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은 사람들

구원받은 사람들/벧전1:3-9/2001-09-14

구원받은 사람들
벧전1:3-9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한 단계 올라서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란다면 \"나는 어떤 존재이며\",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기본적인 진리를 알고 깨닫고 받아들인 것은 처음 믿을 때부터 변함이 없고 확신하는데, 얼마나 생명력을 지닌 영성을 유지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아무리 열심히 믿는다고 하지만, 옛날 수도원 생활을 하던 중세의 신앙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가장 유명한 성자를 들어보라고 하면 프란체스코 버날도네(Francesco Bernardone)가 있습니다 그는 영어식 이름으로 \"프랜시스\"라고 부릅니다. 이탈리아의 앗시스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청빈과 순결 그리고 봉사와 사랑을 그들의 가장 이상적인 신앙으로 삼았습니다. 프랜시스와 그의 동료들은 맨발로 다녔습니다. 자기들의 집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초막을 치고 잠을 청하였으며 나환자의 집에 들어가서 자기도 하고, 의지할 자리만 있으면 어느 곳에나 잠을 잤습니다. 그들은 설교나 지식이나 설득보다는 생활로 보여주면서 전도하겠다고 힘썼습니다. 그들 주의에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성전 제단의 장식을 떼어내서라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프랜시스는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까지도 부끄럽게 여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빈곤과 결혼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청빈이라 했지만 그것은 청빈의 수준이 아니라 빈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디 가서 한끼식사로 떡과 물을 먹었으면 족하게 여겼으며 주님을 위하여 일생 살아간다는 큰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엄격한 규율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헌신에 우러나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명예나 지위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의 이상은 순수하였고, 겸손함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영성이라는 말을 자주하고 영성회복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과연 영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요즈음에는 영성부흥회, 영성세미나 이런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수한 신앙, 가장 성경적인 신앙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순수한 신앙을 자기의 신앙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살아가며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한 사람으로 성령에 귀를 기울이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자녀된 본분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말씀의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생생히 살아가시는 것을 체험할 때에 그것을 진정한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전서1:3-9의 말씀을 가지고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베드로 전서는 당시 핍박받는 성도들에게 주신 소망의 서신입니다. 이 책은 교회의 기둥같이 여기는 수제자 베드로가 우리에게 남겨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예수님을 모시고 섬기던 제자였습니다. 많은 초대교회의 지도자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신 사도요, 존경받는 사도였습니다. 우리가 베드로전서를 읽어가면서도 사실은 우리 주님을 만나는 느낌을 받을 만큼 내용을 담은 말씀입니다.

1절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이런 지역은 다 터어키 반도에 위치한 지역들입니다.

로마의 황제 네로는 주후 64년 7월 19일 로마시를 새로 건설하기 위하여 화재를 일으키고 그 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렸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마지막 불로 세상을 심판한다고 하더라 면서 로마의 대화재는 기독교인들의 소행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이때부터 기독교인들은 수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로마 정부의 박해를 피하여 산악지대로 숨어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터키의 여러 지방은 지형적인 여건이 좋아서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몰려들어간 것은 이런 지형적인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바도기아 지방은 화산재가 굳어져서 만들어진 응회암 지대이기 때문에 동굴을 파기가 쉬운 편이었습니다. 가바도기아에 있는 1000여개의 동굴은 모두다 교회였습니다. 동굴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데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 비유, 사건에 따라 모든 교회들의 그림이 달랐습니다. 교인들은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이동하면서 오늘은 가나의 혼인잔치 그림이 있는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다음에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일으키신 그림이 있는 교회에서 말씀을 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2부 예배 시간에는 가바도기아의 여러 교회들의 벽화를 보여드리고 지하도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 설명 )

22 Page 하 : 23Page 상 : 이러한 바위에 동굴을 뚫고 교회로 모였습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만 1000여개 있다고 합니다.

27 P. : 이 교회는 엘나자르 교회입니다. 10세 경에 세워진 교회로 봅니다.

이 교회는 동방박사들이 아기에게 경배하고,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양부모가 이집트로 피난 가고, 다시 아기를 데리고 성전에 나가 정결의식을 행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40 Page 전체 그림 : 유명한 벽화로 아주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예수님이 제자들과 더불어 성만찬을 거행하는 그림입니다. 이런 그림이 있는 교회에서는 성만찬의 의미를 설교하고 실제로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카란릭 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72 Page : 지하 도시로 들어가는 공개된 층인데, 박해하는 사람들이 쳐들어온다고 하면 둥근 돌을 굴려서 입구를 막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공기의 순환을 고려하여 설계되어 있으며, 바위 꼭대기로 구멍을 내어서 환기에 신경을 대단히 쓴 것을 봅니다. 지하 20층까지 있는데, 일반공개는 8층까지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하도시에서 약 3000천명 정도가 3개월 정도는 버틸 수 있게 건설되어 있고, 멀리 다른 지하 도시로 가는 길도 발견되었습니다.

76P.상: 수Km 떨어진 다른 지하 도시로 통하는 길인데 약 8Km라고 합니다.

75 Page 그림 세 개 : 이렇게 지하 세계를 만들었다. 이곳은 Kaymakli 라는 지하도시입니다. 1964년도 발견된 지하 도시이다. 지하 4층에서 세례를 주던 세례대가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간단한 사진 몇 장 보았습니다만, 이러한 지하 동굴에 들어갈 때 어떤 거룩한 심령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그 때 이곳에서 신앙의 자유를 지키며 숨어 지내야 했다면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편하게 예수 믿는다고 하는데,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신앙을 유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하 도시와 동굴 교회는 한번 가보아야 하는 기독교 성지라고 생각합니다.

