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은 나그네

구원받은 나그네/벧전1:17-23

구원받은 나그네/벧전1:17-23
2003-06-21 13:17:57 read : 119


지난주간 중에 심방 하면서 어린아이가 커피 잔을 드는데 손잡이 부분을 잡으
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벌써 뜨거운 것은 두려운 것이라는 것
을 배웠습니다. 부모는 자기 아이들에게 뜨거운 것, 더러운 것, 높은 장소에
올라가는 것, 칼과 같은 것이 무섭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
면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해서 남의 것을 가지는 두려움을 알게 합니다.
주택에서 기도회나 성경공부를 모이면 아이들이 같이 오게 되는데 그 아이들에
게 무언가를 주고 싶습니다. 공이라든가 아이들이 가지고 놀만한 어떤 것들을
가지고 놀게 하거나 집에 돌아갈 때 손에 들려 보내려고 합니다. \'이거 너 가
져가라\' 그러나 부모는 \'No\'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것을 아무렇
지 않게 가져가는 습관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남의 물건
에 대한 두려움을 가르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가 좀더 커지면 사회생활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두려움을 배우게 됩니다.
남보다 뒤떨어지고 실패하는 것을 무서워하게 됩니다. 신체적인 질병이나 외모
에 대해서 걱정하기도 합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에 대해서 견디기 어려워합
니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며, 남과 다른 것 때문에 수치심을 가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
는 거의 모든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어떤 두려움들은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돈에 대한 가치를 알면 돈이 없는 두려움을 배우지 않
아도 알게 됩니다. 너무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많은 두려움에 대해서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뜨거운 것이 위험하지만 손잡이를 잡는 것으로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웁니다. 아이가 어릴 때 방안에 있는 책상에서 겁 없이 뛰어내리다가 왼 팔
이 부러졌습니다. 덕분에 왼손잡이였던 아이가 오른 손을 쓰게 되었을 뿐 아니
라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
은 두려움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가난한 것이 두렵고 실패가 두렵고 혼자인 것이 두렵습니다. 인정받지 못하
는 것이 두렵고,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어떤 두려움은 우리 인생
을 유익하게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두려움은 습관처럼 무익하게 반복됩니다.
걱정하다보면 사실보다 더 크게 두려움이 확대되기도 합니다. 지나치고 잘못
된 두려움이나 염려는 손해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배워
야할 또 다른 두려움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입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
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나그네로 있을 때\' 라는 말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믿음의 성도들을 가리켜서 세상에서 나그네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 그렇고, 1장1절에서는 (세상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부르고 있
습니다. 2장11절에서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원래 나그네란 고향에서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현재 있는 곳이
자기 땅이 아닌 사람, 낯설고 물 설은 곳에 있는 사람이 나그네입니다. 떠나
온 사람이고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믿음의 사람
들을 나그네라고 부르는 것은 좀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본향
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
인들을 향하여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들은 \'구속된 나그네\'입니다. 18절과 19절 말씀을 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
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여기서 구속이라는 말을 쉽게 설명하면 전당포에 잡혔던 물건을 찾아오는 것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의 전당포에 잡혀있던 우리들을 찾아오시
기 위해서 금이나 은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값 주고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죄가 지배하는 세상에 매여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죄에 사로잡혀서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들을 하나님이 찾으셨습니다. 하나님
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모든 소망 목표
가 하나님께, 하늘에 있게 하셨습니다. 나그네이지만 또한 구원받은 나그네입
니다.

17절의 말씀에서 두 번째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라\'는 말씀이 글자 그대로 세상
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피값으로 사신, 하
늘에 소망을 두고 있는 나그네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발견합니다.
산상수훈에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
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0장에서 제자들에게 \'몸은 죽
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 17절에서 \'나
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워하라\'는 말씀도 위의 말씀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닙니
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거룩
한 두려움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우리들의 삶을 모
든 인간의 각자의 행위를 판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
음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부모로써 자녀들이 어릴 때 뜨거운 것이 두렵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높은 곳이 위험하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남의 것을 함부로 가지는 것이 잘못
된 것이라는 두려움도 알게 합니다. 이와 똑같이 하나님을 아는 두려움도 가르
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을 가져야 합
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우리 자신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산다면 우리의
자녀도 우리들에게서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를 배워
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갑니
다. 우리의 두려움과 염려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막연한 불안 속
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우리 자신의 약점과 잘못과 실패를 보게 됩니
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만약에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믿는다면 다른 무엇보다 예배를 우선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또한 자녀들이 보고 배우게 됩니다.

신앙의 부모라면 자녀들이 하나님을 우선하고 예배를 중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 소원을 이루려면 부모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부모
가 어떤 다른 이유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합시다. 그 다른 이유가 실
제로 중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녀 역시 예배를 빠질 수밖에 없
는 중요한 일들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어른들에게 예배를 뒤로할 만큼의 중
요한 일들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역시 그러한 일들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친구를 만난다던가, 숙제를 해야된다던가 하는 일 등입니다.

반대로 정말 중요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뒤로 미루며 예배에 참석하는
부모를 본다면 그 자녀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다른 것들을 뒤로 미루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가 먼저 바른 신앙 위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작은
두려움들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에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우리가 가지는 가치관과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중
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잃어버릴 때 두려움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최고
의 가치인 사람에게는 돈이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힘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외모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건강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
각하는 사람에게는 건강이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돈도 필요하고 힘도 필요
하고 건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의 최종의 목표가 아닙니다. 살아가는 과
정에 필요한 것들일 뿐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최종의 목표가 하나님 아버지이
며 하나님 나라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수록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작아질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나그네이
기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은 나그네이기 때문
에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늘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살피시면 심판하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나그네인 우리를 예수님의 피값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죄의 전당포에 갇혀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풀어내셨습니다. 우리는 모
두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부족한 돈이 아닙니다. 힘이 없는 것
이 아닙니다. 더 큰 것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 보다 덜 화려한 것
이 아닙니다. 나그네로 있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경외하
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22절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우리가 구원받은 나그네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두려워
하는 나그네가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 하나님을 두려워합
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습니
다. 세상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이 믿음의 길로 우리와 우리의 모든 자녀들
이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