? 내가 지금 이 땅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런 모든 고통을 이기고 남을 만큼 내 안에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있습니까?


어느 날 Alfred Whitehead 박사가 길을 가다가 한 할머니가 큰 웅덩이에 빠져서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얼른 건져주었는데, 그때 그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맙소. 내가 지금 죽었다면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을텐데... 그런데 당신은 예수님을 믿으시오?\"


Whitehead 박사는 그 할머니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당황한 것은 그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이 갑자기 자기 교회에 온 것을 보고 목사는 당황하여 횡설수설하면서 설교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다음 주에 또 온다면 잘 준비해서 멋지게 설교해야지.\'


그래서 한 주일 동안 열심히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다음 주에 Whitehead 박사가 다시 교회에 왔습니다. 설교의 제목은 \'수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그 목사는 세계적인 대 석학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설교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Whitehead 박사는 또 왔습니다. 이번에도 목사는 더 깊이있는 수학과 과학을 동원하여 열심히 설교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Whitehead 박사가 사무실로 찾아와서 등록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는 크게 기뻐하면서 자신의 설교가운데 어떤 부분에 감동을 받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Whitehead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목사님의 설교에 전혀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감동을 받은 것은 한 노인의 말이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건짐을 받은 노인이 \'내가 지금 죽었다면 주님을 만났을텐데\' 라고 했던 그 노인의 말이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말씀을 듣고 싶어서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시더군요!\"


여러분에게 이런 확신이 있습니까? 지금 죽는다해도 주님 나라에 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저는 꿈을 잘 꾸지 않는 사람인데 지난 금요일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제가 병원 같은 곳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간호사인지 아니면 호스피스인지 잘 모르겠는데 저를 불러내더니 이제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죽을병에 걸려 있는 상태이고 곧 임종을 앞두고 있는 상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제게 \"당신은 이제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정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엄습하는데 갑자기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서 찬송가 85장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그 찬송이 생각나면서 주님을 만날 감격이 가슴 한 구석에서 차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고 내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것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감격스러워하다가 잠을 깼습니다. 깨어나서 이틀동안 계속 그 꿈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감격이 꿈이 아니라 제 삶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길 소망했습니다. \'죽음을 앞두었을 때 이 땅을 하직하는 슬픔보다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며 감격스러워 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을 갖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며칠동안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구원의 확신과 감격이 있습니까? 마지막 날에 내게 이루어질 완전한 구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이 땅의 삶을 마치는 날 주님 앞에 가서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볼 그 순간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 때문에 고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기쁨이 있습니까?


지금 당하고 있는 현실이 암울하고 어려울지라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통해서 구원받았고 마지막 날에 완전한 구원을 얻을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그 구원을 누리고, 이 땅을 하직하는 날 영광가운데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확신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만민의 구주 예수여,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온갖 이름 중 비할 데 없도다.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건지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여러 가지 질병의 위협과 수많은 삶의 어려움을 당하지만 그 속에서도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살 수 있는 비결은 우리가 믿고 있는 그 구원의 확신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주님을 믿다가 지금 낙심해 있는 분 있습니까? 주님을 과거에 영접했지만 최근에 그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그 구원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고 산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만지실 때 주님 앞에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게도 그런 기쁨을 주시옵소서. 초대 교회 사도들이 누렸던 기쁨을 주시옵소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누렸던 그런 기쁨을 주시옵소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어도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그들의 믿음을 저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구원의 확신을 누리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제 안에도 그런 즐거움과 기쁨을 주시옵소서. 이 땅의 현실에 굴복하지 않을만한 믿음의 확신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그렇게 주님 앞에 재헌신하며 기도하기 원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런 분들은 조용히 오른 손을 들어서 주님 앞에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손을 드신 채로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