1. 구원받은 사람들은 소망 중에 찬송해야 합니다. (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송은 사람들 들으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드리는 찬송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을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제사와 같이 받고 있습니다. 히13:15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드리는 찬송은 제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찬송의 이유가 되셨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입니다.

시69:30-31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황소 한 마리가 얼마나 합니까? 300만원 정도 간다고 하면 우리의 찬송은 그런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을 기뻐받으십니다.

1)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3)

3절 말씀을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거듭난 것은 위로부터 난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부모님으로 난 것은 처음 난 것이요, 다시 난 것은 성령의 역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것입니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은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 속에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 구속 중생 모두 같은 말입니다.

2)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3하)

3절에는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산 소망이라고 함을 이 세상에 죽은 소망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소망이란 \"사모하고 기대하는 마음씨\"라고 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좋은 것을 기대합니다. 이 소망이라는 말 하나로도 좋은데, 그 앞에 살아있다는 산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계속되는 분사형으로 언제나 계속되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산 소망이라고 할 때 생명으로 충만하고, 소망을 성취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마음은 언제나 기쁘고 행복에 차 있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해주셨고, 짊어지셨고, 책임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났으며 이 거듭난 사람만이 산 소망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있는 존재 중에 가장 귀한 가치를 지닌 만물의 영장인 것은 인간에게만 내일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눈빛이 다릅니다. 초롱초롱합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어깨는 들먹거립니다. 태산도 마다 않고 넘어갑니다. 먼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고생도 슬픔도 극복합니다. 산 소망이라고 했으나 살아있는 소망 그보다 더 큰 소망입니다.

이 산 소망은 조금 괜찮은 정도가 아닙니다.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흘러 넘치는 산 소망은 두려움을 용납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산 소망은 우리의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서 거듭난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서는 소망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3) 영원한 기업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4)

4절 말씀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우리의 산 소망은 미래의 유업을 보증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아 누릴 하늘 나라의 유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입니다. 이 세상의 기업이란 다 썩고 더럽혀지고 쇠하는 기업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 누릴 하나님의 나라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업이란 내가 힘써 준비한 것이 아니라, 물려받고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요, 아들 예수님과 함께 유업을 나눌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찬송하는 것입니다.

4)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칼빈주의 5대 강령 중에 \"성도의 견인\"이란 교리가 있습니다. 견고한 인침을 말합니다. 끝까지 보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셨기에 끝까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장해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믿음을 가진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이 영원히 보장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믿어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었고, 무궁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의 견인을 말씀하는 아주 귀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 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한번 주심으로 영원히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붙들려 있는 우리를 어느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의심하는 것은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이요,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싫어 버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2. 구원받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6-7)

우리들이 예수 믿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선다고 하면 더 이상 죄를 짓지 아니하고 좋을 터인데, 하나님은 그렇게 예수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아시아의 여러 교회는 무서운 박해를 피하여 험한 산악지대로 숨어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시험과 환란 그리고 무서운 박해는 그들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1) 시험에도 기뻐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6)

우리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파스칼은 말하기를 \"믿음이란 자기 이성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이성으로, 자기 판단과 경험으로 예수를 믿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무엇이 보여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믿음이 있으니까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우리에게 시험이 다가옵니다. 대로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는 것 그것이 시험을 전제하고 또 시험을 감안하고 믿는 것이지, 예수 믿으면 어떠한 시험도 면제라고 하면 그것은 예수 믿고 그 자리에서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감당치도 못하는 시험을 주시고 기뻐하실 것입니까? 감당치 못한다면 피할 길도 내주시는 것입니다.

2)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7)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대단히 귀합니다. 연단받은 믿음이란 ,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라야 주님 나타나실 때에 담대하게 주님 앞에 세워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시험이란 죄의 유혹에 빠지게 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는 훈련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7절 말씀은 명령문으로 고쳐야 합니다. \"크게 기뻐하여라\"고 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시련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3. 구원받은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누립니다. (8-9)

우리 성도들은 살아가는 분명한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1) 우리 구주 예수를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보지 못하나 사랑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참으로 소중하게 대하고,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오늘의 교회를 돌아보고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주의 종들인 교역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있습니까? 그렇게 믿고도 예수님을 사랑한다니 안 한다니 하는 말을 꺼낼 수 있겠습니까? 의라고 하는 것은 위로부터 입혀주시는 의가 있지만, 실천적인 의 곧 사랑으로 완성하는 의가 있습니다. 사랑이란 충만해야 하고 그 넘치는 사랑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거처럼 우리의 사랑도 충만해야 합니다.

2)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베드로 전서를 받아보신 성도들이나 지금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예수님의 살아 계실 때에 보지 못한 분들입니다. 예수님이 나시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시고 갈릴리에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존을 목격하고 믿으신 분들도 귀한 믿음이지만, 우리처럼 보지 못하고 믿은 사람들은 더욱 복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그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잘 살아보리라고 하지말고, 지금 이 땅에서 기뻐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와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여야겠습니다.

3) 우리는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9)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우리는 믿음의 결국, 마지막, 결과인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이것은 여러분이 믿음의 결과인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이렇게 살거나 저렇게 살거나 하지 않고 분명한 푯대를 향하여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내가 나를 쳐다봐 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만을 사랑하십시오,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십시오. 영적으로 성숙해지기를 바랍니까? 영적 성숙은 여러분,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고, 여러분, 자신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무도 여러분의 신앙에 대하여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목사가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간섭하고 권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산 소망을 주셨고, 영원한 유업을 주셨고,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버리고 우리의 지성을 땅에 내려놓고 믿음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어도 뜨겁게 사랑하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