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 입니다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입니다(1)/벧전2:4-5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입니다(1)/벧전2:4-5



보배로운 산 돌(4)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께로 나아오십시오.\"(4b, 현대인의성경)

하나님은 왜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자기 백성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구원받은 자 \'답게\'(1:13-2:3) 빚으시사, 계속해서 예수님께로 나아오도록 격려하실까? 목표가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룩한 제사장\'이다. 베드로는 이를 위해 좀 더 깊은 은총의 빛 아래로 계속해서, 쉬지 않고 \'나아와\' 주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거룩케 하신(1:13-21), 사랑하며 살게 하신(1:22-25), 성장과 성숙으로 부르신(2:1-3)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가기를 촉구한다. 그는 주님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오는 것만이 구원 그 이후를 진정한 복으로 가득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아침에 주님은 베드로의 첫 독자들을 부르시듯이 나에게도 당신 앞으로 \'나아와\' 보라고 부르신다. 나에게도 나를 부르시는 자가 계신다. 이게 나의 행복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5절처럼 쓰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는데, 그런데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 중단하시지 않으셨다. 당신의 뜻을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한 인생들의 완악함과 패역함마저도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는 역사를 거역하지 못하도록 그 크신 사랑으로 인류를 품으셨다. 인간은 정작 \'버리고\'(1) 살도록 명령된 것은 그대로 가지고 있고, 버리지 않아야 할 예수님은 버렸다. 이처럼 영적 무지는 종종 굴러온 복을 발로 차 버리곤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엇을 하셨으며, 지금도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알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어 계신 주님이 아니신가. 그럼에도 주님은 베드로의 설교(편지)를 통해 예수님께 계속해서 \'나아와\'야 할 사람으로 나를 지목하고 계신다. 이 웬 사랑이란 말인가.



거룩한 제사장(5)

\"여러분도 산 돌처럼 영적인 집을 짓는데 쓰이도록 하십시오.
거기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다(요1:41-42, 마16:17-18). 그런데 예수님은 그와의 첫 만남에서 그의 이름은 \'게바\'(베드로, 반석, 돌)라 불러 주셨다. 앞으로 5-8절까지 \'돌 이미지\'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겠지만, 일단 5절에서 베드로는 지금 이 편지를 받고 있는 흩어진 나그네 성도들 역시 예수님처럼, 베드로 자신처럼 산 돌로 쓰이기를 기대한다. 베드로는 지금 자신이 한 때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8a)처럼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음(막14:66-72)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베드로는 더 이상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버려진 돌이 아니다. 그러기에 흩어진 나그네(1:1)들이 구원의 복음(1:1-12)에 붙들려 거룩(1:13-21)과 사랑(1:22-25)과 성숙(2:1-3) 앞으로 중단하지 않고 \'나아가\' 급기야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야마는 구원 그 이후를 소망하고 있다. 마침내 \"버리고 … 세워지고 … 드릴\"(1 → 4) 헌신의 자리가 보인다. 이 위대한 소명은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새로운 길이다. 이 길은 \'거룩한 제사장\'으로까지 나아가도록 만든다.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거룩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다.



부스러기 묵상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a)

하나님의 목표는 더 크고, 더 넓고, 더 높고, 더 위대하다.
비록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신세이지만 그들에게 다시 \'구원의 복음\'(1:1-12)을 베드로를 통해 배달하심으로 \'후속양육\'을 하신다. 그래서 거듭남이라는 중생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과 사랑과 성숙으로 통해 마침내 \'거룩한 제사장\'으로까지 하나님의 꿈을 심어 가신다. 왜 하나님의 목표가 제사장인가는 9-10절을 묵상할 때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은 비록 환난과 핍박 때문에 오늘의 삶의 자리가 흩어진 나그네일지라도 저들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사용하시겠다 하신다.

하나님의 꿈은 여기까지다. 온 세상에 흩어진 당신의 자녀들을 \'시내산 언약\'(출19:1-24:18)의 후예들로 부르사 세계 열방을 당신의 품에 다시 품으시겠다 하신다. 누가 이 일을 맡게 되는가? 너희\'도\'이다. 하나님은 지금 선지자들 → 복음을 전하는 자들(사도들) → 너희들로 이어지는 \'친백성\'(1:10-12)들을 통해서 세계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축복하는 \'위대한 계명\'(마22:37-40)과 \'위대한 사명\'(마28:18-20)을 성취하실 것을 밝히신다. 누구를 통해서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다. 마침내 \'시내산 언약\'을 예수님께서 \'산상수훈\'(마5:1-7:29)을 통해 성취하시더니,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1:12)을 통해 이제는 저희들, 그러니까 오늘 나를 통해서까지 이 위대한 복음의 빛을 발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나 역시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리하여 \"세워지고\", 마침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명하시는 은총의 부르심 앞으로 당당하게 서게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꿈이 내 꿈임을 찬송한다. 이 놀라운 은총 앞에 서기까지 구원 그 이후에 채워야 할 것들, 그러니까 거룩과 사랑과 성숙을 이루기까지 이것들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적(敵, 2:1)들을 \"버리고\", 그 빈자리를 \"순전하고 신령한 젖\"으로 채워가야겠다. 거기까지 자라야만 한다. 구원 그 이후를 이처럼 찬란한 영광으로 채우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왜 제사장인가?\"를 빨리 묵상하고 싶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