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길

구원의 길/눅11:1-4

구원의 길
눅11:1-4





대강절 네 주간을 통해서 기독교의 구원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이러한 구원을 항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눅 11:1-4의 말씀은 흔히 주기도문이라 일컬어지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우리가 외우는 주기도문과는 약간 다른데, 현재, 우리가 외우는 주기도문은 마태복음의 것을 기도문으로 만든 것입니다. 학자들은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누가복음의 것이 더 원래의 것에 가깝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아마 더 간결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십계명이 구약을 대표하는 주제라고 한다면, 이 주기도문은 신약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에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명이 나타나 있다고 한다면, 주기도문에도 구원을 위한 내용을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다. 이 주기도문에는 5가지의 기도 내용이 나옵니다.

1.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I.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여기서 둘째 번의 기도 내용인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가 중심 사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들어서시면서 처음으로 하신 설교 주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마 4:17)고 외치셨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간구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조화, 이웃과 조화, 물질이나 자연과 조화되는 모습임을 이미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천, 지, 인의 조화(The harmony of Heaven-Earth-Human Being)가 바로 구원이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로 이 내용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머지 4개의 기도 내용 역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염두에 둔 기도라 하겠습니다.

II.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기도입니다. 나와 하나님과 관계가 아름답고 복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지는 그 자체로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무적으로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바로 갖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기도문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는 십계명의 제 3계명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에서는 \\\"...하지 말라\\\"고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명령한 데 반하여,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라\\\" 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권유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고자 하시는 방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실, 이름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우리 유한한 인간의 욕망입니다. 우리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을 영원히 남게 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의 투사입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우리는 인기를 얻고자 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유명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순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소망을 어떻게 이루고자 합니까? 그것은 자식을 낳는 것입니다. 자식들을 통해서 죽은 다음에도 내 이름이 불리우고 기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사실, 하나님에게는 이러한 영원성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스스로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인 우리 인간을 삶의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의 일을 허락하시기 위한 접촉점으로서 제시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하는 그 모습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만나시고, 우리와의 관계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바르게 수행해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담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아담이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지음으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잘 이끌어 간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그 모습 속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온전히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하고 바르게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III.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와 물질 사이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볼 내용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개입을 의미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일용할 양식을 \\\'나의\\\' 일용할 양식으로가 아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나만 먹는 것이 아니라, 먹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의식하며 이 기도를 올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와 모습이 있을 때, 우리의 양식은 탐욕의 양식이 아니라 화평의 선물로 주어지는 의의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와 물질 사이에 개입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이 말은 매일 매일의 즉, 하루하루의 양식을 말합니다. 1년 후, 10년 후의 양식까지 채워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날 그날의 양식을 구함으로써 하루하루의 삶에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너무나 먼 미래까지 보장받으려고 하는 물질을 축적하려는 자세는 어떻게 보면 욕심이요, 게으름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답답한 듯 느껴지는 삶의 모습일지는 몰라도 여기에 삶의 지혜와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보장되지 않는 미래란 없는 법이요, 이 하루하루가 바르게 채워질 때 실한(solid) 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꺼번에 왕창 우리에게 다가오시기보다는 매일 매일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물질 사용에 개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세상이나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서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IV.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이는 나와 다른 이웃과의 관계를 위한 기도입니다. 여기서의 \\\'죄\\\'라는 표현은 어떤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잘못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일상 생활에 나타나는 채무 관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사실 원문에도 \\\'빚\\\'(debt)이란 말로 쓰여져 있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하여 주듯이, 우리의 죄를 탕감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입니다. 여러분들은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 빚진 종과 백 데나리온 빚진 종의 비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100 데나리온을 $5,000이라 한다면 일만 달란트는 $ 2500억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주인 앞에 엄청난 빚을 지고 사는데, 자기에게 빚진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 결국 그 많은 빚을 다 갚지 않으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이 기도의 내용의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람은 모두가 모두에게 빚진 자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는 빚을 지고 있고, 또 누군가는 나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빚진 자의 모습으로 우리 역시 남의 빚을 탕감함으로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ex) 저의 집 큰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입니다. 아침마다 제가 시무하던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가는데, 저의 옆집 아이도 같이 다닙니다. 그래서 아침에 제가 출근할 때 같이 가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아이를 데리고 유치원에 갈려고 하는데, 그 옆집 아이도 마침 나왔습니다. 평소에도 같이 손 붙잡고 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우리 애가 옆집 아이의 손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물어 보았더니 그 전날 싸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화해하고 손잡고 가라고 했지만 우리 애가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제가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정훈이 손 안 잡으면 아빠도 네 손 안 잡을 거야.\\\" 그 옆집 아이 이름이 정훈이였습니다. 우리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정훈이의 손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아, 왜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 앞에 빚진 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서로에게서 나도 모르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빚이 눈에 띌 때, 우리는 그 빚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의 인간 관계가 회복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자리에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V.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그리고 다섯 번째 기도 내용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인데, 이 기도는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천지인의 조화를 깨뜨리려고 하기 때문에 여기에 시험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시험이란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처럼, 나와 하나님 사이를 이간시키고, 나와 이웃간에 미움과 시기를 갖게 하고, 물질에 대한 오용으로 물질의 노예가 되게 하는 모습으로 주어집니다. 이러한 자리에 빠지지 말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상이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대략적 내용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천지인의 조화를 위해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러한 구원의 자리에 들어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이웃과의 관계, 땅 혹은 물질과의 관계를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이 모습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발견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의 첫 번째는 예수님을 눈 여겨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본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구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진지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예수를 닮고자 그를 유심히 살피는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제자처럼 통찰력과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 생활의 기본은 모방(Imitation)입니다. 이 모방을 통해 창조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모방하고자 애쓰는 모습 속에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표현하기를 \\\"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히 11:38, the world was not worthy of them, NIV)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통찰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지닐 때, 구원을 위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번째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로부터 선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처럼 기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렇게 훌륭한 구원을 위한 기도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 공자(Confucius) 선생은 길을 가면서도 배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선한 사람과 같이 갈 때는 \\\"아! 이 사람의 됨됨이를 본받아야지\\\"하면서 배울 것이고, 악한 사람과 길을 갈 때는 \\\"나는 이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하는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다른 신앙인들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의 신앙인이나 아니면 좋은 신앙 서적을 통해서 선한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있어야 구원의 대열에 끼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 뿐 아니라, 다른 신앙의 인물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지녀야 할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것은 배우고자 하는 열망과 그리로 향한 열린 마음입니다.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영향받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럴 때 예수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며 예수님의 삶을 늘 반추(ruminate)해 보는 열린 마음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조화된 삶을 위해, 이웃과의 조화된 삶을 위해, 그리고 물질이나 자연에 조화된 삶을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며 늘 나의 삶을 곰곰이 생각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더욱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빌 2:12)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나, 내가 겪게 되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늘 탐구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주기도문의 정신을 가지고 또 주기도문의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러한 주기도문의 정신으로 기도하는 그 모습 속에 구원의 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시며 나아가서는 구원의 길에 동참하시고, 힘과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 다음에는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마치신 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성령을 받아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일상 생활의 삶에 이러한 하나닙과 조화, 이웃과 조화, 자연 혹은 물질과의 조화를 위한 삶을 위한 기도를 통해 성령님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 구원의 삶을 현실화하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